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113화 (111/159)

113. 소년기(95) - #네클라스의 일원

돌연 아크니악과 연결된 문에서 맹렬한 빛이 뿜어졌다.

“케륵!?”

오늘도 헛걸음을 했다며, 돌아가려던 레자드가 다급하게 몸을 돌렸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나키아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 반, 그동안 왜 문이 열리지 않았는지에 대한 걱정 반으로 문을 응시했다.

뻥 뚫려 동굴의 벽이 보이던 링의 중앙이 일그러지며, 오색찬란한 빛무리가 생겨났다.

이윽고 문이 열렸고, 레자드가 다급하게 한쪽 무릎을 굽혔다.

마침내 문을 통해서 무언가가 뽁, 튀어나왔다.

“케륵, 나키아 님을 뵙습니다!”

레자드가 있는 힘껏 외쳤다. 하지만 레자드의 우렁찬 인사도 잠시였다.

뒤이어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레자드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엉? 혹시, 모쿠 씨?”

무척이나 낯이 익은 목소리에, 레자드 아니, 모쿠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이내 그의 시선에는 한 사람의 얼굴이 들어왔다.

모쿠가 눈을 꿈뻑였다.

목소리만이 아니라 통로 너머로 빼꼼, 튀어나온 얼굴도 낯이 익은 것이다.

벙찐 얼굴로 통로를 응시하던 모쿠의 입이 열렸다.

“케, 케륵? 아이넬?”

이에 아이넬이라 불린 인물이 활짝 웃었다.

아이넬의 트레이드마크라고도 볼 수 있는 상쾌한 미소였다.

앞서 말했듯 통로 너머로 얼굴만 빼꼼, 내밀어져 있어 어딘가 기괴했지만, 당장 모쿠에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였다.

“어! 진짜 모쿠 씨네요? 이야, 여기서 뵙게 될 줄이야!”

아이넬이 반갑다는 듯 웃으며 폴짝, 문을 빠져나왔다.

탁!

가볍게 지상으로 착지한 아이넬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일단 수리는 된 것 같고. 이야, 이렇게 순식간에 다른 장소로 이동할 수 있다니. 보고서도 못 믿겠네.”

아크니악의 기능이 마냥 신기했는지, 동굴을 스윽, 둘러보던 아이넬이 물었다.

“근데, 모쿠 씨는 여기에 왜 있는 거예요?”

“케륵, 그, 그건.”

순간 모쿠가 말을 더듬었다.

그도 그럴 게, 현재 모쿠는 네클라스 소속으로 현재 지상의 감찰 임무를 맡고 있다. 그가 하는 업무에 대해 아는 자는 나키아가 유일했으며, 이는 땅에 묻히는 그날까지 비밀로 지켜야 했다.

그것은 친구라도 예외가 없었으며, 설령 가족이라도 마찬가지였다.

“케륵, 미안하······.”

친구에게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못내 마음에 걸린 모쿠가 사과를 하려던 찰나였다.

“아, 셀리오스 씨가 말했던 그 비밀 조직원이 모쿠 씨였구나! 네클라스였죠?”

“케륵!? 그, 그걸 어떻게?”

아이넬이 결코 알아서는 안 될 정보에 모쿠가 당혹스러워했다.

“음? 아, 셀리오스 씨한테 들었거든요. 이곳으로 나가면 네클라스의 일원을 만날 수도 있으니까, 잘 좀 전해달라고요. 그게 모쿠 씨였을 줄은 몰랐네요.”

아이넬은 수리가 끝난 후 곧장 셀리오스에게 무전을 보냈다.

그리고 셀리오스는 혹여나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네클라스의 일원이 있을지도 모른다며, 대신 이야기를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어, 그러니까. 그동안 아크니악의 문이 열리지 않았던 건 고장이 나서였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오랫동안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대요.”

“케륵!”

모쿠가 고개를 떨궜다.

일개 부하인 자신에게 선뜻 사죄의 말을 전해달라는 나키아의 상냥함에 감동한 것이다.

“이야, 여기서 모쿠 씨랑 만날 줄이야. 진짜 반갑네요! 아, 그리고 조금 더 있으면 셀리오스 씨도 이곳으로 올 거예요.”

“그렇군. 케륵, 그럼 아이넬은 지금 케륵, 아브륄에 있는 건가? 대체 케륵, 어떻게?”

“아, 그게 조금 사연이 있었어요.”

나는 모쿠 씨에게 토트리를 만나 아브륄로 왔으며, 그곳에서 라프린스 씨와 밥을 먹은 과정을 짤막하게 설명했다.

“케륵, 그랬군.”

“네. 그렇게 아브륄에 오고, 여차저차 셀리오스 씨를 만났거든요. 근데, 셀리오스 씨가 삼겹살이랑 화로 얘기를 하더라고요. 아, 손재주가 좋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했어요.”

“케륵! 그건 내가 말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말마따나, 모쿠가 멋쩍게 혀를 날름거렸다.

“역시! 안 그래도 셀리오스 씨가 삼겹살이랑 화로를 어떻게 알고 있나, 궁금했거든요. 모쿠 씨가 얘기했다니,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케륵, 미안하군.”

“미안하긴요. 뭐, 그렇게 셀리오스 씨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아크니악이 고장 났다고 저한테 수리를 부탁하셨어요.”

아이넬의 설명을 들은 모쿠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였다.

“그나저나, 여기는 어딘가요?”

이미 자신의 정체가 알려졌기에 모쿠는 순순히 입을 열었다.

“케륵, 여기는 윙그롬이랑 하티르의 사이다.”

“어, 윙그롬이요?”

아이넬이 깜짝 놀란 얼굴로 반문했다.

‘윙그롬이라면, 피오가 데모스의 추종자들을 봤다는 곳이잖아?’

달리 말해서 이 근처에 데모스의 추종자들이 모여있는 것이다.

물론 피오가 보고 겪은 환경을 통해 유추한 지역일 뿐이지만, 내심 윙그롬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윙그롬은 여기서 멀어요?”

“케륵, 그다지 멀진 않다. 그건 왜······, 혹시 윙그롬에 갈 생각인가? 케륵.”

모쿠의 질문에 아이넬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곳에서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아이넬은 피오가 가면의 남자들을 목격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한 번쯤은 윙그롬에 가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다만 마을에서 윙그롬까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거기다 막상 윙그롬에 도착한다고 끝이 아니다. 그곳에서 데모스의 추종자 내지, 그 흔적을 찾기 위해서는 수색을 해야 했다.

‘그게 하루 만에 끝낼 일은 아니겠지.’

즉 아무리 못 잡아도 일주일 이상. 그것도 몇 차례를 왕복해야 했으니 선뜻 윙그롬에 갈 수 없었다.

세상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공교롭게도 아크니악의 문이 위치한 곳이 윙그롬과 가까웠다. 그것만으로도 이동에 대한 부담이 훨씬 줄어들었으니, 수색의 시기를 앞당길 수 있었다.

“케륵, 윙그롬은 몹시도 추운 지역이다. 우리 레자드에게는 케륵, 치명적인 곳이지.”

비단 레자드만이 아니었다.

윙그롬이라는 지역은 말도 안 되게 추웠다.

어지간히 추위에 강한 자가 아닌 이상에는 감히 발을 디딜 엄두조차 내지 못하기로 악명 높은 지역인 것이다.

“케륵, 윙그롬은 위험하다.”

아이넬을 말리려는 듯, 모쿠가 윙그롬의 위험성을 재차 강조했다.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가더라도 최대한 조심할게요.”

“케륵, 알았다.”

그렇게 아이넬과 모쿠가 두런두런 잡담을 나누던 중이었다.

“아! 저, 정말 수리를 하셨군요!”

마침내 아크니악의 문 너머로 셀리오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아크니악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에 감격했는지,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었다.

“케륵, 나키아 님을 뵙습니다!”

셀리오스를 본 모쿠가 허둥지둥 무릎을 꿇었다.

“심려를 끼쳐 미안해요. 그동안 아크니악의 문이 열리지 않아서 많이 걱정했죠?”

“케륵.”

“걱정시켜서 미안해요. 그래도 이제 아크니악의 수리가 끝났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답니다.”

이내 모쿠에게서 시선을 거둔 셀리오스가 아이넬을 향해 꾸벅,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아이넬 님이 아니었으면 앞으로 어떻게 됐을지. 아이넬 님은 저, 그리고 아브륄의 은인입니다.”

셀리오스의 진심 어린 감사에 아이넬이 손가락으로 뺨을 긁었다.

환생한 뒤로 감사하다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

그런데도 당최 적응되질 않는다고 해야 할까.

매번 들을 때마다 괜스레 부끄러운 게 사실이었다.

하물며 아브륄의 지배자가 은인이라고 칭하니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한편, 적잖이 쑥스러웠다.

“뭘요. 아크니악을 수리하는 대신 반지를 빌릴 수 있었잖아요?”

아이넬이 손가락에 낀 반지를 보이며 웃자, 셀리오스가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겸손하시군요. 그래도, 아이넬 님이 은인이라는 것에 대한 마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약속했던 반지도 반지지만, 혹시 원하는 게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어, 그러면 부탁 몇 개만 해도 될까요?”

셀리오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이엘 님의 부탁이라면 얼마든지요. 말씀해주세요.”

“아하하.”

셀리오스의 신뢰 가득한 태도에 아이넬이 멋쩍게 웃었다.

“어, 음. 다름이 아니라, 아크니악을 이용해도 괜찮을까요?”

“그럼요! 아이넬 님이라면, 언제 어느 때 찾아오셔도 환영이랍니다! 아, 록시랑 루나도 함께면 더 좋고요!”

역시나 두 비스테르의 언급을 빼놓지 않는 셀리오스였다.

“고맙습니다. 근데, 제가 말한 건 그게 아니라······.”

“네?”

“두서가 없었네요. 그러니까, 사는 마을에 문을 하나 만들어도 될까요?”

“네?”

셀리오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방금 아이넬이 한 말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잠시였다.

아이넬의 말을 곱씹던 셀리오스가 황망한 얼굴이 되었다.

“잠시만요. 그러니까, 아크니악의 문을 만드시겠다는 건······가요?”

“맞아요.”

“그, 그게 가능한 일인가요? 아크니악의 문을 만든다는 게!?”

셀리오스의 놀람은 지극히 당연했다.

그도 그럴 게, 렐리크는 고대의 유산이다. 셀리오스는 물론, 선대 나키아.

어쩌면 초대 나키아조차 모를 정도로 머나먼 옛날에 만들어진 도구인 것이다.

달리 말해서 렐리크를 제작할 수 있는 사람은 고사하고 기술 자체가 소멸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

애당초 그녀가 아크니악의 수리를 하지 못했다는 것부터가 이를 방증하고 있었다.

근데, 다짜고짜 아이넬이 문을 만든다고 했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직접 만들어보기 전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시도는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다만, 제가 멋대로 만들 순 없고. 셀리오스 씨의 의견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그렇군요.”

애써 놀란 가슴을 추스른 셀리오스가 생각에 잠겼다.

아이넬의 말대로 아크니악은 굉장히 중요한 물건이다.

자칫 적의 손으로 넘어갔다가는 그 즉시 아브륄이 멸망의 길을 걸을 수도 있었다.

즉 아이넬이 아크니악의 문을 만든다는 건 지금까지 나키아가 지켜왔던 비밀을 깨는 것임과 동시에 침략을 당할 위험성도 높아진다.

‘하지만 아크니악의 문을 만드는 것이 마냥 나쁜 일일까?’

물론 위험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아브륄을 지킬 의무가 있는 나키아에게 있어서는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가장 좋았다.

반면에 단점도 있었다.

‘아브륄은 폐쇄적인 곳이야. 네클라스의 보고에 따르면 지상은 멸망하지 않았지. 아이넬 님이 그 증거고.’

선택지는 두 가지.

오로지 아브륄의 안전을 위해 현 상태를 유지하느냐.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보다 적극적으로 지상으로 나가느냐.

참으로 단순한 선택지였고, 답은 정해져 있었다.

셀리오스는 나키아다.

‘나키아라면 전자를 선택하는 것이 당연해. 하지만······.’

자아의 충돌이라고 해야 할까.

그녀는 나키아지만 셀리오스라는 한 사람이다.

그녀 개인은 언제까지고 심해에 갇혀 살아간다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 늘 의문을 품고 살았다.

셀리오스가 감았던 눈을 떠 아이넬을 눈에 담았다.

어째서일까.

만난 지 고작 하루 아니, 반나절도 채 되지 않은 사람임에도 믿음이 간다고 해야 할까.

나아가 아이넬이라면 셀리오스가 늘 품었던 의문에 대한 해답을 지니고 있을 것만 같았다.

“아무래도 저는 나키아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네요.”

돌연 뜬금없는 말을 뱉은 셀리오스가 활짝 웃었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저를 나키아의 자리에 앉히신 건 선대 나키아니까요. 좋아요. 저, 셀리오스는 아이넬 님의 의견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아니요, 전폭적으로 지지하겠습니다.”

늘 어깨를 짓누르던 짐을 내려놓은 듯, 셀리오스가 그 어느 때보다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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