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123화 (121/159)

123. 소년기(105) - #아크니악의 정체

다음 날 아침.

늘 그렇듯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며, 밤새 굳은 몸을 풀어준 나는 이른 시간부터 아지트로 향했다.

내가 이곳으로 오게 된 건 셀리오스 씨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계실는지 모르겠네.”

근래에는 이로나스 씨를 만났고, 그에게 물려받은 경험과 지식을 받아들이는 데 집중했다.

자연히 아지트를 찾지 못했기에 과연 셀리오스 씨를 만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내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었는지, 아지트에 도착하자 익숙한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바로 틴 휘슬을 연주하는 소리였다.

“와우.”

역시나 셀리오스 씨는 악기에 소질이 있었는지, 내가 가르쳐준 작은 별을 완벽하게 연주하고 있었다.

“아, 오셨군요!”

내가 아지트에 도착하자 셀리오스 씨가 반갑게 맞이했다.

“오늘은 일찍 오셨네요!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내 안부인사에 셀리오스 씨가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바쁜 일이라도 있으셨나봐요. 매일 기다렸는데, 안 오시던데.”

역시, 나를 기다리고 있었구나.

“미안해요. 대신 오늘은 마을을 안내해드릴게요!”

내 말에 셀리오스 씨의 얼굴이 급격하게 밝아졌다.

“마을이요? 저한테 마을을 소개해주신다고요?”

“네. 계속 이곳에 있는 것도 심심하잖아요? 그러니까, 이참에 마을에 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요.”

“좋아요! 아, 근데······.”

셀리오스 씨가 안타까운 시선으로 호수를 쳐다봤다.

“오늘은 라프린스를 데려오질 못해서요. 라프린스도 아이넬 님의 마을에 꼭 가보고 싶은 것 같았는데······.”

“아, 그거라면 걱정할 거 없어요!”

내가 자신만만하게 말하자 셀리오스 씨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 혹시······. 아크니악 복제에 성공하신 건가요!?”

아마도 셀리오스 씨는 내가 아크니악의 복제에 전념했으리라 생각했을 터.

“아쉽게도 아크니악을 복제하진 못했어요.”

“아······. 죄송해요.”

“죄송하긴요. 대신 다른 걸 찾았어요.”

“네? 좋은 거요?”

“네. 좋은 거라고 해야 할지, 조금 애매하긴 한데······. 저번에 저한테 맡기셨던 팔찌 있죠?”

“아, 그랬었죠. 혹시 팔찌에 대해서 알아내신 건가요?”

셀리오스 씨의 반응을 보아하니 팔찌에 대해서 아예 잊어버리고 있던 모양이네.

“알아냈다고 해야 할지, 강제로 알음을 당했다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네요. 아무튼, 그 팔찌가 보통 물건은 아니더라고요.”

“그게 무슨 뜻이에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셀리오스 씨에게 내가 겪었던 일을 설명했다.

“그러니까, 그 팔찌가······. 아크니악과 연결된 곳이라는 건가요?”

“맞아요. 보니까, 아브륄에 있는 아크니악도 하나의 문이더라고요.”

“그, 그랬군요. 전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네요.”

셀리오스 씨가 민망하게 웃었다.

“꽁꽁 숨겨져 있었으니, 모르는 게 당연한 거잖아요.”

그도 그럴 게, 현재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 중. 이 팔찌에 대해 알고 있었던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애초부터 지하 깊숙한 곳에 숨겨두기도 했고.

달리 말해서 내가 아크니악의 수리를 맡지 않았다면,

나아가 아브륄로 가지 않았다면, 수천 년은 더 지난 뒤에서야 알려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더불어 나는 그곳에서 세이비오르인 이로나스 씨를 만났다는 것도 얘기했다.

“그럼······. 그 세이비오르라는 분이 아크니악을 만드셨다는 건가요!? 그리고 아이넬 님은 그분의 진전을 이어받으셨고요!”

셀리오스 씨가 크게 놀라며 물었다.

아무렴.

나만 하더라도 아크니악의 본체가 따로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하물며 그것을 만든 인물을 직접 만났으며, 고대의 유산이라 일컫는 렐리크의 제작 기술까지 전수해줬다.

셀리오스 씨의 놀라움은 더욱더 클 수밖에 없겠지.

“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그래서 말인데······. 죄송해요.”

나는 셀리오스 씨에게 사과의 뜻을 전했다.

“죄송하다니요! 저한테 죄송할 게 뭐 있나요!”

“이 팔찌는 엄연히 아브륄에 있던 물건이잖아요. 나키아이신 셀리오스 씨의 허락도 없이 들어가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요.”

“그런 말씀 마세요. 저는 오히려 아이넬 님에게 그 팔찌를 드려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답니다. 아마 아이넬 님이 아니었더라면, 제가 죽을 때까지 몰랐을 테니까요.”

“이해해주시니 고맙네요.”

셀리오스 씨의 상냥한 말에 멋쩍게 뒷머리를 긁었다.

그때였다.

“맞습니다. 아이넬 님이 세이비오르 님을 만난 것은 운명입니다.”

내 어깨에 앉아 털을 고르던 아르젠 씨가 무심한 톤으로 말했다.

“어, 어머?”

느닷없이 참새가 그것도 몹시도 정중한 인사를 건네자, 셀리오스 씨가 화들짝 놀라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사람 말을 하는 참새의 등장에 당황했던 셀리오스 씨가 짝, 손뼉을 쳤다.

“아, 이분이 그곳에서 만났다는······?”

“안 그래도 소개해드리려고 했는데. 맞아요, 이분이 아르젠 씨예요.”

내가 이름을 언급하자 어깨에 앉아있던 아르젠 씨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아브륄의 지배자시여.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반가워요, 저는 셀리오스라고 해요.”

참새와 인어의 대화를 보고 있자니 뭔가 신기하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아, 이럴 게 아니라 아크니악의 본체에 가보실래요? 사실 아직은 별 게 없긴 하지만요.”

“가보고 싶어요!”

나는 힘차게 답하는 셀리오스 씨에게 웃어 보이고는 허공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손등에 새겨진 문신이 반응하며, 게이트가 열렸다.

“들어가죠!”

나는 셀리오스 씨와 함께 게이트로 진입했다.

이내 게이트를 통과하자, 낯익은 풍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되게 넓군요. 근데, 넓이에 비해서 허전하긴 하네요.”

“그쵸? 근데, 여기서 끝이 아니에요. 이곳은 아크니악의 내부고, 외부도 따로 있거든요.”

더불어 나도 그곳이 꽤 마음에 들어서,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땐 곧잘 찾아가곤 했다.

“가보고 싶어요!”

“오케이!”

나는 아크니악의 외부로 이어진 게이트를 열었다.

“와······.”

이윽고 탁 트인 전경을 마주한 셀리오스 씨가 감탄했다.

아크니악 내부와는 달리 이곳에는 내 개인 작업대는 물론, 앉아서 쉴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 및 잠깐 눈을 붙일 때 쓸 침대 등등.

정말로 내 취향을 듬뿍 담은 피서지처럼 꾸며놨다.

“여기가 세이비오르 씨가 가장 좋아했던 장소였고,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눴던 장소기도 해요.”

“그렇군요.”

“아, 더 신기한 거 알려드릴까요?”

“신기한 거요?”

“보세요. 여기가 어딜까요?”

내 질문에 셀리오스 씨가 주변을 둘러봤다.

“글쎄요? 저는 모르겠어요.”

나도 처음 이곳에 왔을 땐 경치에 압도돼서 별다른 생각을 못했다.

근데, 몇 번 찾아오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힌트는 저 태양이에요.”

“어, 잠깐만요······.”

그제야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는지, 셀리오스 씨가 허둥지둥 고개를 들었다.

“저거요, 태양. 왠지 되게 가까운 것 같긴 해요. 어, 그럼, 여기는 설마······.”

셀리오스 씨의 얼굴에 놀라움이라는 감정이 떠올랐다.

“네. 맞아요. 여기 하늘 위에요. 아, 거기서 끝이 아니에요.”

“또 있어요?”

“네, 실은 이 아크니악이요. 움직여요.”

“네?”

나도 기억을 정리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사실 이 아크니악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아크니악은 모두를 지키기 위해서 만들었거든요. 그래서······.”

나는 가만히 서서 아크니악에 집중했다.

왼쪽으로 살짝만 돌아줘.

그러자 돌연 아크니악의 본체가 서서히 왼쪽으로 돌아갔다.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이번에는 수직으로 상승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번에도 아크니악은 내 명령을 착실히 따랐다.

“세상에!”

“신기하죠?”

이 거대한 건축물이 하늘에 떠있다는 것도 놀라운 판국에, 움직이기까지 한다.

나도 이 사실을 알았을 땐 까무러치는 줄 알았지.

“아, 그리고 또 있는데요.”

“또, 또요? 대체 얼마나 더 놀라게 하실 생각이세요?”

말은 저렇게 했지만, 셀리오스 씨도 내심 궁금했는지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 * *

잠시나마 함께 경치를 감상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이제 슬슬 마을로 갈까요? 아, 그전에 아브륄부터 가야겠네요. 아브륄에 있는 아크니악은 진작부터 본체랑 연결이 되어있어서 바로 갈 수 있거든요.”

“네!”

일전에 내가 수리했던 아크니악이 있던 그 장소였다.

내 뒤를 따라 게이트를 통과한 셀리오스 씨가 작게 감탄했다.

“정말 아브륄로 돌아왔군요.”

그녀는 직접 겪어보고도 믿기지 않았는지, 천천히 닫혀가는 게이트를 보며 중얼거렸다.

“아, 맞다. 괜찮으면 이 아크니악이랑 호수랑 연결해드릴까요? 매일 왕복하는 것도 힘드실 것 같은데.”

“그것도 가능한 거예요?”

“네. 아크니악의 본체가 있으면 바로 문을 열 수 있거든요.”

물론 말과는 달리 실제로는 아크니악의 본체를 경유해야만 했다.

말이 경유지 게이트를 통과하는 시간으로만 보면 거의 찰나에 가까워서, 경유했는지조차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럼, 앞으로는 편하게 이동할 수 있겠네요! 부탁할게요! 그럼 저는 라프린스를 데리고 올게요!”

고개를 끄덕인 나는 곧장 아크니악에 손을 얹었다.

* * *

“드디어 아이넬 님의 마을을 볼 수 있는 거군요!”

셀리오스 씨가 무척이나 기대된다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그 옆에는 토트리의 위에 앉은 채 주변을 힐끗거리고 있는 라프린스 씨와, 두 사람의 호위를 맡은 아쉬르 씨도 있었다.

그러고 보면, 아쉬르 씨가 지상으로 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지.

그도 그럴 게, 셀리오스 씨나 라프린스 씨는 인어다.

수영을 잘하고 말고를 떠나서, 아예 물속에서 살아가는 게 가능한 종족.

반면에 아쉬르 씨는 아니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어째서 아쉬르 씨가 아브륄에 있는 걸까, 라는 궁금증이었다.

여기에 대한 해답은 이로나스 씨의 기억에 있었다.

과거.

그러니까 아주 먼 옛날에는 아브륄이 지상에 있었다고 한다.

정확히는 수면 위에 떠있는 섬의 형태였다.

하지만 데모스의 등장으로 인해, 전쟁이 발발했고.

이에 대항하던 아브륄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그렇게 섬이었던 아브륄은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것이 계속해서 이어져 현재의 아브륄이 된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이로나스 씨가 아브륄의 존재를 알고 있었으며, 섬이 가라앉는 걸 보자마자 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그게 아브륄을 감싸고 있는 비눗방울이었고.

만약 이로나스 씨가 아니었더라면 지금의 아브륄은 진작 사라졌으리라.

본론으로 돌아와서.

아쉬르 씨는 물론, 지금도 아브륄에 살아가는 몇몇 종족들은 원래 지상에서 살아가던 종족이었던 셈이다.

그래 봐야 아쉬르 씨에게 지상이란 미지의 영역이었지만 말이야.

아니나 다를까.

“나키아 님······.”

불안한 눈으로 주변을 살피던 아쉬르 씨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셀리오스 씨를 불렀다.

보아하니 그녀는 우리 마을로 가는 게 적잖이 걱정스러운 듯했다.

“아니죠! 제가 아까 뭐라고 했죠?”

“예?”

“설마, 잊으신 거예요? 이곳에서의 저는 나키아도, 셀리오스 님도 아니라고 했잖아요.”

“아! 하, 하지만······.”

급하게 입을 여는 아쉬르 씨의 태도에, 셀리오스 씨가 허리에 양손을 얹었다.

“자, 따라해봐요. 셀리.”

“······.”

“어서요! 자꾸 그러면 아쉬르는 안 데리고 갈 거예요.”

결국 셀리오스 씨의 압박을 견디지 못했는지, 아쉬르 씨가 눈을 질끈 감으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세, 셀리······.”

“좋아요! 나는 셀리, 여기는 라프. 그리고······.”

셀리오스 씨가 슬쩍 날 보더니 작게 헛기침을 하더니, “넬.” 이라고 조심스럽게 내 애칭을 말했다.

“자, 여기서 이러지 말고 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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