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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102화 (100/159)

102. 소년기(84) - #수중 도시!

그 후로도 토트리를 따라 통로를 이동하기를 30분여.

안전하고 편안한 여행길이 되어야 했을 터.

실상은 아니었다.

후웅!

“어우!”

후우웅!

“윽!”

쐐애애앵!

하물며 통로를 지나는 물고기들은 하나같이 엄청난 속도로 헤엄쳤으며, 그 흔한 깜빡이도 없이 훅훅 치고 들어왔다.

여기가 아우토반도 아니고 말이야.

한두 마리라면 모를까. 잠시 쉴 틈도 주지 않고 끼어들어 대니,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여긴 도로교통법도 없냐고.”

아, 여기는 물속이니까 수로 교통법이라고 해야 하나.

호수에서 교통법이 웬 말이겠느냐만, 이 정도면 진짜 교통순경 여럿은 있어 줘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덕분에 한시도 쉬지 않고 비눗방울을 컨트롤해야 했고, 우리 세 사람은 그 안을 데굴데굴 구르기 일쑤였다.

그래도 하도 끼어들기를 당해서 그런지 덩달아 운전 숙련도가 올랐고, 이제는 그 어떤 녀석이 들이닥쳐도 어렵지 않게 피할 수 있었다.

“멋있긴 하네.”

나는 눈앞을 지나가는 마수를 보며 감탄했다.

수십 개의 촉수가 달린 마수였다.

흐느적거리는 모양새가 언뜻 해파리를 연상시키는 생김새였는데, 녀석의 몸에서는 노란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 외에도 알록달록, 형형색색.

발광 해파리 외에도 통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더 많은 물고기들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지구에서도 심해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생명체들을 곧잘 볼 수 있었는데, 그중에는 상어랑 비슷한 녀석들도 있었다.

비록 과속으로 날 놀라게 하기 일쑤였지만, 바로 코앞. 그것도 비눗방울의 얇은 막 바로 앞을 지나다닌다.

해보고는 싶지만, 늘 뒤로 미뤘던 스쿠버다이빙을 하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록시는 물론 나조차도 놀이동산에 놀러 온 어린아이처럼 설렜다.

한편으로는 상어가 입을 쩍 벌리며 쏘아져 올 때면 괜스레 척추가 곧추서고, 목덜미가 뻐근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토트리를 따라가는 한편, 새로운 물고기와 마수들을 구경하면서 열심히 나아가던 중이었다.

돌연 저 멀리서 옅은 빛이 보였다.

“아, 드디어 도착한 건가?”

아니나 다를까.

지상과는 달리 몹시도 재빠른 몸놀림으로 길을 안내하던 토트리가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나 또한 토트리와의 간격을 좁히며 비눗방울의 속도를 늦췄다.

갈수록 우리를 향해 쏟아지는 빛이 강해지는가 싶더니, 마침내 통로의 출구가 보였다.

드디어 도착했구나!

이내 토트리와 바짝 붙은 채 출구를 벗어났다.

그와 동시에 우리의 눈앞에는 드넓은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와······.”

“우와아아아아!”

“······.”

우리 셋은 너 나 할 것 없이 놀란 눈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가장 먼저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엄청난 양의 마수였다.

농담이 아니라 수백만 마리는 넘을 것 같았다.

아까 통로에서 한번 마주쳤던 상어는 기본이요.

오징어, 문어, 새우, 조개, 게는 예사요.

심지어 상어조차 평범한 물고기처럼 보일 정도로 거대한 고래도 있었다.

한편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쿠아리움에 온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그중에서도 단연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게 있었다.

어슬렁어슬렁, 헤엄치는 고래 바로 밑이었다.

그곳에 우리를 둘러싼 것과 똑같이 생긴 비눗방울이 있었다.

어디까지나 그 생김새만 비슷할 뿐.

어지간한 소도시는 가뿐하게 들어갈 정도로 커다랬으며, 실제로도 비눗방울 안에는 독특하게 생긴 건축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이렇게 멀리 떨어진 곳에서 보고 있노라면 특대형 스노우볼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흔들면 새하얀 가루들이 떠올라 눈처럼 가라앉는 그거 말이다.

물속에 있는 도시라.

이게 그 말로만 듣던 수중 도시라는 걸까.

아, 나키아가 용왕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었으니 그럼 이곳은······.

“용궁이라고 해야 되는 건가?”

용궁이라니.

전래동화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장소를 내 두 눈으로 볼 줄이야.

“히야······.”

워낙 멋지고 아름다운 장소를 많이 봐서 무뎌질 대로 무뎌진 나조차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내가 주변을 감상하고 있자니, 토트리가 비눗방울을 톡톡, 두드렸다.

어쩐지 지금은 구경할 때가 아니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래, 그래. 지금은 구경이 중요한 게 아니지.”

토트리의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빨리 주인의 곁으로 돌아가고 싶으리라.

다시금 출발하는 토트리를 따라 거대 비눗방울 쪽으로 이동했다.

이윽고 거대 비눗방울의 지척에 도착하자, 저 멀리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상체는 인간과 비슷했으며, 하체는 물고기와 비슷한 게 누가 보더라도 인어였다.

다만 눈앞의 인어는 헐벗은 상체에 다부진 체격을 자랑했는데, 딱 봐도 남자 인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인어 하면 공주 혹은 미인이 떠오르는 건 역시나 전생에서부터 뿌리내린 고정관념이겠지.

이런 내 시답잖은 생각과는 별개로, 남자 인어는 그야말로 전광석화와도 같은 몸놀림으로 우리의 앞을 막아섰다.

뒤이어 남자 인어가 양손에 쥔 커다란 삼지창으로 우리를 겨눴다.

“정지!”

다행스럽게도 나는 남자 인어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혹시나 언어가 통하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말이야.

근데, 물속인데도 용케 말을 하는구나.

역시 수중 도시에서 사는 종족이라서 그런 건가?

커다란 삼지창도 그렇고, 우리를 막아서는 것도 그렇고.

이 주변을 지키는 경비병이라는 걸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싸울 의사가 없음을 알리고자 양손을 들어 보였다.

이에 루나가 록시의 옆구리를 건드렸고, 두 비스테르 또한 나와 똑같은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경비병은 삼지창을 거두긴커녕 금방이라도 찌를 듯한 기세로 소리쳤다.

“너는 어디서 온 누구냐!”

어디서 온 누구냐라고 묻는다면 소개하는 게 인지상정이겠지.

남자 인어의 질문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소개했다.

“저는 어······. 아, 지상에서 온 아이넬이라고 합니다. 여기는 록시랑 루나고요.”

“지상이라고?”

“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가 지나온 통로 쪽을 가리켰다.

“웃기는 소리! 거짓말을 할 생각이라면, 그만두는 게 좋을 거다.”

이건 또 무슨 소리래?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 지상에서 왔는데요?”

내 말에 남자 인어가 얼굴을 구겼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거짓말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마지막 경고다.”

난데없이 거짓말쟁이 취급을 받았지만, 기분이 나쁘기보다는 오히려 호기심이 생겼다.

그도 그럴 게, 보아하니 남자 인어는 진짜로 내가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 믿는 것 같았으니까.

“어디서 온 누구인지 밝혀라!”

호기심이 드는 것까지는 좋은데, 당최 뭘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가 난감했다.

나는 토트리를 쳐다봤다.

녀석은 이런 상황이 벌어지리라는 걸 예상하지 못했는지, 그저 나와 남자 인어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그마저도 남자 인어가 삼지창으로 위협하자, 겁을 집어먹고는 냅다 등껍질 속으로 숨어서는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설마, 쟤 우리를 버리고 도망갈 생각은 아니겠지?

뭐, 상관없으려나.

“음······.”

설령 토트리가 나선다고 한들, 말이 통하질 않을 터.

괜히 남자 인어를 자극하느니 가만히 있거나 도망치는 쪽이 더 나으리라.

일단 토트리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건 알겠다.

그럼 이제부터 어쩐다.

내가 돌파구를 떠올리고 있자, 그 모습이 수상했던 걸까.

씹어 죽일 것처럼 날 노려보던 남자 인어가 돌연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뭘 하는 거지?

“으으으, 귀, 귀가 아프다!”

그때, 심각한 상황인 것도 모른 채 그저 주변을 구경하기 바쁘던 록시가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이는 록시만이 아니었다.

루나 또한 입술을 깨문 채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소리. 저 사람이 이상한 소리를 내.”

“소리를 낸다고?”

나는 퍼뜩 남자 인어를 쳐다봤다.

확실히 그는 뒤쪽을 보며 입을 벌리고 있었다.

거기다 입에서 뽀글뽀글, 거품이 나오는 게 무언가 소리를 내는 것처럼 보이긴 했다.

그러나 정작 나한테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 * *

전생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나.

음.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는 게 얼토당토 않는 일이지만, 굳이 해보자면······.

일단 나는 내 나름 선량하게 살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말마따나.

주머니를 뒤지는 척하면서 은근슬쩍 길바닥에 쓰레기를 버린 적도 있다.

야심한 시각에 무단횡단을 한 적도 있다.

이기지도 못할 술을 마시고 전봇대 앞에 커다란 피자를 만든 경험도 있다.

철부지였을 땐 친구와 싸웠던 적도 더러 있었다.

딱 거기까지다.

평생 감옥은커녕 파출소 한번 드나든 적 없었으며, 제 나름 법을 잘 지키면서 살아왔다.

“······.”

멀거니 주변을 둘러봤다.

나는 작은 방에 앉아있었다.

얼추 1평 남짓한 공간이었으며, 정면에는 창살 비슷한 게 있었다.

그리고 창살 바로 앞에는 아까 봤던 인어가 지키고 서 있었다.

그렇다.

말 그대로 서 있었다.

경비병은 물고기를 닮은 하체를 꼿꼿하게 세워 지상에 서 있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이곳이 바로 수중 도시 안이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나는 멀쩡하게 호흡을 할 수 있었다.

다만······ 이곳이 결코 평범한 장소가 아닌, 감옥이라는 게 문제지.

더불어 내 양손과 양발은 웬 미역 줄기처럼 생긴 해초에 칭칭 감겨있었다.

“환생하고 난 뒤로 별의별 일을 다 겪는구나.”

근데, 경비병은 저렇게 서 있기 힘들지도 않나?

모양새가 조금 웃길지언정 꼬리로 꼿꼿하게 서서 중심을 잡고 있다는 게 신통방통했다.

아니, 지금 웃을 때가 아니지.

세상에 내가 감옥이라니!

그것도 지구가 아닌 이세계에서 감옥에 갇히리라고는 감히 상상조차 못 했다.

뭐, 결과적으로 수중 도시 안으로 들어오긴 했지만 말이야.

심히 당혹스러운 사태에 한숨을 내쉬고 있자니, 옆에서 록시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장, 어디다?”

“나, 여기 있어.”

“아, 대장 목소리다! 대장, 록시 묶였다. 답답하다!”

듣자 하니 록시도 나처럼 속박을 당한 모양이네.

“그러게 말이야. 나도 당황스럽다, 야. 아, 루나는 좀 어때?”

“나도 묶였어.”

“그래? 일단, 두 사람 모두 얌전히 있어 봐.”

“알았다!”

“응.”

두 사람의 대답에 감옥을 지키던 경비병이 창살을 툭툭, 쳤다.

“조용해라. 여긴 떠드는 장소가 아니다.”

“네, 조용히 할게요.”

경비병의 핀잔에 순순히 입을 다물었다.

괜히 긁어부스럼 만드는 건 좋지 않으니까.

그건 그렇고······.

이걸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네.

툭 터놓고 말해서 탈출하는 건 일도 아니다.

내 양팔, 양다리를 속박한 해초가 굉장히 질긴 건 맞지만, 힘을 주면 못 끊을 것도 없었고.

물론 내가 가져온 짐들을 모조리 빼앗아 가긴 했는데, 그것도 별로 문제가 될 게 없었다.

그도 그럴 게, 나는 템페스트와 연결되어 있다.

즉 어디에 있든 위치를 알아낼 수 있거니와, 아예 템페스트를 이쪽으로 불러들이는 것까지 가능했다.

무엇보다.

아직 나에게는 토트리가 준 반지가 남아있다.

내가 가져온 짐의 대다수는 식자재 및 조리도구였고, 그 외에 무전기나 의약품, 몇몇 DIY도구가 전부다.

까짓 없어도 그만인 것들이라서 여차하면 템페스트만 챙겨서 나가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내가 선뜻 탈출을 하지 않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경비병의 태도다.

비록 우리를 이곳에 감금했고, 방금도 시끄럽다고 핀잔을 줬지만, 그렇다고 또 이해 못 할 건 아니다.

일단 저들의 입장에서는 이곳을 지켜야 하고, 우리는 외지인이다.

즉 우리의 정체를 몰랐으니 경비병으로서 으레 보여야 할 반응인 셈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고 했던가.

일련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화를 낸다는 것이야말로 진정 어리석은 일이라고 봐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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