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105화 (103/159)

105. 소년기(87) - #혹시 입에 맞지 않으십니까?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라프린스 씨를 따라가는 한편, 눈과 귀를 바삐 움직이며 수중 도시를 구경했다.

단편적으로나마 수중 도시의 특징을 꼽자면, 단연 건물의 양식이 눈에 들어왔다.

아주 어렸을 때 모래사장을 가면 한 번씩 만드는 모래성을 보는 듯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건물은 전부 모래 내지 흙 같은 것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더불어 도구를 이용해 뚝딱뚝딱, 지었다기보다는 손으로 조물조물 빚은 형태였다.

거기다 건물을 장식하고 있는 것들도 조개껍데기나, 생선의 가시 등등.

심플한 디자인이되 수중 도시에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당연하게도 우리 주변을 돌아다니는 이들 또한 지금까지 보지 못한 종족이었다.

딱 하나 공통적인 특징이 있었다.

비늘이나 지느러미, 아가미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문어처럼 다리가 여럿인 사람들도 있었다.

지상이었다면 뭔가 싶겠지만, 이곳이 수중 도시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특징이었다.

“왠지 모쿠 씨가 생각나네.”

아무래도 모쿠 씨가 사는 지역이 늪지대였으니 비슷한 게 당연하리라.

더불어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그중 하나는 부자연스러움이었다.

“다들 불편해 보인단 말이지.”

정확히는 도시 내부를 돌아다니는 모습이 적잖이 힘들고 고되 보였다.

물론 물속을 살아가는 이들이 지상을 돌아다니는 것부터가 기묘했지만, 어딘가 어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도시를 구경하는 한편,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걷던 중이었다.

“이곳입니다.”

아쉬르 씨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아브륄의 중앙에 위치한 건물이었다.

크기도 크기지만, 여타 건물에 비해 유난히도 화려한 것이 누가 보더라도 가장 높은 사람이 사는 곳.

즉 왕궁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 여기는 수중 도시니까, 용궁이라고 해야겠지.

두근두근.

“라프린스 왕자님을 뵙습니다.”

“라, 라프린스 왕자님을 뵙습니다!”

누가 왕자님 아니랄까 봐.

경비병은 물론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며 존경을 표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용궁의 정문을 통과하자 널따란 정원이 눈에 들어왔다.

정원의 중앙에는 마찬가지로 흙으로 빚은 조각상이 떡 하니 서 있었다.

인자한 인상이면서도 다부진 체격을 자랑하는 노년의 남자 인어였다.

추측건대, 저 사람이 나키아라고 불리던 그 사람이겠지?

한동안 관리를 안 했는지, 상태가 좋진 않았다.

그 주변에도 크고 작은 조각상들이 세워져 있었으며 이 또한 관리를 소홀히 했는지 곳곳이 깨지고 부서져 있었다.

하물며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바깥에 비해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질 않았다.

그래서일까.

“되게 적막하네.”

이것도 좋게 말해서 적막이지.

있는 그대로 본다면 오랫동안 버려져 있던 건물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을씨년스러웠다.

심지어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과 대비된 탓에 언뜻 공포 영화에 쓰이는 세트장처럼 보이기도 했다.

적어도 내가 생각했던 용궁과는 정반대되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 외에는 딱히 눈에 들어오는 게 없었다.

조각상을 뒤로하고 얼추 10분쯤 걸었을까.

길고도 길었던 정문을 통과하자 마침내 용궁의 내부로 들어왔다.

화려하기는 용궁 내부도 마찬가지였다.

하물며 복잡하기는 또 어찌나 복잡한지, 길눈이 밝지 않으면 미아가 되기에 십상이었다.

또다시 20분을 이동한 끝에서야 우리는 응접실에 도착했다.

나는 아쉬르 씨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잠시 기다리십시오.”

“예.”

아쉬르 씨가 응접실을 나갔고, 응접실을 둘러봤다.

역시 수중 도시라서 그런지 가구의 디자인부터가 남달랐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조개 모양의 가구였다.

푹신푹신한 게 깔린 걸로 봐서는 소파인 것 같았다.

어지간한 성인 장정 둘은 들어갈 정도로 커다랬는데, 왠지 인어공주가 앉을 법한 디자인이었다.

역시나 조각상과 마찬가지로 관리가 되어 있지 않다는 느낌이 강했다.

뭐, 소파니까 앉을 수만 있으면 되겠지. 더불어 나는 손님이니까 거기까지 신경 쓸 필요도 없을 거고.

잠시 응접실을 둘러보던 나는 라프린스 씨를 눈에 담았다.

그는 조금 멀찍이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는데, 이 상황이 많이 어색한 듯 손톱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음······. 괜찮으면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자 라프린스 씨가 화들짝 놀랐다.

“······네.”

주변이 워낙 조용한 덕분에 라프린스 씨의 작은 목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들렸다.

“토트리한테 듣기로는 누군가가 아프다고 하던데······.”

내 말에 라프린스 씨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치 어떻게 알았냐는 듯한 눈빛이었다.

응?

잠깐만.

설마, 라프린스 씨가 나를 이곳으로 부른 게 아닌가?

“음, 다름이 아니라 궁금한 게 있는데. 저를 이곳으로 부른 게 라프린스 씨가 맞아요?”

내 말에 라프린스 씨가 고개를 저었다.

그랬구나.

“그럼 토트리의 독단적인 행동인 거죠?”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그럴 것 같노라고 생각하긴 했었는데.

앞서 말했던 것처럼 라프린스 씨가 나를 부른 거라면, 감옥으로 갈 일이 없었을 테니까.

달리 말해서 소년 왕자는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물론, 토트리가 날 만나러 왔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나아가 토트리 또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태에 겁을 집어먹었고, 부랴부랴 왕자를 찾아갔다는 거고.

이제 보니 대책이 없는 녀석이었구만.

생각을 정리한 나는 라프린스 씨를 쳐다봤다.

그나저나 이걸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에이, 모르겠다.

그냥 있었던 일을 다 얘기해주면 되겠지.

“그러니까, 대충 설명하자면······. 저는 아주 우연히 토트리를 낚았······ 아니, 만났거든요. 거기서 나키아라는 인물이 아프니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아서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사실 이곳으로 오기까지는 몇몇 과정을 거쳐야 했지만, 과감하게 추려내고 핵심적인 내용만 딱 잘라 설명했다.

라프린스 씨가 놀란 눈으로 날 쳐다봤다.

“토트리 말······. 알아요?”

“제가 아니라, 저기 보이는 록시 있죠?”

나는 응접실을 기웃거리는 록시를 가리켰다.

그녀는 응접실에 있는 물건들이 마냥 신기했는지, 요리조리 살펴보고 있었다.

저거 저렇게 함부로 만지다가 부수는 거 아닌가 몰라. 루나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눈에 불을 켠 채 록시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내 목소리를 들은 록시가 팩, 고개를 돌렸다.

“록시 불렀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거, 깨지지 않게 조심하고.”

“응! 조심한다!”

씩씩하게 대답한 록시가 다시금 응접실 구경을 시작했다. 그 모습에 무심코 웃은 나는 라프린스 씨를 보며 말했다.

“록시한테 조금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요. 저도 잘은 모르지만, 잠깐이나마 토트리의 말을 이해하는 것 같더라고요.”

“아······.”

라프린스 씨의 반응을 보아하니, 그도 토트리와 대화를 나눌 순 없는 모양이다.

왠지 인어라사 수중 생물이랑 대화가 가능할 줄 알았는데, 이건 내 착각이었구나.

“자세한 건 저도 잘 모르겠지만, 록시가 대신 얘기해줬고 이렇게 여기까지 왔어요. 아, 그리고 이거.”

나는 손에 끼고 있던 반지를 보여줬다.

“보니까, 이것도 토트리가 멋대로 가져온 것 같은데. 맞죠?”

“······맞아요.”

하여간.

다른 누구도 아닌 왕자의 물건.

그것도 고대의 유물이라 일컫는 보물을 멋대로 훔쳐서 가져오다니.

사소한 것에도 놀라는 녀석치고는 상당히 과감한 행동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돌려드리고 싶은데, 아무래도 이게 없으면 제가 돌아갈 방법이 없어서요. 나중에 드려도 괜찮겠죠?”

내 질문에 라프린스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주인의 허락을 받았으니 일단 안심이다.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는 게 좋겠지?

“그나저나. 나키아라는 분은 어디에 계세요?”

이곳에 온 목적. 그건 나키아라는 사람의 상태를 보기 위함이었다.

내 물음에 라프린스 씨가 바깥쪽을 가리켰다.

창문을 대신해서 만든 구멍 너머로 유달리 높은 건물이 보였다.

“저기에 계신 거구나.”

어디 보자.

내가 아브륄에 와서 감옥에 갇혀 있던 시간까지 하면, 얼추 4시간이다.

그렇다면 지금 시간이 오후 2시쯤 됐다는 건데.

아직 여유는 있었으나 가능한 빨리 상태를 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럼 지금이라도 만나볼 수 있을까요?

이런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뒤쪽에서 나왔다.

“그건 불가능합니다.”

다름 아닌 아쉬르 씨였다.

그녀는 문을 닫더니 예의 차가운 눈으로 토트리를 노려봤다.

“왕자님의 물건을 멋대로 훔치다니, 겁을 상실했구나.”

움찔.

꺼, 꺼이······.

아쉬르 씨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토트리가 풀 죽은 얼굴로 시선을 피했다.

“······.”

이에 라프린스 씨가 입술을 달싹거렸고, 아쉬르 씨가 퍼뜩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왕자님의 물건을 멋대로 훔친 걸 넘어갈 순 없습니다.”

“······.”

“저도 왕자님의 말씀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아쉬르 씨가 말끝을 흐리더니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이번은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단, 앞으로 한 번만 더 이런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

“약속하셨습니다.”

대화인 듯 대화 아닌 대화가 끝나고, 아쉬르 씨가 우리의 맞은편에 섰다.

“듣자 하니, 나키아 님의 이야기를 듣고 오신 것 같군요. 아쉽게도 여러분은 나키아 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만날 수 없다는 건?”

“나키아 님은 아브륄의 왕이십니다. 외지에서 온 여러분이 만날 방법은 없습니다.”

나는 슬쩍 라프린스 씨를 쳐다봤다.

“그건 왕자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나키아 님을 만날 수 있는 자는 몇 없습니다.”

“음······.”

그렇단 말이지.

왕자조차 만날 수 없는 상황이라니 별수 있나.

명색이 용왕을 직접 볼 수 없다는 건 아쉽지만, 억지로 만나겠다고 나서는 것도 웃기니까.

* * *

“오호.”

나는 내 앞에 펼쳐진 음식을 보면서 감탄했다.

역시나 수중 도시답다고 해야 할까.

음식의 대다수는 해산물이었다.

하나같이 때깔이 고운 것이 전문가가 아닌 내가 보더라도 귀한 생선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바로 바깥이 심해였으니 갓 잡았거니와 따로 떠온 게 아니라 바로 내 앞에서 떠지고 있었으니, 싱싱할 수밖에 없겠지.

나는 회를 써는 인물을 슬쩍 쳐다봤다.

그의 이름은 크래든이었고, 갑각류. 그중에서도 꽃게랑 무척이나 닮은 생김새였다.

실제로도 손 대신 커다란 집게가 달려있었는데, 어찌나 크고 날카로웠는지 살짝만 닿아도 싹둑 잘릴 것만 같았다.

특히 그가 요리를 집을 때마다 철컥, 철컥, 소리가 났는데, 괜스레 모골이 송연해진다.

이내 크래든 씨가 조개 모양의 접시를 가져왔다.

“이건 투나라는 생선입니다.”

나는 내 앞에 놓인 접시를 살펴봤다.

그 위에는 가지런하게 썰린 회가 가득 담겨있었다.

이야, 이게 얼마 만에 먹는 회야?

사실 나는 회를 상당히 좋아했다.

환생한 후로도 곧잘 먹고 싶었으나, 안타깝게도 호수에서 잡히는 물고기들은 횟감으로 적절하지가 않았다.

일단 민물에서 사는 물고기인 만큼 민물고기 특유의 흙냄새가 났고, 대체로 가시가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식당으로 오기 전 챙겨왔던 젓가락을 꺼내 회를 집었다.

짙은 선홍빛을 띠는 것이 딱 봐도 고급 생선 같았다.

생선을 입에 넣었다.

생선은 제법 기름졌으며,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

“맛있네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그 후로도 크래든 씨의 설명을 들으며 요리를 먹던 중이었다.

“우우······.”

돌연 귓속을 파고드는 침울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목소리의 주인은 록시였다.

내 시선을 느낀 것인지, 록시가 슬픈 눈으로 날 바라봤다.

“대장······. 이거 맛없······ 읍!”

록시의 말이 끝나는 것보다, 루나의 행동이 빨랐다.

나는 삽시간에 록시의 입을 틀어막은 루나에게 엄지를 척, 올렸다.

하지만 이미 낌새를 눈치챈 것인지, 또 다른 생선을 손질하던 크래든 씨가 고개를 들었다.

“혹시 입에 맞지 않으십니까?”

철컥, 철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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