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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104화 (102/159)

104. 소년기(86) - #용궁 입성!

한껏 숨을 들이쉰 라프린스 씨가 힘겹게 말을 뱉어냈다.

발음은 조금 뭉개졌지만, 의미는 제대로 전달됐다.

근데, 나를 풀어달라고 하는 걸 보면 토트리가 데려온 건 맞는 모양이다.

“그게 무슨······? 왕자님은 저들을 풀어주라는 말씀이십니까?”

메디르 씨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풀어주세요.”

그러나 정작 라프린스 씨는 똑같은 말만 반복했다.

아까 심문할 때의 루나는 같은 말을 할지언정 당당하기라도 했지.

지금의 라프린스 씨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였으며, 당장이라도 울면서 도망치고 싶은 듯한 얼굴이었다.

“저들은 아브륄에 멋대로 침입했습니다. 라프린스 님이 왜 이곳에 오셔서, 굳이 저들을 풀어주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메디르 씨는 그럴 수 없다는 듯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라프린스 씨에게는 그 이유가 들리지 않는 것인지 재차 풀어달라는 말을했다.

이쯤 되니 열이 올랐는지 메디르 씨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거기다 연신 입술을 씹는 게 뭐라 한마디 쏘아붙이고 싶은 눈치였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표정이나 분위기만 그랬지, 정작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정중하기만 했다.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이자들이 어디에서 왔고, 또 무슨 목적으로 아브륄을 침입했는지 알아내기 전까지는 결코 내보낼 수 없습니다.”

구구절절.

어떻게든 나를 이곳에서 내보낼 수 없다며 설명을 했다.

이 정도면 정중함을 넘어서 어딘가 쩔쩔맨다는 느낌도 들었다.

대체 라프린스 씨가 누구기에 저렇게까지 쩔쩔매는 걸까.

이런 내 궁금증에 대한 해답은 금세 나왔다.

“비, 비상입니다!”

돌연 주변이 시끄러워졌다.

난데없는 사태에 라프린스 씨가 당황했고,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던 메디르 씨가 얼굴을 구기며 버럭, 소리쳤다.

“무슨 일이냐!”

“무슨 일이냐고 물었나?”

메디르 씨의 성난 외침에 대꾸한 건 회백색 갑옷을 입은 여성이었다.

어디까지나 상체만 여성일 뿐.

하체는 스나크와 비슷했다.

상체는 인간이되 하체는 뱀이라.

지구의 신화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이자 서브 컬쳐에서는 강력한 몬스터로 등장하는 라미아와 똑 닮아있었다.

이번에 등장한 여성 라미아는 제법 높은 인물이었는지, 회백색의 갑옷 위에는 화려한 장식을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안 그래도 좁은 공간이다.

몸집이 커다란 토트리로 인해 거의 포화상태에 다다른 지 오래인데, 계속해서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니 이러다 다들 밀착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아, 아쉬르······.”

메디르 씨가 여자 라미아를 보며 침음을 흘렸다.

이런 메디르 씨의 불편해 보이는 모습 따윈 아무래도 좋다는 듯.

아쉬르라 불린 인물이 스르륵, 미끄러지듯 이동하며 라프린스 씨의 앞에 섰다.

아쉬르 씨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이곳에 계셨습니까. 라프린스 왕자님.”

잠깐만.

방금 왕자라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설마······.

저 어린 소년 인어가 왕자였다고?

아니, 왕자나 되는 인물이 왜 나를 풀어주려고 하는 걸까.

그나마 토트리는 보낸 사람이 왕자가 아닐까, 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지만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정말로 왕자가 토트리를 통해 나를 부른 거라면 내가 이곳으로 잡혀 온 것부터가 말이 되질 않으니까.

역시 내가 모르는 복잡한 무언가가 얽혀있는 것 같았다.

“아쉬르······.”

몹시도 정중한 라프린스 씨가 찔끔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은 잘못을 저지른 뒤 누나한테 혼나기 바로 직전의 어린 동생 같았다.

“아무런 말씀도 없이 나가시면 안 된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지금 모두 라프린스 왕자님을 찾고 있습니다. 어서 궁으로 돌아가시지요.”

아쉬르 씨의 무뚝뚝하면서도 가시가 돋친 말에 라프린스 씨가 슬쩍 이쪽을 쳐다봤다.

이내 라프린스 씨가 다시금 입을 오물거렸다.

“저자······ 줘.”

“저자들을 풀어줘야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나한테는 무슨 바람 빠지는 소리만 들리던데, 용케도 말을 알아듣네.

“풀어······.”

“저자들이 대체 무엇이기에 그리 신경을 쓰시는 겁니까?”

“······도움······ 필요.”

“왕자님의 뜻이 그러하다면······.”

이내 아쉬르 씨가 고개를 돌려 주변을 훑어봤다.

감정이라고는 일절 담겨있지 않은, 깊은 파란 빛이 도는 눈동자는 날카로운 고드름 같았다.

나만 그렇게 느낀 것은 아니었는지, 아쉬르 씨의 시선이 닿자 경비병들의 어깨가 떨렸다.

“경비대장, 거기 있었습니까?”

“진작부터 이곳에 있었습니다만.”

메디르 씨가 경비대장이었구나.

옆에서 희미하게나마 “저 사람도 대장이다!” 하고 록시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록시야 네가 말하는 대장이랑 저 대장이랑은 다르단다.

“그랬습니까? 워낙 존재감이 희미해서 몰랐군요.”

와우.

메디르 씨도 꽤 높은 위치인 것 같은데, 저렇게 대놓고 무시를 해버리네.

나야 아브륄이라는 곳에 대해서 잘 모르는지라 경비대장이 얼마나 높은 위치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상식적으로 봤을 때 이곳의 경비병은 군대 혹은 과거의 기사단과 비슷할 터.

만약 내 추측이 맞는다면, 저렇게 무시를 받을 정도로 낮은 위치는 아닐 텐데.

하기야.

라프린스 씨는 무려 왕자다.

아쉬르 씨는 딱 봐도 왕자의 측근인 것 같았으니 경비대장보다 끗발이 높겠지.

“이이······!”

무시를 당한 메디르 씨가 주먹을 쥐었다. 하지만 아쉬르 씨는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돌리더니, 경비병에게 지시를 내렸다.

“긴말하지 않겠다. 당장 저자들을 풀어줘라. 그리고 저들에게서 빼앗은 짐도 당장 찾아오도록!”

“옙!”

카리스마 넘치는 명령에 경비병들이 힘차게 대답하며, 창살을 향해 움직이려던 찰나였다.

아쉬르 씨의 명령에 메디르 씨가 입꼬리를 씰룩이며, 경비병들을 제지했다.

“동작 그만!”

“무슨 생각이십니까? 당장 저자들을 풀어주라고 했습니다.”

아쉬르 씨의 말에 메디르 씨가 고개를 저었다.

“불허합니다.”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설마하니, 왕자님의 명을 거역하실 생각입니까?”

“저자들을 잡아 온 것은 경비병이며, 경비병은 아브륄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엄연한 침입자인 저들을 풀어주라는 것은 아브륄을 위험에 빠트리는 일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제아무리 왕자님이라 해도 따를 수 없는 명령입니다.”

메디르 씨의 단호한 태도에 아쉬르 씨의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아, 아쉬르 선수!

여기서 물러서나요!

졸지에 감옥에 갇힌 내가 이런 말 하긴 뭣하지만, 경비대장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오히려 왕자의 명령이랍시고 받드는 게 아니라 저렇듯 공과 사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모습이야말로 경비대장이 갖춰야 할 덕목이자, 칭찬받아 마땅한 태도였다.

단지 경비대장이 저렇게까지 잡아두려는 침입자가 우리라는 게 다소 안타까울 뿐이다.

잠시 소강상태가 이어지던 중이었다.

연신 눈치를 보던 라프린스 씨가 다시금 입술을 달싹였다.

“내가 부른······. 그러니······손님······.”

“그렇군요.”

아쉬르 씨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를 슬쩍 쳐다봤다.

“경비대장. 무언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저들은 왕자님의 손님입니다.”

오호, 전략을 바꿨네.

뭐, 경비대장이 순순히 물러날 기세가 아니었으니 어쩔 수 없겠지.

“그걸 믿으라는 말씀이십니까? 좋습니다. 저들이 왕자님의 손님이라고 치겠습니다. 그럼 그걸 증명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증명이라.

메디르 씨의 표정을 보아하니 날 꺼내기 위해 급하게 날조한 거짓말로 치부하는 모양이다.

“증거라면 있습니다.”

응?

아쉬르 씨가 고개를 치켜들더니, 나를 가리켰다.

“왕자님은 저자에게 직접 렐리크를 전달하셨습니다.”

렐리크.

고대의 보물 혹은 고대의 유산이라는 의미였다.

나한테 렐리크를 줬다고?

내가 그런 걸 받은 적이 있었······.

“있구나.”

나는 반사적으로 내 손을 쳐다봤다.

오른손 엄지손가락.

그곳에는 영롱하게 반짝이는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아까 경비병에게 짐을 넘길 때 재빨리 바꿔 끼운 뒤 손바닥으로 가린 덕분에 빼앗기지 않았던 이 반지가 렐리크이리라.

“렐리크를······. 그, 그게 사실입니까?”

렐리크라는 말에 메디르 씨가 크게 당황했다.

슬슬 내가 나설 차롄가?

나는 양팔에 힘을 줬다. 그러자 날 속박하고 있던 해초가 투툭, 끊어졌다.

이제 좀 낫네.

거추장스러웠던 해초를 대충 털어낸 나는 창살 너머로 오른손을 내밀었다.

“이게 렐리크죠?”

내 말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갑작스러운 주목에 멋쩍게 웃은 나는 손바닥을 펼쳐 흔들었다. 조명에 반짝이는 반지를 본 메디르 씨가 눈을 크게 떴다.

“저것도 거짓이라고 하실 생각입니까?”

“아닙니다. 저것은······. 왕자님이 갖고 계시던 렐리크가 확실······ 하군요.”

“묻겠습니다. 경비대장은 저자가 아브륄의 위협이 될 자라고 했습니다. 맞습니까?”

“위협이 될 자가 아니라, 위협이 될지도 모르는······.”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경비대장. 당신은 왕자님의 손님을 위협적인 존재라고 표현한 것도 모자라, 멋대로 감금했습니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는 아실 테지요?”

승리를 장담한 아쉬르 씨가 턱을 치켜들었다.

“결례를 범했습니다.”

끝끝내 압박을 버티지 못한 메디르 씨가 고개를 떨궜다.

명백한 패배였다.

* * *

“휴우, 이제 좀 살겠네.”

보무도 당당하게 감옥을 빠져나온 내가 뭉친 근육을 풀고 있자니, 토트리가 내 어깨에 뺨을 부볐다.

꺼이! 꺼이!

미안하다는 듯 구슬프게 우는 녀석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래, 그래. 나는 괜찮으니까, 미안해할 것 없어.”

솔직히 우리를 두고 도망칠 때만 하더라도 꿀밤을 먹여주고 싶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렇듯 무사히 감옥을 빠져나왔으니 됐다.

“록시 배고프다!”

“배고프구나. 루나도 배고프지? 조금만 기다리면 맛있는 거 해줄게.”

나는 록시와 루나의 어깨를 토닥여주고는 몸을 돌렸다.

때마침 우리를 향해 아쉬르 씨가 다가왔다.

아까는 워낙 정신이 없어서 잘 몰랐는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까 위압감이 장난 아니네.

“저는 아쉬르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쉬르 씨가 토트리의 위에 있는 라프린스 씨를 가리켰다.

“저분은 아브륄의 왕자이신 라프린스 님입니다.”

“아, 저는 아이넬이라고 합니다.”

“록시다!”

“루나입니다.”

간단한 통성명이 끝나자, 라프린스 씨가 무어라 말했다.

“······.”

“라프린스 왕자님이 죄송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하십니다. 저 또한 왕자님의 손님께 범한 결례, 대신해서 사과드립니다.”

아쉬르 씨는 흡사 동시통역사처럼 라프린스 씨의 말을 전달했다.

저 작은 목소리를 캐치하는 건 봐도 봐도 신기하단 말이지.

“뭘요. 다 이것도 다 지나면 추억이니까요.”

그래.

내가 언제 또 경비병에게 잡혀서 감옥에 갇혀보겠나.

이런 경험 하나하나가 쌓이면 그게 곧 추억이자 무용담이 되는 거지.

물론 이 이야기를 엄마나 아빠한테 했다가는 목덜미를 잡고 쓰러지겠지만 말이야.

특히 평소에는 차분하지만, 화나면 뒤끝이 장난 아닌 엄마의 성격이라면 대번에 수중 도시로 찾아가 한바탕 뒤집으실지도.

나아가 밀착에 과잉보호인 위즈 씨가 이걸 알았다가는······.

어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여기서 이야기하기도 뭣하니, 궁으로 드시지요.”

오오오.

드디어 용궁에 입성하는 건가!

나는 앞장서는 아쉬르 씨를 따라 수중 도시의 대로로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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