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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122화 (120/159)

122. 소년기(104) - #신상

저녁 무렵이었다.

일찌감치 목욕을 끝낸 나는 방으로 돌아왔다.

“우우우웅, 루나아······. 빠르다······.”

작게 들려오는 록시의 잠꼬대에 픽 웃었다.

오늘 질리도록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닌 덕분인지, 록시는 이른 저녁부터 꿈나라로 떠났다.

이는 옷장에서 자고 있을 루나도 마찬가지였다.

행여나 감기라도 걸릴까, 록시가 발로 차서 날려버린 이불을 끌어다 덮어준 나는 조용히 창문을 열었다.

푸드득!

내가 창문을 열자 나무에 앉아 쉬고 있던 아르젠 씨가 날아왔다.

“어디 가십니까?”

아르젠 씨가 작은 부리를 움직이며 물었다.

생김새는 귀여운 참새이건만, 목소리는 중후해서 참 묘하단 말이지.

“잠깐 할 게 있어서요. 나가는 김에 바람도 좀 쐬고요. 같이 갈래요?”

“예.”

고개를 끄덕인 아르젠 씨가 내 어깨에 올랐다.

“웃차!”

그대로 허공으로 몸을 던져, 지상으로 착지했다.

탁!

손가락을 튕기자 열렸던 창문이 스스로 닫혔다.

역시 자동이 제일 편하다니까.

마당에 주차시켜 둔 자전거를 꺼내고 있자, 위즈 씨가 다가왔다.

옆에는 라피 씨도 함께 있었다.

이제 막 일어났는지 잠이 덜 깬 얼굴이었다.

눈을 비비며 크게 하품하던 라피 씨가 날 보더니 서둘러 꾸벅,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아이넬 님!”

“안녕하세요.”

“아이넬 님, 오늘도 외출하시는 겁니까?”

“네, 오늘도 잠깐 산책이나 갔다 오려고요. 오늘 순찰은 라피 씨군요.”

라피 씨가 퍼뜩 차렷 자세를 취했다.

“네!”

“늘 고생이 많네요. 잠깐만요.”

나는 가죽케이스를 뒤지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라피 씨가 언제 졸렸냐는 듯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보아하니 내가 간식을 주리라는 걸 미리 알고 있는 거겠지.

처음에는 그냥 밤에 순찰을 나서는 게 기특해서 간식을 챙겨줬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다들 은근히 간식을 바라는 눈치였다.

하여간, 다들 귀엽다니까.

그 모습에 픽 웃은 나는 아크니악의 통로.

이름하여 게이트를 열었다.

게이트를 통과한 살갗에 서늘한 냉기가 전해졌다.

내 손이 도착한 공간은 냉장고였다.

그것도 내가 아크니악에 따로 배치한 냉장고였다.

그 외에도 이런저런 도구와 가구들을 배치했다.

따라서 나는 언제 어디서든 손쉽게 물건을 꺼내고 저장할 수 있었다.

더듬더듬, 손을 뻗어 미리미리 만들어 둔 간식을 꺼냈다.

“자, 이거라도 드시고 하세요.”

간식의 정체는 쿠키였다.

“아! 쿠키다!”

라피 씨가 밝은 얼굴로 쿠키를 받았다.

“네, 쿠키를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 만들어뒀죠.”

“고맙습니다!”

“뭘요. 매일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순찰하시는데,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죠.”

라피 씨만이 아니다.

마을에 사는 비스테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자발적으로 했다.

덕분에 마을에 무슨 일이 생기면 곧장 알 수 있었고, 나나 마을 사람들에게도 안심감을 줬다.

더불어 이런 비스테르들의 노력 덕분에 마을 사람들도 금세 마음을 열었고, 이제는 완연한 마을의 일원이 되었다.

“그럼 오늘도 고생하세요.”

“넷! 아이넬 님도 즐거운 산책하세요!”

“오후에 뵙겠습니다.”

나는 두 비스테르와 인사를 끝내고, 자전거를 몰았다.

“좋다.”

얼마 전 마을에 깐 돌길 위를 달리고 있자니, 외곽에 설치된 가로등이 켜지며 밤을 밝혔다.

매일 보는 장면이지만 볼 때마다 감탄사가 나온단 말이지.

게다가 고즈넉한 밤을 밝히는 가로등을 보고 있노라면 괜스레 마음이 따스해진다.

“아이넬 님은 이곳을 아끼시는군요.”

아르젠 씨의 말에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럼요. 이 마을이야말로 저한테 가장 소중한 장소거든요.”

아무렴.

이 마을은 나의 두 번째 고향이자,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터전이니까.

“아르젠 씨는 요즘 어때요?”

“요즘 어떠냐는 말이 어떤 의미입니까?”

“음······. 그러니까, 마을에서 지내면서 느꼈던 감정?”

아르젠 씨가 고개를 돌려 마을 쪽을 응시했다.

“감정······.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에이, 죄송할 게 뭐 있어요.”

시간은 많으니까 언젠가는 아르젠 씨도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그렇게 가로등과 밤 특유의 선선한 밤바람을 만끽하던 내가 도착한 곳은 마을의 외곽에 위치한 공사현장이었다.

정확히는 신전을 짓기로 한 장소였다.

근처에 자전거를 세우고 공사현장의 근처로 다가갔다.

“역시, 오늘도 계시네.”

나는 공사현장의 한편에 우두커니 서 있는 사람을 보며 중얼거렸다.

도리아 아주머니였다.

그녀는 그 누구보다 신실하며, 신앙심이 크다는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실제로도 도리아 아주머니는 아직 신전이 완성되지도 않았건만, 늘 이곳에 홀로 찾아와 기도를 드리곤 했다.

오늘도 그녀는 레비아 선생님처럼 새하얀 로브를 걸친 채 조용히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내가 오밤중에 이곳을 찾아온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나는 가만히 서서 도리아 아주머니를 눈에 담았다.

아니, 정확히는 그녀의 머리 위였다. 그곳에 새하얀 수증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더불어 수증기는 마치 바람에 떠밀리듯 천천히 이동했다.

목적지는 바로 나였다.

이윽고 나는 손을 뻗어 수증기를 어루만졌다.

그와 동시에 수증기가 내 몸에 빨려 들어가더니, 백색 마나의 양이 늘어났다.

그렇다.

도리아 아주머니의 몸에서 나온 새하얀 수증기의 정체는 백색 마나였다.

이전에 나는 마음과 감정이 백색 마나의 원천이라는 걸 알아냈다.

그중에서도 백색 마나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감정이 있었다.

바로 믿음이었다.

내가 이를 확신하게 된 때가 있었으니, 바로 이틀 전 밤이었다.

오랜만에 반디와 산책을 할 겸, 밭을 둘러보던 중이었다.

돌연 새하얀 수증기가 내게로 다가오는 게 아닌가.

놀라운 것은 그다음이었다.

수증기가 내게 닿자, 백색 마나가 증가했다.

나는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부랴부랴 수증기가 날아오는 방향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렇듯 기도하는 도리아 아주머니를 발견했다.

솔직히 말해서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도리아 아주머니에게서 백색 마나를, 그것도 상당한 양을 흡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한 가지 씁쓸한 사실이 있다.

이 백색 마나가 생성되는 특성 때문에 이로나스 씨는 데모스를 물리치지 못했다는 거다.

그도 그럴 게, 백색 마나야말로 이로나스 씨의 힘이다.

달리 말해서 이로나스 씨의 존재가 널리 알려질수록 그 힘 또한 덩달아 강해진다는 의미.

하지만 이로나스 씨는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지 못했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를 알았으며, 그마저도 데모스의 계략으로 인해 홀로 남게 되었다.

즉 데모스라는, 일생일대의 적을 앞에 뒀음에도 정작 이로나스 씨의 힘은 약해져만 갔던 셈이다.

그랬기에 이로나스 씨는 데모스를 물리치지 못했고, 그저 봉인하는 선에서 그쳐야만 했다.

심지어 봉인을 시키기 위해서 자신의 존재를 소멸시키는 결단까지 내렸고.

어쩌면 데모스도 이 사실을 알았기에 비로소 대륙을 넘볼 결심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지.

조만간 데모스의 영혼을 어떻게 처리할지도 좀 고민해봐야겠네.

나는 도리아 아주머니의 기도가 끝날 때까지 주변을 지키며 백색 마나를 흡수했다.

이윽고 기도를 마친 도리아 아주머니가 마을로 돌아가셨다.

* * *

약 1시간에 걸쳐 마을을 돌아다닌 나는 다시금 공사현장으로 돌아왔다.

부지런하게 발품을 판 덕분에 빵빵해진 백색 마나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이 정도면 신상은 만들 수 있겠네.”

안 그래도 신상을 어떻게 만들어야 좋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사실 만드는 것 자체는 그다지 어렵진 않았다.

그냥 커다란 바위를 깎아서 만들면 되니까.

근데, 막상 바위를 깎아서 만들자니 뭔가 아쉽더라.

DIY를 하면서 생긴 직업병이 도진 것이다.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신상이라는 건 상징물이며, 완성되면 그 누구라도 볼 수 있게끔 신전에 설치해야 한다.

따라서 파메르의 나이, 성별, 특징, 풍기는 이미지.

외형적인 부분이 무척이나 중요했다.

그러니까, 누가 보더라도 파메르라는 것을 알 수 있게끔 제작해야 하는 셈이다.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지구에 존재하는 신화였다.

그 누구나 다 아는 그리스신화부터 시작해 북유럽 신화, 이집트 신화, 각종 설화나 널리 알려진 영웅의 이야기 등등.

내가 지식을 모두 총동원해서 파메르에 어울리는 이미지를 물색했다.

하지만 이미 존재하는 신을 모티브로 만들어도 괜찮나, 싶던 중.

나는 이로나스 씨를 만났다.

세이비오르.

모두를 위해 자신의 소멸마저 감내했던 시대의 영웅이자, 만인을 아끼고 화합을 중요시했던 인물.

파메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현상을 이해하고 꿰뚫어보는, 조화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신.

화합과 조화.

비록 그 의미는 조금 다를지언정 추구하는 가치의 맥락은 비슷했다.

“즉, 이로나스 씨야말로 파메르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인물이라는 거지.”

재질은 더 볼 것도 없이 마그테리움이었고, 전체적인 외형은 이로나스 씨를 그대로 본 따서 제작하면 되리라.

좋아.

이로써 고민은 끝났다.

나는 도리아 아주머니가 기도를 드리던 위치로 이동했다. 그 앞에는 널찍한 제단이 있었는데, 이곳이 바로 신상을 세울 장소였다.

나는 눈을 감은 채 이로나스 씨를 떠올렸다.

그러자 고요하게 자리 잡고 있던 백색 마나가 꿈틀거리며, 내 몸을 빠져나갔다.

이제부터가 중요했다.

외형이야 이로나스 씨랑 똑같이 만들면 되지만, 그 외에 신상의 자세나 복장 같은 건 내가 직접 상상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어디 보자.

자세는 그냥 양팔을 살짝 벌린 모습이면 될 것 같고. 아, 그냥 맨손이면 심심하니까 검이라도 하나 쥐여 줄까.

아니지.

이로나스 씨야 영웅이니까 검이 어울리겠지만, 파메르의 이미지에는 조금 어색할 것 같았다.

그렇다고 지팡이를 들려주자니 그것도 조금 이상하단 말이지.

음······.

“아!”

그래, 부채를 쥐여줄까.

검이나 지팡이보다는 부채를 들려주는 쪽이 조금 더 분위기가 살 테니까.

그리고 여기에 인자한 미소를 더 해주면 끝.

일단 전체적인 외형과 이미지는 됐다.

이제 남은 건 복장인데······.

우리가 흔히 걸치는 로브는 패스다.

명색이 신이었으니 조금은 화려하면서도 소박한 느낌으로 가고 싶은데.

지구에서 입는 옷들 중, 파메르의 이미지에 어울릴 만한 게 있던가.

으음.

이거 부채를 쥐여줘서 그런지, 자꾸만 한복이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 나풀거리는 게 아닌 요즘 젊은 사람들도 입을 수 있게끔 개량된 디자인으로 하면 어울릴 것 같은데.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내 백색 마나가 바닥을 드러낸 걸 확인한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아!”

내 앞에는 이로나스 씨를 쏙 빼닮은 신상이 서 있었다.

크기는 약 7미터였으며, 부채와 한복을 입은 모습이 꼭 젊은 선비를 연상케 했다.

“괜찮긴 한데, 자세가 조금 별론가.”

이로나스 씨가 워낙 서글서글한 인상이라서 전체적인 분위기는 찰떡같이 어울렸는데, 단지 부채를 쥔 채 양팔을 벌리고 있는 게 조금은 어색했다.

“어, 음. 파메르라고 부르면 되나? 파메르?”

내가 조심스럽게 이름을 부르자, 가만히 서 있던 신상의 눈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오더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우, 이거 좀 무섭네.”

지금 저 신상이 움직이는 걸 보고 있자니 떠오르는 게 있었다.

흔히 7대 불가사의라고 하던가.

밤 12시가 되면 학교 운동장에 설치된 조각상이 움직인다며, 한때 아이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괴담 말이다.

괜스레 닭살이 돋아 양팔을 비빈 나는 애써 무서운 생각을 떨치며 파메르에게 명령을 내렸다.

“일단, 자세를 좀 바꿔봐야 되거든? 거기서 팔을 좀 내밀어봐. 아니, 그쪽 말고 반대쪽. 그렇지.”

신상 파메르는 내 명령이 떨어지는 족족 자세를 바꿨다.

“음, 이 정도면 됐겠지.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한다고. 아, 심심하다고 괜히 움직이거나 그러지 말고.”

내 농담에 고개를 끄덕이는 신상을 보며 흡족하게 웃었다.

“내일 보시면 깜짝 놀라시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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