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69화 (67/159)

69. 소년기(51) - #오늘은 내가 관광 가이드!

“하티르랑은 너무나도 다른 곳이네요. 이런 곳이라면 저도 대환영이예요.”

함께 온 베니트 씨 역시도 마을을 둘러보며 한마디 덧붙였다.

뒤쪽에 서서 굳어 있는 스테인 씨 또한 안 그런 척 마을 구경에 여념이 없었다.

그나저나 스테인 씨가 긴장을 많이 한 것 같네.

헤파이토 씨나 베니트 씨는 예전부터 산맥을 돌아다녔다고 하는데, 스테인 씨는 아니었다.

거의 대부분은 자신의 공방에 틀어박혀 있으며, 아주 가끔 장터에 가는 게 고작이라나. 게다가 스테인 씨가 이곳에 온 명목은 헤파이토 씨의 수행이다.

그마저도 듀로프의 최정상을 모셔야 하는 입장이었으니 부담감도 상당하겠지.

본래 수행원 역할은 올룸스 씨가 하는 게 맞았으나, 그도 부담이 됐는지 서둘러 스테인 씨한테 맡기고 도망치려고 하더라.

그래봐야 올룸스 씨도 조만간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서 이곳으로 오기로 되어있었다.

헤파이토 씨가 그런 올룸스 씨를 잡아 필요한 짐을 챙겨 와달라 부탁했기 때문이다.

말이 부탁이지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이었다.

그건 그렇고 당분간 세 듀로프가 지낼 장소를 정해야 할 텐데.

“도리아 아주머니.”

“으응?”내가 부르자 도리아 아주머니가 허둥지둥 고개를 돌렸다.

“세 분이 지낼 곳이요. 어디로 하는 게 좋을까요?”

“음············ 원하시는 곳이라면 어디든 상관은 없는데. 집은 어떻게 하지?”

“그건 괜찮아요! 헤파이토 씨가 직접 지으신다고 하셨거든요.”

“그, 그러니? 손님인데 그래도 될까?”

“그건 너무 걱정할 거 없소이다! 당분간 지낼 집 정도는 금방 지을 수 있으니 말이오.”

“네, 너무 부담가지실 건 없어요. 우리는 정말로 괜찮으니까, 그냥 편하게 대해주세요.”

헤파이토 씨와 베니트 씨의 말에 도리아 아주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하네요. 아이넬, 부탁해도 될까?”

“네! 그럼 세 분은 제가 안내하는 걸로 할게요!”

“고맙구나. 혹시 무슨 일 생기면 말해주렴.”

“네! 그럼 갈까요?”

나는 세 듀로프를 이끌고 본격적인 안내를 시작했다.

* * *

역시나 세 듀로프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마을을 안내하기 시작하자마자 모두의 이목을 끌었다.

“반갑소이다. 나, 헤파이토라고 하오. 당분간 신세를 질 예정이니, 모쪼록 잘 부탁하오!”

헤파이토 씨는 마치 홍보를 목적으로 나온 유명인사처럼 손을 흔들었다.

다양한 종족을 접해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 거겠지.

이런 헤파이토 씨의 시원스러운 태도 덕분인지 마을 사람들도 크게 겁을 먹는 눈치는 아니었다. 귀와 꼬리가 달린 비스테르와는 달리 인간과 무척이나 흡사하게 생겼다는 점도 한몫했으리라.

“그나저나, 저 사람들은 어딜 저리 바쁘게 가는 거요?”

헤파이토 씨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분주하게 이동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아이넬표 지게를 짊어지고, 양 손에는 바구니와 각종 도구가 들려있었다.

“조만간 축제가 열리거든요. 그거 준비하느라 다들 바쁜 거예요.”

“축제가 열린다는 말이오?”

헤파이토 씨는 축제라는 말에 눈을 빛냈다.

“네. 안 그래도 말씀드리려고는 했는데, 괜찮으시면 세 분도 축제에 참여하시면 좋을 것 같은데. 어때요?”

내 제안에 헤파이토 씨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축제 하면 또 듀로프가 빠질 수 없지! 이럴 게 아니라, 나도 좀 거들고 싶구려!”

헤파이토 씨는 진심이었는지 그대로 사람들을 따라 이동했다.

“호호, 놀랄 것 없어요. 헤파이토 씨가 축제라면 사족을 못 쓰는 분이거든요.”

내가 당황하자, 베니트 씨가 웃으며 말했다.

본인이 원한다는 데 별수 있나.

안 그래도 마을 구경을 끝낸 뒤에 곧장 일손을 도울 예정이긴 했지.

이참에 체험 관광으로 일정을 바꿔야겠네.

“그럼 가요!”

우리가 부지런히 걸어 도착한 곳은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들판이었다.

그곳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땅을 고르고 있었다.

“흐음? 다들 뭘 하고 있는 거지?”

“이곳에서 농사를 지을 거거든요.”

나도 나지만 도리아 아주머니 또한 쇠뿔도 단김에 빼는 타입이었는지, 농사를 짓겠다는 발표를 한 다음날부터 곧장 회의를 열었다.

어디에 농사를 지어야 할지가 주된 안건이었다.

일관된 목표라는 게 생겨서 그런 걸까.

내심 회의가 제대로 진행될지 걱정했으나, 그건 내 기우에 불과했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없이 의견을 제시했고 열띤 토론은 밤 늦게까지 이어졌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띠었던 인물이 있었다.

크로든 아저씨였다.

그는 도리아 아주머니를 돕겠다는 약속 때문인지는 몰라도 정말 적극적으로 회의에 참여했으며 가장 많은 의견을 제시했다.

지금 이 장소를 밭으로 정한 것도 크로든 아저씨의 의견이었다.

나는 슬쩍 밭을 살펴봤다.

아니나 다를까.

저 멀리 땅을 고르고 있는 크로든 아저씨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얇고 둥그런 바퀴가 달린 기구를 밀고 있었다.

다름 아닌 쟁기였다.

아무렴.

농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밭이다.

제아무리 씨앗이 좋고 정성을 쏟아부어도 땅이 좋지 못하면 작물은 잘 자라지 못한다.

앞으로 이곳을 밭으로 써야했으니 그 용도에 걸맞게 다듬는 게 중요했고, 나는 곧바로 쟁기 제작에 착수했다.

그는 베테랑 사냥꾼답게 체력이 좋았는지 아주 능숙하게 쟁기를 다루고 있었다.

“넬?”

날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아, 엄마!”

“호호, 오늘도 도리아 아주머니의 일을 도와주러 온 거니?”

“맞아요!”

본래라면 이 농사를 주관해야 하는 사람은 나다.

애당초 농사를 짓겠다고 나선 건 나였거니와, 이를 마을에 전파겠답시고 계획을 짠 것도 나였으니까.

다만 무작정 농사만 붙잡고 있기에는 하고 싶은 게 많았다. 나아가 농사에 필요한 도구들을 제작해야 되는 점도 있었고.

그래서 나는 아예 모든 걸 도리아 아주머니께 맡기기로 했다.

굳이 직책을 붙이자면 도리아 아주머니가 농사를 총괄하는 위원장이고, 나는 비서쯤 된다고 보면 될 것 같았다.

물론 중요한 사안에는 내 의견이 반영되는 편이긴 했지만 말이야.

그래도 다른 사람에 비해서는 여유로웠다.

“엄마, 인사하세요. 여기는 헤파이토 씨, 베니트 씨, 스테인 씨에요.”

그제야 세 듀로프를 발견한 엄마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아일라라고 해요.”

“반갑소이다! 헤파이토라고 하오.”

“베니트라고 해요.”

“스, 스테인입니다! 스, 스승님의 어············컥!”

스승님이라는 말에 반사적으로 스테인 씨의 옆구리를 찔렀다.

다른 곳에서라면야 스승이라고 불러도 상관없었지만, 이곳은 마을이다. 행여나 날 스승이라고 불렀다가는 다들 이상하게 쳐다볼 게 뻔했으니까.

“어, 대장이다! 대장! 대장!”

어느새 나타난 록시가 후다닥 달려왔다.

더불어 그녀의 뒤에는 크로넬 씨가 쓰는 것과 비슷하게 생긴 기구가 끌려오고 있었다.

본래 쟁기는 손으로 밀게끔 제작했는데, 록시의 경우는 끌고 다니는 게 편할 것 같아서 따로 제작했다.

어딘가 밭을 가는 소 같은 느낌이 드는 건 내 착각일까?

“록시도 있었구나.”

“응! 대장 엄마랑 같이 농사했다!”

“착하네.”

나는 록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헤헤!”

록시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기뻐했다.

“허어, 이 작은 아이는 비스테르가 아니오?”

헤파이토 씨가 신기하다는 듯 록시를 쳐다봤다. 역시 헤파이토 씨도 비스테르를 아는 구나.

“네. 맞아요. 이름은 록시예요. 저쪽에 보면 머리가 검은 아이는 루나라고 해요.”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루나의 귀가 쫑긋거렸다.

“호오, 비스테르가 원래 이런 성격이었던가?”

레비아 선생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었지.

뭐, 비스테르의 대외적인 이미지가 어찌 되었든 지금 마을에서의 록시는 모두가 좋아하는 아이돌이었다.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나는 근처에 진열된 쟁기를 끌고왔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체험을 해볼까요? 이건 쟁기라는 건데요. 이렇게············”

나는 쟁기의 손잡이를 잡고 살짝 밀었다. 그 끝이 포크처럼 생긴 쟁기가 땅을 파고들었다.

나는 무게를 실어 쟁기를 단단하게 박았다.

“뾰족한 부분을 땅에 박아넣고 밀면············”

시범 삼아 쟁기를 밀자 흙이 밀려나면서 안에 숨어 있던 돌맹이가 톡톡, 튀어나왔다.

“이렇게 선이 생기면서 돌 같은 게 걸려서 나오거든요. 이건 여기에 달린 바구니에 넣고, 나중에 버리면 돼요. 어때요, 쉽죠?”

“호오, 그렇군.”

내 모습을 유심히 쳐다보던 헤파이토 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곧장 실행에 옮겼다.

“이렇게 하면 되는 겐가?”

“맞아요. 자, 베니트 씨랑 스테인 씨도 하나씩 받으세요!”

그렇게 세 듀로프와 두런두런 잡담을 나누며 밭을 갈던 중이었다.

“새참 왔어요!”

저 멀리서 들려오는 외침에 퍼뜩 고개를 들었다.

아, 그러고 보니 슬슬 점심을 먹을 시간이구나.

누구보다 열심히 쟁기를 밀던 헤파이토 씨가 퍼뜩 고개를 돌리더니 콧구멍을 벌름거렸다.

“이 냄새는?”

“새참이 왔나 보네요.”

“새참? 그건 또 뭔가?”

새참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농사에 빠질 수 없는 거요! 같이 가요!”

* * *

헤파이토 씨가 대접에 가득 채운 술을 단숨에 비웠다. 그리고는 포크를 들어 자글자글 익어가는 삼겹살을 낼름 집어먹었다.

“크하아! 이거 아주 끝내주는군!”

그는 처음으로 먹는 삼겹살이 마음에 들었는지 쉴 새 없이 포크를 놀렸다.

이는 헤파이토 씨만이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옹기종기 모여 고기를 구워 먹는데 여념이 없었다.

뿐만 아니었다.

한쪽에서는 피기를 통으로 굽고 있었는데, 그 냄새가 어찌나 먹음직스러웠는지, 내 침샘이 요란을 떨어댔다.

“이거, 우리가 너무 많이 먹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요.”

베니트 씨가 민망하게 웃으며 말했다.

“뭘요. 고기라면 얼마든지 있으니까 마음껏 드셔도 괜찮아요.”

빈말이 아니었다.

우리가 먹는 고기들은 얼마 전 루나가 잡아온 사냥감들이었다.

문제는 그 양이 워낙 많아서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조금 난감했었으니까.

심지어 루나의 사냥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거니와, 마을의 일원이 된 후로 조금씩 그 양이 늘어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진작부터 나눠주고 싶었지만, 사실 이 고기들이 어디서 생겼는지 물어보게 되면 여러모로 난감했지만, 지금은 루나가 잡아왔다고 말하면 되니 별로 문제될 건 없었다.

게다가 새참이라는 명목으로 빠르게 소모할 수 있었으니 애먼 고기를 버리지 않아도 됐다.

뭐, 데커드 할아버지의 오두막에는 아직도 어마어마한 양의 고기가 쌓여있었으니, 다들 먹다가 질리는 게 빠를지도 모르겠지만.

“으하하하!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드는군! 그래, 그리 말한다면 내 사양하지 않겠네!”

“그나저나, 이거 정말 맛있네요. 혹시 이걸 만드신 분이 누군지 알 수 있을까요?”

혹시 베니트 씨도 요리에 관심이 있는 건가?

그럼 미슐레 아주머니랑 잘 맞을 수도 있겠네. 어쩌면 듀로프들이 먹는 요리의 레시피도 배울 수 있을 테니, 서로에게도 좋겠지.

“미슐레 아주머니라고, 우리 마을에서 제일로 요리를 잘 하시는 분이 계시거든요. 내일이라도 소개해드릴 수 있어요!”

“그럼 부탁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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