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127화 (125/159)

127. 소년기(109) - #에프렐

뭐지?

갑작스러운 비명에 나는 서둘러 몸을 일으켜 가게를 나가려고 했다. 그러자 모쿠 씨가 다급하게 내 팔을 잡았다.

“케륵, 위험하다.”

모쿠 씨가 고개를 저었다.

위험하다니?

내가 의뭉스레 쳐다보자 모쿠 씨가 슬그머니 바깥쪽을 가리켰다.

나는 고개를 돌려 모쿠 씨가 가리킨 방향을 쳐다봤다.

그런 내 시야에 들어온 것은 녹색 로브를 뒤집어쓴 자들이었다.

숫자는 셋이었으며, 훤칠한 사람 둘에 나처럼 작은 사람이 한 명이었다.

내가 이곳으로 오기 전에 델린 씨가 얘기했던 심상치 않은 자들임이 틀림없었다.

어, 저 사람은······ 트리메라 씨잖아?

트리메라 씨는 나무와 인간을 합쳐 놓은 생김새였는데, 장터에서도 주당으로 소문이 난 사람이었다.

특히 그는 장터 바깥을 자주 돌아다니며 산책하기를 좋아한다. 덕분에 그는 장터 주변의 지리에 빠삭했으며, 이것저것 채취하는 걸 취미로 삼고 있다.

나도 트리메라 씨 덕분에 몇 가지 필요한 작물들을 캔 적도 있었고.

전에 라르쉬라고 불리던 향신료도 트리메라 씨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건 그렇고.

왜 트리메라 씨가 저런 일을 겪고 있는 거지?

나는 고개를 돌려 트리메라 씨를 둘러싼 세 사람을 쳐다봤다.

세 사람은 트리메라 씨를 보며 무어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쉽네.

독순술이라고 하던가.

라프린스 씨 덕분에 입 모양이나 얼굴의 표정 등을 보고 말을 이해하는 스킬이 생겼다.

근데, 저 세 사람은 아예 얼굴을 가리고 있었으니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케륵, 위험하다. 저자들한테는 다가가지 않는 게 좋다. 아니, 아예 눈도 마주치지 않는 게 케륵, 좋다.”

눈도 마주치지 말라니.

“저자들이 케륵, 장터에 나타난 이후로 케륵, 사람들이 불안해한다.”

그러고 보면 델린 씨도 비슷한 말을 하긴 했지.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요?”

“케륵, 그렇다. 계속해서 뭔가를 물어보고 다닌다. 나한테도 몇 번 왔었다, 케륵.”

음, 단순히 물어보는 거로 이런 반응을 보일 리는 없을 텐데.

“뭘 물어보던가요?”

“케륵, 모르겠다. 그냥, 뭔가를 찾아다니는 거 같다. 케륵.”

“그래요?”

뭘 찾아다닌단 말이지.

이런 상념은 이어진 비명에 멈췄다.

“으아악!”

나는 몸을 돌렸다.

이번에도 모쿠 씨가 뜯어말렸지만, 나는 그의 손을 밀어내며 고개를 저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이대로 무시하는 건 제 성미에 안 맞아서요.”

나야 대체 저들이 무슨 목적으로 장터에 왔는지, 또 무엇을 찾는 건지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모두를 걱정시키는 자들을 가만히 두고 볼 순 없었다.

내 의지를 느꼈음일까.

잠시 고민하던 모쿠 씨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케륵, 조심해라.”

“걱정마세요! 설마하니, 싸움이라도 나겠어요?”

나는 엄연한 평화주의자다.

피치 못할 경우라면 모를까.

말이 통하는 상대라면, 십중팔구 대화로 해결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저도 같이 갈게요.”

“마음은 고맙지만, 일단 저 혼자서 가볼게요.”

나는 날 돕겠다는 셀리오스 씨를 말렸다.

“괜찮겠어요?”

“그럼요.”

자신 있게 대답한 나는 두 사람을 두고 가게를 벗어났다.

그렇게 세 사람을 향해 다가가던 중이었다.

응?

반사적으로 걸음을 멈춘 나는 재빨리 뒤쪽을 쳐다봤다.

“······.”

이런 내 행동에 셀리오스 씨가 왜 그러냐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의미를 담은 눈짓을 보냈다.

그러면서도 슬쩍 주변을 둘러봤다.

시선.

내가 처음으로 장터에 왔었던 날.

그날 나는 시선을 느꼈다.

나는 그것이 비스테르.

정확히는 록시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나는 록시에게 날 지켜보고 있었느냐고 물었다.

정작 록시는 날 보지 못했다는 말만 했다.

본인이 아니라는데 방도가 있으랴.

나는 의문을 남긴 채 당시 느꼈던 시선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었지.

그리고 지금 내 등을 찔렀던 시선은 그때나 날 심란하게 했던 것과 똑같았다.

“······.”

하지만 이번에도 시선의 주인을 찾을 순 없었다.

거 참.

혹시 몸을 투명하게 만드는 능력이라도 있는 걸까.

하기야.

록시는 동물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

거기다 나는 어떤가.

텔레파시를 통해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다.

물론 렐리크에 한해서긴 했지만, 이 또한 초능력이라는 범주에 들어갈 터.

투명인간이 없으리라는 법은 없으니까.

결국 이번에도 시선의 주인을 찾지 못한 나는 어깨를 으쓱하곤, 당초의 목적지로 걸음을 옮겼다.

아까 비명을 들었기에 무슨 폭력 사태라도 벌어진 줄 알았는데, 막상 가까이서 보니 그건 아니었다.

트리메라 씨도 옷이나 얼굴에 흙만 묻어있을 뿐이지, 맞은 흔적은커녕 자잘한 생채기 하나 없었으니까.

“그, 그러니까! 나는 그런 걸 본 적이 없다고 했잖아!”

그런 거?

트리메라 씨의 외침에 나는 걸음을 멈췄다.

보아하니 직접적인 무력 충돌은 없으니 무슨 상황인지 들어보는 것도 괜찮겠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언제든지 뛰쳐나갈 수 있게끔 대비하는 걸 잊지 않았다.

“거짓말하지 마라.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고 널 찾아왔다고 생각하나? 그동안 이 장터라는 곳을 수소문하면서, 네가 그들을 목격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을 봤다는 이야기라.

혹시 저 사람들이 찾고 있는 걸 말하는 걸까.

나는 당연히 물건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사람을 찾고 있었던 모양이다.

“우리는 시간이 많지 않다. 그저 묻는 말에만 대답해라.”

세 사람 중 가장 키가 큰 사람이 말했다.

목소리만 들어봤을 땐 청년인 듯했다.

언뜻 무감정한 음성처럼 들렸으나, 나는 그 안에 초조함이 담겨있다는 걸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잖아! 모른다고!”

“거짓말하지 마라! 너를 본 순간 나는 확신했다. 너에게는 그들의 냄새가 묻어 있다!”

“윽!”

정곡을 찔렸는지, 트리메라 씨가 흠칫 몸을 떨었다. 덕분에 그의 몸에 달려있던 나뭇잎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말해라. 네가 비협조적으로 나온다면, 우리도 무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

거짓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함인지, 장신의 남자가 품에서 자그마한 칼을 꺼냈다.

“자, 말해라. 그냥 순순히 말한다면 너에게는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겠다. 그리고 이곳에서 즉시 떠나, 다시는 찾아오지 않겠다. 약속하지.”

단순 협박은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이번에는 부탁하듯 말했다.

“나는 모른다. 아무것도 모른다. 너희들이 찾는 게 뭔지도 모르고, 그런 걸 본 적도 없다.”

트리메라 씨의 말에 장신의 남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좋다. 말하지 않겠다면, 말을 할 수밖에 없게끔 만들어야겠지.”

슬슬 나설 타이밍인가.

내가 트리메라 씨의 앞으로 향하려던 찰나였다.

“잠깐!”

돌연 앙칼진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그와 동시에 자그마한 무언가가 내 앞을 스치듯 지났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것을 따라갔다.

마침내 내 시야에 들어온 그것을 확인한 나는 눈을 크게 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람이었다.

다만 크기는 내 손바닥보다 약간 더 작았으며, 등에는 흡사 나비처럼 화려한 무늬가 그려진 날개가 달려있었다.

그래서일까,

“요정?”

나는 가장 먼저 요정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빛살처럼 내 옆을 스쳐 지난 요정이 트리메라 씨의 앞으로 향했다.

“괜찮아요?”

요정의 걱정스러운 말에 트리메라 씨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나는······.”

트리메라 씨가 무어라 말하려고 하자, 요정이 고개를 흔들었다.

“이제 됐어요. 이대로 있다가는 트리메라가 다쳐요. 그러니까······그냥 가만히 있어요. 알았죠?”

마치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다는 듯, 요정이 몸을 돌려 장신의 남자 앞으로 향했다.

“저를 찾으신 거 맞죠?”

“그래. 드디어 찾았군.”

장신의 남자가 한껏 밝아진 음성으로 말했다. 더불어 함께 있던 두 사람 또한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묻고 싶은 게 있어요. 대체 왜 저를 찾은 거죠? 저는 아니, 우리는 더 이상 당신들과 함께할 수 없다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를 먼저 실망시킨 것은 그쪽이에요.”

기관총처럼 쏘아지는 요정의 말에 장신의 남자가 고개를 떨궜다.

“그건······. 알고 있다. 잘못은 우리에게 있다는 것쯤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

“그래서 그 피치 못할 사정이라는 게 뭔지나 좀 들어보죠.”

어째 내가 예상했던 거랑은 정반대로 흘러가네.

단순히 분위기만 봤을 땐 저 요정이 쫓기는 입장, 즉 약자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트리메라 씨는 저 요정을 숨겨줬고, 자신의 친구가 다치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던 그녀는 끝끝내 자신의 정체를 드러냈으리라고 생각했다.

근데, 들리는 대화만 들었을 땐 오히려 요정이 더 상전인 것처럼 보였다.

“그건······. 여기서는 말할 수 없다. 그러니까, 따로 가서 이야기를······.”

“아뇨! 여기서 말하세요. 당신들이 떳떳하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모든 사실을 밝히세요. 그게 아니라면 저는 당신들을 따라가지 않겠어요.”

강경한 요정의 태도에 장신의 남자가 멈칫했다.

그때였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저희를 도와주실 수 있나요?”

가장 키가 작은 인물이 입을 열었다.

작은 키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무척이나 앳된 목소리였다.

이에 요정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 목소리는······.”

이윽고 가장 작은 인물이 손을 들었다.

“자, 잠깐!”

“여기서 얼굴을 드러내면······!”

두 사람이 급히 외치며 행동을 저지하려고 했으나, 소녀의 손이 더 빨랐다.

스르륵.

마침내 후드가 걷히면서, 감춰져 있던 얼굴이 드러났다.

그와 동시에 장터에서 소란이 일었다.

“에, 에프렐?”

“에프렐이잖아!”

잠깐만.

에프렐이라고?

나는 작은 인영의 얼굴을 쳐다봤다.

가장 먼저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옅은 녹색 피부였다. 얼핏 고브와 비슷한 것 같지만, 조금 더 투명하고 옅은 색이었다.

이목구비는 인간과 비슷했으며, 유일하게 다른 점이라면 나뭇잎처럼 생긴 귀였다.

맞네.

나뭇잎처럼 생긴 귀야말로 에프렐의 특징이었으니까.

아울러 에프렐과 인간의 사이에서 태어나셨다는 데커드 할아버지만 하더라도 저렇게 뾰족한 귀를 가지셨지.

물론 데커드 할아버지는 하플링이기에 약간 더 짧고 뭉툭했지만 말이야.

이야, 안 그래도 에프렐이라는 종족이 엄청 궁금했었는데,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이런 내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녀 에프렐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이에요. 나르비.”

“너는······. 엘리니아?”

“맞아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물이었는지, 나르비라고 불린 요정이 크게 당황했다.

그것도 잠시였다.

“정말 엘리니아야?”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친구를 만난 듯 반가운 얼굴로 엘리니아 씨의 요모조모를 살펴봤다.

“절 알아보시다니, 기쁘네요. 나르비.”

“그게 무슨 섭섭한 말이야! 내가 엘리니아를 못 알아볼 리가 없잖아! 그동안 잘 지냈어?”

“······.”

나르비 씨의 말에 엘리니아 씨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더불어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사람들의 시선이 못내 따가웠는지, 슬그머니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요. 차마 잘 지냈다고는 못할 것 같아요.”

돌연 엘리니아 씨가 꾸벅, 허리를 숙였다.

“나르비. 부탁이에요. 우리를 도와주세요. 만약······. 나르비가 아니라면 에프렐은······. 아니, 드라고스 산맥에 사는 모두가 위험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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