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98화 (96/159)

98. 소년기(80) - #대물!

“무전기라는 거예요.”

“무전기?”

“네. 이거 들고 잠깐 거기 계세요.”

헤파이토 씨에게 무전기를 건넨 나는 위즈 씨에게도 무전기를 건네며, 사용법을 알려줬다.

“아, 그리고 조금 이따가 하늘이 번쩍번쩍할 거거든요? 그거 제가 한 거니까, 다들 놀라지 않게 잘 말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알겠네.”

두 사람의 대답을 들은 나는 부랴부랴 로토 위에 올라탔다.

“로토야, 가자!”

꾸룩!

로토가 힘차게 답하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 정도면 됐겠지.

나는 무전기의 스위치를 눌렀다.

“아아! 어때요? 들려요? 오바.”

무전기를 통해 말하면서 슬쩍 지상을 쳐다봤다.

아니나 다를까.

헤파이토 씨가 흠칫 하더니 퍼뜩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거기 무전기에 보면 빨간색 돌기가 있을 거예요. 그걸 누르고 말하면 돼요. 오바.”

내 말이 끝나자 무전기에서 작은 소음이 들렸다.

-기? 이······. 건가?”

“네, 그거 맞아요. 말을 할 땐 누르고 있으면 돼요. 오바.”

-누르고 있으라는 거군. 어, 들리는가?

“예. 들려요. 오바.”

-허어, 멀리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아티펙트라니. 자네는 매번 나를 놀라게 하는군.

“아직 놀라긴 이를걸요? 오바.”

-근데, 그 말끝마다 붙이는 오바는 뭔가?

“어음······. 그냥 내 말이 끝났다는 걸 알려주는 신호요. 오바.”

-신호군. 그래, 그래서 대체 뭘 할 생각인가?

-오바.

내게 질문을 던진 헤파이토 씨가 한 박자 늦게 오바를 외쳤다.

보아하니 내가 붙이니 자기도 붙여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굳이 안 붙여도 괜찮은데 말이야.

“보시면 알 거예요. 잠깐만, 거기거 대기하고 계세요! 오바. 아아, 위즈 씨 들리세요? 오바.”

-드, 들립니다! 오바!

곧바로 대답하는 것도 그렇고. 오바를 붙이는 것도 그렇고.

헤파이토 씨가 무전기를 사용하는 방법을 지켜보고 있었나 보네.

“오케이. 그럼, 잠시만 대기하고 계세요. 오바.”

-네. 오바.

-알겠네. 오바.

두 사람의 대답에 무심코 웃으며 로토의 고삐를 잡아당겼다.

“로토, 마을 전체를 한 바퀴 돌아줄래? 최대한 천천히.”

꾸룩!

이윽고 로토가 날개를 홰치며 마을을 빙 돌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금 무전기를 들어 채널을 바꿨다.

“아아, 여기는 아이넬. 들리세요? 오바.”

-아이넬이냐? 아, 이게 아니지. 여기는 레비아. 잘 들린다, 오바.

“현재 상황은 어떤가요? 오바.”

-일단 네 말대로 마을에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숲으로 나왔다. 시작해도 될 거야. 오바.

“혹시 모르니까 마을 한번 살펴보고, 작업 시작할게요. 오바.”

-그래. 오바.

무전을 끝낸 나는 마을 구석구석을 살펴봤다.

좋아.

“아아, 헤파이토 씨. 위즈 씨, 지금부터 바로 시작할게요. 오바.”

-알겠네. 오바.

-네. 오바.

확인을 마친 나는 로토의 등에 메어둔 가방을 뒤져 나무판을 꺼냈다.

아까 헤파이토 씨에게 보여줬던 설계도와 똑같은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템페스트를 꺼내 설계도를 톡, 두드렸다.

그와 동시에 마법진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사방으로 번져나갔다.

“레이저가 여기서 쓰일 줄은 몰랐지.”

그렇다.

나는 얼마 전 우연찮게 레이저 빔을 발사했던 적이 있다.

내가 의도한 게 아니었으니, 엄연히 사고였다.

자고로 위대한 발명품은 실수를 통해 태어나는 경우가 많다고 했던가.

나는 실수로 말미암아 발견한 이 레이저야말로 가이드라인을 그리는데 최적의 마법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이런 내 생각은 빗나가지 않았다.

이내 하늘을 뒤덮은 거대한 빛이 마법진의 형태로 변하더니, 그대로 지상을 향해 내려앉았다.

“크, 장관이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어서 레이저가 닿은 지점이 녹아내리며, 새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빛과 연기에 휩싸인 마을은 어딘가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이 정도면 됐겠지.”

나는 나무판으로 보내던 마나의 선을 회수했다. 그러자 마을을 뒤덮었던 빛이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마법진과 똑같은 모양의 선이 남았다.

“고마워, 로토.”

꾸룩!

로토의 갈기를 쓰다듬은 나는 곧바로 지상으로 내려가 다음 작업을 시작했다.

* * *

작업은 순조로웠으며, 빠르게 끝이 났다.

애당초 레이저를 이용해 가이드라인을 만들었으니 별로 어려운 것도 없었고.

마침내 마무리 작업을 끝낸 헤파이토 씨가 허허, 웃었다.

“휴우, 대체 길을 어떻게 만들려나 했더니, 우르시오르의 진액을 쓸 줄이야.”

당연하게도 이곳에는 시멘트가 없다.

그래서 찾은 대체재가 우르시오르의 진액이었다.

우르시오르의 진액은 단단하게 굳는 성질이 있었으니 시멘트 대용으로 쓰기에 아주 적합했다.

다만 물론 우르시오르의 진액 하나만으로 길을 만들자니 그 양이 모자라도 한참 모자랐다.

“거기다 골칫거리였던 자갈을 쓸 생각을 하다니.”

거기서 꺼낸 카드가 바로 자갈이었다.

안 그래도 밭을 일구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갈 같은 것들이 엄청 많이 쌓여있었던 것이다.

이걸 한곳에 두자니 미관상 보기 좋지 않고, 그렇다고 다시 땅에 묻자니 그것도 일이다.

그래도 자갈을 어떻게 활용할까, 하고 일단 한곳에 모아뒀던 게 신의 한 수였다.

나는 산더미처럼 쌓인 자갈과 잘게 부순 바위, 우르시오르의 진액을 하나로 섞었고, 그걸 가이드라인에 붓는 것으로 길을 만들었다.

그 결과 마을의 경관을 해치긴커녕 조화로운 길을 완성할 수 있었다.

나도 어느덧 완성된 길을 보며 흡족하게 웃었다.

“정말, 자네의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지 참 궁금하단 말이지. 그건 그렇고, 마나 스냇치는 어디에 심을 생각인가?”

“그냥 나무니까 밖에 심을까, 했는데. 혹시 몰라서 땅속에 심으려고요.”

“땅속에?”

“네. 어차피 마나스냇치는 마나를 먹고 자라는 나무니까, 굳이 밖에 안 심어도 잘 자라잖아요.”

“그렇군.”

내게서 시선을 거둔 헤파이토 씨가 마을을 눈에 담았다.

재개발 중이라는 걸 알리듯, 마을 곳곳에는 공사 중인 집들로 가득했다.

“역시 자네를 따라온 건 잘한 일이야.”

“잘한 일인가요? 어쩐지, 이곳에 와서 매일 일만 하시는 것 같아서 죄송스럽던데.”

농담이 아니라, 헤파이토 씨는 관광 차원에서 우리 마을에 왔다.

근데, 관광은 무슨.

마을에서 그 누구보다 바삐 돌아다니는 사람이 바로 헤파이토 씨였다.

하물며 듀로프들을 소집한 뒤로 조금이나마 여유가 생기나 싶었으나, 막상 일이 줄어드는 건 고사하고 갈수록 늘어만 갔다.

심지어 도리아 아주머니의 개인적인 부탁을 받아서 파메르 신전까지 짓는다고 하더라.

“으하하하! 일이 많다는 건 그만큼 우리를 찾는 이가 많다는 거 아니겠는가? 나는 말일세, 듀로프의 영광을 되찾는 걸 사명으로 여겼다네. 당장 나의 아버지, 할아버지도 비슷했지. 근데, 그대의 마을에서 지내다 보니 문득 그대가 했던 말이 떠오르더군.”

“제가 했던 말이요?”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과거에 얽매인다고 과거가 바뀌는 것도 아니고, 미래를 걱정한다고 바뀌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우리는 현재를 살아야 한다.”

“아아.”

가슴 흉터 씨.

이제는 스카른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된 청년 고브가 침울해 있을 때 격려랍시고 해준 말이었다.

“우연히 들었지. 그거 아는가? 솔직히 말해서, 그 말을 들었을 땐 조금 짜증이 났다네. 왜 그런 줄 아나? 내가 그랬거든. 과거에 얽매였고, 늘 미래를 걱정했지. 현재를 산다······. 그대를 보고 있으면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도 든다네.”

헤파이토 씨가 날 쳐다봤다.

“그래서 말인데, 궁금한 게 있네.”

“네.”

“자네는 무엇을 위해 현재를 사는 겐가?”

“무엇을 위해 현재를 사냐고요?”

“그래.”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허어?”

내 장난스러운 대꾸에 헤파이토 씨의 눈썹이 역팔자로 휘었다.

“진짜 몰라요. 저는 그냥 하고 싶은 걸 할 뿐이거든요.”

“하고 싶은 걸 한다?”

헤파이토 씨의 표정을 보아하니, 이번 대답도 썩 만족스럽진 않은 모양이다.

음······.

무엇을 위해 현재를 사느냐라.

“굳이 이유를 붙이자면······. 게으르게 살고 싶어서?”

“게으르게 살고 싶어서라고?”

“네. 저는 귀찮은 걸 싫어하거든요. 유유자적, 뒹굴뒹굴, 놀면서 지내는 게 좋아요.”

“제작하는 걸 볼 땐 귀찮은 걸 싫어하는 사람 같진 않던데?”

“아하하. 그건 재미있으니까요!”

나에게 있어 DIY는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놀이요.

마법은 평생을 갖고 놀아도 질리지 않을 장난감이나 다름없었다.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로군.”

말을 마친 헤파이토 씨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니, 나는 자네를 지켜봐야 할 이유가 생겼어. 앞으로도 잘 부탁하네.”

나는 헤파이토 씨의 손을 맞잡았다.

“저야말로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 * *

여느 때와 다름없이 무척이나 따사로운 오후였다.

얼마 전 마을에 길을 만드는 대대적인 공사를 끝낸 나는 오랜만에 낚시하러 나왔다.

의자에 기대고 앉아 멀거니 호수를 응시하던 중이었다.

“으으으으!”

옆에서 들려오는 침음에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록시가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늘 살랑살랑 흔들리던 꼬리가 빳빳하게 서 있는 게 적잖이 긴장하고 있음을 방증하고 있었다.

지금 록시가 저렇게까지 긴장하는 이유는 앞에 서 있는 탑 때문이었다.

나무 조각을 층층이 쌓은 장난감, 그것은 바로 젠가였다.

“안 할 거야?”

무심한 듯한 뱉어진 루나의 말에 록시가 흠칫, 어깨를 떨었다.

“하, 할 거다!”

이내 록시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더니, 손가락으로 블록을 톡 건드렸다.

그와 동시에 젠가가 크게 출렁였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젠가를 본 록시가 다급하게 외치더니, 허둥지둥 손을 뺐다.

그러나 이미 젠가의 균형은 무너졌고, 금세 와르르 소리를 내며 무너졌다.

“대장. 무, 무너졌다······.”

록시가 무너진 젠가와 나를 번갈아 가며 중얼거렸다.

“무너졌으면 다시 세우면······.”

다시금 젠가를 쌓아주고자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찰나였다.

갑작스럽게 움직이는 찌를 본 나는 어정쩡한 자세 그대로 낚싯대를 낚아챘다.

후웅!

낚싯대가 급격하게 휘는가 싶더니, 덩달아 내 몸도 휘청였다.

그놈이다!

확실하다.

지금 낚싯바늘을 문 녀석은 지금 껏 잡아본 적 없는 대물이다.

나는 왼쪽 발을 앞으로 내밀고 상체를 뒤로 기울였다.

“끄으응!”

그 힘이 어찌나 셌는지, 내 몸이 질질 끌려갔다.

이거······ 위험한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투툭.

U 자를 넘어 V 자의 형태로 휘어진 낚싯대에서 작은 파열음이 들렸다.

콰직!

끝끝내 나와 물고기의 힘겨루기를 견디지 못한 낚싯대가 맥없이 부러졌다.

“아오! 아깝다!”

지금껏 잡아본 적 없는 대물이 바로 코앞에 있는데 이렇게 놓친다고?

“아니.”

여기서 포기할 내가 아니지.

“내가 잡고 만다.”

나는 부러진 낚싯대를 치우고, 곧장 작업대로 향하려던 차였다.

록시가 울상을 지으며 내 소매를 잡았다.

“대, 대장······. 이거······.”

“응? 아, 맞다. 미안, 미안.”

나는 템페스트를 꺼내 젠가가 올려진 판을 톡, 쳤다.

그러자 무너졌던 젠가에서 빛이 나더니, 처음 상태로 복원됐다.

“자, 됐지?”

“응! 됐다!”

나는 다시금 젠가에 열중하는 둘을 뒤로하고 특제 낚싯대를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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