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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120화 (118/159)

120. 소년기(102) - #탈것!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땐 어느덧 30분이 지난 후였다.

“휴우.”

가까스로 정신을 추스른 나는 아직도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끙······. 진짜 장난 아니네.”

세이비오르 씨는 자신의 모든 것.

경험은 물론, 그동안 습득한 지식 같은 것을 전해준다고 했었다.

그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내 머릿속에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욱여넣은 듯한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세이비오르 씨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 마치 내가 겪었던 일처럼 생생했다.

다만 하나하나 순차적으로 들어온 게 아니라 그냥 마구잡이로 쑤셔 넣은 탓에 엉망진창으로 섞여 있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었다.

“휴우.”

이거 뒤죽박죽 섞인 기억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려면 고생 좀 하겠는데.

그나마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하면 그와 관련된 것들이 마인드맵처럼 펼쳐지는 탓에 활용할 수는 있었다.

“그나저나, 세이비오르 씨의 이름이 이로나스였구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내가 세이비오르 씨의 영혼의 파편을 흡수한 뒤 가장 먼저 찾아본 것은 그에 대한 정보였다.

대체 그가 어디서 온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왔는지 궁금했으니까.

아쉬운 것은 그에 대한 걸 떠올려 보아도 자세한 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흡수한 것이 영혼의 파편. 즉 그의 극히 일부였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서 영혼의 파편에 담을 수 있는 정보에도 한계가 있었으며, 그는 내게 필요한 것들만 골라서 담았다고 보면 이해하기 쉬웠다.

“아쉽네.”

물론 그의 입장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정보일지 몰라도, 내게는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그가 지상에 살아가는 이들을 무척이나 사랑했고, 지켜주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다는 건 확실했다.

“그나저나, 이게 이로나스 씨의 마나인 건가.”

아까 영혼의 파편을 흡수하면서 생긴 변화는 기억만이 아니었다. 내 몸에는 전혀 다른, 한편으로는 몹시도 익숙한 기운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다름 아닌 백색 마나였다.

“이게 이로나스 씨가 품고 있던 마나구나.”

백색 마나는 새로운 집으로 이사 온 강아지처럼 내 안 이곳저곳을 분주하게도 돌아다녔다.

한편으로는 본래 내가 지니고 있던 마나 또한 백색 마나가 신기하다는 듯 주변을 기웃거렸다.

한 몸에 두 종류의 마나를 품으니 기분이 참 묘하네.

내가 두 마나의 신경전을 구경하고 있자니 자연스럽게 그와 관련된 정보들이 떠올랐다.

“아하.”

차근차근 기억들을 훑은 나는 손뼉을 쳤다.

나는 백색 마나가 렐리크로 인해 생겨나는 줄 알고 있었다.

내가 렐리크에 마나를 주입하면 그 성질이 변하기도 했고.

근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처음부터 렐리크를 제작했던 이가 이로나스 씨였기에 그러한 현상이 벌어진 거였다.

더불어 내가 그동안 품고 있었던 의문이 해결됐다.

“내가 아크니악을 복제하지 못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구나.”

렐리크.

당연하게도 나는 렐리크 또한 만들어지는 거라고 생각했다.

쉽게 말해서 내가 아티펙트를 만드는 것처럼 직접 도구를 이용해서 제작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랬기에 나는 렐리크의 흐름을 기억하고 그것을 토대로 제작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심혈을 기울여 흐름을 재연해도 정작 렐리크를 만들긴커녕 그와 비슷한 현상조차 이끌어내지 못했다.

“처음부터 잘못 알고 있었던 거야.”

렐리크는 제작하는 게 아니다.

“설마, 마나로 만드는 걸 줄이야.”

그렇다.

렐리크는 마나로 만든다.

정확히는 렐리크를 구성하는 재료인 마그테리움의 원재료가 바로 마나였다.

더불어 렐리크를 만드는데 필요한 건 마나 말고도 하나 더 있었다.

상상력이라고 해야 하나.

쉽게 말해서 내가 무언가를 만들고자 하면, 백색 마나가 알아서 렐리크를 만든다.

“그러니까, 이 백색 마나만 있으면······.”

강철, 다이아몬드, 금처럼 천연자원은 물론.

플라스틱, 고무줄, 합금처럼 과학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제작할 수 없는 것들까지 모두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의미였다.

정정한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정말로 내가 지구에서 보고 겪었던 만물을 그대로 재연하는 것이 가능했다.

“이래선 마법이 소꿉장난처럼 보이네. 아니, 비교하는 것부터가 웃긴 이야긴가.”

그도 그럴 게, 이건 마법이 아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창조라고 해야 하나.”

말 그대로 무에서 유를 만드는 건 아닐지언정, 내가 상상한 것을 결과물로 만들어내버리니 창조가 아니라 뭐겠는가.

“뭐, 그래 봐야 지금은 만들 수 있는 게 없지만 말이야.”

앞서 말했던 것처럼 렐리크의 제작에 필요한 건 백색 마나다.

그리고 지금 내가 이로나스 씨에게 받은 백색 마나로 창조할 수 있는 건 극히 한정적이었다. 그마저도 아주 작고 단순한 물건들에 한해서였고.

그나마 이로나스 씨의 기억 속에는 백색 마나를 늘리는 방법이 있었으나 당최 이해가 가질 않는다고 해야 할까.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도통 그 과정을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뭐, 해보면 알겠지. 그나저나, 아르젠 씨는 어디 가신 거지?”

“여기 있습니다.”

“응?”

난데없이 들려온 아르젠 씨의 목소리에 퍼뜩 고개를 돌렸다.

내게서 조금 떨어진 곳이었다.

그곳에 웬 참새가 한 마리 앉아있었다.

자세히 보니 조각상이었을 때의 아르젠 씨랑 무척이나 흡사했다.

“아르젠 씨?”

“예. 아르젠입니다.”

“그 모습은 뭐예요? 아! 그런 거구나.”

또다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정보에 나는 고개를 주억였다.

왠지 혼자 질문하고 혼자 답하는 것 같아서 민망하네.

“이제 슬슬 돌아갈까, 하는데. 아르젠 씨는요?”

“모르겠습니다. 저는 세이비오르 님의 명령을 따를 뿐입니다.”

명령이라.

“그럼 저랑 같이 가요. 여기 혼자 있으면 외롭잖아요?”

“저는 외로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아르젠 씨가 마치 기계처럼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말했다.

나는 작고 앙증맞게 변한 아르젠 씨를 눈에 담았다.

이로나스 씨의 기억에 의하면, 아르젠 씨도 백색 마나로 태어난 존재.

어떻게 보면 지구에서도 한창 개발 중인 안드로이드랑 비슷한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아르젠 씨는 기계가 아닌 진짜로 살아있는 존재라는 걸.

일종의 인공생명체, 이른바 호문클루스라고 보면 이해하기 쉬웠다.

따라서 아르젠 씨는 외로움을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니라 아직 배우지 못했을 뿐이다.

그러나 아르젠 씨에게 이것저것 알려줬어야 할 이로나스 씨는 이제 없다.

“저랑 같이 가요.”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럼요! 이로나스 씨가 아르젠 씨를 친구로 여겼던 것처럼, 저도 아르젠 씨랑 친구잖아요.”

“알겠습니다.”

작은 모습으로 변한 아르젠 씨가 날개를 퍼덕이며, 내 어깨에 앉았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귀엽게 변한 아르젠 씨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은 나는 밤하늘을 눈에 담았다.

“세이비오르······.”

나는 나 스스로를 세이비오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환생한 뒤로 육체적인 능력이 인간을 초월했고, 기억력은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보다 좋아졌다고는 한들.

내 인생관은 지극히 평범하다.

그저 여타 사람들처럼 평안하고 안락한 여생을 보내기를 원하는 사람이며, 영웅과는 거리가 먼 인물상이다.

“에효오, 이거 너무 큰 걸 받아버렸단 말이야.”

근데, 난데없이 이로나스 씨를 만났고 그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받아버렸다.

“뭐, 좋은 게 좋은 거겠지.”

적어도 내가 원했던 미래와 이로나스 씨가 꿈꿨던 미래는 무척이나 닮아있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더군다나 좋든 싫든,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낙장불입이라는 말마따나, 되돌릴 방법도 없었으니 별 수 있으랴.

“팔자에도 없는 영웅 흉내라도 내야 하나.”

괜스레 어깨가 무거워지는 기분에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자고로 인생이란 선택의 연속이라고 했던가.

이 모든 것들은 내 선택의 결과임과 동시에 아까 아르젠 씨가 말했듯 운명일지도 모를 일이다.

일단 아크니악을 둘러보는 건 나중으로 미루기로 하고.

“끄응, 아까 하던 목욕이나 다시 해야겠네.”

나는 이미 식어버렸을 목욕물을 떠올리며,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내 손등에 새겨진 문신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오며, 허공이 일그러졌다.

* * *

“어디 보자.”

이로나스 씨와의 뜨거운 작별이 있은 지 며칠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머릿속에 든 기억들을 차근차근, 정리하는데 주력했다.

그렇다고 마냥 기억만 정리한 건 아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나는 새롭게 얻은 백색 마나를 활용해보고 싶은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곧잘 작업대로 향했다.

앞서 말했듯 내가 가진 백색 마나의 양은 무척이나 적다.

따라서 이미 완성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러나 걱정할 건 하나도 없었다.

애당초 지구에서 쓰이는 물건의 대다수는 조립식이니까.

뚝딱, 완성품을 만드는 쪽이 간편한 건 맞으나 내 여건을 고려해서 내가 직접 만들기 어려운 부품은 마그테리움으로 창조하되, 나머지는 평범한 광석을 이용해서 제작하기로 했다.

오늘도 아침을 든든하게 챙겨 먹은 나는 곧바로 헤파이토 씨의 공방으로 향했다.

“아, 왔는가!”

“예, 안녕하세요! 스테인 씨도 안녕하세요!”

“아, 스승님 오셨습니까! 안 그래도 그때 말씀하셨던 걸 완성했습니다.”

“오! 잘 됐네요! 그럼 바로 가져다주실 수 있어요?”

“물론입니다!”

이내 스테인 씨가 자리를 떴다.

드디어 오늘 완성할 수 있는 건가.

나는 작업대로 향해 미리 만들어뒀던 부품들을 챙겼다.

“흐음, 볼 때마다 신기하군. 이걸 마그테리움이라고 한다고?”

내 옆에서 잠자코 구경하던 헤파이토 씨가 물었다.

“네. 맞아요. 마그테리움이라는 재질로 만든 거예요.”

“신기하군. 분명히 같은 재질인데, 이것은 부드럽고 이것은 단단해. 대체 어떻게 이게 가능한 거지?”

헤파이토 씨가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뭐, 그럴 만도 하지.

하물며 헤파이토 씨는 대장인이다.

광물에 관해서는 따라올 자가 없으며, 그가 못 다루는 광물은 없다. 그런 헤파이토 씨의 입장에서 마그테리움이라는 물질이 지닌 특성은 상식을 아득히도 벗어났으니,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게 당연했다.

“으음, 그래서 대체 뭘 만들려는 겐가?”

결국 이해하기를 포기한 헤파이토 씨가 이번에는 내가 만든 부품을 보며 물었다.

“이거요? 음, 탈것이라고 하면 될까요?”

“탈것?”

내가 첫 대상으로 삼은 것은 탈것이었다.

그중에서도 지구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으면서 남녀노소 불문하고 즐길 수 있는 탈것.

“네, 자전거라는 거예요.”

“이렇게 봐서는 도저히 상상이 되질 않는군.”

“이제 곧 알 게 되실 거예요.”

때마침 스테인 씨가 부품을 들고 왔다.

“어떻습니까?”

내가 부품을 살펴보고 있자니, 스테인 씨가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완벽해요. 갈수록 실력이 느시네요.”

내가 엄치를 척, 들어올렸다. 그제야 스테인 씨가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모두 스승님의 지도 덕분입니다!”

“에이, 제가 뭘요.”

“허허, 겸손할 것 없네. 나도, 저 아이도, 이곳에 있는 모든 듀로프도 자네를 통해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으니.”

매번 내 얼굴에 금칠을 하니, 이러다 내 피부가 24k로 변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자, 그럼 바로 조립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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