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소년기(67) - #탈출!
달걀귀신의 방에서 나온 내가 향한 곳은 중간에 지나쳤던 갈래 길이었다.
내가 나온 방향이 달걀귀신이 있던 방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출구다.
내 목적지는 왼쪽이었다. 그곳으로 쭉 가면 비스테르가 갇혀있는 장소가 나온다.
“얘는 여기다 두고 가야겠네.”
딱히 무거운 건 아니지만, 계속 끌고 다니려니 거추장스러웠다.
나는 구석에 달걀귀신을 내려놨다.
“영화에서 보면 정신을 차리고 또 뭔가를 하던데 말이야.”
미안하지만, 나는 영화 속 주인공이 아니다.
애당초 마법에서 깨어날 가능성은 희박했으니까.
당장 이곳으로 질질 끌고 오는 동안에도 잠꼬대는커녕 눈 하나 꿈쩍하지 않을 정도로 깊게 잠들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다.
녀석이 정신을 차렸을 때를 대비해서 아예 사지를 꽁꽁 묶다 못해 큼지막한 바위에 고정했다.
“좋아.”
이 정도면 탈출의 명수라 일컫는 통 아저씨라고 한들 얌전하게 기다릴 수밖엔 없으리라.
나는 작게 들려오는 소리를 길잡이 삼아 동굴을 걸었다.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아까 들었던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진다.
웅얼웅얼.
“흐음, 가까이서 들으니 더 기괴하네.”
게다가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는 게 멀리서 들을 때랑 별반 차이가 없었다.
이윽고 동굴에서도 제일 깊숙한 곳에 당도하자, 널따란 공간이 나타났다.
나는 슬그머니 벽에 붙어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여기도 감시자가 있구나.”
하기야.
가장 비밀스러운 장소인 만큼 감시자가 있는 게 당연하겠지.
이번에 마주한 감시자 또한 오가른이었고, 숫자는 둘이었다.
“어디 보자······.”
나는 허리에 찬 파우치를 열었다.
그곳에는 내가 미리 만들어 둔 코인들이 가지런하게 꽂혀있었다.
“이번에도 수면으로 가야 하나.”
비스테르가 갇혀 있는 공동 내부에도 감시자가 있을 가능성이 있었으니, 가능한 조용하게 처리하는 게 좋겠지.
나는 달걀귀신에게 사용했던 매직 코인을 꺼냈다.
표면에는 작게 수면이라는 단어가 한글로 적혀있었다.
“원거리니까, 그걸 써봐야겠네.”
달걀귀신이라 바로 코앞에 있었거니와 한 명이었다.
그래서 그냥 매직 코인만 사용해도 상관이 없었지만, 이번엔 거리도 있고 숫자도 둘이다.
마법의 거리도 거리지만 범위도 함께 넓혀야만 했다.
나는 파우치에서 또 다른 물건을 꺼냈다.
이번에 꺼낸 건 매직 코인이 아니었다.
언뜻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조금 더 컸으며 매직 코인을 끼울 수 있는 홈이 파여 있었다.
쉽게 말해서 보조 도구였다.
코인의 크기가 워낙 작았거니와 급하게 만들다 보니 두개 이상의 마법진을 새길 수 없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사거리와 범위를 넓히게끔 보조 도구를 제작한 것이다.
딸깍.
나는 홈에 매직 코인을 밀어 넣었다.
“좋아.”
준비를 마친 나는 매직 코인을 튕겼다.
가볍게 휘두른 템페스트에 부딪힌 매직 코인이 공중을 날았다.
탁!
바닥에 떨어진 매직 코인이 데구루루, 굴러갔다.
“이봐.”
감시자 중 한 명이 인상을 쓰며 동료를 불렀다.
“크흥······. 무슨 일인데?”
목소리가 잠긴 걸 보아하니 은근슬쩍 자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무렴.
말이 감시지 그냥 멍하니 서 있으려니 졸릴 만도 하리라.
“방금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았어?”
“소리?”
“그래. 방금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잘못 들었겠지.
“아니라니······.”
오가른이 말을 멈추더니 고개를 쭉 내밀었다.
“저거 보라고. 뭔가 반짝이잖아.”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매직 코인이 있었다. 이내 오가른이 뚜벅뚜벅 걸어 매직 코인을 주웠다.
“이게 뭐지? 원래 떨어져 있었던 건가?”
“그거 함부로 만지면 안 되는 거 아니야? 혹시 그분의 물건이라면······.”
“그, 그런가? 그래도 그냥 여기에 뒀다가 밟기라도 하면······.”
두 오가른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이, 이봐! 이, 이거 갑자기 빛이 나는데?”
“그러니까, 함부로 만지면······.”
거기까지였다.
감시자들을 지켜보던 나는 꽉 붙잡고 있던 마나의 흐름을 놓았다.
그와 동시에 정체되어 있던 마나가 선을 따라 흘러가며 매직 코인에 흡수되기 시작했다.
이내 매직 코인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두 오가른의 커다란 동체가 그대로 허물어졌다.
드르렁, 컥!
성공이다.
두 감시자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으며 요란하게 코 고는 소리만이 적막한 동굴을 울렸다.
잠든 감시자의 곁으로 온 나는 매직 코인을 주웠다.
“역시 원격조종이 제일 편하다니까.”
본래는 타이머 기능을 넣으려고 했다.
근데, 내가 어디의 예언가도 아니고.
막상 타이머를 넣으려니 내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을 우려가 상당히 높았다.
그런 내 머릿속을 스치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마나의 선.
나와 템페스트 사이에서는 마나로 이어진 선이 존재한다.
곧장 실험에 돌입한 나는 이 마나의 선을 매직 코인에 연결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결과 나는 마나의 선을 이용해 원하는 타이밍에 마법진을 작동시킬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달걀귀신과 마찬가지로 두 감시자를 구석에 치웠다.
“자, 이제 가볼까.”
나는 있던 입구 앞에 섰다.
안에서는 아직까지도 기괴한 주문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까는 상황이 상황인지라 템페스트로 문을 때려 부쉈지만, 앞서 말했듯 안에 감시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최대한 은밀하게 진입하는 게 좋겠지.
나아가 한 가지 시험해보고 싶은 것도 있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문을 쓸었다.
눈을 감고 집중하자 마기의 흐름이 보였다.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것이 전자기기의 회로를 똑 닮아있었다.
“목걸이랑 구조가 비슷하구나.”
그렇다면 문을 해제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은데.
나는 템페스트를 문에 가져다 댔다.
마나를 끌어올려 조금씩 문으로 흘려보냈다.
갑작스러운 마나의 침입에 마기가 저항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밀고 들어오자 주춤하더니 서서히 뒤로 물러났다.
좋아.
나는 이 기세를 몰아 더욱더 강하게 마나를 밀어 넣었다. 마기가 도망치지 못하게끔 퇴로를 차단하며 궁지로 밀어붙였다. 끝끝내 마기가 흐르던 문은 내 마나에 잠식당하기 시작했다.
마치 컴퓨터를 해킹하여 시스템을 장악해가는 바이러스가 된 것 같네.
이제부터가 중요했다.
집중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마나의 흐름을 읽어가던 중이었다.
“이거다.”
마침내 잠금장치를 발견했다.
나는 마나를 제어하며 단단하게 묶인 잠금장치를 해제했다.
딸깍.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내 손가락이 허전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눈을 뜨자 서서히 문이 열리고 있었다.
일단 감시자가 없다는 것부터 확인한 나는 조심스레 안으로 진입했다.
“음······.”
나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나는 미간을 좁혔다.
공동은 크게 넓진 않았다.
자연적으로 생겼는지 벽은 울퉁불퉁했고 천장에는 종유석으로 빽빽했다.
그중에서도 유독 내 시선을 사로잡는 게 있었다.
거대한 석상이었다.
그 크기는 얼추 자얀트와 비슷했으며 3쌍의 팔이 달려있었다.
거기다 양쪽 관자놀이에는 커다란 뿔이 돋아나 있었고, 등에도 박쥐를 연상케 하는 날개가 달려있었다. 허리 밑으로는 길고 뾰족한 꼬리도 달려있었다.
데바······인 건가?
물론 레비아 선생님은 나처럼 팔이 한 쌍이며 날개도, 꼬리도 없다.
하지만 뿔의 생김새나 전체적인 이미지가 데바랑 비슷한 느낌이었다.
뿐만 아니었다.
저 석상 계속해서 뭔가를 흡수하고 있었다.
저걸 뭐라고 해야 할까.
일단 내가 쓰는 마나의 경우는 청량한 느낌이다. 템페스트를 통해 흘러나오는 색깔만 보더라도 은은한 하늘색을 띤다.
그리고 마기는 끈적하며 께름칙하며, 짙은 검은색이다.
반면에 석상으로 흘러 들어가는 마나는 피처럼 붉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생명력이라고 하면 될까.
그냥 느낌적인 느낌에 불과하지만 그만큼 강한 힘이 응축되어 있다는 건 확신할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가칭 생명력의 근원은 비스테르였다.
그들은 문이 열렸다는 것도 모르는지, 그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나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비스테르에게 다가갔다.
동글납작한 귀와, 오동통한 꼬리를 보아하니 레서드라 불리는 부족이었다.
전체적으로 귀여운 인상의 소녀였는데, 피골이 상접한 게 꽤 오랫동안 이곳에 갇혀있었던 모양이다.
“저기요?”
내 목소리에도 소녀 레서드는 반응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고 하는 게 맞으려나.
초점이 몽롱한 게 꼭 환각 상태에 빠진 사람 같았으니까.
비단 소녀 레서드만이 아니라 모든 비스테르가 비슷한 모습이었다.
“원인이라면······ 저거겠지.”
석상 앞으로는 널따란 제단으로 추정되는 단상이 있었으며 그 위에는 작은 조각상들이 늘어져 있었다.
그 옆으로는 용도를 알 수 없는 물건들을 비롯하여 녹색 연기를 뿜어내는 향이 타오르고 있었다.
“냄새는 좋은데.”
잘 익은 복숭아 냄새가 났다. 거기다 맡으면 맡을수록 몸에 힘이 풀린다고 해야 할까. 마치 아로마 테라피를 받는 것처럼 심신의 긴장이 촤르르르, 풀리는 기분이었다.
아마도 저 연기의 효능이겠지.
나는 손을 휘휘 저어 내게로 다가오는 연기를 날려 보내며, 향을 껐다.
“이건 킵.”
몸에 해롭다기보다는 그냥 심신을 안정시켜주는 효능이 있는 것 같았다.
안 그래도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이 있다고 하던데, 따로 챙겨가서 선물로 주면 좋아하겠는데.
“마기가 없는 걸 보면 이건 그냥 평범한 조각상이구나.”
그 외에 제단에 있는 물건들을 살펴봤지만, 특별히 눈에 들어오는 건 없었다.
그래도 나중에 다 쓸모가 있을지도 모르니, 챙겨가는 게 좋겠지.
“저 거대한 석상은······ 일단 두고.”
비스테르부터 깨우는 게 우선이었다.
“환각을 없애려면······ 역시 그게 최고겠지.”
나는 비스테르가 모여있는 곳을 중심으로 두고 커다란 원을 그렸다. 이어서 마법진 하나를 뚝딱 그리고는 냅다 탬페스트로 땅을 후려쳤다.
“기사아아앙!”
마법진에서 빛이 뿜어지더니, 공중에서 물줄기가 쏟아졌다.
푸화아아아악!
때아닌 폭우에 몽롱한 얼굴로 주문을 외우던 비스테르들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뭐, 무우웁!”
“무, 물! 물!”
“푸허, 사, 살려······!”
느닷없는 사태에 당황한 비스테르들을 보며 재차 템페스트를 휘둘렀다.
콰르릉!
폭우에 이어진 폭음에 비스테르들의 움직임이 뚝, 멎었다.
* * *
바깥으로 나온 나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후아, 좋다.”
차가운 밤공기가 스며들자 숨이 탁 트였다. 잠시 숨을 고르던 나는 몸을 돌렸다.
입구를 통해서 비스테르들이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바, 밖이다.”
“밖이야!”
“으허어엉!”
조금 전 물벼락에 비 맞은 생쥐 꼴이었지만, 그들의 표정만큼은 하늘에 뜬 달보다 더 밝았다.
다들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흐뭇했다.
그래도 마을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마음을 놓을 순 없었다.
“아이넬.”
“응? 루나?”
내가 동굴로 들어가고 난 뒤 다른 곳으로 피신해 있으라고 얘기했었는데?
“설마 나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루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말래두 그러네.”
나는 웃으며 루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도, 걱정해줘서 고마······.”
나는 말을 멈췄다.
루나와 함께 숨어있어야 할 비스테르들도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하여간, 못 말리겠다니까.”
저들은 이곳에서 탈출하기를 염원하던 이들이다.
그것도 남에게 속아서 평생을 이곳에 갇혀 지낼 뻔했다.
솔직히 나에게 인사 한 마디 없이 떠나더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는데, 오히려 날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괜스레 코끝이 시큰거린다.
나는 픽, 웃으며 그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여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