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118화 (116/159)

118. 소년기(100) - #세이비오르

이름 짓기 겸 통성명이 끝난 뒤, 나는 아까부터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아까 아르젠 씨는 이곳이 아크니악이라고 했잖아요.”

“예. 이곳이 아크니악입니다.”

“음, 근데 제가 알기로는 아브륄에도 아크니악이라는 게 있거든요. 혹시 그거랑 관련이 있는 건가요?”

“아브륄입니까?”

“네. 아브륄이요.”

아르젠 씨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정보가 한정적입니다만, 세이비오르 님이 말씀하셨던 그것 또한 아크니악입니다. 정정하겠습니다. 아크니악의 일부입니다.”

“저기, 기왕이면 그냥 아이넬이라고 불러주실래요? 왠지 헷갈려서요.”

“예,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근데, 아크니악의 일부라는 건?”

“예. 아브륄에 있다는 아크니악. 제 기억에 따르면, 아크니악과 연결된 일종의 문이며, 이는 대륙의 곳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잠깐만요, 정리가 조금 필요할 것 같은데. 그러니까, 아브륄에 있는 아크니악이 문이다. 그렇다는 건……. 여기가 아크니악의 본체라는 건가요?”

내 말에 아르젠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본체. 예, 본체라는 말이 적절하리라 판단합니다.”

그랬구나.

역시, 아크니악이라는 이름이 흔한 것도 아니었으니 내가 모르는 연관성이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단지 이곳이 아크니악의 본체라는 건 상상도 못 했지만 말이야.

“세이비오르 님이 자취를 감추신 후 문의 위치가 변경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드릴 게 있습니다.”

“저한테요?”

“예. 이겁니다.”

말을 마친 아르젠 씨가 내게 상자를 건넸다.

“이건 뭐죠?”

나는 얼떨결에 받은 상자를 살펴봤다. 흡사 보석함처럼 생긴 상자의 재질은 역시나 마그테리움이었다.

거참.

셀리오스 씨가 이르길 어쩌면 영원히 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그 제작 과정도 위치도 베일에 꽁꽁 싸여있는 물질.

그야말로 신비의 물질이 마그테리움이건만, 여기서는 왜 이렇게 흔한 건지. 됐으며, 육각형으로 깎은 조각품이었다.

뭐, 애당초 이 넓은 공간 전체가 마그테리움이었으니 새삼스러울 건 없는 건가.

“이건 뭔가요?”

“저도 자세한 건 모르겠습니다. 그저, 세이비오르 님이 제게 맡기신 물건입니다. 훗날, 이곳으로 찾아올 누군가에게 주라고 하셨습니다.”

“음. 그럼 이건 제가 받아야 할 게 아닌 것 같은데요?”

세이비오르 씨는 훗날 이곳에 찾아올 누군가에게 주라고 했다.

달리 말해서 그에게는 어떠한 목적이 있었기에 이걸 아르젠 씨에게 맡겼다는 의미였다.

비록 그 목적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이곳으로 오게 된 이유는 어디까지나 실수였다.

따라서 세이비오르 씨가 생각했던, 이른바 연자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내 말에 아르젠 씨가 고개를 저었다.

“이것은 아이넬 님의 것입니다.”

“그래도…….”

“아이넬 님이 아크니악에 오신 건 실수가 아닙니다. 운명입니다.”

운명이라.

하기야.

팔찌를 조사하다가 벌어진 실수는 맞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통로를 지나 아크니악에 왔다.

거기다 기나긴 세월을 잠들어 있던 아르젠 씨를 깨웠으며, 그에게 이름까지 지어줬다.

이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이겠지.

그래, 이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안 받기도 뭣하고, 여차하면 돌려주면 그만이니까.

생각을 정리한 나는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새의 머리가 새겨진 반지와 함께 조각품이 하나 있었다.

나는 먼저 반지를 확인했다.

묵직하네.

이런 걸 용 반지라고 하던가.

물론 용이 아닌 날개를 펼친 새의 모습이 음각되어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두껍고 무거운 반지였다.

더불어 새의 모습은 아르젠 씨가 조각상이었을 때의 모습과 닮은 듯했다.

다음으로 그 옆에 함께 놓여있던 조각품으로 눈을 돌렸다.

“이건 뭔가요?”

언뜻 장기 말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반지와는 달리 도통 용도를 알 수가 없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음.”

막상 눈으로 보니 궁금해지네.

“잠깐, 확인 좀 해봐도 될까요?”

“그건 이제 아이넬 님의 것입니다. 뜻대로 하시면 됩니다.”

고개를 끄덕여준 나는 조각품을 손에 쥐었다.

사실 이 조각품의 용도를 알아낼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여타 렐리크처럼 마나를 주입하면 되는 것이다.

역시나 내 생각대로였다.

마나를 주입하자 조각품이 작게 진동했다. 뒤이어 조각품에서 빛의 기둥이 뿜어져 나오더니, 점점 형태가 변해갔다.

“어? 이거…….”

불현 듯 스치는 생각에 나는 재빨리 바닥에 조각품을 내려놨다.

아니나 다를까.

꿀렁거리던 빛이 하나로 뭉치는가 싶더니, 금세 사람의 형상으로 변했다.

마치 도심의 한복판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홀로그램을 연상케 했다.

나는 사람의 형상을 띤 빛을 바라봤다.

나이는 얼추 30대 초반쯤 됐을까.

그는 뒷짐을 지고 있었는데, 굉장히 선한 인상의 남자였다.

“세이비오르 님?”

아르젠 씨가 홀로 중얼거리는 걸 들은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저분이 세이비오르 씨예요?”

“그렇습니다.”

내가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자, 세이비오르 씨가 기지개를 켜며 두리번거렸다.

-여기도 참으로 오랜만이로군.

홀로그램인 것도 놀랍건만, 그는 말까지 했다.

하물며 그 모습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게 정말로 살아있는 사람 같았다.

그래 봐야 진짜로 살아있는 사람은 아니겠지.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고 있자, 돌연 세이비오르 씨가 내 옆에 서 있던 아르젠 씨를 쳐다봤다.

-나의 오랜 친구여, 그대의 모습을 보니 참으로 반갑군.

“세이비오르 님.”

-하핫. 세이비오르 님이라니, 여전하군. 내 말하지 않았나, 나는 그대의 친구요, 그대는 나의 친구야.

“그 전에 절 만들어주신 분입니다.”

-참, 딱딱한 친구라니까. 그래, 그런 모습이 또 자네니까.

잠깐만.

지금……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거야?

이런 내 놀라움과는 별개로, 아르젠 씨와 인사를 나누던 세이비오르 씨가 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대가 당대의 세이비오르인가?

“어, 안녕하세요.”

-오호, 꽤 어린 친구로군. 그래, 만나게 되어 반갑군.

지나치게 자연스러워서 나도 모르게 대답했을 뿐인데, 여기서 다시 대답이 돌아오네?

그럼 진짜로 나랑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건가?

내가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노라니, 세이비오르 씨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하. 괜한 질문이로군. 그대가 아크니악에 있다는 것부터가 이미 세이비오르라는 증거이거늘. 그나저나, 내가 놀라게 한 것 같아 미안한데?

“어, 아니요! 괜찮아요.”

-이해해주니 고맙네.

우와.

나하고 대화를 하고 있다니, 진짜 신기하네.

-그건 그렇고, 내가 이렇게 자네와 마주하고 있다는 건 내 본신이 죽었다는 이야기겠지.

“본신이요?”

-그렇다네. 나는 본래의 나에게서 떨어져 나온 파편에 불과하다네. 그저 훗날 이곳으로 올 자네를 위해 남겨둔, 나의 작은 배려라고 생각하게나.

작은 배려라고 말하며, 하하 웃는 모습이 묘하게 친근하다고 해야 할까.

그냥 동네에서 곧잘 마주치는 동네 형 같은 느낌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자네와 차라도 한잔하며, 두런두런 이야기라도 나누고 싶네만…… 아쉽게도 나한테 주어진 시간은 많지가 않군.

잠시 말을 멈춘 세이비오르 씨가 자못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먼저, 자네는 이곳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음, 일단 여기가 아크니악이고, 모두를 구하기 위해서 만든 공간이라는 건 아르젠 씨한테 들었어요.”

-호오, 아르젠이라. 내 친구에게 이름을 지어줬나? 안 그래도 늘 마음에 걸렸던 부분인데 말이야. 내 본신을 대신해서 감사의 뜻을 전하네.

“뭘요. 아, 그리고 데모스를 막으러 떠나셨고, 그 후로 돌아오지 않으셨다고…….”

-뭐? 방금 뭐라고 했나?

돌연 세이비오르 씨가 기겁한 얼굴로 날 쳐다봤다.

“네? 데모스를 막으러 떠나셨고, 그 후로…….”

-자네…… 데모스를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아, 그게…….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난감하네요. 음,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 지상에는 데모스를 부활시키려는 자들. 그러니까, 데모스의 추종자들이 있어요.”

-그, 그게 사실인가? 봉인을 했지만, 놈의 추종자들이 남아있었다니. 정말 지긋지긋한 놈들이로군.

“역시, 데모스를 봉인한 건 세이비오르 씨군요.”

-그렇다네. 가능하면 완전한 소멸을 바랐지만, 내 능력으로는 봉인하는 게 최선이었지. 그래서, 자네가 데모스를 알고 있다는 건 어떻게 된 거지?

“음, 혹시 비스테르라고 아세요?”

-알다마다. 참으로 활기가 넘치는 아이들이지.

“네. 그러니까, 데모스를 부활시키려는 이들이 비스테르들을 감금하고 있었거든요. 저는 우연히 그걸 발견했고요.”

-감금하고 있었다? 비스테르가 그리 약한 종족은 아닐 텐데?

“저도 자세한 건 모르겠어요. 단지, 비스테르들은 어떤 이유로 힘을 잃었어요. 이걸 알게 된 데모스의 추종자들이 저주가 담긴 물건을 이용해서 비스테르들을 감금했고요.”

-끔찍하군. 그 순수한 아이들을 감금해서 뭘 하려던 거지?

무슨 커다란 석상이 있는 동굴이었거든요. 거기서 이상한 주문 같은 걸 외우고 있었어요. 아마 그게 데모스를 부활시키는 의식인 것 같더라고요.”

-음……. 부활 의식과 목걸이라.

“아, 그 데모스의 추종자들은 하얀색 가면을 쓰고 있어요.”

-하얀색 가면. 확실히 데모스도 하얀색 가면을 쓰고 있었지.

내 설명을 들은 세이비오르 씨가 심각한 얼굴로 뺨을 쓸었다.

-큰일이로군. 자칫 데모스의 영혼이 그들의 손에 들어가기라도 하는 날엔…….

데모스의 영혼?

“아, 마봉석 말씀하시는 건가요?”

-마봉석?

“네. 데모스의 영혼이 봉인된 돌이요. 까만색 돌. 요만한 거.”

-자네가 그걸 어떻게 아는 거지?

그거야…….

“제가 갖고 있거든요.”

-뭐, 뭐?

세이비오르 씨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날 쳐다봤다.

이것도 설명이 필요하겠네.

“어, 음 그러니까…….”

나는 비스테르를 만난 후에 있었던 일도 차근차근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비스테르를 구하던 중에 고브를 만났는데, 그 고브가 데모스의 영혼을 들고 있었다는 겐가?

“네. 맞아요. 듣자 하니, 스카른 씨의 아버지가 우연히 그걸 발견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랬군. 하, 내 나름 완벽하게 숨겼다고 생각했거늘. 역시, 고브 그 아이들의 눈을 속이진 못했던 건가.

세이비오르 씨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기야.

기껏 데모스를 봉인하는데 성공했고, 그걸 아무도 찾지 못하게끔 숨겼다.

근데, 그걸 냅다 찾은 것도 모자라 자칫 추종자들의 손에 들어갈 뻔했으니 세이비오르 씨의 입장에서는 없는 심장도 덜컹했으리라.

-그래도 그걸 자네가 들고 있다니 참으로 다행이군. 정말 다행이야.

“그러게요, 본의는 아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자네의 말을 들어보니, 추종자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 같군.

“안 그래도 그게 걱정이었거든요. 혹시 데모스의 영혼이 다시는 나오지 못하게끔 할 방법이 있나요?”

-그 방법은 아직 나도 찾지 못했다네. 대신, 데모스의 영혼을 없앨 방법은 있네만.

“없앨 수 있는 방법이요?”

-데모스와 싸워서 이기는 걸세. 그러기 위해서는 봉인을 풀어야 하지.

“선뜻 시도할 만한 방법은 아니네요.”

-맞네. 아, 이럴 게 아니지. 아까도 말했지만, 나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다네. 자네에게 알려줘야 할 게 많으니, 그 얘기는 가면서 하도록 하지.

“알려줘야 할 거요?”

-아크니악 말일세. 앞으로 이곳은 자네의 것이니, 알려줘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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