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65화 (159/159)

65. 소년기(47) - #헤파이토

“이건 아니야.”

헤파이토는 테이블에 올려진 검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특이한 건 검의 형태였다.

일반적인 검과는 달리 폭이 무척이나 넓었고, 그 위에는 드문드문 문자와 해괴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어린아이가 낙서를 한 것 같으면서도 언뜻 예술가가 만든 작품처럼 보이기도 했다.

멀거니 검을 응시하던 헤파이토가 시선을 돌렸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각종 무구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그 또한 일반적으로 쓰이는 것과는 생김새가 달랐는데, 폭이 넓고 그 위에 새겨진 글자와 문양이 새겨져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무구의 산더미를 보던 헤파이토가 한숨을 내쉬었다.

“정녕 내 실력으로는 재현할 수 없다는 건가.”

인정하기 싫다는 듯, 하지만 현실을 외면할 순 없다는 듯 입술을 깨문 헤파이토의 얼굴에는 절망감이라는 감정이 떠올랐다.

“도무지 방법을 모르겠군. 방법을 모르겠어.”

듀로프를 통치하며 우상과도 같은 존재인 그가 이토록 고민하는 건 마도구가 원인이었다.

무려 30년이다.

대장인이 되기 이전부터 그는 마도구를 복원시키는 일에 매진했다.

“후우, 이렇게 진전이 없어서야. 이래서는 대장인이라는 호칭이 울겠군.”

자조 어린 혼잣말을 중얼거린 헤파이토가 테이블 위에 있던 실패작을 던졌다.

카랑, 소리를 내며 바닥을 구르는 검이 꼭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이내 마음을 추스른 헤파이토가 또 다른 무구를 집어 테이블에 올렸다.

지금까지 이곳에 쏟아부은 노력도 노력이지만, 여기서 포기한다는 건 스스로가 용납할 수 없었다.

다시금 작업에 돌입하려던 찰나였다.

문이 열리며 또 다른 듀로프가 들어왔다.

“그만 포기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오랜 시간 동안 함께 무구를 제작했던 동료이자, 평생을 함께하는 동반자 베니트였다.

본래라면 헤파이토의 공방에 함부로 들어올 수 없다. 이는 반려자인 베니트라고 다를 건 없었다.

그러나 기다리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매일 자신의 공방에 틀어박혔으니 걱정이 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 말 하시구려. 내 마도구 복원에 얼마나 힘을 쓰는지 아시잖소.”

헤파이토는 베니트가 올 줄 알았다는 듯 망치를 휘둘렀다.

깡!

왼손으로 단단하게 고정한 정에서 불꽃이 튀며, 검면에 작은 홈이 파였다.

이런 헤파이토의 무관심한, 달리 말해서 암묵적인 축객령에도 불구하고 베니트는 나가지 않았다.

오히려 헤파이토의 옆으로 다가와 그의 등을 어루만졌다.

“평생을 옆에서 봤는데, 그걸 어찌 모르겠어요. 단지 걱정이 되니까 그러는 거잖아요.”

베니트의 태도에 헤파이토의 망치질이 뚝, 멎었다.

“나는 말이오, 선조의 기술을 되찾을 수 있다면 이까짓 목숨을 내놔도 후회가 없다오.”

“알지요.”

헤파이토는 타고난 대장장이였다.

듀로프 중에서도 단연 손재주가 뛰어났다.

비단 손재주만이 아니다.

그에게는 최고의 무구를 만들겠다는 강한 열망이 있었다.

그랬기에 비교적 어린 나이에 대장인의 칭호를 받았을 수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대장인의 자리를 받는 게 아니었소.”

헤파이토가 대장인의 자리를 넘겨받은 것은 그저 스승의 유언을 지키기 위함이었을 뿐이다.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오로지 마도구의 복원 하나였다.

실제로도 그는 어렸을 때부터 매일 산맥을 떠돌며 다양한 종족을 만났고, 이야기를 들었다.

아주 자그마한 단서라도 찾고자 노력에 노력을 거듭했다.

하지만 마도구의 복원은 고사하고 아주 사소한 실마리조차 잡을 수 없었다.

그리고 대장인이 된 후로는 마음대로 밖을 돌아다니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상황이 이러했으니 헤파이토는 늘 갑갑했다.

자고로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했던가.

헤파이토는 자신의 자유를 억압하는 대장인의 자리를 내려놓을 방법을 떠올렸다.

후계자였다.

헤파이토야 당장이라도 이 지긋지긋한 허울을 벗어버리고 싶었지만, 명색이 대장인이다.

아무나 앉혔다가는 자칫 듀로프의 존재가 위험해질 수 있었다. 따라서 적합한 후계자를 찾는 게 우선이었다.

수 년동안 여러 공방을 돌아다니면서 어린 듀로프들을 보던 중, 헤파이토의 눈에 들어온 아이가 있었다.

그자가 바로 스테인이었다.

따지고 보면 스테인보다 손재주가 뛰어난 이들은 있었다.

실제로도 헤파이토에게 스승이 되어달라며 찾아온 이들 중 반절은 천재요, 남은 반절 또한 수재였다.

그냥 아무나 골라잡으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헤파이토가 선뜻 제자를 들이지 않은 이유는 그들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진심으로 자신에게 배우고 싶어 하는 것은 맞지만, 그들에게는 자신과 같은 열정도 반드시 해내고야 말겠다는 강한 신념도 없었다.

반면에 스테인은 달랐다.

무엇을 만들고 싶어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가 휘두르는 망치에는 신념이 담겨있었다.

“그래서 올룸스의 자식은 어떻게 되었소?”

“음, 그것이…….”

베니트가 우물쭈물하자 헤파이토의 미간이 좁아졌다.

“왜 그러시오? 내가 제자로 삼겠다는 말을 전하지 않은 게요? 내가 몇 번이고 말했잖소. 나는 하루라도 빨리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실은 그게 문제가 조금 생겼다고 하네요.”

“문제? 무슨 문제가 생겼다는 거요? 올룸스에게 듣기로는 스테인도 내 제자가 되는 걸 원한다 하던데?”

“그게……. 아무래도 그 아이는 당신의 제자가 될 마음이 없는 것 같아요.”

“뭐? 그게 무슨 소리요?”

“저도 이것저것 알아봤는데, 스테인은 무구에 큰 관심이 없다고 하던걸요.”

“무구에 관심이 없다?”

헤파이토의 눈썹이 역팔자로 휘었다.

“대체 그게 무슨 말이요? 듀로프가 무구를 만들지 않으면 대체 뭘 만든다는 거요?”

듀로프는 대대로 무구를 제작했다.

헤파이토 또한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자세한 건 잘 모르겠는데, 듣자 하니 실생활에 필요한 도구를 만든다고 하던데요?”

“실생활에 필요한 도구? 그게 대체 뭐요?”

“음……. 아!”

베니트가 공방의 한쪽을 빼곡하게 채운 술잔을 가리켰다.

“저런 거 아닐까요?”

“으음…….”

“이런 말 하기 조심스럽지만, 그 아이는 당신의 제자가 될 생각이 없는 것 같아요.”

“허, 허허헛!”

돌연 헤파이토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자기가 만들고 싶은 게 있어 내 제자가 되는 것도 거절했다 이거지?”

“네? 아, 네.”

“허허헛! 좋군, 좋아!”

헤파이토는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한참을 웃은 뒤에서야 웃음을 거뒀다.

“그래, 듀로프라면 그 정도의 신념은 있어야 하지 않겠소? 스테인이라…….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드는 녀석이로군. 그래, 올룸스는 지금 어디에 있소?”

티가도 제 말 하면 나타난다고 했던가.

“이,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지금 공방에는 헤파이토 님과 베니트 님이…….”

입구를 지키던 가더의 당황스러운 음성이 공방을 울렸다.

“음? 왜 이리 소란스러운 거요?”

“글쎄요? 제가 확인해보고 올게요.”

베니트가 공방의 입구 문을 살짝 열었다.

그와 동시에 강제로 문이 열리더니 누군가가 들이닥쳤다.

“올룸스 아닌가?”

“헤파이토 님!”

듀로프 계의 천하장사라는 말이 거짓은 아니었던 것인지, 올룸스는 양쪽 다리에 가더를 질질 끌면서 들어왔다.

“자네……. 가더! 그자를 놓게!”

“헤, 헤파이토 님!”

“허어, 괜찮으니 어서 물러들 가게나!”

헤파이토가 엄하게 꾸짖자 가더들이 냉큼 물러나 공방을 나갔다.

“갑작스럽게 찾아와 죄송합니다. 헤파이토 님, 베니트 님.”

올룸스의 정중한 인사에 베니트는 살포시 웃었고, 헤파이토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리 딱딱하게 굴 것 없네. 때마침 자네 얘기를 하고 있기도 했고.”

“제 얘기 말씀이십니까?”

“음. 자네의 자식 말이야. 내 제자가 되기 싫다고 했다면서?”

올룸스의 안색이 급변했다.

“그, 그것이…….”

“괜찮네. 내 이미 베니트에게 들었어. 그래, 그 아이가 만들고자 하는 게 있다던데. 자네는 그게 뭔지 아나?”

그제야 올룸스는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무언가를 결심한 올룸스가 마른침을 삼키더니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그 일 때문에 찾아왔습니다. 실은 스테인 녀석에게……스, 스승이 생겼습니다.”

올룸스의 말끝이 흐려졌다.

“방금 뭐라고 했나? 그러니까, 자네의 자식에게 스승이 생겼다고?”

“그, 그렇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면목 없습니다!”

올룸스가 납작 엎드려 땅에 이마를 박았다. 이에 베니트가 서둘러 올룸스를 말렸다.

“그러지 말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하세요. 스테인에게 스승이 생긴 건 좋은 일이잖아요?”

“하지만 저는 헤파이토 님께 거짓말을…….”

“휴우……. 됐네. 베니트의 말대로야. 자네의 아이에게 스승이 생겼다는 건 좋은 일이지. 암. 그렇고말고.”

헤파이토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내심 찜찜한 게 사실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은 대장인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즉 듀로프 중에서도 단연 손재주가 뛰어난 인물이 바로 자신인 것이다.

하물며 스테인이 무구를 만들지 않는다고 한들 그 정도는 이해해줄 수 있었다. 그만큼 그가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허나 이미 스승이 생겼다고 하니 기분이 좋을 순 없었다. 한편으로는 그 스승이라는 인물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그 스승이라는 자는 어디의 누구인가?”

“그것이……. 아이넬이라고 합니다.”

“아이넬? 어디 보자……. 아이넬이라……. 음,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로군. 당신은 들어본 적이 있소?”

“아뇨. 저도 처음 듣는 이름이네요. 듀로프 중에 비슷한 이름을 쓰는 자가 있긴 한데, 혹시 그의 자식일까요?”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이 슬쩍 올룸스를 쳐다봤다. 갑작스러운 정적과 시선은 당장 스승의 정체를 밝히라고 압박하는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듀, 듀로프가 아닙니다.”

“뭐?”

“네?”

두 사람이 깜짝 놀라 서로를 쳐다봤다.

“듀로프가 아니라고? 그럼 스테인은 듀로프가 아닌 다른 종족의 제자로 들어갔다는 소린가?”

“그렇습니다.”

“어찌 그런 일이…….”

베니트가 중얼거렸다.

듀로프 사이에서는 관대하다 알려진 베니트조차 충격을 받은 듯했다.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군. 대체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을 듣고 싶네만.”

“설명하겠습니다. 그전에 보여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그러게.”

헤파이토가 허락하자 올룸스가 서둘러 공방을 나가더니 큼지막한 상자를 짊어지고 왔다.

“그게 뭔가?”

“이것은…….”

올룸스가 짊어지고 있던 상자를 내리며 말했다.

“냉장고입니다.”

“냉장고?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는 게지?”

다소 뜬금없는 물건의 등장에 헤파이토의 얼굴에 노기가 서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냉장고는……마도구입니다.”

“마, 마도구!?”

“세상에! 그것이 마도구라는 말인가요!?

이어진 올룸스의 말에 헤파이토는 물론, 베니트 또한 경악을 금치 못했다.

* * *

”왜 그러십니까?“

나는 스테인 씨의 질문에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그냥 귀가 좀 간지러워서요. 이참에 귀이개도 만들어야 하나…….“

”귀이개? 그것은 새로운 도구입니까?“

”생활필수……아! 그거다!“

”생활필수?“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스테인 씨를 뒤로하고 재빨리 양피지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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