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126화 (124/159)

126. 소년기(108) - #심상치 않은 자들

“중요한 거요?”

내 반문에 델린 씨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슬쩍 주변을 살펴봤다. 털 사이로 드러난 눈빛에서 적잖은 긴장감이 느껴졌다.

델린 씨는 비밀이야기라도 하듯,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요즘 장터에 심상치 않은 자들이 돌아다단 말이야.”

“심상치 않은 자들이요?”

내가 이것저것 하느라 장터에 오지 않은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나는 은근슬쩍 주변을 둘러봤다.

내가 장터를 오지 않은 사이에 적지 않은 변화가 있긴 했다.

먼저 유동인구였다.

물론 이게 내 영향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장터를 처음 방문했을 당시부터 유동인구는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었다.

그리고 요 며칠 사이에도 상당히 늘어났다는 건 확실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그거다.

예전에는 유동인구가 늘어난다 한들, 같은 종족의 숫자가 늘었다.

쉽게 말해서 친구나 가족, 등등. 같은 종족 내지 친한 이들과 함께 오는 경우가 늘어난 것이다.

알음알음 소문을 접해서야만 알게 되는, 이른바 외진 곳에 숨겨진 맛집같은 느낌?

반면에 오늘 장터를 돌아다니는 이들 중에는 생소한 종족도 상당수 있었다.

지구의 표현을 빌리자면, 장터야말로 드라고스 산맥의 핫 플레이스로 급부상하는 느낌이 없잖아 있었다.

“음, 커다란 로브로 몸을 가리고 있어서 나도 어떤 녀석들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로브를 뒤집어쓴 자들이라.

일단 로브를 썼다는 건 정체를 숨기려는 의도라는 건 더 볼 것도 없었다.

“음, 근데 로브는 흔하지 않아요?”

당장 내 옆에 있는 셀리오스 씨도 로브를 뒤집어썼으니까.

물론 날아다니는 걸 숨기기 위해 로브를 썼을 뿐, 얼굴은 드러난 상태지만 말이야.

게다가 나만 하더라도 한동안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다녔지.

장터에 오는 이들 중에는 정체를 숨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은지라 새삼스러울 건 없었다.

“그거야 그렇지.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거든. 근데······.”

델린 씨가 마른침을 삼켰다.

“왠지 가까이하고 싶진 않단 말이지.”

“그래요?”

델린 씨는 겉으로 드러나는 이미지와는 달리 굉장히 사교성이 좋고, 활달한 사람이다.

아까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즉석 앙케트를 펼친 것만 보더라도,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는 데에 거리낌이 없었으니까.

이런 델린 씨가 가까이하고 싶지 않다는 건, 쉽게 넘길만 한 일은 아니었다.

문득 내 머릿속을 스치는 인물이 있었다.

데모스의 추종자였다.

음······.

근데, 지금까지 데모스의 추종자들이 행했던 것들이나, 그 패턴을 보면 대놓고 활동하진 않단 말이지.

물론 로브를 이용해서 정체를 숨긴다고는 한들, 이렇게 사람이 많은 장소에 온다는 건 좀 처첨 납득하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음, 안 그래도 그 녀석들이 장터에 온 이후로 분위기가 조금 뒤숭숭하긴 해. 모쪼록 조심하게나. 아까 보니까 저쪽에 있던 거 같던데, 웬만하면 피하는 걸 추천하지.”

나는 델린 씨가 가리킨 방향을 쳐다봤다.

확실히 저 멀리서부터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지되긴 했다.

음, 근데 데모스와 연관되어 있다고 하기에는 무척이나 잔잔하다고 해야 할까.

마나······라고 하기에는 조금 자유분방한 인상이 강했다.

게다가 어째선지 조금 낯이 익다는 느낌도 들었다.

확실한 건 이제껏 느껴본 적 없는 종류의 기운이라는 것이다.

일단 확인을 해보는 게 좋겠지.

“네, 조심할게요. 고마워요.”

나는 짐짓 속내를 숨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크핫, 별말을. 그럼, 축제 때 보지. 아리따운 숙녀도 안녕히 가시게!”

“네, 그럼 그때 봬요!”

“만나서 즐거웠어요.”

셀리오스 씨의 인사를 마지막으로 몸을 돌렸다.

그렇게 델린 씨와 헤어진 나는 셀리오스 씨에게 이것저것 알려주며 장터를 소개했다.

“오호, 초대장이라니! 이거, 영광이로군! 고맙네, 내 반드시 가지!”

“클클, 축제하면 또 내가 빠질 수 없지.”

더불어 당초의 목적이었던 초대장도 열심히 돌렸다.

“그럼 축제 날 보자고!”

“예, 축제 때 봬요!”

내 초대장을 소중하게 품은 채 인사하는 코렛트 씨에게 손을 흔들었다.

“넬은 인기가 많은 사람이네요.”

“제가요?”

갑작스러운 칭찬에 나는 멋쩍게 뒷머리를 긁었다.

“네, 다들 넬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것 같아요. 역시, 장터의 대장이 맞군요.”

“윽, 셀리마저······.”

“에이, 얼마나 좋아요! 장터의 대장! 좋은 의미잖아요? 저는 넬의 별명이 부러운데요!”

“아하하. 그럼 앞으로 장터의 대장은 셀리가 하면 되겠네요!”

“어머, 저한테 자리를 물려주시는 건가요?”

갈수록 셀리오스 씨도 능청스러워지는 것 같단 말이지.

“그럼요. 얼마든지요!”

셀리오스 씨의 장난에 가볍게 응수한 나는 품을 뒤져 남은 초대장을 꺼냈다.

어디 보자······.

지금까지 내가 돌린 초대장의 숫자는 정확하게 71장.

그리고 내 수중에 남은 초대장은 29장.

하물며 아직 장터의 초입도 채 지나지 않았음에도 초대장의 7할이나 없어졌다.

이거 초대장을 더 만들어야 할 것 같은데.

“아, 여기서 조금만 더 들어가면 모쿠 씨의 가게가 있거든요. 거기로 갈까요?”

“아! 모쿠 님이 이곳에 있었죠! 네! 안 그래도 모쿠 님이 뭐 하시는지 궁금했었는데, 가요!”

“오케이.”

* * *

“저, 왔어요!”

“케륵, 이게 누구야. 케륵, 아이넬이······.”

내 등장에 반갑에 인사를 건네오던 모쿠 씨가 뚝, 말을 멈췄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모쿠 씨의 시선이 한 곳에 고정됐다.

그곳에는 신기하다는 듯 모쿠 씨의 가게를 살펴보는 셀리오스 씨가 있었다.

“케······륵?”

마침내 모쿠 씨를 발견한 셀리오스 씨가 방긋,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그러자 동상처럼 굳어있던 모쿠 씨가 펄쩍 뛰었다.

“케륵, 이, 이게 무슨 일인가! 나키아 님이 이곳······큽!”

나는 큰 소리를 내는 모쿠 씨의 길쭉한 주둥이를 콱, 잡았다.

아차!

나도 모르게 나간 손인지라 힘 조절에 실패한 나머지, 모쿠 씨의 주둥이에서 퍼억, 하고 둔탁한 소리가 났다.

“앗, 죄송해요. 괜찮아요?”

“케, 케륵······. 괘, 괜찮다. 케륵, 나키아 님이 어째서 이곳에?”

방금 나의 우악스러웠던 손길을 상기했는지, 모쿠 씨가 한층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조만간 축제가 열려서 초대장을 돌리려고 했거든요. 근데, 셀리도 장터에 오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아서, 겸사겸사 구경시켜드리려고요.”

“케륵, 셀리?”

모쿠 씨의 반문에 셀리오스 씨가 가게 내부로 들어왔다.

“네, 오늘의 저는 셀리오스가 아니라 셀리거든요.”

모쿠 씨가 허겁지겁 다가오더니, 냅다 무릎을 꿇으려고 했다.

이에 셀리오스 씨가 다급하게 모쿠 씨를 붙잡았다.

“아휴, 참. 진정하세요. 지금의 저는 나키아가 아니라, 셀리라고 했잖아요? 그리고, 장터에 있는 동안은 모쿠라고 부를게요. 모쿠도 저를 셀리라고 불러주세요.”

“케륵, 하, 하지만······.”

“자자, 긴말은 필요 없으니까, 어서 일어나세요.”

“케륵, 예, 예!”

셀리오스 씨의 재촉에 못이긴 모쿠 씨가 굽혔던 몸을 일으켰다.

“그나저나, 모쿠는 여기서 뭘 파는 거예요? 이걸 파는 건가요?”

셀리오스 씨가 자글자글, 익어가는 음식을 보며 눈을 빛냈다.

아까 그렇게 먹어놓고도 더 들어갈 공간이 있는 모양이다.

“케륵, 예. 프로기입니다. 케륵, 맛있습니다.”

“프로기? 처음 들어보는 식재료네요.”

모쿠 씨가 부랴부랴 프로기 구이를 접시에 담아 건넸다.

“케륵, 맛있습니다!”

“고마워요!”

셀리오스 씨가 프로기 구이 한점을 물고 씹었다.

“어머, 이거 되게 맛있네요! 이제 보니 모쿠는 요리에도 일가견이 있군요! 프로기는 어디서 구할 수 있나요?”

“케륵, 프로기는 늪에서 잡습니다. 케륵, 마음에 드셨다면 나중에 아브륄에 케륵, 가져가겠습니다.”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있다.

프로기가 어떻게 생긴 마수인지 알고 나서도 저렇게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나는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구석에 자리를 폈다.

“음······. 일단 300장은 만들어두는 게 낫겠지.”

나는 아무리 많이 잡아도 100명 이하라고 생각했다.

근데, 막상 초대장을 돌리다 보니 100명은 무슨.

지금의 기세라면 300명은 족히 넘을 것 같았다.

정정한다.

“친구나 가족까지 포함하면 훨씬 더 많아질 것 같기도 하고.”

이거 아무리 생각해도 축제의 규모를 조금 늘릴 필요성이 있겠는데.

아무렴.

기껏 내 초대에 응해서 머나먼 길을 달려왔는데, 정작 즐겨야 할 거리가 없다면 그것보다 낭패가 없으니까.

“음······.”

뭐가 좋을까.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요?”

한창 축제에 대해 생각하며 초대장을 만들고 있자니 셀리오스 씨가 물었다.

그녀는 금세 프로기 한 마리를 뚝딱 해치운 거로도 모자랐는지, 추가로 한 접시를 더 먹고 있었다.

저 정도면 헤파이토 씨 못지 않은 대식가겠네.

“음, 이번에 축제 때 어떤 걸 해야 좋을지, 고민이 돼서요.”

“어떤 걸 해야 좋을지요?”

“네. 평소에는 먹기 힘든 음식들을 먹고 마시는 것도 축제를 즐기는 방법이긴 한데······.”

여기서 끝낼 게 아니라 관계를 돈독하게 다질 수 있는 놀 거리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속도 마음도 든든해지는 축제? 조금 두루뭉술하긴 한데······. 얼추 이런 느낌으로요. 그래서 함께 즐길 거리도 추가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그렇구나! 역시 넬은 하나도 허투루 하는 게 없네요.”

허투루 하는 게 없다니.

“에이, 셀리가 몰라서 그런 거지. 잘 보면 허점이 되게 많아요. 이번 축제만 해도 아직 부족한 게 많거든요.”

돌연 셀리오스 씨가 자세를 낮추더니, 내 뺨을 콱 잡아 돌렸다.

얼떨결에 고개가 돌아갔고, 이내 셀리오스 씨와 시선이 충돌했다.

“넬은 조금 더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어요! 저는 아직 넬에 대해서 많은 걸 알진 못하지만······. 저는 살면서 넬처럼 열심인 사람은 본적이 없어요.”

“······.”

칭찬으로 맞는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그리고 이번 축제가 열리는 것도 그래요. 넬은 부족한 게 많은 축제라고 하지만, 만약 넬이 없었다면 처음부터 열릴 축제도 없었잖아요.”

셀리오스 씨는 아직도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다시금 속사포처럼 칭찬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넬은 조금 더 자신을 가질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뭐든지 혼자서 할 게 아니라 당당하게 부탁하세요!”

“음······. 지금 이 상황에서 이런 말을 하긴 조금 죄송스러운데요.”

“네?”

나는 손가락으로 입가를 가리켰다.

“여기 양념 묻었어요.”

“앗!”

내 말에 셀리오스 씨의 얼굴이 급격하게 달아오르더니, 허둥지둥 입가를 훔쳤다.

“아직도 있어요?”

“아뇨, 없어졌어요.”

몹시도 부끄러워하는 셀리오스 씨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요.”

“고맙긴요! 그러니까, 뭔가 도움이 될만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부탁하세요! 아니, 지금 말씀하세요!”

“지금이요?”

“네! 제가 축제에 도움이 될만한 거요!”

“음······.”

축제에 도움이 될 만한 거라.

나는 슬쩍 셀리오스 씨를 쳐다봤다.

그녀의 눈에 강렬한 열기가 느껴지는 게, 왠지 없다고 하면 크게 실망할 것 같았다.

“아! 맞다!”

그렇지.

축제를 하면 반드시 빼놓을 수 없는 게 하나 있다.

“음악!”

“음악이요?”

“네! 셀리오스 씨는 노래를 잘 하시잖아요. 그러니까, 축제 때 노래를 해주셨으면 좋겠는데, 어때요?”

“그, 그러니까······. 축제 때요?”

내 부탁이 예상 외였던 걸까. 셀리오스 씨는 크게 당황하며 말까지 더듬었다.

“네. 아브륄에서 온 초대 가수 느낌으로요! 부탁해도 될까요?”

“아, 알았어요! 그게 넬의 부탁이라면 얼마든지요!”

음악이라는 하나의 키워드가 떠오르지, 그 외에도 축제에 선보이면 좋을 것들이 마구마구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정리하던 중이었다.

“크아아악!”

돌연 누군가의 비명이 귓속을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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