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112화 (110/159)

112. 소년기(94) - #수리

“그, 그게 정말인가요? 고칠 방법을 찾아냈다는 게!?”

“어, 고칠 방법이라고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아크니악은 자동수복 기능이 있는 것 같아요.”

입으로는 같아요, 라고 말했지만 내심 확신했다.

방금 내 마나를 주입했을 때 생긴 흐름의 변화는 아크니악에 자동수복 기능이 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당연한 이야기인 게, 아크니악은 몹시도 중요한 물건이다.

나아가 이 렐리크를 제작하는 방식은 당장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달리 말해서 내가 아티펙트를 만들 듯, 뚝딱 만드는 게 아니라 특수한 제작 방법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당장 아크니악을 살펴보더라도 그 흔한 이음새는커녕, 인위적으로 제작할 때 으레 생겨야 할 흔적이 전혀 없었으니까.

어떻게 보면 제작자들에게 있어서, 정확히는 자신의 기술이 공개되는 걸 극도로 꺼리는 이들에게 있어서는 더할 나위 없는 제작방식인 셈이다.

반면에 보안이 강할수록 생기는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제작자가 아닌 이상 수리를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셀리오스 씨도 수리를 못해서 끙끙 앓고 있었던 거고.

그나저나 아크니악의 수리를 같은 아브륄의 사람이 아닌 로플로드의 사람들에게 맡겼단 말이지.

어쩌면 그곳에 렐리크를 제작할 줄 아는 사람이 있어서가 아닐까, 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싹텄다.

“자동수복?”

“음, 쉽게 말해서 고장이 나더라도 알아서 문제를 고칠 수 있는 기능이 있다는 거예요.”

“네? 아크니악에 그런 능력이 있었나요?”

눈을 동그랗게 뜨는 걸 보니 금시초문인 모양이다. 선대 나키아는 아예 아무것도 알려주질 건가?

설마하니 이런 중요한 정보를 잊어버릴 리는 만무.

그럼에도 셀리오스 씨가 모른다는 건 같은 나키아에게 알려주지 않은 것 또한 비밀을 지키기 위함일 터.

셀리오스 언행만 보더라도 굉장히 조심스러운 게, 나키아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입이 무거워야 한다는 조건이라도 있는 모양이다.

뭐,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네. 방금 마나를 주입했을 때, 끊어졌던 흐름이 이어지더라고요.”

“끊겼던 흐름? 아크니악에서 그런 게 느껴진다는 건가요?”

셀리오스 씨의 반문에 나는 뒷머리를 긁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네. 저는 마나가 움직이는 걸 느낄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그냥 마나의 흐름이라고 이름 붙였어요.”

최대한 쉽게 설명했음에도 셀리오스 씨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려운 이야기군요.”

사실 그녀의 반응은 지극히 당연했다.

그도 그럴 게, 일반적인 사람은 물론 내 마법의 스승인 레비아 선생님조차 마나의 흐름을 느끼지 못하니까.

일례로 내가 가로등을 만들었을 때, 레비아 선생님이 눈치를 채고 달려온 적이 있다.

그건 워낙 그 영향력이 셌기 때문이지, 레비아 선생님이 마나의 흐름을 느껴서가 아니었다.

“셀리오스 씨가 이상한 게 아니에요. 이건 순전히 제 체질 때문이거든요.”

“체질······이요? 그럼 아이넬 님은 그 체질 때문에 마나의 흐름이라는 걸 느낄 수 있는 건가요?”

“아마도 그럴 거예요.”

따지고 보면 나도 레비아 선생님의 얘기를 들었을 뿐이지, 정작 내 체질에 대해서 명확하게 아는 게 없다.

따라서 여기까지가 내가 할 수 있는 설명의 전부였다.

역시나 내 설명을 듣고도 이해하기가 쉽진 않았는지, 아리송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아, 그래서 수리를 할 수 있다고 하신 것도 그 마나의 흐름 때문인 거죠?”

“네. 맞아요. 방금 전에 아크니악에 마나를 주입했어요. 그리고 특정 지점에서 마나의 흐름이 끊긴 걸 확인할 수 있었어요.”

“아! 그럼 마나의 흐름이 끊긴 게 고장의 원인이었군요! 그리고 아이넬 님은 그 흐름을 이을 수가 있는 거고요!”

셀리오스 씨가 손뼉을 치더니, 한껏 상기된 얼굴로 외쳤다.

하기야.

이곳으로 오면서 듣기로 셀리오스 씨는 아크니악을 고치고자 몇 달을 이곳에 틀어박혔다고 들었다. 애당초 그녀가 수척했던 이유도, 라프린스 씨가 누나인 셀리오스 씨의 건강을 염려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고.

몇 달을 연구하고 또 연구했음에도 알지 못했던 고장의 원인을 깨달았으니 속이 시원하지 않을 수가 없으리라.

더불어 내 입에서 아크니악을 수리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이야기가 나왔으니 그 기쁨은 더욱더 크겠지.

“다만, 이걸 수리하기 위해서는 셀리오스 씨의 협조가 필요해요.”

“협조요?”

“네. 자동으로 수복할 수 있다는 걸 알아내긴 했지만, 여기에는 큰 문제가 하나 있거든요.”

내 말에 셀리오스 씨가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문제요?”

“간단히 얘기해서, 막대한 양의 마나가 필요해요.”

내가 레비아 선생님을 만나고, 마법을 배운 뒤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꾸준히 마나를 제어하는 연습을 해왔고, 덩달아 마나의 총량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처음 마법을 배우기 시작할 때가 반딧불이라면, 지금은 우리 집 욕조 정도의 차이라고 해야 할까.

아, 반딧불이 하니까 지금쯤 밭을 뒹굴거리며 생기를 만끽하고 있을 반디가 생각나는 건 왜일까.

요즘 이것저것 하느라 신경을 많이 못 써줬는데, 이참에 반디랑 채집이라도 좀 해야겠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단언컨대, 지금 내 몸에 담긴 마나의 양은 결코 적은 수치가 아니다.

어쩌면 수백 년 동안 마법을 구사해왔던 레비아 선생님과 견주어도 밀리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내 마나를 모조리 쏟아부었음에도 아크니악의 전체면적 중 고작 5%도 채우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흐름이 끊긴 부분을 발견한 건 천운이라고 봐도 무방한 셈이다.

물론 아크니악의 고장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도 한몫했겠지만 말이야.

원인을 발견한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아크니악의 자동수복 기능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내가 지닌 마나의 총량의 100배.

아니, 그 이상의 마나가 필요했다.

“아이넬 님의 말씀은 이해했어요. 그럼, 제가 도울 일이라는 건······. 아크니악에 필요한 마나를 충당할 방법이겠죠? 그리고 그 방법은 인원이고요.”

셀리오스 씨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셀리오스 씨는 다른 사람들에게 아크니악의 위치가 알려지길 원하지 않는 거죠?”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아이넬 님의 말씀이 맞아요. 아크니악의 존재가 알려지는 것까지는 괜찮아요. 하지만, 자칫 아크니악의 위치가 알려지게 된다면······.”

“위험하겠죠.”

실제로도 매번 나키아가 바뀔 때면 아크니악의 위치도 바꾼다고, 셀리오스 씨가 말했다.

즉 지금 아크니악의 위치를 아는 자는 셀리오스 씨와 나, 둘뿐이라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아크니악의 수리를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겠죠. 추후 아크니악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방법도 있으니까요.”

셀리오스 씨의 말에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요.”

“네?”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건 마나를 충당할 인원이 아니에요. 오히려 그 반대죠.”

“반대요?”

“네. 셀리오스 씨는 왕궁. 아니다. 아예 왕궁이랑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을 다른 곳으로 피신시켜주셨으면 해요. 가능한 멀리요.”

내 요구를 이해하지 못했는지, 셀리오스 씨가 고개를 갸웃했다.

“사람들을 피신시키라고요?”

“네. 아, 거기다 마나가 닿으면 안 되는 물건도 전부 다른 곳으로 옮겨주세요. 렐리크 같은 거요.”

* * *

홀로 아크니악의 앞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허리춤에 매달린 무전기에서 셀리오스씨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 들리시나요? 오바.

“네. 잘 들려요. 사람들은 다 피신했어요? 오바.”

-네. 왕궁은 물론, 그 주변에 있는 모든 이들을 피신시켰어요. 오바.

“오케이. 그럼 저는 바로 수리를 시작할 테니, 그동안 록시랑 루나 잘 부탁드립니다.”

-네! 알겠어요! 록시랑 루나는 저한테 맡겨주세요!

어째선지 셀리오스 씨의 목소리에 열기가 담겨있는 게 두 비스테르와 함께라는 게 적잖이 기쁜 모양이다.

왠지 셀리오스 씨에게서 푼수의 향기가 났지만, 걱정하는 것보다야 훨씬 나으니까.

이내 무전을 끝내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터벅터벅, 아크니악 앞으로 향했다.

“자, 시작해볼까.”

홀로 중얼거린 나는 365일 차고 다니다 못해, 이제는 내 몸의 일부나 다름없는 로켓 펜던트를 과감하게 벗어던졌다.

더불어 마나가 쉽게 침범하지 못하게끔 둘렀던 마나의 장벽도 해제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주변의 마나가 급격하게 요동치며 내 주변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후웁!”

순식간에 내 피부를 뚫고 들어오는 마나에 헛숨을 들이켰다.

왠지 시간이 갈수록 내 체질도 덩달아 강해지는 것 같단 말이지.

나는 아크니악의 표면에 양 손바닥을 붙였다.

그리고는 들락날락하며, 마치 당장이라도 내 몸을 찢어발길 것처럼 소용돌이치는 마나를 아크니악으로 유도했다.

후우우우웅!

아까 내 마나 전부를 쏟아부었을 때와는 달리, 아크니악이 거세게 진동하며, 내 마나를 흡수했다.

아울러 뿜어지는 빛이 어찌나 강렬했던지, 일순간 세상이 하얘지며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흡사 파도처럼 맹렬하게 마나를 쏟아붓기를 5분여.

마침내 흐름이 끊긴 지점까지 마나가 도달했다.

된다!

아크니악은 내게서 흡수한 마나를 이용해 끊어진 흐름을 복구했다.

자, 이제부터는 시간 및 집중력 싸움이다.

나는 긴장의 끈을 꽉 움켜쥐는 한편, 아크니악에서 감각되는 흐름을 기억하면서 끊임없이 마나를 쏟아부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이렇듯 내 몸으로 흡수되는 마나를 아크니악으로 전달하고 있노라니, 분배기가 된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아, 나는 사람이니까 바이오 분배기라고 해야 하나.

그나저나, 이거 얼마나 걸릴지 당최 감이 잡히질 않네.

그도 그럴 게, 내가 하는 건 일이라고는 그저 마나를 공급해주는 역할.

딱 거기까지지, 정작 수리는 아크니악이 알아서 하고 있으니까.

즉 이 끊어진 흐름이 원상복구 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내가 아닌 아크니악에게 달린 것이다.

그래도 얼추 예상해보자면, 길어도 1시간이면 끝날 것 같긴 했다.

* * *

드라고스 산맥.

그중에서도 드라고스의 날개라 불리는 윙그롬과 심장이라 불리는 하티르와 인접한 지역에 위치한 동굴 안이었다.

그곳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그의 정체는 다름 아닌 레자드.

“케륵, 나키아 님은 케륵, 괜찮은 건가.”

그가 레자드 특유의 숨소리를 내며 걱정스레 중얼거렸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독특하게 생긴 구조물이 하나 있었다.

전체적으로 링 형태의 구조물이었으며, 얼추 사람 한 명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

이 건축물은 아크니악과 연결되어 있는 일종의 문이었다.

오늘로 벌써 2개월.

본래라면 주 거주지인 늪지대에 있어야 할 그가 동굴에, 그것도 아크니악과 연결된 문 앞을 서성이는 이유는 단순했다.

그가 나키아의 비밀 조직인 네클라스의 일원이자, 지상의 감찰이라는 중요한 임무를 맡은 자였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2개월 전.

늘 그렇듯 레자드는 나키아에게 보고를 하고자 이곳을 찾았다.

그러나 왜인지 문은 열리지 않았다.

혹시나 다른 중요한 일이 생겼나, 싶었던 그는 발길을 돌렸고, 다음 날 다시 찾아왔다.

그러나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렇게 레자드는 2개월 동안 단 하루도 빠짐없이 이곳을 찾았지만, 여전히 깜깜무소식이었다.

멀거니 문을 바라보던 레자드가 혀를 널름거리며, 콧김을 뿜어냈다.

“케륵, 오늘도 아무런 소식이 없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아브륄로 달려가 상황을 확인하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그는 레자드다.

비록 늪지대 내지 물가에 사는 종족이라고 한들, 수중에서 호흡할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그가 아브륄로 갈 방법은 아크니악이 유일했다.

“케륵, 무사하기를······.”

오늘은 문이 열릴까, 아침 일찍부터 동굴을 찾은 레자드가 맥없이 몸을 돌리려던 그때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