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63화 (62/159)

63. 소년기(45) - #스승 아이넬!

아들의 파격적인 선언에 충격을 받은 올룸스 씨가 휘청거리더니, 테이블에 팔을 기댔다.

“어, 어째서……. 듀로프 최고의 장인이신 헤파이토 님께서 친히 제자로 거두신다는데, 왜 굳이 저런 호룬스 뼈다귀 같은 자를!”

아, 이번엔 대놓고 말했네.

하기야. 듀로프의 튼실한 육체와 같은 선상에 두고 본다면 내가 호룬스의 뼈다귀로 보여도 하등 이상할 건 없었다.

망연자실한 얼굴로 천장을 응시하던 올룸스 씨의 고개가 팩 돌아갔다. 이글이글 불타는 그의 눈동자는 정확하게 날 향해있었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무슨 짓이라니요?”

나는 딱히 스테인 씨한테 뭔가를 한 기억은 없는데 말이야.

“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내 아들이 홀랑 넘어……. 아니, 스승으로 삼겠냐는 말을 하느냔 말이다!”

그건 오히려 이쪽이 묻고 싶은 말이었다.

문제는 이미 스테인 씨의 입에서 스승이라는 말이 나와버렸다는 거다.

앞서 말했듯 한 번 뱉은 말을 주워 담는 것은 불가했으니, 내가 여기서 스승임을 부인한다면 결국 스테인 씨는 거짓말쟁이가 되는 셈이다.

협업하는 관계를 떠나서 나 개인적으로도 스테인 씨가 마음에 든다. 나아가 그가 왜 거짓말을 했는지 충분히 이해한다.

사실 이런 상황을 예상하긴 했다.

이미 날 스승으로 모시고 싶다는 말을 들은 적은 있었으니까.

물론 올룸스 씨가 등장했고 거기서 날 스승이라고 말하리라는 건 몰랐지만 말이야.

그래, 옛말에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다 보면 그 가운데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고 했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스테인 씨가 날 스승으로 모시고 싶은 게 진심이라는 건 알았으니 굳이 거절할 필요는 없겠지.

“저한테 배우고 싶은 게 있어서 그런 거겠죠?”

“배우고 싶은 게 있다고? 그런 비리비리한 몸으로 뭘 가르칠 수 있다는 거냐!”

비리비리한 몸이랑 가르치는 거랑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 원하신다면야 보여주면 그만이겠지.

“그럼 팔씨름 하실래요?”

내 제안에 올룸스 씨가 미간을 찌푸렸다.

“팔씨름? 그건 뭐지?”

“그냥 어느 쪽의 팔 힘이 더 강한지 겨루는 놀이에요.”

내 말에 올룸스 씨가 내 팔을 훑어보더니,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호오, 지금 팔 힘이라고 했나? 지금 이 올룸스를 힘으로 누르겠다는 말인가!”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거죠. 어때요? 콜?”

“콜?”

“앗, 말이 헛나왔어요. 아무튼, 하실 거죠?”

“물론이다!”

“좋아요.”

호쾌하게 팔씨름 대결을 승낙한 올룸스 씨를 뒤로하고 나는 테이블로 향했다.

“미, 미안합니다.”

어느새 내게 다가온 스테인 씨가 면목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괜찮아요. 물론, 올룸스 씨의 입장을 이해하지만, 역시 스테인 씨가 없으면 곤란해지는 건 저니까요.”

“고맙소이다. 그, 그나저나 그 팔씨름이라는 거 말이요. 정말 괜찮겠소?”

“왜요?”

“실은 우리 아버지가 듀로프 사이에서도 힘이 세기로 유명하단 말이요.”

“그래요?”

내 태연한 대꾸에 도리어 스테인 씨가 발을 동동 굴렀다.

“지, 진짜란 말이오. 혹시나 아이넬 씨가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오?”

“에이, 걱정할 거 없어요. 아, 준비 다 됐는데요!”

나는 걱정하는 스테인 씨를 뒤로하고 올룸스 씨를 불렀다.

“자세를 이렇게 하고, 손은 이렇게 잡으면 돼요.”

나는 올룸스 씨에게 자세와 규칙을 알려줬다.

“스테인 씨도 잘 봤죠?”

“어? 아, 봤소.”

“그럼 심판 부탁합니다. 손등이 먼저 닿은 쪽이 지는 거예요.”

“알겠소!”

“자, 그럼 스테인 씨가 신호 주면 시작하죠!”

“그러지.”

“아, 알겠소. 내가 신호를 주면 되는 거요?”

“네.”

나는 스테인 씨에게 긴장하지 말라고 웃어주고는 올룸스 씨의 손을 맞잡았다.

듀로프 특유의 두툼하고 널찍한 손바닥은 강철처럼 단단했다.

그나마 손은 크지 않아서 팔씨름을 하기에 큰 지장은 없었다.

나와 올룸스 씨가 맞잡은 손에 힘을 더했다.

“준비됐어요.”

“준비됐네.”

스테인 씨가 팔을 들었다.

“시……작!”

신호가 떨어지고 나와 올룸스 씨의 시선이 마주쳤다.

“힘을 안 주시네요?”

“굳이 힘을 줄 필요가 있겠는가?”

올룸스 씨는 나 하나쯤은 손쉽게 이길 수 있다는 듯 씨익 웃었다.

“그러다 지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부드러운 말투로 도발하자 올룸스 씨의 미소가 짙어졌다.

“그렇게 자신 있으면 한번 넘겨보게나.”

“원하신다면야.”

“후후후. 어디 한……읍!”

또다시 웃으며 무어라 말하던 올룸스 씨가 허둥지둥 입을 다물었다.

더불어 여유로웠던 그의 얼굴에는 경악이라는 감정이 떠올랐다.

“으, 어때요?”

나는 한껏 여유를 담아 물었다.

“크흡!”

정작 올룸스 씨는 대답할 상황이 아니었는지 신음 비슷한 소리만 냈다.

그마저도 그저 잘 익은 아프루처럼 얼굴은 붉었고, 꽉 다문 입술은 새하얗게 질렸다.

비단 당황한 것은 올룸스 씨만이 아니었다.

“서, 설마 아버지……?”

걱정스럽게 팔씨름을 지켜보던 스테인 씨도 경악하긴 마찬가지였다.

아무렴.

명색이 듀로프다. 그것도 듀로프 사이에서 힘이 세기로 유명한, 소위 장사가 바로 올룸스 씨다.

그에 반해서 나는 호룬스의 뼈다귀처럼 약한 소년이었으니 팔씨름을 한다는 것부터가 난센스였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내가 평범한 소년이었을 때의 이야기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도 올룸스 씨를 상대로 100% 승리를 장담했던 건 아니다.

정확히는 져도 별로 상관이 없었다.

체급에서부터 어마어마한 차이가 나거니와, 애당초 팔씨름을 제안한 이유는 승패를 가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힘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으니까.

근데, 막상 팔씨름을 해보니 이게 웬걸.

해볼 만하겠다는 생각부터 들더라.

나도 내 몸이 엄청 튼튼하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듯 듀로프를 상대로 통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말이야.

“끄으으으응!”

올룸스 씨는 어떻게든 이겨볼 심산인지 앓는 소리까지 냈다.

안 그래도 두꺼운 팔뚝이 한껏 부풀어 오르고, 힘줄이 무슨 넝쿨처럼 툭툭 불거져 나왔다.

확실히 전력을 쏟아붓기 때문인지, 내 손목이 서서히 꺾였다.

이제는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었다.

“저도……전력으로 갑니다!”

나 또한 젖 먹던 힘까지 끌어올렸다.

올룸스 씨에 비하자면야 얇디얇은 팔뚝이지만, 그 안에 담긴 힘은 아니었다.

서서히 팔이 기울었다.

쿵!

마침내 올룸스 씨의 손등이 테이블을 때렸다.

“심판!”

내가 외치자 뒤늦게서야 퍼뜩 정신을 차린 스테인 씨가 승리를 선언했다.

“스, 승자는 아이넬!”

“휴우!”

그제야 나는 올룸스 씨의 손을 놓고 뻐근해진 팔을 빙글빙글 돌렸다.

“어, 어떻게 이럴 수가…….”

올룸스 씨는 자신의 패배가 믿기지 않았는지, 멍한 시선으로 자신의 팔을 내려다봤다.

그냥 적당히 할 걸 그랬나.

사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승패를 중요시하는 게 아니라서 까짓 져줬어도 상관은 없으니까.

“이건 아니야!”

난데없이 벌떡 일어난 올룸스 씨가 외쳤다.

“음?”

“힘……은 인정하지! 좋다! 내 패배다!”

자존심에 스크래치는 났을지언정 자신의 패배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건 아주 바람직한 자세였다.

여기까지만 했으면 참 멋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지만, 올룸스 씨는 기어코 한발 더 나아가며 속된 말로 뇌절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힘만으로는 스테인의 스승이 될 수 없다!”

“아버지!”

“시, 시끄럽다! 말리지 마라! 어떠냐? 스테인의 스승이라면 증명할 수 있겠지?”

내심 너무 심했나 싶었는데, 지금 모습을 보니 굳이 하지 않았어도 될 걱정이었네.

“그럼 이번에는 또 뭘 보여드리면 될까요?”

내가 묻자 올룸스 씨가 잠시 고민했다.

“그래, 듀로프는 대대로 무구를 만들었지. 자네가 만든 무구를 보고 싶군!”

“저는 무구를 만들지 않는데요?”

“그, 그럼 무구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무구가 아니라고 상관없단 말이지.

“마침 잘됐네요. 방금 완성한 게 있거든요.”

나는 구석에 세워둔 냉장고를 가리켰다.

“흠? 저 상자를 만들었다는 건가?”

“네. 냉장고라고 하는 겁니다.”

“냉장고라……. 차갑게 해주는 상자라는 뜻인가?”

올룸스 씨는 냉장고라는 단어에 내포된 의미를 단박에 알아차렸다.

당연하게도 냉장고라는 단어는 한국어다.

즉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말이 뭐 있을까, 고민하던 나는 그냥 냉장고가 지닌 본래의 기능을 따서 이름을 붙였다.

“그래서 저 상자로 뭘 어떻게 한다는 거지?”

“뭔가를 할 필요는 없어요,”

나는 냉장고의 문을 열었다.

그와 동시에 새하얀 김이 뿜어져 나오며, 후끈했던 공방에 찬바람이 섞였다.

뒤이어 미리 넣어놨던 컵을 꺼내고, 그 안에 얼음 몇 개를 투척했다.

“여기요.”

“이 냄새는…….”

올룸스 씨가 받아든 컵을 살펴보더니 그대로 입으로 가져갔다.

꿀꺽, 꿀꺽.

목울대가 시원스레 요동치며 금세 컵에 담긴 액체가 바닥을 드러냈다.

“크아아아!”

제법 큰 컵임에도 단숨에 비워낸 올룸스 씨가 상쾌한 얼굴로 외쳤다.

“끝내주는……!”

이내 나와 눈이 마주친 올룸스 씨가 민망하게 헛기침을 했다.

“끝내주죠?”

“음…….”

딱 봐도 올룸스 씨는 차가운 술이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이럴 땐 살짝 밀어주는 것도 좋겠지.

“별로셨나봐요. 스테인 씨 아무래도 저는 스승이 될 재목이 아닌가 봐요. 아쉽지만, 이 냉장고는…….”

내가 짐짓 아쉽다는 투로 말하자 올룸스 씨가 냅다 끼어들었다.

“자, 잠깐! 잠깐 기다리게!”

이에 올룸스 씨가 허겁지겁 냉장고를 가로막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팔씨름을 할 게 아니라 그냥 술부터 줄 걸 그랬네.

“네?”

“그, 그러니까 이 냉장고 말일세. 자, 자네가 만들었다는 게지?”

“아뇨아뇨. 설계는 제가 한 게 맞지만, 이걸 만드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은 스테인 씨에요.”

“스테인이?”

“저, 저는 그냥 아이……아니, 스승님이 알려주신 대로 만들었을 뿐입니다! 만약 스승님이 아니셨다면…….”

스테인 씨는 말을 하면서도 연신 컵을 힐끗거리는 게 적잖이 마시고 싶은 모양이다.

“크흠!”

올룸스 씨가 터벅터벅 걸어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내가 실례가 많았소. 못난 자식이지만 모쪼록 잘 부탁드리오. 아, 말을 안 듣는다면 언제라도 내게 말씀하시구려! 내 아주 혼쭐을 내줄 터이니!”

“스테인 씨야 착실하니까 알아서 잘 할 테니,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될 거예요.”

어쩐지 담임선생님과 학부모 사이에나 오갈 것 같은 대화였지만, 아무렴 어떠랴.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구려. 아, 그런데 그……. 냉장고 말이요.”

“네.”

“크흠.”

올룸스 씨가 짧게 헛기침을 했다.

“필요하시면 하나 드릴까요?”

“그, 그래도 되오?”

“그럼요! 아, 대신 이거 직접 사용해보시고 나중에 불편한 점이나 그런 거 알려주시는 건 어때요?”

“그 정도야 쉬운 일이지! 이럴 게 아니라 나도 일을 돕겠소!”

“그럼 저야 고맙죠! 아, 그전에 먼저 알려드릴 게 있어요. 스테인 씨도 이쪽으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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