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90화 (88/159)

90. 소년기(72) - #숟가락과 젓가락

“그렇지! 그렇게 하면 돼.”

록시는 자기 키보다 큰 주걱으로 열심히 반죽을 휘저었다. 새하얀 반죽에 소용돌이가 생기며 식자재들이 고루고루 섞였다.

“예쁘다! 어······ 알······.”

“알록달록?”

“응! 알록달록하다!”

귀여운 녀석.

앙증맞은 손으로 열심히 반죽을 휘젓는 록시를 보며 흐뭇하게 웃은 나는 농도를 확인했다.

약간 묽은 것 같아 뮐가루와 식자재를 조금 더 넣었다.

“좋아, 이 정도면 농도는 완벽. 록시가 반죽하는 동안 나는 부칠 준비 해야겠네.”

“응!”

힘차게 대답하는 록시를 뒤로하고 대형 프라이팬의 스위치를 작동시켰다.

금세 후끈한 열이 오르며 팬이 데워졌다. 그 위에 기름을 두르고 넓게 퍼트렸다.

“자, 이제는 부칠 일만 남았네.”

나는 마찬가지로 조금 크게 제작한 국자로 반죽을 떠 프라이팬 위에 부었다.

치이이이익!

달궈진 기름에 닿은 반죽이 기름을 흡수하며 맛있는 소리를 냈다.

둥글게 뭉친 반죽을 국자로 누르며 얇게 폈다. 알록달록, 고기와 채소가 고르게 퍼지며 한층 더 맛깔스러워졌다.

“우아아아!”

반죽이 익으며 나는 특유의 고소한 냄새에 록시의 눈이 초롱초롱 빛냈다.

다른 비스테르들도 조금씩 프라이팬으로 다가오더니 자글자글 익어가는 부침개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나는 대형 프라이팬과 세트로 제작한 대형 뒤집개를 들어 부침개 밑에 살살 집어넣었다.

이거, 용량이 크니까 뒤집는 것도 일이구만.

그렇다고 살살 뒤집자니, 그건 또 맛이 안 산단 말이지.

침착하게 뒤집개를 고정한 나는 마치 낚싯대를 채듯, 뒤집개를 휙 들어 올렸다.

후웅, 하고 부침개가 공중으로 날았다. 이를 지켜보던 모든 비스테르들의 고개 또한 덩달아 위로 올라갔다.

착!

마침내 공중에서 회전한 부침개가 프라이팬 위에 안착했다.

“나도, 나도! 나도 하고 한다! 록시도 한다!”

록시는 내 화려한 퍼포먼스에 홀렸는지,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럼 록시가 부쳐볼까?”

“응! 록시가 부친다!”

록시는 부친다는 게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도 냉큼 하겠다고 나섰다.

“그럼 방금 내가 했던 것처럼 부침개를 만들면 돼.”

“응!”

힘차게 대답한 록시가 국자로 반죽을 떠 프라이팬에 올렸다.

“좋아, 거기서 국자로 살살 피는 거야.”

“알았다!”

록시가 국자의 둥근 부분을 이용해서 반죽을 폈다.

“어······?”

록시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도 그럴 게, 록시가 만든 반죽은 두께가 제각각이었다.

채소와 고기도 한쪽에 몰렸고, 군데군데 구멍이 생겨 여러모로 볼품없는 모양새였다.

“못생겼다!”

그래도 처음이었으니 이 정도면 양호한 편이었지만, 록시는 자기가 만든 부침개의 모양새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입술을 삐죽였다.

“그럼 반죽을 조금 더 떠서 부어도 돼.”

“응!”

록시가 몸을 돌리더니 반죽이 담긴 대야에 국자를 푹, 담갔다.

그때였다.

“앗!”

하필이면 돌부리에 걸린 록시가 휘청거리더니, 그대로 나자빠졌고, 들고 있던 국자가 허공을 날았다.

얄궂게도 국자가 날아간 방향에는 한 소녀가 서 있었다.

다름 아닌 소녀 베아드인 미아였다.

멀뚱멀뚱 서 있던 미아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국자를 보더니 기겁했다.

“어어어어!”

당황한 목소리도 잠시였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인지라 미처 피하지 못한 미아는 그대로 반죽을 뒤집어썼다.

“······.”

졸지에 반죽으로 범벅이 된 미아가 울상을 지었다.

그때였다.

“푸훗!”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라피는 친구의 몰골을 보더니 웃어버렸다.

아차 싶었던 라피가 서둘러 자신의 입을 막았지만, 이미 그녀의 웃음소리는 모두에게 전해졌다.

웃음은 그 어떤 바이러스보다 전염성이 강하다고 했던가.

“푸하핫! 미아 봐!”

“얼굴이 하얗게 됐어!”

“으하핫!”

삽시간에 퍼져나간 웃음 바이러스에 모두가 배를 잡고 웃었다.

그 모습에 나도 무심코 웃어버린 나는 록시에게 수건을 쥐여줬다.

“자, 이거 갖다줘.”

“응.”

록시는 자신의 실수에 풀이 죽었는지, 조심스럽게 미아에게 수건을 내밀었다.

“미, 미안하다!”

록시가 서둘러 사과하자, 벙찐 얼굴이었던 미아도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괜찮아! 그리고, 이거!”

미아가 바닥에 떨어진 국자를 주워 록시에게 건넸다. 이에 록시가 고개를 저었다.

“미아가 한다!”

“내가?”

“응!”

“어어!”

얼굴의 반죽을 닦은 미아는 얼떨결에 록시의 손에 이끌려 반죽을 뜨고는 그대로 프라이팬 앞에 섰다.

“반죽! 둥글게 편다!

“응? 아, 응!”

미아가 반죽을 프라이팬에 올렸다.

록시와 내가 하는 걸 본 덕분인지 금세 반죽을 폈다.

미아는 손재주가 있었는지 두께도 일정한 편이었고, 재료들도 고르게 퍼졌다.

반죽이 익어가고, 록시가 나를 쳐다봤다.

“응. 뒤집어도 돼.”

내 말에 록시가 뒤집개를 쥐더니, 미아의 옆에 섰다.

“뒤집으면 된다!”

“으, 응.”

록시의 외침에 미아가 부침개 밑에 뒤집개를 밀어 넣었다.

힘 하나는 최고라는 베아드 부족답게 별 어려움 없이 부침개를 들었다.

“후우!”

미아가 크게 숨을 들이마시더니 그대로 팔을 위로 들었다. 뒤집개에 걸려있던 부침개가 공중을 날아 빙글 회전하더니, 프라이팬의 끝자락에 착, 떨어졌다.

비록 부침개의 끝부분이 접히긴 했지만, 저 정도면 아주 훌륭했다.

“성공이다! 성공이다!”

“으응! 서, 성공이다!”

록시와 미아가 서로룰 부둥켜안으며 기뻐했다.

저번에 헤파이토 씨가 농사일을 도우면서 뿌듯해하던 게 생각난다.

당시에도 약간 체험학습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도 그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역시 록시의 저 적극성과 행동력은 모두에게 활기를 불어넣어 준단 말이지.

그뿐만 아니다.

비록 실수를 하고 풀이 죽었지만, 거기서 끝내는 게 아니라 곧바로 자신의 진심을 담아 사과했다.

게다가 록시의 큰 장점인 친화력을 발휘해 미아와 함께 부침개를 만들었다.

이건 누군가에게 배워서 될 것도, 시켜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그저 록시가 워낙 순수하고 가식이 없기에 비로소 나오는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이거 학교 수업에 요리도 넣으면 좋겠네.

담당 선생님이라면 역시 미슐레 아주머니가 제격일 것 같은데.

특히 미슐레 아주머니는 나와 르네를 가르친 경험도 있었으니 더할 나위 없는 적임자였다.

미아의 성공에 그 누구보다 기뻐하던 록시가 퍼뜩 몸을 돌리더니, 이번에는 가장 가까이서 이를 지켜보던 라피의 손을 잡았다.

그녀 또한 미아의 도전에 덩달아 긴장하고 있었는지,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혀있었다.

“라피 차례다!”

“나, 나도 해도 돼?”

“응! 라피도 한다! 다 같이 한다!”

은근히 기뻐 보이는 게 라피도 부침개 만드는 걸 해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아예 록시한테 맡겨도 괜찮겠는데?

“그럼, 나는 다른 거 하고 있을 테니까, 록시가 친구들이랑 같이 부침개 부칠래?”

“응! 록시랑 친구가 한다!”

“그래, 그럼 부탁할까? 아, 기름 뜨거우니까 안 다치게 조심하고.”

“응!”

좋아.

록시에게 부침개를 맡긴 나는 모두에게 나눠 줄 식기 도구를 챙겨왔다.

“위즈 씨.”

“네!”

“이것 좀 나눠줄래요?”

“이건······.”

“이건 접시고. 이건 숟가락이랑 젓가락이에요. 처음 보는 거죠?”

“예. 처음 봐요.”

그렇겠지.

비스테르의 외형은 인간과 무척이나 흡사하지만, 그들의 생활과 내면은 마수에 더 가깝다. 당장 록시와 루나만 하더라도 손으로 잡고 뜯는 걸 선호한다.

옛말에 음식은 손맛이라는 말마따나.

그냥 손으로 잡고 뜯어도 상관없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만질 수 있는 요리에 한해서다.

지금도 록시와 비스테르들이 열심히 부치는 부침개는 물론.

앞으로 마을에서 접하게 될 음식들은 대다수가 뜨겁다.

거기다 국이나 탕, 찌개처럼 아예 숟가락이 아니면 먹을 수 없는 음식들도 있다.

비스테르의 손이 강철로 만들어진 게 아닌 이상에야 대번에 화상을 입을 터.

지금부터라도 식기에 익숙해지는 편이 서로에게 편하고 좋으리라.

더욱이 나는 위즈에게 포크와 나이프가 아닌 젓가락과 숟가락을 건넸다.

본래 마을에서는 포크와 나이프를 주로 쓴다.

근데, 나는 아직 전생의 습관이 고스란히 남아있는지라 숟가락과 젓가락을 애용한다.

언제였던가.

내가 무심코 던진 말이 유행어처럼 번진 적이 있다.

게다가 내가 만드는 도구는 마을에서 유행하고 또, 빠르게 번지며 사람들의 일상에 스며든다.

작금에는 이게 너무나도 당연했으며,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그래서일까.

내가 젓가락을 다루는 모습을 본 엄마랑 아빠는 그게 편해 보였는지, 직접 써보고 싶다 하셨고, 근래에도 어색하게나마 젓가락을 사용하고 계신다.

비단 엄마랑 아빠만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 대다수가 수저 세트를 갖고 있다.

하물며 데커드 할아버지랑 레비아 선생님. 거기다 루나와 록시조차 젓가락을 쓰고 있으니 말 다했지.

다들 서투르게나마 젓가락을 쓰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기분이 참 묘하다고 해야 할까.

지구에서도 젓가락을 쓰는 외국인을 보면 그 모습이 재미있으면서도 왠지 뿌듯했는데, 지금의 내가 그런 감정이었다.

더불어 데커드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던 것처럼 우리 마을의 역사는 무척이나 짧다.

따라서 우리 마을에서는 이렇다 할 문화가 없다.

이제 곧 축제가 열리고 다양한 종족들이 우리 마을을 방문한다.

그들과의 관계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고, 각 종족만의 문화를 교류하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나는 그들이 우리 마을을 방문했을 때 즐길 거리가 있었으면 좋겠고, 나중에 또다시 오고 싶은 마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도리아 아주머니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고, 실제로도 축제 얘기를 하며 이런 것들이 언급되기도 했다.

거기서 나는 내 첫 번째 고향이었던 대한민국을 떠올렸다.

나야 현대인이었거니와 역사에 대해서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것들이 뭔지는 알고 있다.

그중에서도 마을 사람들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되, 우리 마을의 상징이 될 수 있는 문화들을 하나 둘 전파하기로 했다.

젓가락과 숟가락이 그 시작이었다.

전파라고 하니까 왠지 사신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아무렴 어떨까.

모두가 좋아하고 또 즐길 수 있다면 만사 오케이니까.

아직 정기회의를 통해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때가 되면 레비아 선생님이 또 나서 주실 테니 걱정은 없었다.

“자, 이건 이렇게 잡으면 돼요.”

나는 위즈 씨의 손에 젓가락을 쥐여줬다.

역시나 처음 접하는 문문이라서 그런지 그녀의 손가락은 뻣뻣했다.

심지어 갈피를 잃은 젓가락은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가며 어지럽게 춤췄다.

“어, 어렵습니다.”

“네. 처음에는 아주 어려울 거예요, 그래도 며칠만 연습하면 금방 익숙해질 거예요. 그때까지만 열심히 연습하면 돼요. 아, 이제 다 된 거 같네요.”

내가 위즈 씨에게 수저 사용법을 알려주는 사이 반죽이 동이 났다.

“보자!”

나는 양면이 노릇노릇하게 익은 부침개를 접시에 담았다.

젓가락으로 부침개를 찢어 입으로 가져갔다.

바삭!

갈색 빛을 띠는 부침개는 갓 튀겨낸 과자처럼 바삭했다. 더불어 기름의 고소한 맛과 고기, 채소가 어우러지며 환상적인 식감을 자랑했다.

한마디로,

“이야, 진짜 맛있네.”

“대장······.”

“아. 미안. 배고프지? 자, 모두 접시 하나씩 들고 이쪽으로 오세요!”

나는 허둥지둥 줄을 서는 비스테르들에게 부침개를 나눠줬다.

역시나 제일 먼저 달려온 록시가 부침개를 받자마자 한 입 베어 물었다.

“우아아! 맛있다! 대장! 이거 맛있다!”

록시는 부침개가 마음에 들었는지 기쁘게 웃었다.

“맛있지?”

“응! 맛있다! 부침개 좋다!”

“다행이네. 아, 나는 잠깐 다녀올 곳이 있으니까 먼저 먹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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