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 소년기(88) - #해물파전 & 새우튀김
때는 바야흐로 내가 회사에 갓 입사했을 무렵이었다.
나는 회사에서 주최하는 회식에 참석했다.
시골에서 상경한 뒤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내 입장에서는 감히 엄두도 낼 수 없었던, 정말로 값비싼 횟집이었다.
기껏 해봐야 광어나 우럭이나 먹어본 나로서는 눈이 돌아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구석에 앉아 이것저것 맛을 보던 중이었다.
돌연 부장님과 과장님이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혹시 큰 싸움인가 싶어, 서둘러 귀를 기울인 나는 황당함에 혀를 찼다.
그도 그럴 게, 싸움의 주제가 너무나도 유치했던 것이다.
먼저 부장님의 주장은 이러했다.
“회든 뭐든, 재료 본연의 맛을 느껴야 제대로 된 미식이라고 할 수 있지.”
이에 맞서는 과장님의 주장은 이러했다.
“재료 본연의 맛보다는 양념의 맛이 제일 중요합니다.”
본연의 맛 VS 양념의 맛.
침을 튀겨가며 때아닌 토론을 하는 두 사람을 보고 있자니, 내심 어처구니가 없더라.
나처럼 황당해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는 이들도 있었다.
그래도 별거 아니겠지, 싶어 다시금 음식에 집중했다.
하지만 금방 식을 거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두 사람의 토론은 갈수록 더 뜨거워지기 시작하더니, 때아닌 투표가 열렸다.
참으로 유치하면서도 어린아이들이나 할 법한, 끼어들기 싫은 싸움이었으나 별 수 있으랴.
“저는 부장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저, 저는 과장님······.”
동료들은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놓은 채 하나, 둘 투표를 시작했고 마침내 내 차례가 돌아왔다.
지금이야 저게 다 파벌 싸움이라는 걸 알지만, 당시의 나는 갓 입사하였으며 회사 생활에 대해 모르던 상황이었다.
그래서일까.
“본질이고 양념이고, 그냥 맛만 좋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부장님의 주장도 과장님의 주장도 아닌 나만의 의견을 말했다.
내 말이 끝나고 멋쩍은 표정으로 앉는 두 분을 뒤로하고 다시금 요리를 먹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그 일이 있고 난 뒤.
어째선지 내 별명은 횟집의 솔로몬이 되었고, 곧잘 동료들이 찾아와 별 시답잖은 것들을 물어보곤 했다.
대표적으로는 짜장면이냐, 짬뽕이냐.
탕수육은 부먹이냐 찍먹이냐.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민트초코가 치약맛이냐, 치약이 민트초코 맛이냐.
기타 등등.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그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해봤으며, 어쩌면 인류가 종말하는 그날까지 답을 찾을 수 없을 만한 것들이 대다수였다.
나중에서야 그게 날 놀리기 위함이라는 걸 깨달았지만, 뭐 내 나름 즐겼으니까 됐고.
잠시나마 옛 추억에 잠겼던 나는 멀거니 접시를 응시했다.
그곳에는 고운 자태를 뽐내는 투나 뱃살이 올려져 있었다.
“······.”
솔직히 말해서 맛은 있다.
농담이 아니라 내가 먹어본 회 중에서도 단연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약 여기가 지구였더라면 내 한 달 치 월급을 모조리 쏟아부어야 하는, 소위 일류 쉐프가 직접 떠준 값비싼 요리였다.
하지만 제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한 가지만 먹으면 물리기 마련.
게다가 지금까지 내가 먹은 건 전부 회였으며, 그마저도 기름기가 많은 생선이다.
반면에 반드시 곁들여야 하는 초장이나 간장은커녕 횟집이라면 으레 나오는 반찬도 없다.
회는 진짜로 맛있는데, 계속 먹고 있자니 적잖이 부대끼는 게 사실이었다.
그래서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요리는 양념 맛이라고 주장했던 과장님의 손을 들어주고 싶은 심정이다.
이는 제법 어른스러운 입맛을 가진 루나도 비슷했는지 젓가락을 드는 횟수가 점차 줄어들었고, 어느 시점부터는 그냥 물만 홀짝였다.
하물며 록시는 어른스럽긴커녕 이른바 초딩 입맛이다.
안 그래도 좋아하지 않는 요리를······ 그것도 아무런 양념도 없이 먹어야 했으니 여러모로 곤욕스러웠으리라.
그나마 나나 루나야 조금은 배가 찼지만 록시는 거의 먹지도 못했다.
이대로 놔뒀다가는 집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쫄쫄 굶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대장······.”
록시의 간절한 목소리가 내 심금을 울렸다.
그래, 대장이 괜히 대장이냐.
마을의 골목대장이라고는 한들 이럴 때 나서주는 것도 좋겠지.
“저기,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가 요리를 좀 해도 될까요?”
“흠!? 직접 요리를 하신다는 말씀입니까?”
철컥, 철컥!
내 말에 크래든 씨의 집게가 빠르게 열렸다 닫혔다.
“제 요리가 입에 맞지 않으신 겁니까?”
“아뇨, 아뇨. 진짜 맛있어요. 단지······.”
“단지?”
반문하는 크래든 씨의 눈빛은 마치 “내 요리가 형편없으니, 네가 직접 만들어 먹겠다는 거 아니냐?”라고 추궁하는 듯했다.
아무렴.
요리사가 정성스럽게 요리를 내왔는데, 다짜고짜 손님이 요리를 하겠다고 나서니 오해를 하는 게 당연했지.
더군다나 크래든 씨는 평범한 요리사가 아니다.
무려 왕자의 전속 요리사였으니 자존심도 엄청 높을 터.
특히 록시는 처음 회 두어 점 먹은 뒤로 가만히 앉아만 있었으니 더욱더 신경 쓰였으리라.
“우리는 조리한 음식을 주로 먹어서요.”
“이것도 다 조리된 음식입니다만?”
이게 어딜 봐서 조리된 음식일까, 라는 의구심이 생겼지만 애써 털어냈다.
뭐, 요리사가 저리 말한다면야 그런 거겠지.
내가 밀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일까.
록시가 벌떡 일어났다.
“대장이 만든 게 제일 맛있다!”
아이고.
내 요리를 좋아한다는 거야 진작부터 알던 사실이고, 무척이나 고맙다만 지금 이 자리에서 해야만 했니.
하지만 이미 물을 엎질러졌다.
록시의 외침에 크래든 씨의 눈이 가늘어졌다.
“손님도 요리를 하십니까?”
“예, 뭐······. 나름 하는 편이에요.”
“그렇군요. 제가 만든 요리보다 맛있다라. 어디 한번 보여주실 수 있겠습니까?”
오?
이건 내가 예상했던 전개가 아닌데?
물론 예상하지 못했을 뿐이지, 돌아가는 상황은 나에게 나쁘지 않았다.
이거, 록시가 크래든 씨의 자존심을 건드린 게 오히려 약으로 작용한 모양이네.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내가 직접 요리를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됐다.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크래든 씨의 옆으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각종 접시만 있었지, 이렇다 할 조리도구는 없었다.
아무래도 크래든 씨는 집게를 이용해서 직접 조리를 하거니와 불을 다루지 않기 때문이겠지.
이래서는 내가 원하는 걸 만들 수가 없는데.
“음······.”
“왜 그러십니까? 무슨 문제라도?”
“사실 제가 가져온 짐 중에 조리 도구랑, 식자재가 있거든요.”
“흐음? 그런 걸 갖고 다닌단 말입니까?”
“네, 뭐. 어딜 가더라도 챙겨 다니는 편이에요.”
특히 이번에는 록시와 루나도 동반했기에 평소보다 많은 양을 챙겨왔다.
문제는 그것들이 경비병의 수중에 있다는 것이다.
그때였다.
“이걸 찾는 건가요?”
돌연 식당의 문이 열리더니, 아쉬르 씨가 들어왔다. 그녀의 옆에는 토트리를 탄 라프린스 씨도 함께였다.
갑작스러운 두 사람의 방문에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잠시였다.
“어, 제 가방이네요?”
어째선지 그녀는 내가 챙겨온 짐들을 갖고 있었다.
“방금 전 경비병의 보고를 받고 챙겨오는 길입니다. 이 짐들에 대해서 하고 싶은 얘기가 있습니다만······.”
잠시 말을 멈춘 아쉬르 씨가 식당을 쓱 둘러봤다.
“지금은 때가 아니군요. 당장 위험한 물건은 없는 것으로 판단됐으니, 짐은 돌려드리겠습니다.”
하고 싶은 얘기라는 게 뭔지 궁금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고맙습니다!”
나는 아쉬르 씨에게서 냉큼 가방을 건네받았다.
“어디 보자······.”
물건들이 조금 흐트러진 것이 안쪽을 수색한 흔적이 있었지만, 딱히 없어진 건 없었다.
나는 가방에서 필요한 조리도구를 비롯하여 잔뜩 챙겨온 식자재를 꺼냈다.
“흐음?”
크래든 씨는 내가 꺼낸 도구들이 마냥 신기했는지, 눈을 빛냈다. 더군다나 은근슬쩍 날 따라다녔는데, 그 모습이 적의 동태를 살피는 밀정 같았다.
비단 크래든 씨만이 아니라 아쉬르 씨와 라프린스 씨도 의아한 얼굴로 날 쳐다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서둘러 요리 준비에 착수했다.
“대장, 대장! 록시도 돕는다!”
“나도 도울게.”
“둘이 도와준다면야, 나야 고맙지. 그럼, 록시랑 루나가 반죽을 만들어줄래? 저번에 부침개 만들었을 때랑 똑같이 하면 돼. 자, 재료는 여기.”
최근 록시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부침개를 언급하자, 록시의 표정이 활짝 펴졌다.
“부침개! 반죽! 알았다!”
이미 한 차례 만들어 본 경험이 있기에 두 비스테르는 곧장 반죽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럼 나는 다른 걸 준비해볼까.
나는 테이블 위에 화로를 설치하고 그 위에 기름을 가득 채운 냄비를 올렸다. 그리고 그 옆에는 널찍한 프라이팬을 올리고 마찬가지로 기름을 둘렀다.
“준비는 얼추 끝났고.”
열이 오르며 기름의 온도가 올라가는 사이, 주방의 한쪽에 준비된 해산물을 살펴봤다.
갓 잡아 싱싱한 해산물이 잔뜩 쌓여있는 것이, 꼭 수산물 시장에 온 기분이었다.
“아, 여기 있다.”
마침내 원하는 해산물을 발견한 나는 그것들을 바구니에 담았다.
“흐음? 쉬룸프, 스쿠드라. 까다로운 재료들을 고르는군.”
내가 재료를 고르고 있자 연신 날 따라다니던 크래든 씨가 홀로 중얼거렸다.
아, 이걸 쉬룸프랑 스쿠드라고 하는 거구나.
이름은 되게 생소하지만, 사실 쉬룸프는 지구에서도 흔히 먹던 새우랑 비슷했고, 스쿠드는 오징어랑 문어를 섞어 놓은 생김새였다.
일단 재료는 이거면 됐다.
나는 챙겨온 해산물을 깨끗하게 씻은 뒤, 바로 손질에 들어갔다.
“호오? 내 집게보다 날카로운 칼이라니.”
먼저 쉬룸프는 두 쪽으로 나눴다.
한쪽은 껍질을 벗기되 대가리와 꼬리는 남겨뒀고, 다른 한쪽은 아예 살만 남겼다.
스쿠드는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사이즈로 툭툭 잘랐다.
“록시야 반죽은 다 됐어?”
“응! 다 됐다!”
“좋아.”
나는 지상에서 가져온 채소와 껍질을 완전히 벗긴 쉬룸프, 손질한 스쿠드를 반죽에 넣고 섞었다.
“대장. 이거 부침개?
“정답!”
“우와아아아!”
반죽을 만들 때부터 짐작했겠지만, 이번에 만든 것 또한 부침개였다.
물론 저번에 먹었던 평범한 부침개가 아닌, 해물파전이지만 말이야.
다른 하나는 바로 새우튀김이었다.
일단 반죽은 이걸로 완성이고.
다음으로 남은 반죽에 대가리와 꼬리를 남겨 둔 쉬룸프를 넣고 버무렸다.
재료를 준비하는 사이 기름의 온도가 적당하게 올랐다.
나는 반죽에 버무린 쉬룸프를 냄비에 넣었다.
치이이이이이!
반죽과 쉬룸프의 수분이 닿자, 기름이 바글바글 끓었다.
삽시간에 기름에 잠긴 쉬룸프가 빠른 속도로 익었다.
기름에 잠긴 쉬룸프들이 서로 엉겨 붙지 않도록 뒤적이는 한편, 프라이팬에 해물파전 반죽을 부었다.
마침내 새우튀김과 해물파전이 완성됐다.
나는 바삭바삭하게 익은 해물파전과 새우튀김을 접시에 담아 테이블에 올렸다.
“끝! 자, 이제 먹을까?”
“응! 록시 먹고 싶다! 빨리!”
“그래, 뜨거우니까 조심하고. 자, 루나도 여기 앉아서 먹어.”
“응.”
이내 자리에 앉은 두 비스테르가 젓가락을 들었다.
록시는 곧바로 양손으로 젓가락을 든 채 해물파전을 찢었고, 루나는 새우튀김을 집었다.
오물오물.
바삭바삭.
“어때?”
내 물음에 두 비스테르가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를 들었다.
“맛있다! 역시 대장이다! 대장이 만든 게 제일 맛있다!”
“응. 맛있어. 엄청.”
“다행이네. 아, 주방 잘 썼습니다.”
“그······. 아닙니다. 크흠.”
내 인사에 크래든 씨가 손사래를 쳤다.
감사 인사도 했으니 나도 먹어볼까?
의자에 앉은 나는 젓가락으로 해물파전을 찢었다.
모락모락, 김이 피어나는 해물파전을 간장에 살짝 찍어 입으로 넣으려던 찰나였다.
꿀꺽.
돌연 귓가를 파고드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크래든 씨는 물론, 아쉬르 씨, 라프린스 씨, 토트리가 내 손에 들린 젓가락을 뚫어져라 주시하고 있었다.
“어······. 좀 드릴까요?”
마치 짜기라도 한 듯 세 사람과 한 마리의 고개가 일시에 끄덕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