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소년기(65) - #매직 코인
달걀귀신이 지팡이를 툭, 떨어트리더니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무슨······ 너, 너너?”
말까지 더듬는 게 가면 너머의 아연실색한 표정이 보이는 듯했다
“아니지, 이거 불량품이죠? 무상 A/S 받을 게 아니라 오히려 보상을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죠?”
깐족에 이어 진상 짓까지 첨가해준 나는 마무리로 입꼬리를 쓰윽 올려주어 화룡점정을 찍었다.
“대,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보아하니 내 말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으나, 아무렴 어떠랴.
달걀귀신의 포커페이스는 완벽하게 깨졌다.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그런 조잡한 목걸이를 믿고 있던 거라면······.”
나는 들고 있던 목걸이를 휙 던졌다.
텅!
저주가 말끔하게 해제된 목걸이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달걀귀신의 발치에 떨어졌다.
“실패네요. 아, 카제르 씨.”
있는 듯 없는 듯.
구석에 조용히 서 있던 청년 카제르가 퍼뜩 내게 다가왔다.
그도 달걀귀신을 처음 보는지라 적잖이 긴장한 눈치였다. 특히 달걀귀신이 지팡이를 꺼낼 땐 진짜로 기절할 것처럼 놀라던데.
미리 목걸이를 풀어줬거니와, 마음의 준비를 시켜뒀기에 망정이지. 그게 않았더라면 대번에 줄행랑을 쳤으리라.
“무, 무슨 일이십니까?”
“그거 벗어요. 당장 환불하게.”
“예? 아, 예!”
내 말에 청년 카제르가 서둘러 목걸이를 벗어서는 냅다 던졌다.
졸지에 2개의 목걸이를 환불받은 달걀귀신이 나와 목걸이를 번갈아 쳐다봤다.
“너······. 뭘 어떻게 한 거지?”
달걀귀신이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그러니까, 말했잖아요. 그거 불량품이라고.”
“알 수 없는 말만 지껄이지 말고, 말을 하란 말이다! 대체, 대체, 어떻게 저주를 해제한 거지? 어떻게 데모스 님의 힘을······!”
“그랬구나.”
이 한 마디에 나는 모든 정황을 납득할 수 있었다.
“데모스.”
어둠을 이끄는 자.
지구의 표현으로 빌리자면,
“마왕.”
다소 유치한 표현일지는 모르겠으나, 마왕이라는 말로 대체할 수 있었다.
“내 참.”
마왕이라니.
이곳이 다른 세계라는 것도 적응했지만, 설마하니 마왕이라는 녀석도 존재할 줄이야.
아니, 마왕이 존재하는 것 정도는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수 있다.
이미 내 삶이 판타지스틱했으니 뭐가 나와도 이상할 건 없었다.
근데, 봉인된 마왕이라니!
“내가 무슨 용사냐고요.”
나는 그냥 힐링을 꿈꾸고 평화를 사랑하는 평범한 소년······ 같은 아저씨다.
물론 환생했다는 시점부터 평범의 기준을 아득히도 넘어버렸지만, 나는 되도록 조용하고 안락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다.
뭐, DIY를 시작한 후로 되도록이라는 기준이 조금 애매모호했지만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뜬금없이 마왕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이렇듯 마왕을 부활시키려는 자를 덜컥 만나버렸다.
하물며 마왕이 봉인되었다는, 가칭 봉마석이 내 수중에 있었으니 황당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했다.
보아하니 달걀귀신의 마왕 부활 기원은 꽤나 오래전부터 준비하고 진행한 것 같았다.
달리 말해서 나중에 아무런 전조도 없이 마왕이 짠, 하고 나타난다면?
이렇다 할 대비도 없이 마왕을 마주치게 될 경우 그에 따른 대처도 늦을 수밖에는 없다.
명색이 마왕이다.
대체 어떤 녀석인지는 모를지언정 보통내기가 아닐 테고, 대화가 통할 상대도 아닐 터.
결국 무력 충돌로 이어지게 된다는 건데······.
내가 아무리 비상식적인 피지컬을 타고났다고 한들, 부활한 마왕을 때려잡을 자신은 없었다.
그건 그렇고.
대체 그 어린 고브는 어디에서 마봉석을 가져온 걸까.
듣자하니 훔친 건 아닌 것 같던데 말이야.
뭐, 이건 나중에 물어보기로 하고······.
상념을 갈무리한 나는 달걀귀신을 쳐다봤다.
“이이이······. 데모스 님은 어디에 있는 거냐아아아아!”
그는 당황을 넘어 패닉에 빠졌는지 고래고래 악을 써대고 있었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크고 날카로웠는지, 귀에서 피가 나는 기분이었다.
“그걸 알려줄 것 같으면, 여기 오지도 않았죠.”
정론으로 응수하자 달걀귀신이 시커먼 눈동자로 날 노려봤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흐흐흐······.”
돌연 달걀귀신이 허리를 숙이더니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던 지팡이를 주웠다.
“네 녀석이 말하기 싫다면, 말하게끔 만들어주면 되겠군.”
음침하게 웃던 달걀귀신이 역수로 쥔 지팡이를 높게 쳐들었다.
“데모스 님의 힘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거라!”
달걀귀신이 지팡이를 강하게 내리치더니 그대로 자신의 왼쪽 팔에 쑤셨다.
“어우!”
미처 말릴 겨를도 없이 벌어진 일에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작정하고 찔렀는지 지팡이의 끝에 달린 보석만 툭 튀어 나와 있었다.
어우, 보는 내가 다 아플 지경이네.
이런 내 생각도 잠시였다.
아까 목걸이의 저주를 발동시킬 때처럼 시커먼 마기가 흘러나왔다.
다만 아까보다 더욱더 짙고 무거운 느낌이었다.
“크으으으······.”
달걀귀신이 고통에 찬 신음을 뱉으며 휘청거렸다.
“괜찮아요?”
근데, 저렇게 찌르면 보통은 피가 나기 마련이지 않나?
어째선지 달걀귀신의 몸에서는 마기만 흘러나왔다.
적어도 과다출혈로 죽을 걱정은 없곘네.
“어, 언제까지 여유를 부릴 수 있······ 크흑.”
무어라 말하려던 달걀귀신이 끝끝내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마기는 연신 뿜어져 나오며 금세 방의 천장을 가득 채웠다. 이렇게 보니 꼭 먹구름이 몰려오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마기가 크게 요동치더니 돌연 방의 구석으로 퍼져나갔다.
뒤이어 끼기기기긱, 하고 돌과 돌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의 시작점은 내가 처음 이 방으로 들어왔을 때 봤던 석상이었다.
“역시.”
어쩐지 저 석상에서 마기가 느껴지더라니,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카제르 씨.”
“힉! 예예!”
“바로 밖으로 나가세요.”
“아, 아이넬 님은?”
“저는 괜찮으니까, 얼른 나가보세요. 밖에 나가면 루나가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예!”
청년 카제르가 몸을 돌리더니, 서둘러 문으로 향했다.
덜컥!
“자, 잠겼······.”
나는 청년 카제르에게 비키라고 손짓하고는 템페스트를 꺼내 휘둘렀다.
콰아앙!
어제부터 오늘까지 줄곧 마나를 흡수시킨 템페스트가 휘황찬란한 광채를 뿜어내며, 그대로 문을 날려버렸다.
“시원하네. 자, 어서 나가보세요.”
“그······. 조, 조심하십시오!”
이윽고 청년 카제르가 밖으로 나갔다.
나는 가볍게 어깨를 풀어주며 석상을 향해 몸을 돌렸다.
“싸우는 건 피하고 싶었는데.”
뭐,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당해줄 순 없으니까.
거기다 나는 예전부터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사람이 살면서 단 한 번도 싸우지 않을 순 없는 노릇이니까.
그게 말다툼이든 주먹다짐이든 상관없이, 충돌은 그 언제 어느때 발생해도 하등 이상할 게 없는 셈이다.
그래서 적어도 나,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을 지킬 힘 정도는 있는 게 좋다는 판단하에, 꾸준하게 단련도 해왔다.
처음으로 싸우는 상대가 마왕의 부하라는 게 함정이라면 함정이지만.
아무렴 어떤가.
마왕이고 나발이고.
“내 가족들이 위험해지는 건 싫거든.”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캬아아아아아!
나는 정면으로 달려드는 석상을 향해 템페스트를 휘둘렀다.
아까보다 한층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오며 방 안이 대낮처럼 환해졌다.
콰르릉!
템페스트가 포효하며 석상의 대가리를 후려쳤다.
“싹을 잘라버리면 그만이지.”
퍼엉!
단 한 번의 망치질에 석상의 머리가 날아갔다.
녀석은 생명체가 아니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곧바로 날카로운 발톱을 휘둘렀다.
살짝 허리를 틀어 녀석의 공격을 피하며 재차 템페스트를 휘둘렀다.
퍽!
졸지에 팔과 머리를 잃었음에도 석상은 계속해서 움직였다.
어디 보자.
일단 머리나 팔을 부순다고 끝나는 건 아니구나.
“그렇다면, 역시······.”
나는 바닥에 쓰러져 버둥거리는 석상을 향해 다가갔다.
“여기인가.”
내 시선이 향한 곳은 석상의 가슴이었다.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마기가 유독 짙었다.
내가 템페스트를 내려치려던 찰나였다.
캬아악!
또 다른 석상이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그대로 무릎을 굽혀 녀석의 공격을 피했고, 즉시 템페스트를 아래에서 위로 휘둘렀다.
목표는 녀석의 가슴이었다.
펑!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석상은 그대로 날 지나쳐 벽에 부딪혔다.
아니나 다를까.
파스스스스!
모래성이 허물어지듯, 돌가루로 화해 사라졌다.
“남은 건 넷하고······.”
말을 멈춘 나는 바닥에 쓰러진 반쪽짜리 석상을 부쉈다.
“응, 이제 넷이네.”
이미 파훼법을 깨달은 내게 석상은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했다.
나는 파리채 휘두르듯 템페스트를 휘두르며, 석상이 달려드는 족족 때려잡았다.
순식간에 모든 석상이 가루로 변해 사라졌다.
“자, 이제 혼자 남았네요?”
“너, 너는 대체······. 어떻게, 어떻게 데모스 님의 힘이 담긴 고렘을 그렇게 간단하게······!”
“아, 저거 그냥 석상이 아니라 고렘이라고 하는 거구나.”
직접 부딪혀본 결과 재질은 돌인 것 같았다.
근데, 저렇게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걸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없던 물욕도 발동했다.
만약 저걸 내가 만들 수 있다면 엄청나게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혹시 고렘도 마도구의 카테고리 안에 들어가는 건가?
“혹시, 고렘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어요?”
내 질문에 달걀귀신은 그저 멍하니 고렘만 쳐다볼 뿐, 아무런 반응을 내보이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하나는 남겨둘 걸 그랬나.
“아쉽네. 그나저나······.”
이걸 어쩐다.
석상이야 모조리 파괴했지만, 아직 달걀귀신이 남아있다.
저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할지가 관건인데.
어떻게 보면 저 달걀귀신이야말로 이 모든 사건의 원흉이자 흑막이다.
이대로 두고 가자니 또 헛짓거리할 우려가 있을 테고.
게다가 비스테르의 입장에서 저 달걀귀신은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놈이다.
나만 하더라도 같은 일을 겪었더라면 하루에도 몇 번이고 복수의 칼날을 갈았겠지.
“당사자의 의견이 중요하겠지.”
그렇다.
달걀귀신에게 피해를 본 이들은 내가 아닌 비스테르다.
그들에게 선택권을 주고, 의사를 존중해주는 것 또한 마땅하 지켜야 할 도리리라.
“일단 좀 자고 있으세요.”
나는 품을 뒤져 미리 준비했던 물건을 꺼냈다.
크기는 약 500원짜리 동전만 했다. 중요한 건 얇은 코인을 두개 겹쳐놓은 형태였는데, 그 사이에 아주 작은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매직 코인이라고 하면 적절하려나.
템페스트의 기능을 활용하기 위해 따로 제작했다. 크기도 작아서 휴대하기도 편하고, 마법진이 안쪽에 새겨져 있어서 몇 번이고 재활용할 수 있었다.
여차하면 녹여서 다른 걸 만들 수 있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매직 코인을 튕겼다.
휘리리리릭, 공중에서 회전하는 매직 코인을 향해 템페스트를 휘둘렀다.
퉁!
템페스트에 담긴 마나가 그대로 매직 코인에 흡수되며, 마법이 발현됐다.
이내 마법진의 범위에 들어온 달걀귀신이 풀썩 쓰러졌다.
수면 마법의 효과였다.
“자, 가볼까.”
나는 깊은 잠에 빠져든 달걀귀신의 다리를 질질 끌며, 방을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