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97화 (95/159)

97. 소년기(79) - #발전소를 짓자!

나는 손에 든 양피지를 훑어봤다.

양피지는 다름 아닌 설계도였다.

다만 이번에 제작한 설계도는 조금 특별했다.

평소 내가 도구를 만들 때 제작하는 것과는 달리 마법진 하나만 덩그러니 그려져 있었다.

이 마법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퓨처라고 하면 되려나.”

퓨처.

조금은 거창하면서도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말처럼 들렸다.

하지만 그만큼 이 마법진은 중요했으며, 이 마을의 미래를 책임지게 될 거다.

“뭐, 이게 제대로 작동을 했을 때의 이야기지만.”

일단 테스트를 해봤을 땐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나, 과연 설치했을 때도 제대로 작동을 할지 조금은 걱정스러웠다.

“으음······. 뭐, 해보면 알겠지.”

말은 이렇게 했지만,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대장! 대장!”

때마침 록시가 도착했다.

“어, 왔어?”

“응! 다 불렀다!”

나는 록시의 뒤를 따라 오는 비스테르들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여기요!”

이윽고 비스테르들이 내 앞에 정렬했다.

“오늘 이렇게 모여줘서 고마워요.”

내 인사에 위즈 씨가 대표로 나섰다.

“별말씀을! 아이넬 님이 필요로 하신다면 언제라도 달려올 준비가 돼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아, 오늘 여러분을 모이게 한 건 부탁을 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예요.”

내 말에 위즈 씨가 눈을 빛냈다. 그녀의 눈에는 드디어 자신이 활약할 때가 왔다는 듯한 기대감마저 담겨있었다.

내가 부른 이는 비스테르만이 아니었다.

“호오, 벌써 다 모였군.”

이어서 헤파이토 씨도 모든 듀로프를 대동한 채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바쁘실 텐데,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내 감사 인사에 헤파이토 씨가 고개를 저었다.

“그 무슨 섭섭한 소린가. 자네가 우리를 부른 건 무언가 만들 게 있어서겠지?”

“네. 오늘은 조금 특별한 걸 만들어볼까 해요.”

내 말에 헤파이토 씨가 한쪽에 모여 있는 비스테르들을 보며 수염을 쓸었다.

“그럴 줄 알았네. 자네가 뭔가를 만드는데 우리를 불러주지 않으면 그게 더 섭하지.”

능청스러운 헤파이토 씨의 대답에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오늘 만드는 건 대체 뭔가? 그건 설계도 같은데?”

나는 헤파이토 씨에게 설계도를 건넸다.

“오늘은 이걸 만들려고 해요.”

“흠? 이건······. 마법진인가?”

“네.”

“허어. 대체 이 안에 몇 개의 룬어가 들어간 거지?”

“108개요.”

“108개라니······. 이제 막 마법진을 배우기 시작한 나한테는 어림도 없는 경지로군.”

헤파이토 씨의 한탄에 멋쩍게 뒷머리를 긁었다.

“에이, 헤파이토 씨도 마법진 정도는 쉽게 그리시잖아요.”

내가 헤파이토 씨와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듀로프에게 마법진을 가르쳐주기로 약속을 했었고, 틈틈이 가르쳐주고 있다.

역시나 손재주가 뛰어난 듀로프답게 헤파이토 씨는 마법진을 수월하게 그렸다.

그러나 딱 하나 복병이 있었다.

“룬어 하나를 외우는데 거의 열흘씩 걸리니, 원. 마법이라는 게 이렇게 복잡할 줄은 몰랐어.”

실제로도 그가 나에게 마법을 배우기 시작한 지 2주쯤 되었는데, 아직 그가 외운 룬어는 고작 2개.

그마저도 실패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자네를 보고 쉽게 생각했던 모양이야.”

“에이, 그래도 지금의 속도도 상당히 빠른 거라고 레비아 선생님이 말씀하셨잖아요.”

나야 기억력이 워낙 좋아서 금방 외울 뿐이지.

따지고 보면, 헤파이토 씨의 속도가 지극히 일반적 아니, 평균보다 조금 더 빠르다고 레비아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실제로도 스테인 씨, 올룸스 씨도 함께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헤파이토 씨의 습득력이 압도적으로 빨랐다.

헤파이토 씨가 복습과 예습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는 점도 한몫하고 있었다.

“허어, 자네는 너무 상냥해서 탈이야. 그렇게 얘기를 하면 내가 불평을 할 수 없잖나. 아무튼, 오늘은 이 마법진을 그리려는 겐가?”

“네. 맞아요. 오늘은 이 마법진만 그릴 거예요.”

“흐음? 마법진을 그리는 일에 이렇게 많은 인원이 필요한가?”

“네. 오늘 이 마법진은······.”

잠시 말을 멈춘 나는 바닥을 가리켰다.

“여기에 새길 거거든요.”

“음? 땅에 새긴다는 건가?”

“네. 정확하게는 마을 전체죠.”

내 말에 헤파이토 씨의 미간이 좁아졌다.

“마을에 그린······. 잠깐만, 자네 설마······. 이 마을 전체를 마법진 위에 놓겠다는 이야긴가?”

“정답!”

그렇다.

오늘 그려야 할 마법진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아예 마을 자체를 마법진으로 감쌀 생각이었다.

“묻고 싶네만, 이 마법진을 그리려는 이유는 뭔가?”

“미래를 위해서요.”

가볍게 운을 뗀 나는 고개를 돌려 마을을 응시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드리자면 먼저 이 마법진을 통해서 그 누구나 마나를 활용할 수 있어요.”

“음?”

“마나 배터리를 아주 크게 만들었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평범한 아티펙트라면 마나 배터리로 충분하다.

그리고 이 마나 배터리라는 걸 만들기 위해서는 마나스냇치의 열매가 필요하다.

“문제는 마나스냇치가 부족하거든요. 앞으로 마을 사람들이 써야 할 아티펙트의 수는 늘어나는데, 정작 마나 배터리가 수급이 되질 않으면 그보다 더 곤란한 게 없잖아요?”

“음. 그렇지.”

“그래서 아예 마나 배터리가 아니라 마나 발전소를 세워버리려고 하는 거죠.”

“마나 발전소라. 마나의 중심이라는 뜻이로군. 근데, 마법진만으로 그게 가능한 겐가?”

“그건 아니에요.”

나는 품에서 마나스냇치의 열매를 꺼냈다.

“음? 마나 배터리처럼 그 열매를 사용할 생각인 건가?”

“네. 이 열매를 사용하는 게 맞아요.”

내가 의미심장하게 웃자, 헤파이토 씨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자, 자네 설마?”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죠.”

“제정신인 겐가? 지금······. 죽음의 나무를 심겠다는 겐가? 마을에?”

헤파이토 씨가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맞아요. 이 마나스냇치. 죽음의 나무라고 불리는, 이 무시무시한 나무를 심을 생각이에요.”

“······.”

내 확답에 헤파이토 씨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자네라면 그럴 수 있지. 후후후. 듀로프는 말일세, 제작을 평생의 업으로 삼는다네. 그건 자네도 알고 있겠지.”

“물론이죠.”

듀로프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망치를 휘두른다는 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참 아쉬운 게 뭔지 아는가?”

“아쉬운 거요?”

“나 때는 말일세, 제작에 모든 걸 걸었다네. 정말 당장 죽을 것 같아도 망치를 휘두르는 게 당연했지. 근데, 요즘에는 다르지.”

헤파이토 씨가 슬쩍 뒤쪽을 쳐다봤다.

고개를 숙인 채 발로 땅을 헤집는 이가 있는가 하면, 괜스레 하늘을 쳐다보는 이들도 있었다. 헤파이토 씨가 때아닌 일침을 날리자 딴청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많은 건 바라지도 않아. 제작에 목숨까지 거는 자네의 그 열정. 그 반이라도 본받았으면 하는군.”

속된 말로 라떼는 말이야, 를 시전하는 헤파이토 씨를 보자니 지구나 이곳이나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다들 열심히 하고 있는데요 뭐. 매번 느끼는 거지만, 듀로프는 진짜 손재주가 좋은 것 같아요.”

나는 은근슬쩍 칭찬하며 화제를 돌렸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마따나. 듀로프를 칭찬하자 헤파이토 씨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리 말해주니 고맙군.”

이에 갑작스럽게 잔소리를 들어야만 했던 듀로프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대체 이 마법을 어떻게 새기겠다는 겐가?”

“저번에 제가 길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고 했잖아요.”

“음. 그랬지.”

마을이 마을다우려면 필요한 조건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다름 아닌 길이다.

아무래도 도시와 시골을 둘 다 살아봐서 아는데, 이 길이라는 게 보통 중요한 게 아니란 말이지.

특히 널따란 들판이 보기에는 좋지만, 막상 이동하기에는 적잖이 불편하다.

마을에서 밭을 오고 다닐 때 사람들의 동선이 불편한 게 눈에 보이기도 했고.

그때, 헤파이토 씨가 제안한 게 있었다.

사람들의 집을 새로 짓고 있으니, 이참에 한 곳에 몰아서 짓는 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이 제안도 나쁘진 않았다.

어차피 재개발을 하는 중이었으니 아예 주거 구역을 나눠버리면 되는 거니까.

근데, 개인적으로는 우리 마을의 색깔을 잃고 싶진 않았다고 해야 할까.

도시처럼 정갈하면서도 질서정연한 것도 좋지만, 지금처럼 자유분방한 느낌을 그대로 두고 싶었다.

그래서 최대한 마을의 경관을 해치지 않되, 사람들이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길을 만들기로 했다.

여기서 나는 한 가지 고민이 더 생겼다.

길을 만드는 건 좋다.

그럼 어떻게 해야 더 좋은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을까, 라는 DIY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생긴 직업병이 발동했다.

그렇게 나 홀로 고민하던 중 우리 집이 완성됐고, 집에 설치한 아티펙트를 보면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것은 지구의 발전소였다.

만약에 마나 발전소를 만들어서 마을 전체에 공급할 수 있다면?

마나 배터리를 추가로 제작할 필요도 없거니와 설치해야 할 번거로움도 없어진다.

그 말은 아티펙트를 조금 더 간소화한 형태로 만들 수 있다는 의미임과 동시에 마을 내부라면 그 어디에서든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길과 마법진을 접목하는 게 어떨까, 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나는 즉시 실험에 돌입했다.

쉽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평소 새기던 마법진이 아닌 마을 전체를 둘러야 했으며, 길의 역할도 병행해야만 했다.

“거기다, 이 마법진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마을의 안전도 한층 강화될 거예요.”

“마나 배리어를 말하는 거군.”

“네.”

만사불여튼튼이라고.

다른 사람들은 아직 모를지언정 나는 데모스라는 존재와 그를 추종하는 자들이 존재한다는 걸 안다. 더불어 내가 마봉석을 지니고 있는 이상, 언제 어느 때 이곳으로 들이닥칠지 모르니 충분한 대비가 필요했다.

그 외에도 내가 필요하다 싶은 기능들을 모조리 추가했고,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삼는 나는 수백 차례 테스트를 하고 또 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원하는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었다.

내 설명을 들은 헤파이토 씨가 고개를 주억였다.

“이해했네. 오늘 우리를 부른 건 마법진을 새기기 위함이로군.”

“맞아요. 제가 그려둔 이 마법진과 똑같은 생김새로 길을 만들면 돼요.”

“허나, 자네가 말하지 않았나? 마법진은 정교함이 생명이라고.”

“그렇죠. 아주 작은 오차라도 생기면 마법진은 작동하지 않으니까요. 근데,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헤파이토 씨가 무엇을 걱정하는지는 나도 알고 있다.

더불어 나도 어떻게 해야 조금 더 쉽고 안전하게 마법진을 새길지 고민도 했었다.

자고로 두드리면 열린다고 하였다.

나는 얼마 전 겪었던 사고를 통해 해결 방안을 찾아낼 수 있었다.

휘익!

내가 휘파람을 불자, 저 멀리 하늘에서 대기하고 있던 로토가 급하강했다.

“으아!”

“저, 저 거대한 새는 뭐야?”

갑작스러운 괴조의 등장에 비스테르들이 놀랐지만, 이미 알고 있던 위즈 씨가 재빨리 나서서 모두를 진정시켰다.

“자, 이거 받으세요.”

“이건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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