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72화 (70/159)

72. 소년기(54) - #스프링클러!

나는 도리아 아주머니와 함께 회관으로 들어갔다.

“오셨습니까.”

미리 대기하고 있던 크로든 아저씨가 도리아 아주머니께 깍듯하게 인사했다.

“다들 모이신 건가요?”

“예. 다들 기다리고 있습니다.”

도리아 아주머니가 짧게 심호흡을 하고는 회의장으로 들어갔다.

크로든 아저씨의 말처럼 회의장 안에는 마을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들도 도리아 아주머니의 등장에 나누던 잡담을 멈췄다.

“다들 농사일이랑 축제로 바쁠 텐데 이렇게 모여줘서 고마워요.”

간단한 인사가 끝나고, 상석에 앉은 도리아 아주머니의 진행으로 본격적인 회의가 시작됐다.

“먼저 모두의 노력 덕분에 밭의 개간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요. 이제, 며칠 뒤면 씨앗을 뿌릴 예정이에요. 먼저 여러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어요.”

도리아 아주머니의 말이 끝났지만, 선뜻 손을 드는 이는 없었다.

문득 내가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가 떠오른다.

이제 갓 상경해서 아르바이트를 하겠답시고 면접을 보러 갔다. 으레 그렇듯 간단한 자기소개를 마치고 짧은 질문과 답변 시간을 가졌다.

당시 내 면접을 담당했던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세요.”

고기도 뜯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했던가.

청소년기의 대부분을 시골에서 지냈고, 아르바이트 또한 해본 적 없는 나다.

질문이라는 것도 뭘 알아야 할 수 있는 거다.

더불어 마을 사람들에게 있어 농사란 미지의 문화다.

평생을 수렵과 채집만 하면서 살아왔으니 농사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것이다.

당시 궁금한 걸 물어보라는 말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나와 비슷한 심정이리라.

한동안 이어지던 침묵을 깨는 이가 있었다.

“크흠, 거 뭐냐. 농사를 지으려면 물이 필요한 거 아닙니까?”

크로든 씨였다.

그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농사일에 매진할 뿐만 아니라, 이렇듯 회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맞아요. 크로든 씨의 말처럼 농사를 지으려면 물이 필요해요.”

도리아 아주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받았다. 회의의 물꼬를 터준 게 고마웠던 거겠지.

역시나 물이라는 주제가 나왔기 때문일까.

“물이라면 마을 근처에 있는 호수에서 떠오는 게 어떻습니까?”

“근데, 밭의 넓이를 생각했을 때 필요한 물의 양을 생각해보면············”

“음, 그럼 아예 물길을 만드는 건 어떨까요?

그제야 사람들이 조심스레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래 봐야 다 비슷한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해야겠지.

그도 그럴 게, 결국 씨앗에 물을 주기 위해서는 우리가 직접 물을 떠 오는 방법 외에는 없었으니까.

그나마 가장 실현 가능성이 높은 건 물길을 만들자는 의견이었다.

지구에서도 수로를 이용해 농사를 짓기도 했고.

활기를 찾았지만, 어딘가 2% 부족한 회의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모든 의견을 꼼꼼하게 듣던 도리아 아주머니가 손을 들었다.

“여러분들의 의견을 잘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제 의견을 말씀드릴까 해요.”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킨 도리아 아주머니가 헛기침을 했다.

“제가 얼마 전, 파메르 님을 모시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다들 기억하시죠? 그리고 저는 다른 종족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평화롭게 살겠노라고 말했지요.”

말을 멈춘 도리아 아주머니가 회의장을 스윽, 둘러봤다.

“여러분께 소개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소개하고 싶은 사람?”

“혹시 또 다른 종족인 건가?”

“그럴 것 같은데? 이번에는 또 어떤 종족일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이 아무런 근거 없이 떠돌던 우스갯소리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예전 같았으면 다른 종족이라는 말에 긴장부터 했을 테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록시와 루나는 물론, 세 듀로프와의 만남으로 말미암아 두려움보다는 기대감을 더 갖는 것 같았다.

아주 바람직한 현상이었다.

도리아 아주머니가 회의장의 문을 열었다.

“들어오세요.”

“예.”

터벅터벅, 레비아 선생님이 회의장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도리아 아주머니의 안내를 받아 상석의 옆에 섰다.

“레비아라고 합니다.”

정중한 인사에 도리아 아주머니가 설명을 덧붙였다.

“이분은 파메르 님의 신도예요. 그리고 우리의 농사를 도와주실 분이기도 해요.”

크로든 아저씨가 손을 들었다.

“농사를 돕는다는 건 무슨 의미입니까?”

“우리 마을에 축복을 내려주시기로 했습니다.”

“추, 축복?”

다소 뜬금없는 발언에 크로든 아저씨가 당혹스러운 얼굴로 반문했다.

이에 레비아 선생님이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에는 작은 도구가 들려있었다.

다름 아닌 라이터였다.

모두에게 라이터를 보여준 레비아 선생님이 내 쪽을 힐끗 쳐다본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준비된 대사를 읊었다.

“파메르 님은 조화의 신입니다. 세상이 존재하는 모든 현상을 이해하고, 꿰뚫어 보는 분입니다.”

차분하게 대사가 이어진다. 반면에 마을 사람들은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서로의 눈치만 봤다.

대사를 직접 짠 당사자가 이런 말 하긴 뭣하지만, 일부러 어려운 말을 써서 어물쩍 넘기려는 속셈이었다.

“제 손에 이 들린 도구는 라이터라고 부릅니다. 이 또한 파메르 님의 권능이 담긴 물건입니다.”

레비아 선생님이 다이얼 스위치를 돌렸다.

그와 동시에 새빨간 불꽃이 피어올랐다.

효과는 확실했다.

“오오오오!”

“저, 저것이! 축복이란 말인가!”

“어떻게 저게 가, 가능한 거지?”

태어나서 처음으로 접하는 축복 아니, 아티펙트에 회의장이 시끄러워졌다.

성공이네.

사실 허점이 많은 계획이긴 했지만, 아무렴 어떠랴.

이미 라이터에 시선이 빼앗긴 이상 자잘한 건 신경 쓸 겨를조차 없겠지.

“저는 당분간 이 마을에서 지내며 파메르 님의 권능이 담긴 물건들을 만들 생각입니다. 그중에는 농사에 필요한 것도 있겠지요.”

청산유수시네.

본래 레비아 선생님은 마법사였으니 굳이 아티펙트가 아니더라도 마법을 보여줄 방법이 있었다.

그럼에도 굳이 라이터를 이용하는 이유는 마을 사람들의 이해를 도울 겸, 앞으로는 직접 사용하게끔 나눠주는 게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절 도와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조수가 필요하다는 레비아 선생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회의장이 부산스러워졌다.

조용히 눈치를 보던 남자가 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그거라면 제가 하겠습니다.”

그것이 신호탄이 되었는지, 아티펙트에 호기심을 느낀 이들이 조수를 자처하기 시작했다.

이건 좀 의외네.

적임자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선뜻 지원하는 사람이 없으리라 예상했는데, 의외로 조수를 자처하는 이들이 많아서 놀랐다.

음, 이거 잘하면 레비아 선생님의 조수가 바뀔 수도 있겠는데?

레비아 선생님 또한 나와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후드 밑으로 드러난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저기············ 추천도 가능하다면, 저는 아이넬을 추천합니다.”

내 이름이 언급되자 삽시간에 회의장이 조용해졌다. 더불어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 쏠렸다.

갑작스러운 주목에 민망해진 나는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아이넬이라면야············”

“하긴. 도구를 만드는 거라면 우리보다는 아이넬이 더 낫겠네.”

“제 생각도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아이넬의 의견도 중요하겠죠. 아이넬,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어떻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사실 진작부터 레비아 선생님을 돕는 역할은 내가 맡을 예정이었다.

아티펙트를 제작할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으니,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었다.

애당초 레비아 선생님께 파메르의 신도 역할을 부탁하게 된 목적이기도 했고.

“네, 그럼 제가 할게요!”

내가 말하자 도리아 아주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레비아 씨의 조수는 아이넬이 맡는 거로 할게요. 다들 동의하시나요?”

도리아 아주머니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넬, 앞으로 레비아 씨를 도와주렴.”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내가 조수가 되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자, 그럼 다음으로는 씨앗을 심는 시기와 인원 배치를············”

* * *

회의가 있은 후로 며칠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나만의 작업실에 틀어박혀 농사 도구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많은 집중력을 필요로 했지만,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편안했다.

이미 설계도는 다 짜둔 상태였거니와 내게는 열정이 넘치는 제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스승님.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스테인 씨가 내게 부품을 건넸다.

재질은 철이었다.

전체적으로는 Y자 형태의 틀을 여러 개 이어 붙인 모양새였고, 속은 텅 비어있었다.

나는 스테인 씨에게 받은 부품을 받아 다른 부품에 끼웠다.

“오오, 완벽해요!”

“감사합니다!”

내 칭찬에 스테인 씨가 감격했다.

우리가 만든 것은 바로 농사용 스프링클러였다.

그것도 자동으로 물을 생성시키는 기능까지 갖춘 최신식 농기구였다.

“드디어 완성했네요. 자, 이제 밭으로 가져가죠!”

“예!”

나는 스테인 씨와 함께 우리가 만든 장비를 수레에 싣고 밭으로 향했다.

나는 눈앞에 둔 커다란 장비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밭에 도착하자 많은 사람들이 씨앗을 뿌리고 있었다.

“대장이다! 대장, 대장!”

역시나 열심히 씨앗을 뿌리던 록시가 가장 먼저 날 발견하고는 허둥지둥 달려왔다.

“오늘도 열심히네.”

“응! 록시 열심히 한다!”

“착하네.”

나는 록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적당한 위치에 수레를 주차했다.

“흠? 그건 뭐냐?”

근처에 있던 크로든 아저씨도 내가 끌고 온 수레를 보며 흥미를 보였다.

“이거 레비아 선생님이 만든 장비예요!”

“레비아 선생님이?”

레비아 선생님의 이름이 언급되자 옆에 있던 남자가 퍼뜩 외쳤다.

“다들 모여 봐! 여기 레비아 선생님이 만든 물건이 도착했다!”

내가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쓰자, 어느 순간부터 다들 똑같은 호칭을 썼다.

이내 씨앗을 뿌리던 사람들이 내 주변으로 모였다.

“그래서, 대체 그건 어디에 쓰는 거냐?”

“일단, 저기 밭 중앙으로 좀 옮겨야 해요.”

“그래? 야, 다들 들었지? 어서 옮기자고!”

사람들이 장비에 달라붙었다. 무게가 꽤나 나가는 탓에 성인 장정 5명이 붙은 뒤에서야 밭의 중앙으로 옮길 수 있었다.

나는 사람들의 기대 어린 시선을 밭으며 스프링클러를 조작했다.

일단 출력은 중간으로 해두고············

이내 모든 설정을 맞춘 나는 힘차게 버튼을 눌렀다.

그와 동시에 마나 배터리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마나가 뿜어져 나왔다. 마나는 장비를 타고 올라가 마법진을 감쌌고, 연결된 노즐을 타고 무언가가 치솟는 소리가 들렸다.

푸화아아아아아아악!

마침내 Y자 형태의 입구를 통해 물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우와아아아아!”

“물이다! 물이다!”

물줄기를 뿜어내던 입구가 회전을 시작했고, 그에 따라 일직선으로 뻗어 나가던 물줄기는 널따란 막처럼 변해 드넓은 밭을 감쌌다.

아름답다.

이렇게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노라니 비눗방울 속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었다.

그저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는 이들도 있는가 하면, 제자리에서 팔짝 뛰는 사람도 있었다. 개중에는 눈시울을 붉히는 이들도 있었다.

비록 그 표현도 생각도 다 다르겠지만, 나와 같은 마음이겠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대장, 대장! 하늘이 이상하다! 하늘이!”

록시의 외침에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형형색색, 아름다운 무지개가 떠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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