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117화 (115/159)

117. 소년기(99) - #아르젠

뭐지?

나는 느닷없이 등장한 사람을 멍하니 쳐다봤다.

매서운 눈매와 강인해 보이는 부리.

머리에 달린 화려한 깃털.

팔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거친 깃털로 빽빽하게 들어찬 날개가 달려있었다.

다리 또한 굵직하면서도 매끈했는데, 그 끝에는 송곳처럼 예리한 발톱이 돋쳐있었다.

맹금류와 인간을 반반씩 합쳤을 때 나옴직한 외형이라고 해야 할까.

마치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신 중 하나인 가루다를 떠올리게 하는 외모였다.

나는 속칭 새 인간의 뒤쪽을 힐끗 쳐다봤다.

분명히 있어야 할 거대한 조각상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

즉 저 새 인간은 그냥 난데없이 나타난 게 아니라, 저 조각상이 변신했다고 보는 편이 옳으리라.

무엇보다.

새 인간의 육체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이 마그테리움이라는 게 결정적인 증거였다.

서로를 살피듯, 우리 사이에 내려앉은 침묵을 먼저 깬 쪽은 새 인간이었다.

그는 두꺼우면서도 큼지막한 발로 터벅터벅, 걸어 나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상대가 아군인지 적인지도 모를 상황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조금 웃기지만,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겉모습도 그렇고 이를 받쳐주는 분위기도 그렇고.

왠지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시답잖은 생각을 하는 사이에도 점점 새 인간의 사이의 거리가 좁혀지고,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저 템페스트를 꽉 쥐었다.

더불어 언제 공격을 당해도 방어할 수 있게끔 전신의 감각을 곧추세웠다.

얼추 5미터의 간격을 사이에 두고 걸음을 멈춘 새 인간이 매서운 눈빛으로 날 훑어봤다.

뭔가 아브륄에 처음 도착하고 난 뒤, 경비병이 날 심문하던 당시가 오버랩 되는 건 왜일까.

하기야.

아직 저 새 인간이 조각상인지는 확실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이곳에 있었던 쭉 있었던 것은 확실했으니 침입자라 해도 무방하겠지.

물론 나라고 이곳에 오고 싶어서 온 건 아니라는 게 함정이었지만 말이야.

언제까지고 이어질 것 같은 침묵에 나는 슬그머니 말문을 열었다.

“음, 저기 안녕하세요?”

그러나 이런 내 밝은 인사에도 새 인간은 그저 날 훑어볼 뿐,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때, 느릿느릿 움직이던 새 인간의 시선이 한 곳에서 멈췄다. 본능적으로 그의 시선을 따라갔다.

아!

그가 보고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팔찌였다.

나는 새 인간에게 보란 듯 팔을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 팔이 움직이자 새 인간의 시선도 따라 이동했다.

이 팔찌에 큰 관심을 보이는 건 확실하네.

“아, 이거요! 사실 제가 이곳에 오게 된 게 이 팔찌 때문이거든요.”

나는 자연스럽게 팔찌를 보이며, 대화의 물꼬를 틀고자 했다.

이에 새 인간이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부리를 작게 움직였다.

“퐐쮜.”

오오오.

입이 아닌 부리인데도 용케도 사람의 말을 하네.

“네, 팔찌요!”

“팔쮜.”

내가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정정해줬지만, 이번에도 새 인간의 발음은 몹시도 어눌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에 저런 어눌한 발음이라니, 첫인상이 무색해지네.

하물며 잘 들어보면 내 목소리랑 비슷한 게 일부러 흉내 내려고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처음에 생김새랑 분위기만 보고 맹금류를 떠올렸는데, 그게 아니라 앵무새과였나?

앵무새가 떠올라서 그런지, 연신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내 말을 똑같이 따라 하는 모습이 귀여워 보이기도 했다.

이런 내 감상평도 잠시였다.

홀로 팔쮜, 팔쮜, 중얼거리던 새 인간이 대뜸 양팔을 확 펼쳤다.

혹시 나를 적으로 여긴 건가, 싶어 재빨리 템페스트를 내밀었다.

“세이······.”

“응?”

그러나 정작 새 인간은 내게 달려들긴커녕, 어정쩡한 자세로 멈췄다.

하물며 그는 나에게 무언가 말하려던 도중에 저러니 당혹스러웠다.

당최 영문을 알 수 없는 행동에 멀뚱멀뚱 서 있기를 5분여.

새 인간은 다리가 저리지도 않는지, 똑같은 자세를 유지했다.

다짜고짜 왜 저러나 싶어, 새 인간을 불렀다.

“저기요.”

이번에도 새 인간은 요지부동이었다.

이걸 어쩐다.

보아하니 나한테 뭔가를 바라는 것 같긴 했는데, 그게 뭔질 모르니 갑갑할 따름이었다.

결국 이어지는 침묵을 견디지 못한 나는 천천히 새 인간을 향해 접근했다.

“저기요, 뭘 원하는지는 모르겠······ 엉?”

말을 멈춘 나는 고개를 쭉 내밀어 새 인간을 살펴봤다.

분명히 눈을 뜨고 있었는데, 자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특히 아까 날 훑어보던 시뻘건 안광도 사라졌다.

“혹시······.”

나는 손을 내밀어 새 인간의 팔을 만져봤다.

마그테리움의 매끈한 감촉 너머로 느껴지는 흐름에 집중했다.

“아아아.”

이제야 알겠네.

지금 새 인간이 어정쩡한 자세로 멈춘 이유.

마나였다.

새 인간의 육체는 마그테리움이다. 그 말인즉, 새 인간 또한 렐리크라고 볼 수 있었다.

쉽게 말해서 마나가 곧 새 인간의 동력이었으며, 그가 어정쩡한 자세로 멈춘 이유 또한 마나가 없기 때문이었다.

마나가 동력이란 말이지.

그럼 걱정할 필요는 없겠네.

그도 그럴 게, 나는 체질상 마나를 끌어당긴다.

만에 하나라도 내게 수작을 부린다면, 새 인간에게 있는 마나를 모조리 빼앗아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내 체질 자체가 새 인간의 약점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이참에 잠깐 주변이나 둘러볼까.”

나는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 천장에는 커다란 구체가 달려 태양을 대신하고 있었다.

아마도 새 인간이 깨어나면서 덩달아 저 인공 태양도 켜졌을 터.

본의는 아니겠지만, 새 인간이 활동을 멈췄으니 이참에 주변을 살펴보는 것도 괜찮겠지.

* * *

“어후, 넓기는 더럽게 넓네.”

대체 무슨 의도로 만든 공간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은 엄청나게 거대했다.

“근데, 달랑 새 인간만 있는 것도 이상하단 말이지.”

다만 넓은 면적에 비해 아무런 구조물도 없다는 게 적잖이 께름칙했다.

“딱 하나 다른 건 이건데.”

벽이었다.

그곳에는 내 손바닥만 한 크기의 구멍이 있었다.

“딱 봐도 열쇠구멍이란 말이지.”

그래 봐야 당장 내 손에 열쇠가 없었으니, 이걸 열 방법은 없었다.

“뭐, 이러나저러나 새 인간을 깨울 수밖엔 없나.”

몸을 돌려 새 인간에게로 돌아온 나는 적당한 양의 마나를 주입했다.

석상처럼 굳어있던 새 인간에게서 잔잔한 떨림이 전해졌다. 더불어 사라졌던 붉은 안광도 켜졌다.

이 정도면 됐겠지.

나는 새 인간에게서 손을 떼고 뒤로 물러났다.

이윽고 굳어있던 새 인간이, “비오르 님.”이라고 말하며 그대로 한쪽 무릎을 꿇었다.

심지어 고개마저 숙이는 거로 봐서는 나를 적대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셀리오스 씨를 앞에 둔 모쿠 씨와 닮아있었다.

그건 그렇고, 방금 비오르라고 했단 말이지.

아까 새 인간이 말했던 두 글자는 세이, 그리고 이어진 세 글자가 비오르.

“합치면, 세이비오르.”

처음 내가 세이비오르라는 단어를 접했던 것은 비스테르를 구했을 때였다.

위즈 씨는 나더러 세이비오르라고 불렀다.

다음으로 세이비오르를 언급했던 이는 날쌘 다리.

지금의 피오였다.

특히 피오에게 듣기로는 그를 쫓던 자들.

정확히는 데모스의 추종자들도 세이비오르에 대해서 알고 있는 눈치였지.

설마, 이걸 여기서 또 듣게 될 줄이야.

게다가 정황상 나한테 세이비오르라고 하는 것 같았다.

거참.

나는 세이비오르가 뭔지도 모르는데, 여기저기서 같은 호칭을 듣고 다니니 기분이 참 묘했다.

이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새 인간이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세이비오르 님.”

호.

아까 발음이 부정확했던 것도 마나를 적게 주입해서였나?

그나저나, 기다리고 있었다라.

“저기, 뭔가 오해를 하고 계신 것 같은데, 저는 세이비오르가 아니거든요?”

하지만 이런 내 친절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새 인간은 계속해서 날 세이비오르라고 불렀다.

이래선 얘기가 통하질 않겠는데.

에이, 될 대로 되라지.

나는 새 인간이 무어라 부르던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달리 생각했을 때 저런 태도라면 내 질문에 착실하게 대답해 줄 것 같았고.

“그나저나, 여기는 대체 뭘 하는 곳인가요? 아, 그리고 그렇게 계시지 말고 일어나시고요.”

이에 새 인간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곳은 아크니악입니다.”

“엉? 아크니악이요?”

잠깐만.

아크니악이라면 아브륄에 있는데?

“예. 이곳은 아크니악입니다. 아주 머나먼 과거, 세이비오르 님께서 만드셨습니다.”

어디 보자.

방금 새 인간이 말하는 세이비오르는 내가 아닌 또 다른 세이비오르를 말하는 거겠지?

“그러니까, 선대 세이비오르가 만들었다는 거죠?”

“그렇습니다.”

내가 늘 지니고 있던, 세이비오르에 대한 의문.

그 해답을 여기서 들을 수도 있겠구나.

“그렇군요.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실래요?”

“과거, 세이비오르 님은 대륙을 향해 다가오는 어둠을 알아차리시고, 아크니악을 만드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어둠이 데모스라는 건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데모스가 오리라는 걸 알고 아크니악을 만들었다?”

“예. 그렇습니다. 하지만 아크니악이 완성되기 전, 어둠은 들이닥쳤고 세이비오르 님은 지상으로 향하셨습니다.”

호오.

어둠이 들이닥치고, 지상으로 향한 세이비오르!

여기서 데모스가 마왕이라면, 세이비오르 씨는 영웅쯤 되는 걸까.

게다가 이 장소는 세이비오르 씨가 다른 이들을 구하기 위해서 만들었다는 거잖아.

갈수록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호칭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역사 속 영웅의 이야기에 흥미진진해졌다.

오케이.

여기까지는 이해했다.

“그리고요? 다음은 어떻게 됐어요?”

나는 할아버지에게 옛날이야기를 듣는 손자가 된 기분으로 새 인간을 재촉했다.

“그 후로 세이비오르 님은 어둠을 물리치시는 데 성공하셨습니다. 하지만 세이비오르 님은 큰 상처를 입으셨습니다.”

“아. 그럼······.”

“예. 세이비오르 님은 저에게 이곳을 맡기시고, 자취를 감추셨습니다.”

“그럼, 그 일이 있고 난 뒤로 줄곧 나타나지 않았다는 건가요?”

“예.”

그랬구나.

물론 세이비오르 씨가 자취를 감춘 것이, 어떠한 목적이 있어서인지 그게 아니라면 데모스와의 싸움으로 인해 생긴 상처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가 있었기에, 지상은 멸망하지 않았다는 거다.

달리 말해서 내가 환생을 하고, 사랑하는 가족이 생기고, 매일 행복하고 즐거운 나날을 보낼 수 있었던 것 또한 모두를 위해 희생한 세이비오르 씨 덕분이라는 이야기였다.

참으로 고마운 사람이네.

아울러 기왕이면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비단 세이비오르 씨만이 아니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새 인간 또한 오지 않는 주인을 기다렸다는 거잖아?

그것도 인간인 나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오랜 세월을 말이야.

“이제 묻는 것도 이상하긴 한데, 이름이 뭐예요?”

“이름은 없습니다.”

“응?”

“제가 태어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지상으로 향하셨습니다.”

“아하.”

난 또 세이비오르 씨가 귀찮아서 지어주지 않은 줄 알았네.

음.

“괜찮으면 제가 이름을 지어줘도 괜찮을까요?”

“이름입니까?”

“네. 계속 새 인간 씨라고 부르기도 뭣해서요.”

게다가 본래 이름을 지어줬어야 할 세이비오르 씨가 이곳으로 올지도 미지수니까.

“이름······. 지어주십시오.”

좋아.

어떤 이름이 좋을까.

아, 맞다.

아까 처음 조각상을 보고 떠올랐던 게 하나 있었다.

아르젠 타비스.

다른 말로는 천둥새이며, 역사상 가장 거대했다고 알려진 맹금류였다지 아마.

아르젠 타비스라고 부르기엔 조금 기니까,

“아르젠, 어때요?”

“아르젠. 알겠습니다.”

표정을 읽을 수가 없으니,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싫어하는 기색은 아닌 것 같아서 다행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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