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소년기(83) - #비눗방울!
고개를 내밀어 반짝이는 물건을 살펴봤다.
“뭐지 저게?”
둥그런 형태였는데, 가운데에 구멍이 뚫려있었다.
거기다 반짝이지 않았으면 알아챌 수도 없을 정도로 작은 크기였다.
그나마 여타 마수처럼 이빨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후우.”
작게 심호흡을 한 나는 토트리의 아가리에 손을 넣었다. 뜨거운 입김에 닭살이 돋는다.
어우, 깊이도 넣어놨네.
거의 내 팔을 모조리 집어넣고 나서야 간신히 손가락에 닿았다. 마침내 물건을 집는 데 성공한 나는 빠르게 손을 뺐다.
“이게 뭘까?”
나는 손에 들린 물건을 이리저리 돌려봤다.
앞서 본 것처럼 크기는 100원짜리 동전과 비슷했으며, 둥그런 형태의 링이었다.
색깔은 에메랄드에 가까웠고 옅은 파스텔 톤이었다.
무척이나 단단했으며, 차가운 게 아무리 봐도 옥 같단 말이지.
아니, 중요한 건 재질이 아닌가.
“처음 보는 생김새군요.”
내 손에 들린 물건을 본 위즈가 말했다.
“그러게. 나도 여기서는 처음 보네.”
그래, 여기서는 처음 보지만 나는 이것이 어디에 쓰이는 물건인지 알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게, 지구에서는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액세서리 중 하나.
반지였으니까.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
이 반지가 내가 아는 일반적인 반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틀림없다.
이 반지는 마도구다.
내가 마도구임을 확신하는 첫 번째 이유는 마나였다.
그 크기는 작을지언정 이 안에 담긴 마나는 무시무시했다.
단언컨대, 내가 애용하는 마나 배터리가 낼 수 있는 출력을 훨씬 웃도는 수준이었다.
어떻게 이 작은 반지가 이토록 많은 마나를 품고 있는지, 미스터리였다.
두 번째는 이 링에서 느껴지는 마나의 흐름이었다.
이건 비스테르들을 속박하고 있던 목걸이와 스카른 씨의 정신을 앗아갔던 하얀색 가면과 무척이나 흡사했다.
그렇다고 목걸이와 하얀색 가면, 이 반지가 같다고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흡사함이란 제작 방식과 마나의 흐름일 뿐.
각각 품고 있는 마나의 색깔은 완전히 달랐다.
일례로 나는 데모스의 마나를 검은색이라고 표현했다.
반면에 이 링에 담긴 마나의 색은 하얀색에 가까웠다.
같은 방식으로 제작되었다고 한들 아예 정반대의 성질을 지녔다 해도 무방했다.
그래서일까.
이 반지가 내게 위해를 가하리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내가 가만히 반지를 보고 있자 토트리가 머리를 들이밀어 내 허리를 툭툭 건드렸다.
꺼이, 꺼이!
어쩐지 서둘러 이 반지를 끼라고 재촉하는 것만 같았다.
“알았어, 알았어.”
나는 링의 구멍에 손가락을 넣었다.
“좀 큰데.”
반지의 주인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손가락에는 맞지 않았다.
더불어 반지에 마나가 담긴 것은 확실했는데, 정작 어떠한 변화도 없었다.
“그렇다는 말은······.”
나는 반지에 소량의 마나를 주입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돌연 반지에서 빛나는 글자가 생겨나더니 내 손가락에 맞게끔 줄어든 것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어?”
반지 위로 아주 작은 무언가가 뽈록, 튀어나왔다.
“이건 또 뭐지?”
나는 반지를 눈앞에 대고 이리저리 돌려봤다.
색깔이 투명했고, 모양새가 둥그런 게 흡사 비눗방울과 똑 닮아있었다.
슬쩍 손가락으로 비눗방울을 건드렸다.
그러자 통, 소리를 내며 비눗방울이 내 손가락을 튕겨냈다.
오호?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손대면 톡, 하고 터질 것 같이 생겼는데 의외로 반탄력이 강한데?
나는 조금 더 힘을 줘봤다.
이번에도 터지기는커녕 가뿐하게 내 손가락을 밀어냈다.
나는 아예 손가락으로 잡아 꾹 눌렀다.
이번에도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포옹, 소리가 나며 내 손가락이 비눗방울을 통과했다. 그리고는 손가락 끝이 비눗방울 속에 갇힌 모양새가 되었다.
“신기하네.”
이 정도까지 힘을 주면 당연히 터질 거라고 예상했는데 말이야.
반지가 작아진 것도 그렇고, 이 자그마한 비눗방울도 그렇고.
내 마나를 주입함으로 인해 생겨난 변화는 확실했다.
다만 이 비눗방울의 정체는 도무지 알 방도가 없었다.
“아니지.”
내가 반지에 주입한 마나는 극소량이다.
아무래도 이 반지에 어떤 기능이 있고, 또 어떤 변수를 불러올지 몰랐기에 아주 작은 양만 주입한 것이다.
만약 마나의 양을 늘린다면, 이 비눗방울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역시 이럴 땐 생각보다 행동이지.
나는 곧장 마나의 양을 늘렸다.
아니나 다를까.
반지에 주입되는 마나의 양이 늘어나자 비눗방울의 크기 또한 덩달아 부풀었다.
그렇게 내 마나를 쭉쭉 흡수하던 비눗방울이 어느새 내 머리보다 커졌다.
반탄력만이 아니라 신축성도 장난 아니네.
이쯤 되니 과연 얼마나 더 부풀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우와아아!”
뒤늦게나마 반지에서 벌어지는 신비로운 현상을 발견한 록시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내게로 달려왔다.
“대장, 대장! 그거 뭐다?”
“글쎄. 나도 그게 알고 싶어서 이러는······. 야야.”
갑자기 록시가 비눗방울을 향해 얼굴을 들이밀었다.
서둘러 말리려고 했지만 록시가 조금 더 빨랐다.
내 외침이 무색하게 록시의 얼굴은 비눗방울을 뚫고 들어갔다.
“아직 안전한지 확인되지도 않았는데, 다짜고짜 얼굴을 집어넣으면······ 어라?”
말을 멈춘 나는 곧바로 록시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녀의 표정은 몹시도 태연했으며, 호흡도 무척이나 안정적이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내가 이상함을 느끼는 와중에도 비눗방울은 끊임없이 커졌고, 금세 록시의 목을 지나 상체마저 집어삼켰다.
심지어 록시는 이 상황이 마냥 재미있는지 아예 비눗방울 속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멀쩡하네?
“어디 불편한 곳은 없어?”
“응! 없다!”
내가 묻자 록시가 대답했다.
아무런 문제 없이 대답을 하는 걸로 봐서는 비눗방울 내부에서도 숨을 쉴 수 있는 모양이다.
잠깐만.
토트리는 내게 이 반지를 주려고 했다.
그럼 시선을 조금 바꿔보자.
토트리가 굳이 내게 이 반지를 내게 주려고 했던 이유는 뭘까?
답은 금방 나왔다.
“숨이지.”
앞서 말했던 것처럼 토트리는 나키아라 불리는 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자를 찾기 위해 이 호수까지 왔다.
그리고 과정이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우리를 만나게 되었다.
단.
여기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다.
다름 아닌 호흡이다.
토트리야 원래 물에서 살아가는 마수였으니, 호흡을 하는데 큰 지장이 없을 터.
그러나 정작 데려가야 할 자가 물속에서 호흡하지 못한다면 말 그대로 말짱도무룩이다.
“달리 말해서 평범한 인간이라도 물속에서도 자유롭게 호흡이 가능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거지.”
애당초 내가 고민하던 게 바로 호흡이기도 했다.
솔직히 물속에서 호흡하는 장치야 내 힘으로도 만드는 건 가능했다.
다만 가능할 뿐이지 제작에 필요한 재료를 구하고, 형태를 만들기 위해서는 못 잡아도 하루요.
길면 이틀 그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더군다나 수중 호흡이 된다고 끝이 아니다.
얼마나 깊은 곳까지 가야 할지 모르는 이상 내 몸을 지킬 장비들도 갖춰야만 했다.
만약 이 반지가 수중 호흡은 물론 안전까지 겸비했다면?
더 이상 시간을 끌 필요도 없이 곧장 나키아를 만나러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만사불여튼튼이니까.”
작게 중얼거린 나는 그대로 얼굴을 내밀었다.
방금 록시가 그랬던 것처럼 내 얼굴 또한 비눗방울을 통과했다.
“스으읍!”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된다.
확실히 비눗방울 속에서도 호흡이 가능했다.
아니, 오히려 바깥보다 비눗방울 속의 공기가 더 깨끗하고 맑았다.
일단 수중 호흡이 된다는 건 확실해졌으니, 다음으로 확인해야 할 건 안정성이었다.
* * *
“호수에 이런 장소가 숨겨져 있을 줄이야.”
나는 휴대용 마등으로 통로를 비추며 혀를 내둘렀다.
저 앞에는 토트리가 열심히 사지를 움직이며 우리를 안내하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호수에서 수영을 한 경험은 많다.
이따금씩은 록시와 함께 물놀이를 하거나 나 홀로 잠수를 해서 호수에 어떤 생명체들이 사는지 둘러본 적도 있었고.
내 딴에는 구석구석 살펴봤다고 생각했는데, 토트리를 따라가니 바위와 바위 사이에 난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에는 그 작은 입구를 통해서 갈 수 있을지 의문이었는데, 막상 안쪽에는 엄청나게 넓은 통로가 있었다.
“대체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 거지?”
내 예상이 맞다면 이렇게 토트리를 따라 통로로 들어온 지 얼추 40분은 지났단 말이지.
그건 그렇고.
이 반지 진짜 엄청나네.
마나를 주입하는 것만으로도 수중 호흡이 가능하다.
이 기능 하나만으로도 놀라 자빠질 마당이거늘.
꽤 깊은 곳까지 들어왔음에도 비눗방울은 처음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심지어 반지의 형태라서 늘 품에 지니고 다닐 수도 있었으니, 따로 휴대나 보관장소도 필요 없다.
놀라운 건 아직 더 있었다.
비눗방울의 크기는 물론이거니와.
방향과 속도까지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었다.
아까 안정성을 테스트할 겸 혼자서 타봤는데, 시속 60km까지는 거뜬했다.
보아하니 더 빠른 속도를 낼 수도 있을 것 같았으나 60km만으로도 어지러워서 못 버티겠더라.
이 정도면 지구에서도 최고의 기술력을 갖춰야만 만들 수 있다는 잠수함조차 한 수 접어둘 성능이리라.
“우와아아! 물고기다! 앞에 물고기 있다!”
록시는 바로 코앞을 유유자적 지나가는 물고기를 보며 방방 뛰었다.
워낙 겁이 없는 성격인 데다가 이렇듯 신비한 비눗방울에 타고 있으니 마냥 신난 모양이다.
저러다 한 소리 들을 텐데.
“록시.”
루나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록시를 불렀다.
평소와 다름없는 말투였지만, 루나가 적잖이 긴장하고 또 짜증 났음을 나는 알 수 있었다.
내 저럴 줄 알았다니까.
“루나! 물고기다!”
그런데도 록시가 뜀박질을 멈추긴커녕 더욱더 신명 나게 뛰자, 루나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생겼다.
결국 참다못한 루나가 록시의 어깨를 콱, 잡아 눌렀다.
“우우우. 아프다! 록시 아프다!”
록시가 통증을 호소했지만, 루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재차 입을 열었다.
“아픈 거 싫으면 가만히 있어.”
애당초 루나는 물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근데, 아예 물속에 들어와 있으니 기분이 나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으리라.
어쩌면 저것도 많이 참은 거겠지.
“힘들면 지금이라도 돌아갈래?”
여기서 지상까지 가는데 또다시 40분을 소비해야겠지만, 루나가 힘들다면 그게 뭐 대수일까.
하지만 루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나도 갈 거야.”
힘들면 굳이 날 따라갈 게 아니라 그냥 지상에 있어도 괜찮을 텐데.
그래도 루나가 날 걱정해서 따라왔다는 걸 아니까, 이 이상 권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루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도 힘들면 바로 얘기해. 알았지?”
“응.”
루나의 대답을 들은 나는 다시금 휴대용 마등를 비추며 토트리를 따라갔다.
참으로 진부한 표현이지만, 우리가 지나는 통로는 진짜 칠흑과도 같았다.
그나마 휴대용 마등을 비롯하여 필요하다 싶은 도구를 챙겨왔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더라면 컴컴한 어둠속에서 헤맬 뻔했다.
행여나 토트리를 놓칠까, 하는 걱정 반.
과연 이 통로가 끝나면 무엇이 나타날지에 대한 기대 반.
복잡미묘한 심정으로 비눗방울을 운전하던 중이었다.
내 앞에 시커먼 그림자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후우우우우웅!
그 속도가 어찌나 빨랐는지 흡사 뉴스에서 봤던 어뢰를 연상케 했다.
“다들 가방 꽉 잡아!”
비교적 무게가 많이 나가는 가방을 안전벨트 대용으로 삼으며, 잽싸게 손을 움직였다.
그러자 비눗방울이 뚝, 멈추며 수직으로 상승했다.
그와 동시에 커다란 그림자가 스치듯 지나갔다.
“휴우.”
아슬아슬했네.
아까 테스트를 해본 결과 저 정도의 충격을 받아도 크게 문제는 없을 터.
아니, 이 비눗방울의 반탄력에 역으로 험한 꼴을 당하리라.
아무리 그래도 나는 두 아이를 태우고 있다.
모범을 보여아 할 입장인 만큼 안전운전 및 방어운전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