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74화 (72/159)

74. 소년기(56) - #변신!

“웃기지 마라!”

루나의 단호한 대답에 청년 카제르가 짜증스럽게 외쳤다.

“너도 우리를 보고 있으니 알 텐데? 우리는 산맥을 마음대로 돌아다닌다! 아무런 걱정도, 두려워할 것도 없단 말이다!”

루나가 고개를 저었다.

그녀도 내심 청년 카제르의 말이 청년 카제르 자신을 납득시키기 위한 변명에 불과하다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차분하게 세 비스테르를 응시하던 루나가 툭 내던지듯 물었다.

“두렵지 않아?”

“당연하지! 우리가 두려울 게······!”

캬아아아아아!

때마침 저 멀리서 마수의 포효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세 비스테르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더니 서둘러 자세를 낮췄다.

마치 강자를 앞에 둔 나약한 짐승 같았다.

과거 산맥을 호령했던, 지금도 전투라면 그 어떤 종족보다 강하다는 비스테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나약한 모습이었다.

문득 루나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이 있었다.

루나가 세 비스테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쫄보.”

“쪼, 쫄보?”

“응. 너희들은 쫄보야.”

“그, 그게 뭐냐?”

청년 카제르는 차마 언성을 높이진 못하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언제였던가.

아이넬이 홀로 숲을 돌아다니면서 했던 말이었다.

“너희들은 쫄보야.”

루나 또한 정확한 의미는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겁을 먹었을 때 쓰이는 말이라는 건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자유는 그런 게 아니야.”

“그럼 평생을 숨고, 도망치는 게 자유라는 거냐? 보아라, 우리는 이렇게······.”

청년 카제르의 절규 아닌 절규가 뚝, 멈췄다.

자신을 향한 루나의 시선이 너무나도 매서웠던 것이다.

캣시 부족은 몸놀림이 빠르고 밤 사냥이 특기다. 허나 단순 무력만 놓고 본다면 카제르 부족이 위라는 건 모든 비스테르가 아는 사실이다.

하물며 분명히 루나는 자신들보다 어리며 그 몸집도 작다.

그럼에도 샤베르티가를 마주했을 때처럼 엄청난 압박감이 자신을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

단순히 기분 탓으로 치부하고 넘기기엔 실제 그의 다리는 당장이라도 꺾일 것처럼 후들거리고 있었다.

루나가 손을 거두더니 이번에는 자신을 가리켰다.

“산맥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건 나도야.”

“······.”

사실 청년 카제르는 말을 안 했을 뿐이지, 루나를 보며 위화감을 느끼고는 있었다.

가장 먼저 이상하게 생각한 것은 이름이었다.

비스테르는 여타 종족처럼 서로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

애당초 이름이라는 건 본디 서로를 부르기 위해 생겨난 관습이다.

과거에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비스테르는 뿔뿔이 흩어졌기에 이름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불어 단순히 필요성이 없어서만은 아니었다.

어째서인지 비스테르는 이름을 께름칙하게 여겼다.

본능이라고 해야 할까.

그 원인은 모르겠지만, 자신에게 이름이 부여된다는 것에 극심한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랬기에 비스테르는 서로에게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이는 록시나 루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두 번째로 느낀 위화감은 루나 자체였다.

비스테르는 밤을 두려워한다. 특히 어린 비스테르라면 해가 뜨기 전까지 숨어있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청년 카제르가 루나와 만났을 당시 가장 먼저 목을 확인했다. 아무래도 밤 사냥을 나섰다는 건 자신들처럼 목걸이를 찼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정작 루나의 목에는 목걸이가 없었다.

청년 카제르의 흔들리는 시선에도 루나의 말은 이어졌다.

“너희들은 약해. 비스테르도 아니야.”

이 말이 결정적이었던 걸까.

청년 카제르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안다. 나도 안다고. 나도······.”

청년 카제르가 반사적으로 자신의 목을 만졌다.

차갑고 불길한 감촉의 목걸이를 만지자 털이 쭈뼛쭈뼛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사실 청년 카제르도 내심 알고 있었다.

그에게 주어진 건 자유가 아닌 또 다른 속박이라는 것을 말이다.

입으로는 자유를 외쳤지만, 실상 그에게는 자유가 없었다.

“그 목걸이 때문이야?”

청년 카제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이 목걸이를 차면 저주는 발동하지 않는다. 대신······.”

“대신?”

“나도 모르겠다. 더 이상 전처럼 힘을 낼 수가 없어. 그리고 명령을 받으면 거부할 수도 없다.”

“명령을 거부할 수 없어?”

“죽으니까.”

청년 카제르의 말에 루나가 깜짝 놀랐다.

“죽어?”

“그래. 우리가 명령을 거부하면 이 목걸이가 줄어들면서 우리의 목을 조른다.”

애당초 세 비스테르가 고브를 추격했던 것도 자의가 아니었거니와, 대대로 카제르 부족은 다툼을 싫어했다.

하지만 위에서 내리는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자신들이 죽는다.

처음부터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루나의 미간에 깊은 홈이 파였다.

“누가 그런 걸 한 거야?”

“그, 그건 말할 수 없어.”

“왜?”

“말하면 안 되니까. 그리고 말을 할 수 있어도 우리는 그 사람이 누군지 몰라.”

“너는 바보야?”

루나의 말에 청년 카제르가 고개를 푹 숙였다.

바보라는 말 안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 우린 바보였다. 멍청이야. 하지만······. 너도 알잖아? 저주가 발동하지 않는다는 말에 혹하지 않을 수 있어?”

루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럴 게, 같은 비스테르로서 청년 카제르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청년 카제르가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예전처럼 숨어 사는 게 더 좋을지도 몰라. 아니, 예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우리는 또 후회를 하겠지. 그래도 이렇게 사는 것보다는······ 하지만 이미 우리는 이 목걸이를 찼어.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해.”

“그건 아니야.”

루나가 딱 잘라 말했다.

“그건 아니라니?”

“너희들을 도울 사람은 있어.”

“굳이 위로하지 않아도 돼. 너는 모르겠지만, 이미 우리는 이 목걸이를 벗으려고 해봤어. 내 가장 친한 친구였지. 녀석은 강제로 이 목걸이를 벗으려다가 끌려갔어. 그리고······.”

청년 카제르는 당시가 떠올랐는지 차마 뒷말을 잇지 못했다.

“도울 사람이 있다고 했어.”

“그게 누군데!”

“아이넬.”

“아이넬? 그 사람도 비스테르야?”

“아니, 인간이야.”

“인간?”

“응. 인간이야. 아이넬이라면 그 목걸이를 풀 수 있어.”

목걸이를 풀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도 아니었다.

루나는 아이넬이라면 어떻게든 저 목걸이를 풀 수 있노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나를······.”

그때였다.

캬오오오오!

돌연 숲이 크게 흔들리더니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거대한 몸집에 두껍고 날카로운 송곳니.

눈처럼 새하얀 털에는 검은색 무늬가 그려진 마물이었다.

“샤, 샤베르티가!”

“샤베르티가다!

“우, 우린 끝났어!”

샤베르티가가 혀를 널름거리며 어슬렁어슬렁 걸으며 세 비스테르를 눈에 담았다.

마치 다 잡은 사냥감을 앞에 둔 맹수와도 같았다.

이에 세 비스테르는 도망칠 생각도 못 했는지, 그저 위압감에 벌벌 떨었다.

이를 지켜보던 루나가 차분하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너희들 도망가.”

루나가 세 비스테르를 뒤로 둔 채 샤베르티가와 정면으로 대치했다.

청년 카제르가 눈을 부릅떴다.

“도, 도망? 너 설마······. 샤베르티가랑 싸울 생각이야?”

“응. 싸울 거야.”

“그만둬! 차라리, 차라리 내가······.”

청년 카제르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루나의 옆에 섰다.

“내가 미끼를 할 테니 너는 이 두 녀석을 데리고 도망쳐.”

루나가 힐끗 옆을 쳐다봤다.

청년 카제르의 다리는 바들바들 떨리고, 연신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너는 약해.”

“알아! 나도 안다고! 그, 그래도······. 그래도 너한테 맡기고 도망칠 순 없잖아!”

루나가 청년 카제르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샤베르티가는 보통 마수가 아니라고! 너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란 말이야!”

청년 카제르의 말대로였다.

마수에도 급이라는 게 있다.

평소 루나가 사냥하는 마물이 하급이라면, 샤베르티가는 상급이었다.

그중에서도 포악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마수가 샤베르티가였다.

즉 루나가 홀로 샤베르티가를 상대한다는 건 자신의 목숨을 건다는 이야기였다.

루나가 고개를 저었다.

“내가 이겨.”

“이, 이긴다고? 어떻게 그런······.”

청년 카제르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커허엉!

파악을 끝낸 샤베르티가가 그 거대한 몸을 날렸기 때문이다.

“으아악!”

방금 미끼를 자처했던 청년 카제르는 치미는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털썩, 주저앉았다.

죽음.

그의 머릿속에는 그저 죽음이라는 단어만이 떠올랐다.

그때, 시시각각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샤베르티가를 보던 청년 카제르 앞으로 뛰어드는 이가 있었다.

루나가 자그마한 손을 뻗었다.

그야말로 치키의 알과 바위가 부딪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루, 루나?”

청년 카제르가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루나가 샤베르티가의 공격을 막아낸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위에서 짓누르는 샤베르티가를 상대로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있었다.

“어, 어떻게?”

“나는 약하지 않아!”

루나가 그대로 몸을 낮췄다.

그와 동시에 지지대를 잃은 샤베르티가의 동체가 기울어졌다.

퍼억!

루나의 주먹이 샤베르티가의 복부에 틀어박혔다.

커헝!

부지불식간에 일격을 허용한 샤베르티가가 괴성을 지르더니 훌쩍 뒤로 물러났다.

크르르릉!

샤베르티가가 자세를 낮추며 송곳니를 드러냈다.

찰나간에 주고받은 공방을 통해 평범한 상대가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

루나 또한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주먹을 매만졌다. 새하얗던 손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비록 한 방 먹여주긴 했지만, 샤베르티가의 두꺼운 가죽에 피해를 입은 것이다.

‘힘들어.’

지금 이 상태로는 샤베르티가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루나는 알고 있었다.

정정한다.

승리는 고사하고 버티는 게 고작이었다.

길어봐야 10분.

그 이상을 장담할 수 없었다.

잠시 이어지던 소강상태를 깬 쪽은 샤베르티가였다.

커헝!

아까보다 더욱 신중하되, 더 큰 힘을 담아 루나를 덮쳤다.

이에 루나가 재빨리 몸을 날렸다.

순식간에 목표를 잃은 앞발이 근처에 있던 나무를 후려쳤다.

콰직!

성인 장정의 허벅지 두께만 한 나무가 맥없이 부러졌다.

샤베르티가의 공격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녀석은 루나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매섭게 몰아쳤다.

“위, 위험!”

“시끄러워. 방해돼. 도망이나······ 가!”

청년 카제르가 차마 나서진 못하고, 위험을 알려주자 루나가 따끔하게 쏘아붙였다.

“아, 알았다!”

결국 자신들이 짐이 된다는 걸 깨달은 청년 카제르가 동료를 이끌고 공터를 벗어났다.

그렇게 수십 차례의 공격과 방어가 오갔다.

“후우, 후우······.”

루나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반면에 샤베르티가는 별로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샤베르티가 또한 자신의 승리를 예견하고 있음일까.

녀석은 더 이상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듯 그 어느 때보다 매섭게 달려들었다.

‘끝이야.’

문득 루나의 머릿속에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이넬.’

만약 이곳에서 자신이 진다면 더는 그의 얼굴을 볼 순 없다.

나아가 늘 동고동락하며, 고난을 함께 이겨냈던 친구인 록시 또한 만날 수 없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돌연 루나의 머릿속이 멍해지더니 샛노랗던 눈동자가 붉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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