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93화 (91/159)

93. 소년기(75) - #러브하우스

비스테르 무리를 구한 지 어언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일주일.

짧다면 짧은 기간 동안 우리 집에는 큰 변화가 생겼다.

정정한다.

변화의 수준이 아니라 아예 집 자체가 바뀌었다고 해야겠지.

“세, 세상에······.”

엄마가 정면에 우뚝 선 건물을 보며 입을 떡 벌렸다.

“이, 이게 집이야?”

비단 엄마만이 아니었다. 주변에는 아빠를 비롯하여 수십 명의 마을 사람들이 서 있었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놀란 얼굴로 건물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떻소? 마음에 드오?”

헤파이토 씨가 자부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헤파이토 얼마 전 마을의 재개발에 나서겠노라고 선언했다.

그 후로 올룸스 씨는 하티르로 돌아가 수십 명의 듀로프를 이끌고 마을에 도착했다.

그게 불과 3일 전이었다.

놀라운 건 그다음이었다.

헤파이토 씨는 듀로프가 도착하기가 무섭게 곧장 재개발을 시작했고 그 첫 번째 대상은 다름 아닌 우리 집이었다.

나야 급할 게 없어서 다른 분 먼저 해드려도 된다고 했지만, 헤파이토 씨는 그럴 순 없다면서 우리 집부터 싹 바꿔주겠다고 나섰다.

거기다 우리 집을 새로 짓는다는 말에 엄마와 아빠가 너무 좋아하시더라.

기왕 우리 가족이 살 집인 만큼 나는 다른 일들을 잠시 접어두고 집 설계에 착수했다.

“스테인.”

헤파이토 씨의 말에 옆에 서 있던 스테인 씨가 퍼뜩, 앞으로 나섰다.

“흠흠. 이 집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스승님의 설계도를 토대로 만든 집으로 평범한 집이랑 구조가 다릅니다.”

스테인 씨도 자부심 가득한 얼굴로 집을 설명했다.

“스승님?”

“헤파이토 씨 말하는 거 아니야?”

“아, 그런 건가.”

스승이 누군지 추측하는 사람들의 대화에 뜨끔했지만, 애써 무시했다.

그나저나, 집 한번 진짜 예쁘게 잘 만들었네.

앞서 스테인 씨가 말했던 것처럼 우리 집의 형태는 마을에서 볼 수 있는 형태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게, 저 집을 설계한 것은 나였으니까.

지구에서 한창 유행했던 것들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버킷 리스트라는 거였다.

내가 살면서 죽기 전까지는 꼭 이뤄보고 싶은 것들을 적어두는, 일종의 소원 목록 내지 꿈 노트라고 보면 이해하기가 쉬웠다.

뭐, 나만이 아니라 모든 이들의 꿈이기도 하겠지만 말이야.

언제였던가.

우연찮게 이런 말을 본 적이 있다.

“자고로 꿈은 크게 가져라. 그래야 깨지더라도 그 조각이 크다.”

이 말을 들은 나는 검토하던 서류를 내던지며 무릎을 탁, 쳤다.

그래.

그렇다면 꿈을 크게 갖자.

내 꿈이 깨질지라도 조각이 크다면 그것대로 좋은 일이니까.

그때부터 나는 하나, 둘 버킷 리스트를 적었다.

진짜 그냥 별생각 없이 내가 갖고 싶은 것들과 하고 싶은 것들을 적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내 집 마련이었다.

그것도 그냥 평범한 아파트가 아니라 널찍한 마당이 있는 주택을 원했다.

흔히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대기업 회장 정도나 살 수 있는 커다란 집.

이른바 대저택 말이다.

동물을 좋아했던 나는 그곳에서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며 자그마한 텃밭을 가꾸고 싶다는 로망이 있었다.

그래서 내 휴대폰에는 멋진 집들의 사진이 가득했고, 나는 늘 그것들을 보면서 대리만족했었다. 한창 버킷 리스트에 빠졌을 땐 늘 이런 곳에서 살겠노라고 버릇처럼 떠들었던 때도 있었다.

동료는 이런 나더러 김칫국 마신다고 놀렸었지.

그럴 때마다 나는 이런 말을 해줬다.

“안 그래도 고구마처럼 퍽퍽한 인생이잖아. 사이다 대신 김칫국 정도는 마셔도 괜찮잖아?”

이룰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할까?

꿈이 크든 작든.

설령 신기루처럼 잡히지 않는다고 하여도 우리가 그것을 향해 달려 나가는 것은 매한가지다.

한편으로는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도 했었다.

이번 생이 아니면 다음 생에서라도 이루겠노라고.

“그게 진짜로 현실이 될 줄이야.”

“후후, 어떤가. 마음에 드는가?”

어느새 내 곁으로 온 헤파이토 씨의 목소리에 나는 앞으로 우리가 살 집을 눈에 담았다.

가장 먼저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벽돌이었다.

옅은 주홍빛이 감도는 게, 마치 석양에 물든 하늘을 연상케 하는 색감이었다.

마브롱이라는 특수한 광물이라는데, 저걸 가져오기 위해서 엄청난 고생을 했다나.

확실히 희귀한 재료인 만큼 대리석처럼 무늬가 있었는데, 그로 인해 한층 더 고급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저걸 일일이 깎아서 그걸 또 하나하나 쌓아서 외벽을 쌓았으니 엄청난 노력이 들어갔겠네.

“마음에 들죠! 진짜, 너무 멋진데요?”

“다행이군. 자네가 준 설계도가 좀 복잡한 게 아니었어.”

“좀 복잡하긴 하죠?”

아무렴.

듀로프는 평생을 광산에서 지낸다. 그나마 헤파이토 씨가 산맥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종족을 접해본 경험이 풍부해서 그렇지.

일반적인 듀로프들은 이렇게 집이라는 걸 만든 경험이 거의 없다.

나도 이를 알기에 설계도를 만드는 데만 꼬박 하루를 투자했을뿐더러, 걱정도 많았다.

근데, 내가 일을 도우려고 해도 헤파이토 씨가 뜯어말리니 별수 있나.

더군다나 헤파이토 씨. 나아가 듀로프에게 집이란 미지의 영역이자 새로운 도전이라는 말에 나는 믿고 맡기기로 했다.

심지어 내가 몰래 훔쳐볼까 싶었는지, 아예 집 근처에 높은 장벽까지 세웠다.

지금이야 다 철거했고, 그 자리에는 철을 두드려서 만든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커험,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긴 뭣하네만. 안쪽은 더 마음에 들 걸세. 자, 이럴 게 아니라 어서 들어가 보는 게 어떤가? 스테인!”

헤파이토 씨의 부름에 스테인 씨가 이쪽으로 손짓했다.

드디어 집으로 들어가는 거구나.

두근두근.

옛날에 한창 유행했던 방송인 러브하우스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러브하우스 하면 역시 그 특유의 따라라란딴, 하는 배경음악이 깔려줘야 맛인데.

“엄마, 아빠. 가요!”

“응?”

“그, 그래.”

내 말에 엄마랑 아빠가 조심스레 스테인 씨에게로 향했다.

“아!”

엄마가 잠시 걸음을 멈추더니 뒤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루나랑 록시, 큐우도 같이 가야지?”

“간다!”

“응.”

큐우우!

이에 멀뚱멀뚱 서 있던, 앞으로 함께 살 두 비스테르와 한 마리의 데미르 드라고스가 엄마의 옆에 섰다.

“자, 먼저 여기가 현관입니다.”

“엄마.”

“응? 아, 응!”

엄마는 긴장했는지 우리를 돌아보더니,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었다.

이윽고 엄마가 먼저 집으로 들어가고, 아빠, 나, 록시, 루나, 큐우 순으로 들어갔다.

“잠깐!”

“한 가지 말할 게 있소.”

돌연 헤파이토 씨가 손을 들어 우리를 제지하더니, 허리를 숙여 신발을 벗었다.

“이 집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오.”

이에 우리 모두 신발을 벗은 뒤에서야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와······.”

“1층은 모두가 함께 지낼 수 있게끔 만들었습니다.”

스테인 씨의 설명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1층은 무척이나 단순한 구조였다. 중앙에는 커다란 거실이 있었고, 옆으로는 주방과 흔히 다이닝 룸이라 불리는 공간이 있었다.

진짜, 이렇게만 보면 현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집이랑 크게 다르지 않은데?

“우아아아아!”

집으로 들어온 록시가 거실을 보더니, 우다다다 뛰어 들어갔다.

그런 록시가 향한 곳은 뻥 뚫린 벽이었다.

그 너머에는 내가 특별히 요청한 정원이 만들어져 있었다.

“어, 조심해······!”

스테인 씨가 외침이 무색하게 쿵, 하는 묵직한 소리와 함께 록시가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아, 아프다!”

엄마가 놀라서 록시를 부축했다.

“괜찮니? 근데······. 록시는 어디에 부딪힌 거니?”

엄마의 말에 헤파이토 씨가 호탕하게 웃었다.

“으하하핫! 이거, 내가 설명하기도 전에 미리 알아차렸구만!”

“네?”

엄마의 호기심 어린 표정에 헤파이토 씨가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더니, 방금 록시가 넘어졌던 부근에 서더니 뻥 뚫린 허공을 두드렸다.

탕탕!

“잘 보면 이곳은 뚫린 게 아니라 막혔다오.”

“어머?”

분명히 아무것도 없는데 소리가 들리자, 엄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신기하지 않소? 이게 유리라는 거요.”

“유리요?”

집이라면 무릇 햇살이 들어와야 한다. 그러려면 창문을 만들어야 하는데, 문제는 이곳에는 유리가 없다.

그나마 다행스러웠던 건 내가 주워들은 잡지식 중에는 유리를 만드는 방법도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지식을 헤파이토 씨에게 알려줬고, 그는 마침내 유리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근데, 그걸 이렇게 바로 적용할 줄은 몰랐는데.

놀라운 건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건 뭐지?”

조용히 집을 둘러보던 아빠가 주방에서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아, 그건 냉장고라는 거예요!”

“냉장고?”

“네! 이렇게 열면요!”

나는 엄마에게 이것저것 설명하는 헤파이토 씨를 대신해서 설명했다.

“호오, 이게 파메르 님의 축복이 담겼다는 그 물건인 거야?”

“맞아요!”

“거, 되게 신기하네. 그래서, 이건 또 뭐······.”

아빠가 툭 튀어나온 손잡이를 잡아 돌렸다.

“아, 그건!”

푸화아아아아악!

갑작스럽게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더니 아빠는 물론 주변에 있던 나와 루나, 이곳으로 오던 엄마와 록시까지 홀딱 젖었다.

“억!”

“어, 어머?”

미처 말릴 겨를도 없이 벌어진 일에 모두가 당황했다.

그것도 잠시였다.

“크하하하핫!”

홀딱 젖은 우리를 보던 헤파이토 씨가 폭소를 터뜨렸다.

“그건 수도꼭지라는 거요. 듣자 하니 매일 호수에서 물을 길었다고 하던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지.”

“수도꼭지?”

“그렇소. 그 또한 누군가의 축복이 깃들었지.”

헤파이토 씨는 굳이 누군가의 축복이라는 말을 하며 내게 눈을 찡긋했다.

하여간, 못 말린다니까.

“뭐, 그 외에도 알려주고 싶은 건 많소만. 그건 아이넬이 알려줄 테니 넘어가기로 하고. 2층부터는 잠을 잘 수 있는 장소라오. 한번 가 보시는 게 어떻소?”

헤파이토 씨가 거실의 한쪽에 세워진 계단을 가리켰다.

캬, 저 계단.

지구라면야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거니와.

늘 차를 타거나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를 애용했던 현대인에게 있어서는 볼 때마다 숨이 턱턱 막혀오는 것이 바로 계단이었다.

근데, 여기서 이렇게 계단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여기도 나보다는 아이넬이 직접 설명을 해줄 테니, 간단하게 말하자면······ 2층은 넬슨 씨와 아일라 씨의 방이 있고. 3층에는 아이넬, 록시, 루나, 큐우의 방이 있소. 혹시 몰라 여분의 방도 4개가 있으니 손님이 오면 그곳에 머물 수 있을 거요. 아, 그리고 옥상이라는 곳이 있는데······.”

우리는 헤파이토 씨의 설명을 들으며 열심히 집을 구경했다.

집 구석구석.

전부 다 신기하고 아름다웠지만, 그중에서도 우리가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 장소가 있었다.

다름 아닌 화장실과 욕실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두 장소는 내가 가장 공을 들였고, 꼼꼼하게 설계했다.

“이건 변기라는 거요.”

마찬가지로 마블롱이라는 재료로 만든 변기에는 특별히 제작한 비데까지 달려있었다.

“사용법은 아이넬에게 들으면 될 거고······. 자, 다음으로 이쪽 문을 열면. 자, 여기가 욕실이지. 그리고 저건 욕조라는 거요.”

헤파이토 씨가 욕실의 중앙에 떡 하니 설치된 대형 욕조를 가리켰다.

그 크기가 어찌나 컸던지, 우리 가족 모두가 들어가도 남을 정도였다.

“자, 여기 아까 넬슨 씨가 봤던 수도꼭지가 있소. 여기 파란색으로 돌리면 차가운 물이 나오고, 빨간색으로 돌리면 뜨거운 물이 나오지.”

헤파이토 씨는 아예 물을 직접 틀었다.

콸콸콸!

수도꼭지에서는 뜨거운 물이 시원스레 쏟아지며 뿌연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