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99화 (97/159)

99. 소년기(81) - #수제비&장조림

“이건 조금 과한가.”

나는 완성한 낚싯대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본래 내가 사용하던 낚싯대는 얼추 1.5미터였다.

힘이야 충분할지언정 아직은 신장이 작아서 비교적 짧은 대를 써야 했던 것이다.

반면에 새롭게 완성한 특제 낚싯대는 그 길이만 3미터가 넘었고, 두께도 엄청났다.

지구의 낚시터에 가면 가끔 볼 수 있는, 소위 전문가들이나 쓸 법한 거대 낚싯대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거기다 내가 들고 있으니 낚싯대가 아니라 높이뛰기용 장대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니, 이 정도는 돼야겠지.”

아주 잠깐이지만 낚싯대를 통해 전해졌던 그 묵직함을 감당하려면 이 정도 사이즈는 필요해 보였다.

나는 마찬가지로 특수 제작 한 거대 낚싯바늘에 큼지막한 먹이를 달았다.

이로써 준비는 끝났다.

나는 행여나 부딪힐까,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한 뒤에서야 호수 앞에 섰다.

“흐읍!”

거대한 낚싯대를 잡고 돌렸다.

부웅, 부웅.

거대 낚싯대에 걸맞게 엄청난 소리를 내며 거센 바람이 불었다.

지금이다.

나는 그대로 낚싯대를 휘둘렀고, 먹이에 감춰진 바늘이 공중을 가로지르며 호수의 중앙에 안착했다.

“좋아.”

이제는 기다릴 일만 남았다.

나는 멀찍이 치워뒀던 의자를 가져와 풀썩, 앉았다.

“와라.”

의자를 살짝 당기고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오랜만에 찾아온 승리욕에 전의를 불태우며 찌를 응시했다.

1분이 지나고, 5분이 지났다.

10분이 흘렀을 무렵, 내 미간에 작은 주름이 생겼다.

“······.”

이런 내 의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호수 위에 오롯이 선 찌는 미동조차 없었다.

불안한데.

“도망간 건 아니겠지. 아니야, 그럴 리가 없지.”

심기일전.

애써 불안을 지르밟으며 차분하게 기다렸다.

“으아아앗!”

갑작스럽게 귀를 때리는 비명에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아직도 젠가에 열중하고 있는 두 비스테르가 있었다.

내가 낚시를 시작했을 때가 오전이었으니까, 거의 3시간쯤 지났을 터.

아무리 재미있는 장난감이라지만 연속 3시간을 갖고 놀았는데, 아직 질리지 않는 모양이다.

“또, 또 무너졌다!”

와르르르, 무너지는 젠가를 보며 록시의 귀가 추욱 쳐졌다.

이내 록시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대장!”

“그래, 그래.”

나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템페스트를 휘둘러 젠가를 원상복구 시켰다.

“슬슬 배가 고픈데.”

분위기를 보아하니 필시 장기전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 대물을 낚는 것도 중요하지만 낚시하면 또 먹을 걸 빼놓을 순 없지.

“밥! 밥 먹는다?”

“록시랑 루나도 배고프지?”

“응! 배고프다!”

“응.”

“그럴 줄 알고 준비한 게 있지. 요리하기 전에 둘 다 손 씻고 와.”

“응!”

“응.”

내 말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록시와 루나를 뒤로하고 필요한 조리도구를 꺼냈다.

이윽고 록시와 루나가 돌아왔다.

“대장, 손 씻고 왔다! 록시 손 깨끗하다!”

“잘했어. 자, 그럼 이쪽에 와서 앉아.”

록시와 루나가 내 앞에 앉았다.

나는 따로 챙겨온 바구니를 열었다.

바구니 안에는 곁들여 먹을 반찬을 비롯하여 각종 양념과 다양한 채소, 뼈를 진하게 우려낸 사골 육수 등등이 들어있었다.

그중에서도 나는 새하얀 덩어리를 꺼냈다.

덩어리의 겉에는 곱게 빻은 뮐가루가 묻어 있었다.

내가 꺼낸 하얀 덩어리를 본 록시가 고개를 갸웃했다.

“응? 이건 뭐다?”

“전에 부침개 먹었잖아. 그때 록시가 반죽 만든 거 기억하지?”

“응. 기억한다! 부침개 맛있다!”

“응. 이것도 반죽이야.”

“반죽?”

“응. 만져볼래?”

나는 초롱초롱 눈을 빛내는 록시에게 반죽을 건넸다.

“말랑말랑하다!”

“말랑말랑하지?”

“응! 루나도 만져 봐라!”

“······말랑말랑하네.”

무심한 듯 툭 내던져진 감상평과는 달리, 루나도 반죽의 감촉이 마음에 들었는지 연신 손가락을 움직였다.

홀린 듯 반죽을 만지작거리던 루나가 물었다.

“이걸로 뭐 하는 건데?”

“수제비를 만들 거야.”

“수제비?”

“응.”

원래는 라면이나 칼국수를 만들까, 했었다.

근데, 저번에 부침개를 부칠 때 록시가 즐거워하던 게 생각났다.

기왕 만드는 거 함께 즐기면서 요리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 비교적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수제비를 골랐다.

“자, 그럼 나는 준비하고 있을 테니까, 그거 갖고 놀고 있으면 돼.”

자고로 반죽은 치대면 치댈수록 맛있어지기 마련이니까.

두 비스테르가 반죽을 갖고 노는 사이 커다란 냄비에 육수를 부었다.

보글보글 끓는 사골 육수에 채소를 넣고, 양념을 간을 맞췄다.

딱 좋네.

숟가락으로 맛을 본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주억였다.

딱 하나 아쉬운 게 있다면 칼칼한 맛이었다.

마음 같아서야 매운맛을 내는 재료를 왕창 추가하고 싶었으나, 그러면 록시가 먹기 힘들 테니 내 그릇에 따로 넣어야겠다.

“자, 이제 반죽을 넣을 거야.”

내 말에 반죽을 길게 늘이며 장난을 치던 록시가 나와 냄비를 번갈아 쳐다봤다.

“이거 여기에 넣는다?”

“응. 이걸 통으로 넣는 게 아니라······.”

나는 록시에게 건네받은 반죽을 꼬집듯 떼어내,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폈다.

“이렇게 작게 떼어낸 걸 펴서 넣는 거야. 어때, 쉽지?”

“이렇게?”

록시가 나처럼 반죽을 떼어냈다.

조물조물.

“앗!”

힘이 너무 과하게 들어간 탓인지, 반죽에 구멍이 뻥 뚫렸다.

“괜찮아.”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인 점이 수제비의 매력이니까.

“이제, 그걸 여기에 던져 넣으면 돼. 루나도 해볼까?”

“응.”

루나가 조심스럽게 반죽을 떼어내더니 무언가 모양을 만들기 시작했다.

일부러 구멍을 뚫는 게 어딘가 사람의 얼굴 같기도 했다.

아울러 연신 내 얼굴을 흘낏거리는 게······.

“혹시 내 얼굴을 만드는 거야?”

내 말에 루나가 흠칫하더니, 손에 들린 반죽을 콱 구기더니 냅다 냄비에 던졌다.

에이, 그냥 잠자코 있을 걸 그랬나.

그나저나 정황상 내 얼굴을 만든 것 같은데, 저렇게 무참하게 구길 건 또 뭐냐고.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잠시나마 내 얼굴의 형태였던 반죽은 퐁당, 소리를 내며 냄비에 빠졌고 서서히 육수를 머금으며 노랗게 변했다.

금세 모든 반죽을 떼어 냄비에 넣은 나는 뚜껑을 덮었다.

“자, 이제 다음으로······.”

수제비가 맛있게 익어가는 사이 밑반찬을 꺼냈다.

“고기다!”

그 많은 반찬 중 곧바로 고기부터 찾아내다니, 역시나 육식주의자인 록시다웠다.

“이건 장조림이라는 거야.”

내가 틈틈이 만들었던 메주를 이용해 만든 간장에 졸인 장조림이었다.

장조림이라면 소고기로 만드는 게 일반적이었으나, 이건 어린 피기의 고기를 이용해서 만들었다.

“장조림!”

킁킁, 냄새를 맡던 록시가 날 쳐다봤다.

얼른 먹고 싶다는 눈빛이었다.

“응. 이거 꽤 짜니까, 조금씩 먹어야 해.”

“응!”

내 허락이 떨어지자 록시가 서둘러 젓가락을 들었다.

아직은 미숙하지만, 열심히 젓가락을 놀려 장조림을 집어 먹었다.

“맛있다! 록시, 장조림 좋다!”

“장조림 맛있지? 그렇다고 고기만 먹으면 안 돼. 채소도 같이 먹어야 착한 아이지.”

“응! 록시 채소도 먹는다!”

씩씩하게 답한 록시가 다시금 젓가락을 놀렸다.

저래선 저게 반찬인지 메인 요리인지 모르겠네.

“우구, 마이따!”

볼이 빵빵해진 채 연신 맛있다는 연호하는 록시를 보며 웃었다.

그래도 맛있다고 먹는 걸 보니 기분은 좋네.

“루나도 먹어 봐. 자, 루나는 치키의 알을 좋아했지?”

나는 마찬가지로 간장에 졸인 치키의 알을 접시에 담아 건넸다.

록시와 루나는 평생을 함께 지냈지만, 입맛은 조금 달랐다.

특히 루나는 생선을 가장 좋아했으며, 그다음으로 좋아하는 게 치키의 알이었다.

짜고, 단맛을 좋아하는 록시와는 달리 조금은 심심한 맛을 좋아했다.

가장 의외였던 것은 매운 음식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어딘가 어른스러운 입맛이라는 점에서는 나와 비슷했다.

아무래도 부족이 달라서 그런 거겠지.

“맛있어.”

다행히 루나의 입맛에도 맞는 것 같았다.

역시 장조림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좋아하는 반찬이라니까.

“다 익었으려나?”

나는 조심스럽게 냄비 뚜껑을 열었다.

안에 갇혀 있던 수증기가 확, 올라왔다.

휘휘, 손으로 수증기를 날린 나는 큼지막한 조각을 떠 후후 불었다.

적당하게 식은 수제비를 베어 물었다.

“이야, 맛있네.”

두 비스테르가 열심히 갖고 논 덕분인지 수제비의 쫄깃함이 장난 아니었다.

남은 조각마저 입에 넣고 맛을 음미하고 있자 옆에서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아차. 미안미안.”

나는 얼른 그릇에 수제비를 담아 록시와 루나에게 건넸다.

“자, 먹자!”

“응!”

“응.”

* * *

“후아, 배부르다.”

수제비에 이어 디저트로 가져온 파이까지 모조리 먹어치운 탓에 배가 터질 것 같았다.

거기다 배가 부르고 등이 따시니, 노곤노곤 잠이 쏟아진다.

“음냐아!”

“쿠울······.”

이미 록시와 루나는 춘곤증을 이길 수 없었는지, 돗자리 위에 누워 꿈나라를 여행하고 있었다.

“······에이, 모르겠다.”

이 상태로 낚시를 했다가는 내가 먼저 지쳐 쓰러지겠다.

“아, 그래도 미끼는 갈아두는 게 낫겠지.”

나는 낚싯대를 거뒀다.

이거, 미끼를 가는 것도 일이네.

“웃차!”

그래도 별수 있나.

아까 그 녀석을 잡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 귀찮음은 감수해야지.

이내 미끼를 갈아 끼운 나는 혹시 낚싯대가 딸려들어갈 걸 대비해 땅에 단단하게 고정시켰다.

“끝.”

드디어 준비를 끝낸 나는 곤히 잠든 두 비스테르의 옆에 누웠다.

* * *

“······어!”

“으으음······?”

“장! 대, 장!”

한창 단잠을 자고 있던 중이었다.

갑작스럽게 몸이 세차게 흔들렸다.

슬그머니 눈을 떴다.

그런 내 시야에 몹시도 당황한 록시의 얼굴이 보였다.

“으음?”

“대장! 크, 큰일이다!”

“무슨 일······ 응?”

록시의 다급한 목소리에 슬그머니 몸을 일으킨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어째선지 루나가 낚싯대를 붙잡은 채 낑낑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 내가 자기 전에 미끼를 달아뒀었지.

그럼 내가 잠든 사이에 문 건가?

아, 이럴 때가 아니지!

나는 서둘러 몸을 일으켜 루나에게로 달려갔다.

그녀는 금방이라도 호수에 빠질 것처럼 위태로웠다.

제법 힘이 센 루나조차 감당하지 못할 정도라는 건 아까 내 낚싯대를 부러뜨렸던 장본인임을 나타내는 결정적 증거였다.

“으으으으······.”

“자, 내가 대신 잡을게.”

이내 루나가 내게 낚싯대를 넘기더니, 그대로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녀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웃! 뭐, 뭐 이렇게 세?”

이거 진짜 물고기가 맞는 거야?

오죽했으면 고래라도 걸렸나 싶을 정도였다.

물론 호수의 넓이를 봤을 때 고래가 살 리 만무했지만, 그만큼 낚싯대를 통해 전해지는 힘이 엄청났다.

“그래, 어디 한번 해보자 이거지!”

힘이라면 나도 지지 않는다고.

나는 왼발을 강하게 굴렀다.

힘껏 내지른 다리가 호수의 무른 땅을 파고들며, 종아리의 절 가량이 박혀 들어갔다.

피이잉!

무려 3미터가 넘는 낚싯대가 U자로 휘었고, 낚싯줄은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팽팽해졌다.

제아무리 록시의 머리카락이 단단하다고 한들, 이 상태로 계속 시간을 끈다면 버티지 못하고 끊어질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속전속결이다.

“흐아압!”

나는 상체를 뒤로 젖히며 낚싯대를 강하게 들어 올렸다.

푸화아악!

순간 온천이라도 터진 듯, 엄청난 양의 물보라가 쳤다. 그리고 낚싯바늘을 삼킨 그것은 그대로 공중을 날아 지상에 처박혔다.

쿠웅!

“예쓰!”

마침내 녀석을 낚아냈다는 사실에 환호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나는 땅에 처박힌 채 허우적거리는 그것을 보며 입을 떡 벌렸다.

“······저, 저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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