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68화 (66/159)

68. 소년기(50) - #장인의 호칭을 받다!

“맞네. 내 그대를 만나고 싶어 기다리고 있었네.”

헤파이토 씨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내게로 다가왔다.

내 앞에 멈춰선 그가 내 눈을 들여다봤다.

대장인이라는 걸 듣고 난 뒤라서 그런지 위엄 같은 게 느껴졌다.

한동안 내 눈을 응시하던 헤파이토 씨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자네는 악수라는 걸 한다지?”

“어떻게 아셨어요?”

나는 웃으며 손을 맞잡았다.

“후후, 그대를 만나러 왔다고 하지 않았나. 상대에 대해 알아두는 게 예의 아니겠는가.”

고정관념이라고 해야 할까.

지구에서도 흔히 장인이라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을 찍은 다큐멘터리나 영상을 보면 항상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었다.

좋게 말하면 근엄함이요.

있는 그대로 보자면 까칠함이었다.

일평생 한 가지 일에만 몰두했던 사람인 만큼 타인을 대하는 방식이 조금 거칠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던 것이다.

헤파이토 씨는 첫인상과는 달리 조금 친근해 보였다. 어쩌면 그에게 짙게 밴 술 냄새 때문에 더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아, 시간은 괜찮은 겐가? 혹시 내가 방해를 하는 건 아닌가 걱정이로군.”

“아뇨, 괜찮아요. 어차피 오늘은 제작보다는 추후 만들 걸 정리할 생각이었거든요.”

“설계라. 만들어야 할 걸 가늠해본다는 의미로군.”

헤파이토 씨는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예. 맞아요. 제가 만드는 도구는 부품도 많이 들어가고 구조도 조금 복잡하거든요.”

헤파이토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냉장고만 봐도 알 수 있다네. 겉으로는 평범한 상자 같으나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어졌는지 말이야. 나사못이라고 했던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한 건지, 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네. 경첩은 또 어떤가! 뚜껑을 얹는 게 아니라 손잡이를 달아 자유롭게 여닫을 수 있으니, 그 활용도가 무궁무진하겠어.”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쑥스럽네요.”

명색이 대장인이다.

그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니 기분이 좋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아, 그나저나 저를 만나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무슨 일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아! 내 정신 좀 보게. 정작 중요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군. 이럴 게 아니라 잠시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어떤가?”

“그러죠.”

나는 테이블로 향해 헤파이토 씨와 마주 앉았다.

“자네들도 앉게나.”

헤파이토 씨의 말에 멀뚱멀뚱 서 있던 세 듀로프도 자리에 착석했다.

“얼마 전 올룸스에게 들었네. 그래, 스테인이 그대의 제자로 들어갔다지?”

“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후후,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라. 자네도 알겠지만, 스테인은 본래 내 제자가 될 아이였지.”

전에도 들었지만 본래 스테인 씨는 헤파이토 씨의 제자로 들어가는 것으로 거의 결정이 난 상태였다.

본의 아니게 제자를 빼앗은 꼴이 되어버린 셈이다.

“너무 미안해할 건 없네. 저 아이가 그대를 스승으로 모시게 된 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네. 솔직히 말해서 나도 대장인이 아니었더라면 그대의 제자로 들어가고 싶을 정도니까.”

헤파이토의 말이 충격적이었던 건지, 다른 세 듀로프가 화들짝 놀랐다.

이에 헤파이토 씨가 호탕하게 웃었다.

“크하하핫! 왜, 내가 제자로 들어간다는 말이 그리 놀랄 일인가?”

“호호, 그 자존심 세고 거칠기만 한 당신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온다면 놀라는 게 당연하지 않아요?”

당신이라는 표현을 쓰는구나.

그럼 베니트라는 분은 헤파이토 씨의 부인이구나.

어쩐지 베니트 씨의 시선이 유난히도 애틋하더라니.

“후후, 내가 늘 말하지 않았소? 나는 말이오, 늘 스승이라는 존재를 원했다오. 하지만, 그 누구도 내 스승을 자처하지 않았지.”

“그건 당신이 싫어서가 아니라, 당신의 능력이 너무 뛰어났기 때문이에요.”

하기야.

세상에는 소위 천재라고 불리는 자들이 있다.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깨우치는 수준을 넘어 그냥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진짜 천재들 말이다.

만약 내가 그러한 천재를 가르치는 입장이 된다면 어떨까.

아마 첫 수업과 동시에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부터 하지 않을까, 싶다.

그도 그럴 게, 굳이 내가 알려주지 않아도 나보다 더 잘할 게 뻔했으니까.

물론 스승이라고 꼭 천재여야 할 이유는 없지만, 적어도 범인을 가르치는 것보다는 훨씬 더 고되리라는 건 지극히 당연했다.

게다가 단순 공부가 아니라 이렇듯 무언가를 제작하는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가르치기 어려웠겠지.

“후후, 당신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래도 나는 진심이라네. 그대의 기술을 배우고 싶은 마음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따지면 저도 마찬가지죠. 사실 저 냉장고는 스테인 씨가 아니었으면 시작도 못 했을걸요?”

“후후, 겸손할 필요는 없네. 내 비록 그대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아는 건 아니나, 어떻게 해서든 만들었으리라 보거든.”

확실히 헤파이토 씨의 말에 부정할 순 없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는 말마따나. 내가 원하는 재료가 없었더라면 다른 재료로 대체해서라도 만들었으리라. 실제로도 나는 옛날 석빙고의 형태로 만들 생각도 했었으니까.

“이거, 또 이야기가 잠시 샜군. 그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마도구라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묻고 싶네. 마도구를 제작하는 방법은 어디서 익혔는가?”

마도구 제작 방법이라.

내가 예상했던 질문이 아니었다.

당연히 마법진에 대해서 물으리라 생각하고, 그에 대한 답변을 준비하던 나는 잠시 멈칫했다.

“그게 조금 애매하네요.”

“애매하다는 건 무슨 뜻인가? 혹시 밝힐 수 없는 겐가?”

“아뇨, 아뇨. 밝힐 수 없는 게 아니라······.”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되는 걸까.

나는 레비아 선생님한테 마법진을 배웠다.

달리 말해서 마법진을 배운 거지 마도구를 제작하는 방법을 배운 건 아니었다.

모르겠다.

다른 상황이라면 모를까.

헤파이토 씨, 나아가 듀로프에게 마도구라는 건 그 의미가 남다르다.

어설프게 둘러대는 것보다는 그냥 솔직하게 말하는 쪽이 편하겠지.

“사실 저는 마도구의 제작을 배운 적은 없어요.”

“그게 무슨 소린가? 배운 적이 없다고!?”

역시나 헤파이토 씨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비단 헤파이토 씨만이 아니었다. 주변에 있던 세 듀로프 또한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제가 배운 건 마법진이거든요. 사실 마법진에 대해서 물어보실 줄 알았는데, 마도구를 물어보셔서 조금 당황했네요.”

나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정작 헤파이토 씨는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부릅뜬 눈으로 날 쳐다봤다.

“그러니까, 그대는······마법진만 배웠다는 겐가?”

“네.”

“마나 배터리는?”

“그것도 제가 만든 거예요.”

“그, 그럼 마나스냇치의 열매를 이용해 마나 배터리를 만든 것도 전부 그대의 생각이란 말이오?”

아하.

보아하니 헤파이토 씨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 제작했다고 추측한 모양이다.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긴 하네.

처음 마나 배터리를 제작했을 때 레비아 선생님도 엄청 놀라셨지.

애당초 마나 스냇치의 열매를 사용한다는 발상 자체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유는 단순했다.

위험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 위험이 나한테만 국한되는 게 아니기에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될 물건이기도 했다.

지구인의 감각으로 본다면 화약을 짊어진 채 불길로 뛰어드는 것과 같은 맥락이겠지.

게다가 듀로프는 마나스냇치를 더러 죽음의 나무라고까지 표현했으니, 오죽 놀랐을까.

옛말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하였다.

어떻게 보면 내가 지구인이었고, 그 어떠한 선입견과 고정관념도 없었기에 비로소 이런 결과로 이어졌다고 보는 게 옳았다.

“네. 저는 마법진을 배운 적은 있는데, 마도구 제작은 배운 적이 없어요.”

내가 긍정하자 헤파이토 씨가 털썩, 의자에 앉았다.

“베니트.”

갑작스러운 부름에 베니트 씨가 퍼뜩 고개를 돌렸다.

“네, 말씀하세요.”

“아무래도 대장인의 자리를 내려놔야 할 것 같소이다.”

“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나는 예전부터 깨닫고 있었다오. 대장인은 말이오, 망치만 두들길 줄 안다고 되는 게 아니오.”

자조 섞인 미소를 띤 헤파이토 씨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 헤파이토는 진심으로 감복했다오. 그대를 장인이라 불러도 되겠소?”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장인이요?”

다소 뜬금없는 제안에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잠시였다.

“당신······. 아이넬 씨를 장인으로 대하시겠다는 건가요?”

“자, 장인?”

“헤파이토 님!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돌연 세 듀로프가 크게 당황하며 질문들을 쏟아냈다.

여기서 말하는 장인이라는 건 제작자를 뜻하는 것 같은데, 왜 저렇게까지 당혹스러워하는 거지?

내가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자 스테인 씨가 속삭이듯 말했다.

“듀로프 중에서도 장인이라는 호칭을 받은 이는 드뭅니다.”

“그래요?”

약간 무형문화재 같은 느낌이라고 보면 되는 건가?

아, 이건 듀로프만 받을 수 있는 호칭이니 명예 듀로프가 됐다고 보면 되겠구나.

대장인한테 인정을 받았다니, 괜스레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기분이다.

“단지······.”

“단지?”

“헤파이토 님이 직접 장인의 호칭을 내리신다는 건······.”

스테인 씨가 마른침을 삼켰다.

대체 왜 저렇게까지 긴장을 하는 거지?

“그······ 후계자로 임명하겠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후계자요?”

잠깐만.

여기서 말하는 후계자가 내가 아는 그 후계자가 맞는 건가?

“저는 인간인데요?”

같은 듀로프였다면야 이해하겠는데, 나는 인간이다.

내가 아는 듀로프는 이른바 부족사회에 가까웠으니, 다른 종족인 나한테 후계자라는 지위를 주는 건 조금 이상했다.

“너무 깊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네. 후계자라는 건 명목이지, 꼭 자네가 후계자가 될 필요는 없어. 단지 나는 그대에게 예의를 표하고 싶다네.”

“그런 거라면야, 감사히 받겠습니다.”

“아, 그리고 부탁이 있네만.”

“부탁이요?”

“괜찮다면 그대를 따라가고 싶네.”

헤파이토 씨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또다시 세 듀로프가 입을 열려고 했다.

“다들, 진정하게나. 내가 따라가고 싶다는 건 대장인의 자리를 내려놓겠다는 의미가 아니야. 그저, 잠시 그대가 작업하는 걸 보면서 머리를 식히고 싶을 뿐이네. 어떤가, 괜찮겠는가?”

어디 보자.

도리아 아주머니라면 당연히 허락을 하실 게 분명했거니와, 이미 마을에는 록시와 루나가 있다.

이미 선례가 있는지라 헤파이토 씨가 마을에 온다고 해서 소란이 일어나진 않겠지.

“저는 상관없어요. 아, 대신 헤파이토 님이 지낼 집은 직접 지으셔야 할걸요?”

“으하하핫! 집이라. 그게 무어 어렵겠는가! 그래, 말이 나왔으니 바로 가지!”

헤파이토 씨는 더 기다릴 수 없다는 듯 냉큼 채비했다.

“잠시만요! 그렇다면 저도 가겠어요.”

“베, 베니트 님마저······.”

* * *

“이렇게 된 거예요.”

“그, 그랬구나. 헤파이토 씨라고 하셨나요? 저는 도리아라고 해요.”

“허헛, 이거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와 미안하구려! 그래, 여기가 아이넬이 사는 마을이란 말이지.”

헤파이토 씨가 어린아이처럼 웃으며 마을을 둘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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