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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108화 (106/159)

108. 소년기(90) - #손님이 만든 요리

그런 셀리오스의 머릿속에는 우연한 기회에 접했던 음식이 떠올랐다.

아니, 셀리오스는 그것을 접한 뒤로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

그만큼, 어쩌면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음식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아브륄 내에는 특수한 조직이 하나 있다.

조직의 이름은 네클라스이며, 이들을 주 업무는 탐색 및 감찰이었다.

가장 중요한 감찰 대상은 지상이었다.

현재 아브륄이 사는 모든 이들은 지상이 멸망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15대 나키아까지도 그리 믿고 있었다.

하지만 16대 나키아는 과연 지상이 정말로 멸망했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가졌고, 직접 확인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네클라스였다.

네클라스는 오로지 나키아만을 따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존재를 알고 있는 자 역시도 나키아뿐이었다.

달리 말해서 현 나키아인 셀리오스, 나키아를 역임했던 자들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 조직인 것이다.

당장 셀리오스만 하더라도 네클라스의 존재를 알고 상당히 놀랐으며, 자신과 아는 것과 달리 지상이 완전히 멸망하지 않았다는 걸 듣고 더욱더 놀랐다.

그렇게 셀리오스는 네클라스의 보고를 받으며, 차근차근 지상에 대해 알아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정확히는 2개월하고도 보름 전.

그러니까, 아직 렐리크가 고장 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나키아의 비밀 조직인 네클라스의 일원이자, 비밀 임무를 수행 중이던 자가 셀리오스에게 보고를 올리기 위해 찾아온 적이 있다.

늘 그렇듯 자신이 보고 들은 것들에 대해 보고를 올리던 네클라스의 일원이 돌연 이런 말을 꺼냈다.

“케륵,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무척이나 조심스러운 말에 셀리오스는 호기심을 느꼈고, 발언을 허락했다.

그런 그가 꺼낸 것은 당최 그 용도를 알 수 없는 이상한 물건들이었다.

이런 셀리오스의 의문 섞인 시선에도 네클라스의 일원은 묵묵하게 물건들을 설치했다.

뒤이어 그가 무언가 만지작거리더니 돌연 시뻘건 불길이 치솟았다.

느닷없이 치솟는 불길에 당황한 셀리오스가 물었다.

“그, 그건 뭐죠? 지상의 렐리크인가요?”

렐리크 중에서도 불을 뿜어내는 것들이 있었기에 이런 셀리오스의 질문은 지극히 당연했다.

셀리오스는 지상이 아예 멸망하지 않았다는 건 알고 있었지, 실제로 지상을 본 적은 없다.

이렇듯 나키아의 비밀 조직인 네클라스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받거나 가끔 그들이 가져오는 걸 보는 게 고작인 것이다.

이는 셀리오스만이 아니라 선대 나키아도 똑같았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지상의 문물이 마냥 생소했으니 네클라스의 일원이 가져온 게 지상의 렐리크가 아닐까, 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에 네클라스의 일원이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케륵, 화로라는 겁니다.”

“화로······?”

“케륵, 예. 렐리크가 아니라 케륵, 이렇게 직접 불을 피울 수 있는 도구입니다.”

“아······.”

셀리오스가 자못 실망한 눈으로 화로를 쳐다봤다.

직접 손으로 불을 피워야만 사용이 가능한 도구라면, 렐리크라고 부를 수 없었을뿐더러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셀리오스의 실망과는 별개로 네클라스의 일원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건 뭔가요?”

“이건 케륵, 불판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것은······.”

네클라스의 일원이 하나하나 설명하며, 도구를 설치했고 마지막으로 선홍빛 덩어리를 꺼냈다.

“그건 뭐죠? 혹시······. 지, 지상의 음식인가요?”

“케륵, 바로 보셨습니다. 이것은 삼겹살이라는 음식입니다.”

“삼겹살? 처음 듣는군요.”

지상의 음식이 등장하자 셀리오스가 처음으로 흥미를 보였다.

“케륵, 이것은······. 자세한 건 말씀드릴 순 없습니다만.”

잠시 말을 멈춘 네클라스의 일원이 짐짓 고개를 들었다.

얼굴을 가린 복면 너머로 드러난 눈동자에는 뿌듯함이 담겨있었다.

“이것은 제 친구가 케륵, 준 것입니다.”

“친구······? 아!”

그러고 보면 네클라스는 지상을 감찰하는 임무를 맡았다. 즉 가장 자연스럽게 활동하기 위해서는 그들과 섞여서 함께 공존해야만 했다. 그랬기에 네클라스에 속한 전원은 지상에서 살아간다. 애당초 지상에서 살 수 있어야만 네클라스의 일원이 될 수도 있었고.

‘그가 말하는 친구는 정보를 캐기 위한 일종의 목표물이겠지.’

그녀도 아직 네클라스에 대해 자세히 아는 게 아닌지라, 어물쩍 납득하고 넘어갔다.

“그렇습니다. 케륵. 저는 나키아 님을 모시는 입장. 이것은 반드시. 케륵, 반드시 드셔보셔야 합니다.”

“반드시 먹어봐야 한다고요?”

셀리오스는 황당했다.

그도 그럴 게, 앞서 말했던 것처럼 네클라스의 목적은 감찰이다.

혹여나 지상에 재차 암운이 드리운다거나 혹여 아브륄에 위협이 될 만한 일이 생길 때를 대비해서 만든 조직이 바로 네클라스.

더불어 시시각각 아브륄을 위협하는 로플로드나, 크레이둠의 동태를 살피는 것 또한 그들의 사명이었다.

물론 세대를 거치면서 네클라스의 인원들도 바뀌고, 덩달아 업무에도 살짝 변화가 생겼다.

아무리 그래도 느닷없이 음식을 가져와서 반드시 먹어봐야 한다는 말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케륵, 이걸 드시지 않는다면 후회하실 겁니다. 케륵.”

“정 그렇게 말한다면······.”

후회라는 말이 이렇게나 유혹적이었던가.

‘그래, 이것도 네클라스의 임무니까.’

아울러 자신을 위해 가져왔으니 차마 거부할 순 없었다.

한편으로는 기대감도 동반하고 있었다.

늘 말로만 듣던 지상의 음식을 직접 먹어본다는 것에 호기심이 생긴 것이다.

셀리오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부탁할게요.”

“케륵, 탁월한 선택입니다.”

만족스럽게 고개를 주억인 네클라스의 일원이 불판에 삼겹살을 얹었다.

그와 동시에 치이이이익, 하는 맛깔스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고소한 냄새가 풍겼다.

‘으응?’

생전 처음 맡아보는 풍미에 셀리오스의 위장이 꿈틀거리고, 입가에 침이 고였다.

이런 셀리오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네클라스의 일원은 또다시 특이한 도구를 꺼내더니 삼겹살을 뒤집거나, 자르기 시작했다.

삼겹살을 구워지는 모습을 묵묵하게 지켜보기를 10여분.

“케륵, 다 됐습니다.”

마침내 요리의 완성을 알리는 말에 셀리오스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이제 먹어도 되는 건가요?”

“케륵, 예. 뜨거우니 조심하시길.”

이내 자신에게 내밀어진 접시를 보던 셀리오스가 조심스럽게 삼겹살을 집었다.

처음으로 먹는 음식에 살짝 긴장이 됐지만, 자꾸만 재촉하는 위장의 성화에 널름 삼겹살을 입에 넣었다.

“웃!”

순간 입을 적시를 풍부한 맛에 셀리오스는 전율했다.

명색이 나키아다.

평생을 왕궁에서 살며, 최고의 요리사가 만든 최고의 요리만 먹어왔지만, 이런 맛은 처음이었다.

심지어 평소 그녀가 먹는 음식에 비하자면 무척이나 소박하면서도 간단한 요리였으나 그 맛만큼은 몹시도 강렬했다.

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불판이 깨끗하게 비어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네클라스의 일원이 가져온 삼겹살을 접한 후로는 그 어떤 요리를 보아도 감흥은커녕 아예 식욕이라는 게 싹 사라졌다.

‘먹고 싶다.’

따지고 보면 셀리오스가 이토록 수척해진 것은 그때 먹었던 삼겹살도 한몫하고 있던 셈이다.

안타깝게도 셀리오스의 바람은 바람일 뿐이었다.

이유는 역시나 렐리크의 고장이 원인이었다.

“하아. 이러나저러나 렐리크의 수리가 급선무야.”

씁쓸한 시선으로 테이블을 응시하던 셀리오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왼손에 낀 반지 중 하나를 문지르며 마나를 주입했다.

그와 동시에 반지에서 빛이 나더니, 셀리오스의 몸이 살짝 떠올랐다.

이 또한 셀리오스가 지닌 렐리크의 능력이었다.

그렇게 허공에 뜬 셀리오스가 서서히 이동하며, 방을 나섰다.

* * *

현재 셀리오스가 지내는 곳은 본궁이고, 라프린스가 지내는 곳은 별궁이다.

본궁과 별궁은 완전히 개별적인 장소인 만큼 주방도 따로 있었다.

그러나 최근 궁에서 지내는 인원을 감축한 탓에 하나의 주방은 잠정적 폐쇄되었다.

“······.”

아무도 살지 않는 폐허처럼 적막한 궁을 이동하던 셀리오스의 움직임이 멎었다.

그녀가 찾은 곳은 다름 아닌 주방이었다.

“응?”

조심스럽게 주방의 문을 열던 셀리오스가 멈칫하더니, 슬그머니 문에 귀를 갖다 댔다.

그러자 안쪽에서 대화 소리가 들렸다.

‘음······.’

아무도 없을 줄 알았으나, 안에 사람이 있는 이상 선뜻 들어가기가 꺼려졌다. 아무래도 아브륄의 지배자인 만큼 자신의 등장에 소란이 일어날 게 뻔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나.’

괜히 자신으로 인해 시끄러워지느니, 방으로 돌아가 말라비틀어진 요리를 먹는 쪽이 나을 터.

하는 수 없이 몸을 돌리려던 찰나였다.

“와······. 이게 대체 뭐죠? 되게 신기하게 생겼다.”

“이거? 아까 크래든 님이 가져오신 거야.”

“크래든 님이요?”

“응. 듣자 하니까, 라프린스 왕자님의 손님이 주신 거라고 하던데? 되게 귀한 거니까 함부로 만지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어.”

갑작스럽게 자신의 동생이 언급되자, 서둘러 문에 얼굴을 붙였다.

“손님이라면······. 아까 라프린스 왕자님이랑 아쉬르 님이랑 같이 있던 분이 말씀하시는 거죠? 대체 어디서 온 누구일까요? 적어도 아브륄 내에서는 본 적 없는 종족인 것 같은데.”

“으음, 나도 잘 모르겠어. 크래든 님이 아주 중요한 분이라고만 하시고 자세한 건 알려주질 않으셨거든.”

“이건 뭐예요? 킁킁. 왠지 냄새가 되게 독특한데······. 뭔가 맛있을 것 같아요. 냄새만 맡아봤을 땐 폴라크가 들어간 것 같은데.”

“너는 용케도 아는 구나? 이건 해물파전, 이건 새우튀김, 이건 어묵이라는 요리라는데, 전부 손님이 만드신 건가 봐.”

“으······. 되게 궁금하다. 이거 조금만 맛보면 안 되겠죠?”

“그, 글쎄. 나도 먹어보고 싶긴 한데······. 혹시라도 크래든 님한테 들켰다가는······. 너도 알잖아?”

“철컥, 철컥.”

“그거 무서우니까 하지 말라고 했지.”

“히히. 근데, 진짜 조금만 맛보면 안 되나. 너무 궁금한데.”

그때였다.

벌컥!

돌연 주방의 문이 활짝 열렸다.

“멜릿, 너 또 우리 놀라게 하려고 숨어있었지!”

“윽!”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는 말마따나.

두 사람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고 있던 셀리오스는 난데없이 열린 문에 당황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나, 나키아 님?”

“나키아 님을 뵙습니다!”

정작 문을 활짝 연 두 사람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대로 납작 엎드렸다.

“어, 저기······. 두, 둘 다 일어나세요.”

셀리오스가 애써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말했지만, 두 사람은 고개를 조아린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죄, 죄송합니다. 나키아 님인 줄 모르고 감히 결례를······.”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자, 이러지 말고, 어서 일어나세요. 어서요.”

결국 셀리오스가 직접 나서 두 사람을 일으켰다.

잠시 두 사람이 진정할 때까지 기다리던 셀리오스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긴장할 것 없어요. 두 사람은 단순히 착각을 한 거잖아요?”

생각지도 못한 사태에 당황하긴 했지만, 저 두 사람이 고의로 그런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나저나, 안에서 좋은 냄새가 나네요. 혹시, 새로운 요리인가요?”

셀리오스가 짐짓 모른 척 물어보며 화제를 전환했다.

아무렴.

나키아의 체면이 있다.

방금 전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들었을지언정 티를 낼 순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예? 아······. 예. 그러니까······.”

“라프린스 왕자님이 초대하신 손님이 직접 만드신 요리라고 합니다.”

“그래요? 안 그래도 배가 고팠는데, 잘됐네요.”

“네? 아, 방으로 가 계시면 저희가 준비해서······.”

“번거롭게 그럴 필요는 없어요. 자, 어서 들어가요.”

셀리오스가 두 사람의 등을 떠밀며 주방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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