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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109화 (107/159)

109. 소년기(91) - #나키아와의 만남!

본의 아니게 주객이 전도된 식사가 끝난 뒤, 응접실로 돌아왔다.

쪼르르륵.

적당한 온도로 데운 물이 찻잔으로 흘러들며, 밑에 깔린 찻잎을 적셨다.

금세 노랗게 물든 찻물에서 허브 특유의 상쾌한 향이 흘러왔다.

마지막으로 각종 과일과 열매를 넣어 숙성시킨 청을 한 숟가락 넣고 저었다.

그 누구라도 한번 맛보면 계속해서 찾게 된다는 아이넬표 과일 꿀차가 완성되었다.

“내가 할게.”

내가 차를 타자 루나가 쟁반에 머그잔을 올렸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루나는 겉으로 드러나는 차가운 이미지와는 달리 늘 남을 돕는데 앞장선단 말이지.

“아, 그나저나 록시는?”

“응? 아!”

내 말에 루나가 뒤쪽을 보더니, 눈을 크게 떴다.

“방금 여기 있었어.”

나는 슬쩍 문을 쳐다봤다.

아니나 다를까.

굳게 닫혀있어야 할 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우리 중 마지막으로 들어온 사람이 록시였으니, 방으로 들어오기 직전에 딴 길로 샌 모양이다.

“찾아올게.”

“록시라면······. 응, 그게 낫겠다. 부탁할게.”

다른 사람이라면 알아서 놀다 오겠거니, 하겠지만 록시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물론 록시가 어디 가서 사고를 칠 아이는 아니······라고는 차마 말 못 하겠지만, 적어도 민폐를 끼치는 아이는 아니다.

단지 록시를 보고 있노라면, 활발한 강아지가 떠오른다고 해야 할까.

평소에는 내 주변에서 알짱거리며 곧잘 장난을 걸고, 이따금씩은 귀찮을 정도로 달라붙는데 막상 눈에 보이지 않으면 무슨 사고를 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 일단 “쓰으읍, 안 돼!”부터 외치며 다급하게 찾아다니는 강아지 말이다.

루나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빠르게 라프린스 씨와 아쉬르 씨의 앞에 머그잔을 내려놓고 방을 나섰다.

그래도 루나가 직접 찾으러 간다면야 별일은 없겠지.

나는 머그잔을 든 채 두 사람의 건너편에 앉았다.

“······고맙습니다.”

“잘 마시겠습니다.”

생소한 형태의 잔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라프린스 씨가 호록, 차를 마셨다.

“······아!”

“왜 그러십니까?”

아쉬르 씨가 묻자 라프린스 씨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무어라 말했다.

입 모양을 미루어 맛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렇습니까? 다행이군······ 음.”

이내 별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아쉬르 씨도 조심스레 차를 마셨고, 살짝 놀란 듯 눈을 치켜떴다.

“확실히 이건······ 맛있군요.”

“다행이네요.”

나는 아쉬르 씨의 반응에 웃으며 차를 마셨다.

아, 좋다.

역시 기름진 음식을 먹고 난 뒤에 마시는 따뜻한 차는 각별하단 말이지.

아쉬르 씨와 라프린스 씨도 내 차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아 흐뭇했다.

잠시나마 머그잔의 온기를 만끽하던 나는 슬쩍 말문을 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아까 저한테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하셨죠?”

“아, 예. 그렇습니다.”

내 말에 아쉬르 씨가 잔에서 입을 뗐다.

머그잔에서 올라오는 따스한 열기 때문인지, 그녀의 뺨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아쉬운 듯 잔을 내려놓은 아쉬르 씨가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경비병에게 들었습니다. 아이넬 씨는 지상에서 오셨다고요.”

예상했던 질문인지라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저는 지상에서 왔어요. 록시도, 루나도.”

내가 딱 잘라 말하자 아쉬르 씨가 입술을 깨물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경비대장의 보고를 믿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지상이 멸망했기 때문이죠?”

아쉬르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지상은 멸망했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그랬기에, 저와 경비대장은 아이넬 씨의 말이 거짓말이라 단정 지었습니다.”

“음······.”

아쉬르 씨도 지상이 멸망했다고 믿는 사람 중 하나구나.

“그렇군요. 아쉬르 씨의 말은 납득할 수 있어요.”

자고로 사람은 자기가 믿고 싶은 것을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법이다.

즉 내가 지상에서 온 게 사실이냐 아니냐는 중요한 게 아니다.

본인 나아가 아브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면 그것이 곧 진실인 셈이다.

“근데, 아쉬르 씨가 굳이 저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먼저 멋대로 짐을 뒤진 점 사죄드립니다.”

“뭘요. 짐 수색이야 당연한 건데요.”

지구에서도 곧잘 하는 게 수색이다.

특히 공항은 X-RAY로 내부를 확인하는 건 물론 의심이 되는 물건이 있다 싶으면 곧장 가방을 뒤지니, 까짓 아브륄의 공식 입국 절차라고 치부하고 넘기면 그만이었다.

“이해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아이넬 님의 짐을 확인했을 때, 진짜로 지상에서 온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렴.

내 가방에 든 것들은 지상이 아니면 구할 수 없는 것들이니, 그걸 보고도 거짓이라고 한다면 문제가 있는 거지.

“그리고 아까 식당에서 요리하셨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랬구나.

“저도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요.”

“예. 말씀하십시오.”

“아쉬르 씨는 왜 지상이 멸망했다고 믿는 거예요? 혹시 직접 보셨어요?”

“그건······. 아닙니다. 저는 직접 보지 못했습니다. 단지, 과거에 데모스라는 자가 나타나 지상을 멸망시켰다는 이야기는 아브륄에서 모르는 자가 없습니다.”

“데모스. 그럴 것 같더라니.”

“예?”

“데모스요. 자세한 것까진 모르지만, 과거 데모스가 대륙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는 건 들었거든요.”

맹점은 아직 데모스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으며, 그의 추종자들이 부활을 도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데모스의 영혼을 담은 마봉석이 내 수중에 있다는 거겠지.

사실 처음 마봉석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폐기였다.

만져봤을 때 내 힘과 템페스트의 단단함이라면 충분히 파괴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러나 내가 굳이 마봉석을 파괴하지 않은 이유 앞서 말한 조건 때문이다.

만약 마봉석을 부수는 게 부활의 조건이라면, 오히려 데모스를 도와주는 꼴임과 동시에 나 스스로 위험을 자초해버린 꼴이 되어버린다.

즉 최대한 안전하고 확실하게 없애는 방법을 알아내기 전까지는 파괴는 고사하고 손을 대는 것조차 조심스러울 수밖엔 없었다.

문제는 세상에는 절대라는 것도 영원한 비밀도 없다는 거겠지.

내가 언제까지 마봉석을 숨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을뿐더러, 데모스가 부활하는 조건을 알아낼 수 있을지조차 미지수.

딱 하나 데모스의 부활을 저지할 방법이 떠오르긴 했지만, 섣불리 시도하기에는 시기상조인 감이 없잖아 있었다.

뭐, 당장 고민해봐야 답이 나오는 게 아니니까.

거기다 내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이상 데모스의 부활이 늦어지는 건 확실하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처럼 조금 여유를 두고 고민해보는 게 좋겠지.

뭐, 이런 건 나중에 차근차근 생각하기로 하고······.

별안간 떠오른 상념을 털어낸 나는 아쉬르 씨와 시선을 맞췄다.

“딱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건······.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지상이 멸망하진 않았어요. 그러니까, 멸망하기 직전까지 갔다고 보는 게 옳겠죠.”

“멸망하기 직전······입니까?”

“네. 지상은 아직 멸망하지 않았어요.”

내가 대답을 이어가려던 찰나였다.

돌연 문이 열리더니 누군가가 응접실로 들어왔다.

“아이넬 님의 말이 맞아요.”

갑작스러운 난입에 이어 내 이름이 언급되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엉?”

나는 눈을 크게 떴다.

그도 그럴 게 응접실로 들어온 인어가 공중에 두둥실 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녀는 허공이 마치 물속인 양 자연스럽게 유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내가 놀란 것은 인어의 공중부양이 아니었다.

“록시?”

“우와아아아! 록시, 난다! 난다!”

어째서인지, 여성 인어의 등에 록시가 업혀있었다.

그 뒤로는 이 초유의 사태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한편으로는 체념한 듯한 표정의 루나가 서 있었다.

이런 내 놀라움과는 별개로, 아쉬르 씨가 대번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나, 나키아 님을 뵙습니다!”

“나키아 님?”

잠깐만.

그럼, 저 인어가 아브륄의 우두머리이자, 내가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용왕?

아니,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대체 왜 록시가 나키아의 등에 업혀있는 거냐고.

그것도 무슨 말타기를 하듯 업혀있으니 보호자인 내 입장에서는 그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따름이었다.

* * *

나는 록시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응접실로 향하던 중이었다. 세상 모든 것이 신기했던 록시는 주변을 구경하기 바빴고, 우연히 저 멀리서 무언가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이에 호기심을 느낀 록시는 그대로 샛길로 빠져 그것을 쫓아갔다.

하지만 이게 웬걸.

정작 그녀가 쫓아가던 것은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돌연 자취를 감췄다.

졸지에 미아가 된 록시는 우리를 찾기 위해 궁을 돌아다녔다.

그렇게 궁을 들쑤시고 다니던 중, 록시는 익숙한 냄새를 맡았고 자연스레 그쪽으로 향했다.

정작 그녀가 도착한 곳은 응접실이 아닌 식당이었다.

“그러니까, 그 익숙한 냄새라는 게······..”

“응! 새우튀김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나키아······. 그러니까, 셀리오스 씨를 만난 거고?”

“응! 셀리오스! 언니!”

“언니?”

얘 방금 셀리오스 씨한테 언니라고 한 건가?

뭐, 록시야 여자니까 언니라는 호칭을 써도 이상할 게 없긴 하지만······ 괴리감이 느껴지는 걸 왜일까.

“응! 셀리오스! 언니다! 언니라고 부르면 맛있는 거 줬다!”

그러니까, 그냥 언니라고 부르는 게 아니라 먹을 걸 주는 조건을 걸었다는 이야기······인가?

나는 록시의 말이 맞냐는 의문을 담아 셀리오스 씨를 쳐다봤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했던가.

내 시선을 받은 셀리오스 씨가 괜스레 헛기침하더니 내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는 “사실 귀여운 여동생이 갖고 싶었고, 라프린스랑 나이가 비슷한 것 같아서······.” 라고 중얼거렸다.

귀여운 동생이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지만, 아무리 그래도 먹을 걸 미끼로 삼아 언니라는 호칭을 획득하다니!

하물며 이야기를 들어봤을 때 록시에게 준 음식의 대부분은 내가 만든 요리였다.

애당초 내가 만든 게 아니었다면 록시가 넘어가지도 않았을 테지만 말이야.

뭐라고 해야 하나.

왠지 나키아에게 품었던 신비감이 조금은 옅어지는 기분이 드는 건 내 착각일까.

요리를 준다고 덜컥, 언니라고 부르는 록시도 참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지, 록시야 워낙 순수하니까 이건 셀리오스 씨가 음흉한 거라고 보는 게 맞나?

뭐,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록시와 셀리오스 씨가 친해져서 나쁠 건 없거니와 결과적으로는 나키아를 만나게 됐으니, 도리어 칭찬을 해줘도 모자라리라.

“잠깐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샜는데, 아까 셀리오스 씨가 말씀하신 건 무슨 의미인가요?”

내가 질문을 던지자 셀리오스 씨가 자세를 바로 했다.

“실은······. 저는 지상이 멸망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답니다.”

“그, 그게 사실입니까?”

이에 아쉬르 씨가 놀라 물었다.

“네. 사실이에요. 여러분을 속인 것 같아 참으로 죄송스럽지만, 제게도 선대 나키아도 숨겨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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