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86화 (84/159)

86. 소년기(68) - #뒷정리

“긴장할 거 없어요.”

“네? 네네!”

내 격려에 소녀 레서드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허둥지둥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긴장되는 건 여전했는지 둥글납작한 귀는 반으로 접혀있었다.

내가 손짓하자 소녀 레서드가 고개를 들었고, 오렌지빛 머리칼 사이로 목걸이가 드러났다.

나는 템페스트로 톡, 목걸이를 때렸다. 그와 동시에 잠금이 풀리며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이것도 하다 보니까 느네.

“아!”

소녀 레서드가 자신의 목을 매만졌다.

그녀의 목에는 아직 목걸이를 차고 있던 자국이 남아있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는 듯 그녀가 해맑게 웃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소녀 레서드는 통통한 꼬리를 흔들며 내게 꾸벅 인사했다.

“뭘요. 자, 이걸로 끝.”

그렇게 마지막 목걸이까지 해제한 나는 몸을 돌렸다.

“난리 났네.”

나는 뒤쪽을 보며 웃었다.

이산가족 상봉의 현장이 이러할까.

“흐어어엉!”

“다행이야! 다행이야!”

공터에 모인 비스테르들은 하나같이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거기다 평소 알고 지냈던 친구를 만난 이들은 아예 부둥켜안은 채 목 놓아 울고 있었다.

청년 카제르 또한 부랴부랴 자신의 친구를 발견하고는 서둘러 그쪽으로 달려갔다.

“······괜찮나?”

눈시울이 붉어진 청년 카제르의 말에 친구가 픽 웃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지쳐 보였지만, 그 미소에는 반가움이 가득 담겨있었다.

“보면 알잖아? 서 있는 것만으로도 힘들어 죽겠다고.”

“······미안하다.”

청년 카제르가 친구의 머리를 쳐다봤다. 그곳에는 있어야 할 뿔이 없었다. 잡혀갈 당시 억지로 잘라낸 모양이다.

“아, 뿔? 이건 신경 쓰지 마라. 오히려 가볍고 좋던데. 그리고 뿔이라면 다시 자라잖아?”

“그래도······.”

청년 카제르의 반응에 친구의 미소가 짙어졌다.

“됐고, 미안하면 부축이라도 좀 해달라고.”

장난기 어린 그의 대꾸에는 청년 카제르를 향한 우정이 느껴졌다.

청년 카제르도 이를 느꼈음일까.

그가 손등으로 눈가를 스윽 닦더니, 자신의 어깨에 친구의 팔을 둘렀다.

“잘 됐다.”

다들 울고 있지만, 저것이 기쁨의 눈물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내 혼잣말이 루나가 슬그머니 내 옷깃을 잡았다.

내색은 안 하지만, 루나도 나와 비슷한 마음인 것 같았다.

나는 루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눈으로는 눈물바다가 된 공터를 가만히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자니, 누군가가 내게 다가왔다.

머리는 산발이었고, 얼굴에 독특한 무늬가 그려진 여성이었다.

팔과 다리가 유독 길쭉했으며, 허리에는 얇은 꼬리가 달려 있었다.

얼굴에 무늬 때문인지 뭔가 독특하다고 해야 할까.

어딘가 몽환적이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먼키 부족이야.”

“먼키?”

아, 기억난다.

어제 청년 카제르한테 이곳에 대한 설명을 듣던 중 이곳에 있는 비스테르를 이끄는 사람이 있다는 걸 들었다.

그 사람이 먼키 부족의 여성이고, 지금은 동굴에 갇혀 있다고 했었지.

가장 오랫동안 동굴에 갇혀있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응. 늙은 캣시가 그랬어. 비스테르 중에서도 가장 지혜로운 부족이래.”

“그래?”

가장 지혜로운 부족이란 말이지.

내 앞에 선 먼키 부족의 여성이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세이비오르님께 인사드립니다.”

“세이비오르······요?”

세이비오르.

의미 그대로 쓰자면 광명 혹은 빛을 퍼트리는 자였다.

이 또한 지구의 표현으로 번역하자면, 구원자 내지 구세주라고 해석할 수 있었다.

생전 처음 듣는 호칭에 고개를 갸웃한 나는 슬쩍 루나를 쳐다봤다. 그녀도 세이비오르가 뭔지 잘 모르는지 고개를 저었다.

“몰라.”

우리의 반응을 본 여성 먼키가 아차 싶은 얼굴로 다시금 허리를 숙였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이렇게 세이비오르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말투나 행동이 몹시도 조심스러운 게 파메르를 언급할 때의 도리아 아주머니가 떠오른다.

설마하니 뭔가 단단히 착각이라도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아뇨, 괜찮아요. 근데, 세이비오르라는 건 뭔가요?”

내 물음에 도리어 당황한 쪽은 여성 먼키였다. 그녀는 내가 이런 질문을 던질 줄 몰랐는지, 눈을 크게 떴다.

그것도 잠시였다.

그녀는 뭔가를 이해했다는 듯 작게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세이비오르 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아아아.”

그러니까, 비스테르에게 자유를 되찾아준 이에게 붙이는 호칭 비슷한 건가 보다.

뭐, 나쁜 뜻으로 붙인 것도 아니니까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매번 세이비오르 님이라는 호칭을 듣기엔 부담스럽단 말이지.

“편하게 아이넬이라고 불러주세요.”

“세이······. 아이넬 님의 뜻이 그러하다면.”

내 말에 여성 먼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님도 빼도 괜찮은데요.”

“예, 아이넬 님.”

“그러니까 님을 빼는 게 괜찮은······.”

“예, 아이넬 님.”

“······.”

안 통한다.

비스테르는 겉모습이나 평소 언행을 보면 참 순수하고 착한데, 은근히 고집이 센 것 같단 말이지.

아니, 비스테르만이 아니구나. 지금까지 만난 모든 종족들은 저마다 고집과 주관이 뚜렷했다.

“편한 대로 하세요.”

내가 항복을 선언하자 여성 먼키가 재차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이게 감사를 받을 만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뭐 상관없겠지.

“자, 이제 슬슬 정리부터 해볼까.”

마음 같아서야 이대로 시간을 주고 싶었지만, 이제 뒷수습을 마치고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거기다 비스테르들에게 반드시 물어봐야 할 것도 있었고.

그전에 녀석들부터 데려와야겠지.

“어디 가?”

“응? 아, 잠깐 두고 온 게 있어서.”

“같이 가.”

루나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래, 그래. 가자.”

나는 루나와 함께 동굴로 들어갔다.

“오늘 고생했는데, 뭐 먹고 싶은 건 있어?”

“파이가 좋아.”

“오, 그게 마음에 들었구나?”

루나의 입에서 좋다는 말이 나왔다는 건 그냥 마음에 든 게 아니라 아예 푹 빠졌다는 이야기였다.

“응. 맛있어.”

“그럼 또 해줘야겠네. 아프루는 먹어봤으니까, 또 다른 걸 넣어봐야겠네.”

두런두런, 잡담을 나누며 걷던 중 마침내 달걀귀신이 묶인 곳에 도착했다.

“잘 있었네.”

꼼꼼하게 묶은 것도 묶은 거지만, 달걀귀신은 아직도 잠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일단 얘 데리고······.”

나는 달걀귀신의 발목을 잡은 채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최종적으로 도착한 장소는 비스테르가 갇혀있던 공동이었다.

공동에 첫발을 디딘 루나가 눈썹을 찡그렸다.

“기분 나쁘게 생겼어.”

그녀의 시선 끝에는 거대한 석상이 있었다.

“동감이야.”

안 그래도 내가 이곳을 다시 찾아온 이유는 저 석상 때문이었다.

그냥 평범한 석상이라면 모를까.

저 안에는 강력한 마기가 흐른다.

그 말은 저 석상에는 필시 무언가가 숨겨져 있다는 의미였다.

나아가 저 석상에서 느껴지는 흐름은 소형 석상과 비슷하다. 그 말은 저것도 고렘이라는 이야기다.

“저걸 어떻게 해야 한다.”

“그냥 부수면 안 돼?”

루나의 답에 나도 모르게 픽 웃었다.

“내 말이 그거야.”

보아하니 재질은 아까 내가 싸웠던 소형 석상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냥 템페스트로 후려치면 손쉽게 부술 수 있을 터.

어떻게 보면 루나의 말이 가장 간단하면서도 명료한 방법이었다.

근데, 내가 선뜻 석상을 부수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저 석상을 부쉈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만약 저 안에 폭탄이라도 들어있으면?”

이곳은 이세계이자 내가 익히 아는 폭탄이라는 게 없는 세상이라는 건 단언할 수 있다.

하지만······.

“폭발이라는 현상은 있다는 거지.”

마법은 과정이 아닌 결과를 이끌어내는 힘이다.

화약이나 불이 없더라도 마법이라면 어지간한 폭탄 이상의 화력을 내는 것도 가능하다.

게다가 움직이는 석상을 만들었다는 건 마법 혹은 그와 비슷한 힘을 다룰 줄 안다는 이야기.

딱 봐도 저 석상은 전투용이 아니다.

절에 있는 불상처럼 모시고 제사를 올리기 위해 만든 거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였으니, 진짜로 무언가 장치가 되어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거기다 마왕이 쓰는 마법이라면······위험할 게 뻔하겠지.”

어떻게 보면 고정관념이겠지만, 모른 채 당하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두 번째 이유는······.

“고렘이 너무 탐난단 말이지.”

그렇다.

순전히 내 개인적인 욕심이었는데, 나는 고렘을 제작하는 방법이 엄청 궁금했다.

가능하다면 진짜 마왕을 직접 만나서 물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이래봬도 어렸을 때부터 만화영화를 참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변신 합체 로봇은 모든 소년들의 로망이었으며, 그런 로봇을 조종하는 파일럿은 한 번쯤은 갖게 되는 꿈이었고.

뭐, 고렘이 변신과 합체를 할 수 있을진 모를지언정, 로봇과 비슷했으니까.

거기다 고렘이라면 지칠 이유도 없거니와 24시간 가동을 할 수 있다면 궂은일은 물론, 마을을 지키는 일에도 사용할 수 있었다.

나아가 내가 가진 지식과 능력을 활용한다면?

지구에서도 아직 개발 단계인 인공지능 로봇이 바로 이곳에서 탄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이걸 그냥 때려 부수는 건 너무 아깝단 말이지.

그렇다고 당장 가져가자니 이걸 옮길 방법도 없었다.

“일단······. 이대로 두자.”

보아하니 이 석상을 움직이려면 달걀귀신이 갖고 있던 지팡이가 있어야 할 터.

“잠깐만.”

“응.”

나는 제단 위에 있는 물건들을 한곳에 모은 나는 석상을 중심으로 커다란 마법진을 그렸다. 다음으로 그 주변의 땅을 파고 그 안에 마나 배터리를 넣었다.

이윽고 마법진이 작동했다.

나는 손으로 허공을 두드렸다.

퉁퉁!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손이 닿자 둔탁한 소리가 공동을 울렸다.

“됐다.”

방금 내가 설치한 마법은 이름 하야 마나 배리어다.

본래 레비아 선생님의 은신처를 숨길 때 사용하던 마법을 개량해서 만든 아이넬표 마법이었다.

그 단단함은 강철 이상이었고, 혹여나 깨지더라도 마나배터리가 있는 이상 순식간에 복구된다.

그래 봐야 활용할 곳이 없어서 우산 대용으로나 쓰이던 마법이지만 말이야.

거기다 이 근처에 누군가가 접근해서 마법진의 반경에 들어가는 순간, 잠이 드는 마법진도 설치했다.

“자, 이제 가자. 아, 루나 혹시 이것 좀 부탁해도 될까?”

나는 달걀귀신과 마찬가지로 잠든 두 감시자를 가리켰다.

“응.”

고개를 끄덕인 루나가 감시자들의 머리를 움켜쥐더니, 그대로 질질 끌고 갔다.

하필 잡아도 머리끄덩이를 잡다니······. 저러다 나중에 머리털 다 뽑히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루나도 은근히 무서운 아이였구나.

뭐, 내 머리 아니니까 상관없겠지.

부피가 작은 물건들을 가방에 넣은 나는 루나와 함께 동굴을 빠져나왔다.

“응?”

바깥으로 나온 나는 멀뚱멀뚱 공터를 쳐다봤다.

어째선지 모든 비스테르가 한곳에 옹기종기 모여있었는데, 그들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한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니, 우리는 반드시 그분을 지켜야만 한다는 겁니다!”

아까 내게 인사를 했던 여성 먼키였다.

그녀는 웅변대회에 참가한 사람처럼 열정적으로 외치고 있었다.

아니, 웅변대회라기보다는 꼭 방문판매원과 그의 말에 홀린 사람들 같았다.

저러다 지갑이라도 꺼낼 기센데.

뭐, 원래부터 이곳의 리더 같은 존재였으니 이상할 건 없었다.

그나저나 무슨 얘기를 저렇게 하는 거지?

호기심이 생겨 슬그머니 다가가던 찰나였다.

“앗! 오셨다!”

라핀 소녀가 내 기척을 감지하고는 퍼뜩 외쳤다. 그와 동시에 모든 비스테르들이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딴청을 부리기 시작했다.

뭔가 따돌림당하는 느낌이 드는 건 내 기분 탓일까?

에이, 아니겠지.

애써 잡생각을 떨친 나는 헛기침을 하며 손뼉을 쳤다.

“잠깐, 주목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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