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79화 (77/159)

79. 소년기(61) - #마기

내가 손을 내밀자 목걸이에서 시커먼 기운이 스르륵, 튀어나왔다.

마치 템페스트가 내 마나를 머금고 아지랑이를 피워 올린 것과 비슷한 모양새였다.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이 시커먼 기운이 마나라는 건 확실했다.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단연 색깔이었다.

내가 흔히 보고 쓰는 마나는 투명하다. 반면에 목걸이에서 흘러나오는 마나는 거무튀튀했다.

거기다 끈적한 느낌 때문인지, 열에 눌어붙은 고무 같다고 해야 할까.

손에 들러붙을 것 같은 게 선뜻 만지기에는 께름칙했다.

이게 그 오염된 마나라는 건가.

레비아 선생님이 이르길 마나라는 것도 결국 자연의 일부라고 말했다.

평범한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지만 늘 존재하며 우리와 함께 살아간다나.

즉 마나 또한 생명이라고 보면 이해하기가 쉬웠다.

마나 또한 주변의 환경에 따라서 그 성질이 조금씩 달라진다는 말을 덧붙이셨다.

“오염된 마나.”

이 목걸이에 담긴 건 마기 혹은 오염된 마나라고 불렀다.

고여 있는 물이 썩는 것처럼 본래 지니고 있던 성질이 변화한 것이다.

더불어 오염이라는 단어를 통해 전해지는 느낌에서 알 수 있듯, 결코 우리에게 이득이 되는 종류의 마나는 아니었다.

“음······.”

오염된 마나는 흡사 내 손가락을 밀어내려는 듯, 혹은 내 손가락을 잡으려는 듯 연신 아지랑이를 피워 올렸다.

내가 손가락을 움직이면 아지랑이의 방향도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게 꼭 외계인을 보는 기분이었다.

손가락을 향해 뻗어져 나오는 시커먼 기운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자니, 청년 카제르의 시선이 느껴졌다.

보아하니 내 표정을 보고 덩달아 긴장한 모양이다.

“일단 지금 여기서 이 목걸이를 해제할 순 없겠는데요.”

“그, 그렇습니까?”

청년 카제르가 맥없이 고개를 숙였다.

어쩐지 크게 실망하진 않은 표정이었다.

아마도 부정적인 대답이 들려올 걸 예상하고 있었던 거겠지.

“여기서 해제할 수 없다는 거지, 아예 해제하지 못한다는 건 아니에요.”

“네?”

내가 말을 정정하자 청년 카제르가 숙였던 고개를 퍼뜩 들었다. 옆에 있던 두 동료 또한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목걸이를 해제할 방법은 있어요.”

확신에 찬 어조에 청년 카제르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네. 크게 두 가지예요.”

“두, 두 가지나 있단 말입니까?”

“네. 두 가지요.”

엄밀히 따지자면 그보다 더 많은 방법이 있었지만, 가장 안전하면서도 확실한 건 두 가지였다.

“근데, 과정만 조금 다르지 결국 비슷한 방법이기도 해요.”

“그 방법이라는 건 대체······.”

설명을 하기 전에 먼저 확인해야 할 게 있었다.

“아까 그 목걸이가 목을 조른다고 했죠?”

“그, 그렇습니다. 목걸이가 줄어듭니다.”

청년 카제르는 상상만으로도 두려웠는지, 몸서리를 쳤다.

“제 예상이지만 그 목걸이는 마도구에 가까운 것 같아요.”

“마도구는 또 뭡니까?”

록시나 루나를 통해서 알았던 것처럼, 비스테르는 남들의 눈에 띄지 않게끔 조용히 살아간다.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외부와 단절된 삶을 살아야 했으니 마도구가 뭔지 모르는 것 또한 당연했겠지.

“쉽게 말해서 마법을 새긴 도구죠.”

어디까지나 내 추측일 뿐, 이게 정말로 마도구인지 아닌지는 분명하지 않다.

“스위치. 그러니까 내가 무언가를 건드리면 작동하는, 달리 말해서 특정한 조건이 성립할 경우 작동한다는 거죠.”

간략하게나마 마도구에 대한 정의를 내려주자, 청년 카제르가 눈을 크게 떴다.

“아······. 그, 그러고 보니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 말이요?”

“그, 이 목걸이에는 강력한 저주가 깃들어 있다고······.”

“저주?”

“저도 우연히 들은 거라······.”

“음······.”

저주란 말이지.

그렇다는 건 단순히 환경에 의해 오염된 마나는 아니라는 거다.

“마기.”

그러니까, 아주 오래전이었다.

레비아 선생님이 곧잘 암운이 드리웠던 시기라 불리는 그때, 이 마기가 모습을 드러냈다고 했었다.

마기는 그냥 허허벌판에서 뿅, 타고 나타난 건 아니다.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냈다나.

무엇보다.

마기는 데바랑 관련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정확히는 데바의 반쪽.

인간이 아닌 다른 쪽과 연결고리가 있노라고 얘기하신 걸 들은 기억이 있다.

딱 거기까지였다.

워낙 오래전에 있었던 일이라서 레비아 선생님도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하시는 것 같았다.

뭐, 지금은 그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잡념을 치워버린 나는 청년 카제르를 보며 말했다.

“하나는 그냥 이 상태 그대로. 목걸이가 반응하기도 전에 잘라버리는 것.”

어떻게 보면 무식한 방법이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했다.

“그, 그건······.”

첫 번째 방법을 들은 청년 카제르가 움찔했다.

“시도해본 적이 있는 거죠?”

“······예. 제 친구가 그 방법을 썼습니다.”

청년 카제르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굳이 결과는 듣지 않더라도 실패했다는 걸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다른 하나는 이 목걸이에 가득 찬 마기를 제거하는 것.”

“그 말씀은······.”

“저주를 없애버리는 거죠.”

“그, 그게 가능한 겁니까?”

“그건 지금부터 알아봐야겠죠. 일단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마을로 갈까요?”

청년 카제르가 서둘러 내 팔을 잡았다.

“그, 그게 아직 말씀드리지 않은 게 있습니다.”

“어떤 거요?”

“시, 실은······이 목걸이는 빼려고 할 때만 목을 조이는 게 아닙니다.”

“음?”

청년 카제르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요?”

“정해둔 시간이 지나도 목을 조입니다.”

잠깐만.

그럼 시한폭탄처럼 타이머가 있다는 말이잖아?

“멈출 방법은 없고요?”

“네. 멈추기 위해서는 저희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음······.”

이렇게 되면 또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럼 다른 날에 만나······ 아!”

나는 말을 멈추고 저 멀리 떨어져 있는 고브를 쳐다봤다.

맞다.

이 세 비스테르가 루나를 만나게 된 원인은 바로 저 고브다.

“만약 고브를 포획하지 못하고 돌아가면······.”

“예. 버, 벌을 받습니다······.”

그럼 이대로 돌려보냈다가는 오늘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렇다고 고브를 넘겨주는 선택을 할 수도 없는 노릇.

이걸 어쩐다.

“그러고 보니 청년 카제르 씨가 지내던 곳이요.”

“예.”

“거기에 또 다른 비스테르도 있는 건가요?”

“마, 맞습니다. 저희 말고도 많은 비스테르가 잡혀있습니다.”

단순히 이 세 사람의 목걸이를 풀어준다고 해서 끝이 나는 건 아니었다.

“시간은 얼마나 남았어요?”

“다, 달이 뜨기 전까지는······ 괜찮을 겁니다.”

지금이 오후 1시즘 됐으니까, 얼추 7시간 정도 남았다고 보면 되는 건가.

“뭐, 별수 없네. 다 구하죠.”

“예?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무슨 말이라고 할 게 있나요.”

아예 몰랐다면 모를까.

이미 수많은 비스테르가 잡혀있고, 그들에게도 목걸이가 채워져 있다는 이야기를 접했다.

가능하다면 그들 모두를 풀어주는 쪽이 내 마음도 편하겠지.

“거기에 잡힌 비스테르, 싹 다 구해야죠.”

내 말에 루나가 내 옷깃을 잡았다.

“그래도 돼?”

그녀의 눈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한편으로는 그녀 또한 비스테르를 구하고 싶어 한다는 진심이 전해졌다.

나는 루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알잖아? 나는 한다면 하는 사람인 거.”

“응. 알아.”

“자, 그럼 어떻게 비스테르를 구할지 작전이라도 좀 짜볼까?”

* * *

“으······.”

청년 카제르는 울상을 지은 채 눈동자만 뒤룩뒤룩 굴리고 있었다.

하물며 그는 나무를 잘라 만든 간이침대에 누워있다.

복장도 약간 널널해서 그런지 병원에 입원한 환자 같았다.

“잠깐 쉴까요?”

내가 묻자 청년 카제르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닙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럼 계속할게요.”

나는 질끈, 눈을 감는 청년 카제르에게서 시선을 떼고 목걸이를 눈에 담았다.

시작해볼까.

나는 조심스레 손을 내밀었다.

이번에도 목걸이에서 마기가 흘러나왔다. 슬금슬금 다가온 마기가 내 손끝에 닿았다.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처럼 찌릿, 한 통증이 감각됐다.

“음······.”

이 정도면 참을 만하네.

나는 손을 빼지 않고 가만히 기다렸다.

마기가 아예 내 손가락 끝을 휘감는가 싶더니, 마치 뱀처럼 서서히 옥죄었다.

그럼에도 내가 가만히 있자 기세가 등등해졌는지 이제는 아예 손등을 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는 슬쩍 로켓 펜던트를 가져다 댔다.

그와 동시에 마기가 크게 요동치더니 마나 스냇치의 열매를 향해 이동했다.

아니, 이동한다기보다는 딸려들어가는 듯한 모양새였다.

그것도 잠시였다.

마기가 생명체처럼 주춤하더니, 목걸이 쪽으로 되돌아갔다.

“진짜로 살아있는 것 같네.”

평범한 마나였더라면 그냥 그대로 마나 스냇치의 열매에 흡수됐을 텐데 말이야.

“그래도 확실히 마나는 맞는 것 같고.”

그렇다면 저 목걸이 또한 마도구라고 생각하고 접근하는 게 좋을 터.

생각보다 간단하겠는데.

그도 그럴 게, 나는 레비아 선생님의 인정을 받았다.

더불어 지금까지 제작한 마도구만 수십 가지가 넘는다.

나아가 매일 마법을 연구하면서 개량에 힘을 쏟고 있다.

단언컨대, 마법은 겉으로 보는 것만큼 어려운 학문은 아니었다.

다소 복잡하고 정밀함을 필요할 뿐이지, 실상은 지구에서 흔히 쓰던 기계랑 비슷한 느낌이다.

즉 그 원리를 파악한다면 얼마든지 무력화 시킬 자신이 있었다.

아니, 무력화시키는 걸 넘어서 아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그 또한 내 실력 발전에 큰 도움이 되겠지.

그래, 좋은 게 좋은 거다.

“갑니다.”

나는 애써 긴장감을 털어내며, 목걸이를 콱 움켜쥐었다. 이어서 눈을 감고 마나에 집중했다.

보인다.

내 감각에 마나의 흐름이 또렷하게 보였다.

* * *

“저기란 말이지.”

나는 저 멀리 보이는 공터를 눈에 담았다. 휑한 공터에는 비스테르들이 모여있었다.

다들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했는지, 딱 보기에도 상태가 나빠 보였다.

저들이 아까 청년 카제르가 말했던 비스테르였다.

“32명인가.”

아직 복귀하지 않은 이들까지 염두에 둔다면 족히 40명쯤 잡혀있다고 보면 되겠지.

한동안 공터를 쳐다보고 있자니, 내 뒤에 커다란 그림자가 다가왔다.

슬쩍 고개를 들자 샤베르티가 아니, 베르가의 길쭉한 송곳니가 눈에 들어왔다.

“왔어?”

컹!

베르가는 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인지 냉큼 머리를 들이댔다.

“으헉!”

덕분에 앞에 있던 청년 카제르가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거나 말거나 푹신한 베르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고 있자니, 위에 타고 있던 루나가 폴짝 뛰어내렸다.

캣시와 검치호랑이라.

보면 볼수록 어울린단 말이지.

거기다 샤베르티가의 눈빛이나 몸짓을 봤을 때 루나를 자신의 누님쯤으로 여기는 것 같았고.

“어땠어?”

“응. 감시하는 사람들 있었어.”

역시 감시자가 있구나.

그럼 정면으로 들어가는 건 패스하는 게 낫겠지.

“수고했어. 카제르 씨.”

“두, 두 번째 작전으로 가시는 겁니까?”

“예. 그쪽이 훨씬 안전할 것 같아요. 괜찮겠어요?”

청년 카제르가 주먹을 쥐더니,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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