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73화 (71/159)

73. 소년기(55) - #그건 자유가 아니야

모두가 잠든 야심한 시각이었다.

나뭇잎 스치는 소리와 짝을 찾는 풀벌레의 구슬픈 노래만이 유일한 숲속에 자그마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림자의 정체는 루나였다.

록시와는 달리 야행성에 가까운 그녀는 늘 이 시간쯤에 숲을 나가 사냥을 했다.

다만 오늘의 루나는 나무에 엉덩이를 걸친 채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잘 있을까.”

그녀가 이렇게 고민하는 건 산맥의 깊숙한 곳에서 숨어 지내는 비스테르들이었다.

루나가 아이넬을 만나고, 록시와 마을에 정착한 후로 늘 고민하고 있었던 문제이기도 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모든 비스테르를 마을로 데려오고 싶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아이넬과 있으면 안전해.’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루나는 자신이 언제 폭주할지 모른다는 불안을 항상 품고 지냈다.

그래서 일부러 아이넬과 사람들을 피한 부분도 없잖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저주는 발동하지 않았다.

야행성임에도 달을 두려워했던 루나가 이렇듯 밤 사냥을 나선다는 것부터가 엄청난 변화였다.

‘아이넬이라면······.’

안전하고 또 믿을 수 있다.

그라면 자신들의 동족을 데려오더라도 내치지 않는다는 그런 믿음이 있었다.

그럼에도 루나가 다른 비스테르와 만나지 않는 것은 혹시나 그들이 아이넬에게 피해를 주는 게 아닐까, 라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다른 비스테르가 폭주해서 아이넬을 공격한다면?’

자신이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 본인조차도 가늠할 수가 없었다.

“휴우우우.”

깊은 한숨을 내쉰 루나가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털어냈다.

매일 똑같은 고민을 해봐도 결국 제자리걸음이라는 걸 알았으니까.

슬슬 사냥할 시작할 시간이었다.

루나가 몸을 일으켜 컴컴한 숲속으로 몸을 던졌다.

캣시 부족 특유의 날랜 몸놀림으로 나무와 나무 사이를 빠르게 오가던 중이었다. 그녀의 귀가 쫑긋거리며 미세한 소음을 잡아냈다.

적당한 위치에 자리를 잡은 루나가 지상을 주시했다.

‘으응?’

루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샛노란 눈동자가 향한 곳에는 자그마한 인영이 있었다.

왜소한 몸집을 지닌 사람이었다.

무언가에 쫓기고 있었는지, 몸을 잔뜩 움츠린 채 불안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자그마한 눈에 비해 큼지막한 주먹코가 특징이었다.

제 딴에는 완벽하게 숨었으리라 생각했겠지만, 루나의 눈에는 아니었다.

표정은 물론,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과 나뭇가지에 스친 생채기까지도 선명하게 보였다.

거기다 피부색도 옅은 녹색을 띠고 있었다.

작은 눈과 주먹코.

왜소한 몸집에 옅은 녹색의 피부.

루나가 숲을 돌아다니면서 본 종족과 대입해봤다. 위와 같은 특징을 지닌 종족이라면 딱 하나 생각나는 게 있었다.

‘고브.’

확실했다.

루나가 은신처에 지낼 무렵에 근처를 지나는 고브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 본 그들과 똑 닮은 생김새였다.

‘고브가 왜?’

루나가 아는 고브는 단독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워낙 겁이 많은 종족이기에 늘 무리를 지어 다니는 것이다.

하물며 지금처럼 어두운 숲속에 혼자 돌아다니는 건 고브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그런 루나의 시선을 잡아끄는 게 있었다.

고브가 안고 있는 물건이었다.

가죽으로 싸여있어 내부는 보이지 않았지만, 마치 신줏단지 모시듯 소중하게 안고 있었다.

루나의 시선이 멀리 떨어진 숲으로 향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무척이나 잔잔한 숲이었지만, 루나에게는 저 멀리서부터 달려오는 발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왔다.

고브의 모습에서도 알 수 있듯,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는 게 분명했다.

‘······.’

루나가 고브와 숲을 번갈아 쳐다봤다.

루나와 록시는 같은 비스테르지만, 부족도 성향도 완전히 다르다.

실제로도 록시는 다른 종족과도 원만하게 지내지만, 루나는 아직까지도 다른 종족을 대하는 게 불편했다.

물론 아이넬이라면 다르다.

그 언제 어느 때 같이 있더라도 편안함을 느낀다.

다만 평소 그가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었으니 선뜻 다가갈 수 없는 건 매한가지였다.

그래도 아이넬이 하는 행동이 옳고, 그것이 자신들을 위함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다.

루나는 아이넬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랬기에 남들의 눈에 보이지 않게끔 은밀하게 활동했으며, 자신의 특기를 살려 밤 사냥을 다녔다. 나아가 숲으로 향하는 마을 사람들을 따라다니며 지키는 게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루나가 다시금 고브를 쳐다봤다.

시시각각 가까워지는 추격자들의 소리를 들었음인지, 고브의 얼굴에 절망이라는 감정이 덧씌워졌다.

자신이 곧 죽으리라는 걸 아는 듯, 체념한 분위기도 풍겼다.

따지고 보면 저 고브가 여기서 뭘 하던, 어떻게 되건 루나가 알 바는 아니다.

설령 저 고브가 추격자에게 잡혀 끔찍한 일을 당한다고 한들 자신과는 상관이 없었다.

그것이 루나였다.

하지만 루나는 선뜻 발을 돌릴 수 없었다.

고브가 불쌍해서가 아니었다.

그저 이대로 고브를 뒤로했을 때 자신에게 남겨질 감정 때문이었다.

본래의 루나였더라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테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이렇듯 고민이 되거나 무언가를 선택할 때면 늘 하는 게 있었다.

‘아이넬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바로 아이넬의 입장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아이넬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숲에 홀로 숨은 채 두려움에 떠는 고브가 있고, 그를 쫓는 추격자들이 있다.

그가 과연 저 고브를 무시하고 그냥 지나쳤을까?

‘아니.’

아이넬이라면 이런 고민이나 주저 따윈 하지 않는다. 곧바로 고브를 구하러 갔을 것이다.

그 후에 벌어지는 일은 그것은 그때 해결한다.

더불어 그는 평화적으로, 그 누구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게끔 해결하리라.

그게 루나가 보고 겪은 아이넬이었다.

“그쪽에 있나!”

“아니, 이쪽에는 없다. 젠장! 이 약삭빠른 놈, 대체 어디에 숨은 거야?”

“불만할 시간 있으면 빨리 찾기나 해! 만약 그 녀석을 찾지 못한다면 우린 끝이라고!”

“아니, 근데 대체 그 고브를 왜 찾아야 하는 거야?”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나? 그냥 켈라드 님이 찾으라니까 찾는 거지. 아, 그리고 다시 한번 경고하는데, 우리가 찾아야 하는 건 고브가 아니다. 고브가 들고 있는 물건이지. 명심해라!”

잠시 주저하는 사이 추격자들의 위치가 가까워졌다.

그들은 추격자라는 사실을 망각하기라도 한 듯 큰 소리로 대화를 나눴다.

보아하니 저 고브가 안고 있는 물건이 목적인 것 같았다.

더불어 루나는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일부러 저러는 거야.’

저들은 이미 고브가 겁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즉 일부러 소란스럽게 만들어 그 두려움을 더욱더 극대화시키려는 의도인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어이! 고브! 거기 숨어있는 거 다 아니까 그냥 나오지 그래? 네가 훔친 물건만 돌려준다면, 특별히 네 녀석은 그냥 보내주도록 하지!”

추격자 중 한 명이 물건만 내놓으면 건드리지 않겠다는 말을 했다.

루나가 슬쩍 고브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추격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기가 무섭게 전신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게다가 연신 몸을 달싹거리며 눈동자를 뒤룩뒤룩 굴리고 있었는데, 딱 봐도 추격자들의 제안에 갈등하는 것 같았다.

이를 지켜보던 루나가 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그대로 몸을 박찼다.

고브가 몸을 일으키는 것과 거의 동시였다.

순식간에 고브의 뒤에 접근한 루나가 재빨리 팔을 뻗더니, 그대로 고브의 머리를 잡아 밀었다.

느닷없는 사태에 고브가 비명을 지르려고 했다. 그러나 루나가 입을 틀어막는 게 빨랐다.

“웁!?”

“조용.”

어둠 속에 빛나는 루나의 샛노란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친 고브가 맥없이 주저앉았다.

“거짓말이야. 나가면 너 죽어. 조용히 있을 거야?”

나지막하게 속삭이는 루나의 말에 고브가 허둥지둥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루나가 고브의 입을 틀어막았던 손을 치웠다.

“도움이 필요해?”

“사, 살고 싶어요.”

행여나 추격자에게 들킬까, 숨죽여 낸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담겨있었다. 아울러 어쩌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도 담겨있었다.

“······.”

고개를 끄덕인 루나가 추격자들의 위치를 가늠했다.

‘거리는 가까워.’

슬쩍 상체를 들어 전방을 주시하자 저 멀리서 다가오는 사람이 보였다.

추격자의 동태를 살피던 루나가 멈칫했다.

추격자의 모습이 어딘가 낯익었던 것이다.

‘비스테르······야?’

마수와 닮은 귀와 꼬리.

분명히 겉으로 보이는 특징은 비스테르가 맞다.

근데, 어째서인지 느낌이 달랐다.

‘이상해.’

비록 야행성인 루나에 비해서 떨어질지언정 대다수의 비스테르는 오감이 민감한 편이다.

하물며 고브와의 거리가 불과 100미터도 되지 않는다.

비스테르에게 있어서 100미터란 그냥 바로 코앞에 있는 것과 같다.

이를 찾지 못한다는 건 말이 되질 않는다.

“너는 도망쳐.”

“도, 도망이요? 저, 혼자요?”

당혹감이 섞인 고브의 말에 루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애당초 고브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은 한정적이다.

그마저도 고브의 상태를 봤을 땐 루나 스스로가 미끼가 되는 수밖에는 없었다.

‘직접 확인해보고 싶어.’

거기다 추격자들이 비스테르라는 걸 알게 된 이상 직접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다.

“가.”

말을 마친 루나가 몸을 일으키더니, 그대로 전방을 향해 달려 나갔다.

아까와는 달리 일부러 시끄러운 소리를 내자 추격자들이 반응하더니 재빨리 신호를 주고받았다.

“저기다! 저쪽에서 소리가 난다!”

“다들 저쪽이다! 서둘러!”

루나가 속도를 조절하며 추격자와의 거리를 조금씩 좁혔다.

‘느려.’

오감만 둔한 줄 알았더니 저들의 달리기 속도 또한 이상하리만치 느렸다.

저래선 숲을 자신의 안방처럼 여기는 비스테르라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적당한 공터를 발견한 루나가 뚝,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

이윽고 하나, 둘 추격자들이 모여들었다.

루나가 은은한 달빛을 조명 삼아 추격자들의 면면을 훑어봤다.

도합 3명이었으며, 누가 보더라도 비스테르임을 알 수 있었다.

“너는······누구냐?”

비스테르 중 한 남자가 루나에게 물었다.

“나는 루나. 캣시 부족의 루나다. 너희들은 누구야?”

“루나? 루나라고?”

“루나······처음 들어 보는데?”

“시끄럽다! 캣시 부족의 루나라고 했나? 나는 청년 카제르다.”

청년 카제르라 밝힌 남자가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그곳에는 길고 휘어진 뿔이 돋아나 있었다.

루나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걸 묻는 게 아니야.”

이미 루나는 저들이 비스테르라는 것도, 카제르 부족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이에 청년 카제르가 손뼉을 쳤다.

“아아, 너도 우리의 변화를 느낀 건가! 그래, 우리는 저주에서 벗어났다.”

“저주에서······벗어나?”

루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래, 우리는 그분을 만나고 저주에서 벗어났다. 더 이상 헌트렛트의 달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동료를 다치게 할 이유도 없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지?”

루나의 질문에 청년 카제르가 턱을 치켜들어 자신의 목을 가리켰다.

“이게 보이나?”

이제 보니 세 비스테르의 목에는 무언가 시커먼 게 감겨있었다.

“이 목걸이는 그분이 주셨다. 이걸 차고 있으면 우리는 더 이상 저주에 휘둘리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지. 아, 그러고 보니 캣시 부족이라면 밤 사냥이 특기였지. 어떤가? 이참에 우리와 함께 가는 게? 아마 그분이라면 너한테도 이 목걸이를 주실 거다. 그럼 자유로워질 수 있어.”

청년 카제르의 제안에 루나가 슬쩍 하늘을 쳐다봤다.

고고하게 떠오른 달이 오늘따라 유난히도 밝았다.

“그건 자유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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