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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61화 (60/159)

61. 소년기(43) - #계획은 순항!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다.

나는 30분에 걸쳐 마법진과 마나 배터리를 살펴봤다.

좋아, 양쪽 모두 이상은 없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안전장치가 제대로 작동하는지만 확인하면 끝이다.

“우웅? 대장?”

“아, 깼어?”

조심조심 움직인다고 했지만, 역시나 비스테르의 예민한 감각을 속일 순 없었던 모양이다.

“후아암! 대장, 어디 간다?”

늘어지게 하품한 록시가 눈을 비비며 물었다.

“응. 오늘 오후에 스테인 씨한테 갔다 오려고. 아, 요즘에 밭은 어때? 잘 자라고 있어?”

“응! 무럭무럭 자란다! 도리아 아주머니! 록시랑 매일 놀아준다! 맛있는 것도 많이 준다! 도리아 아주머니 착한 사람이다!”

“응? 도리아 아주머니가 놀아준다고?”

“앗!”

내가 반문하자 록시가 허겁지겁 입을 막았다.

“아, 아니다! 도리아 아주머니는 밭에 안 온다! 록시랑 안 놀아준다!”

그러고 보니 밭에서 돌아갈 때 도리아 아주머니가 이곳에 또 와도 되겠느냐고 물어보셨었지.

애당초 그 밭은 우리 모두를 위해서 만든 거라 나는 괜찮다고 말했는데……. 설마하니 그 이후로도 계속 찾아오신 건가?

“혹시 도리아 아주머니가 말하지 말라고 하셨어?”

내가 묻자 록시의 귀가 추욱, 처졌다.

“말해도 괜찮아.”

“대장 화 안 낸다?”

“당연하지. 록시한테 화를 왜 내겠어?”

“우웅……. 도리아 아주머니가 대장한테 말하지 말라고 했다. 걱정한다고 했다.”

“그랬구나.”

하기야.

마을에서 밭까지의 거리가 꽤 되거니와 결계를 넘어가야 하는 만큼 적잖이 위험한 게 사실이다.

근데, 그건 마을 사람들의 생각이지 사실 마수한테 습격받을 걱정을 할 필요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게, 마을과 밭의 주변은 루나가 꽉 잡고 있기 때문이다.

록시에게 들어서 알게 된 건데, 이 주변에 서식하는 마수는 루나의 그림자만 보일라치면 부리나케 도망친다나.

마수들 사이에서는 악명이라고도 볼 수 있었지만, 우리에게 있어서는 참으로 든든한 위세가 아닐 수 없었다.

거기다 사냥감을 많이 잡아 온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었는데, 역시 루나는 그날 도리아 아주머니를 따라다니며 지켜줬다는 게 밝혀졌다.

뿐만 아니었다.

루나는 숲으로 나오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은밀하게 따라다니며 방범 대장 역할을 이어가고 있었다.

따라서 도리아 아주머니가 마수에게 해를 당할 염려는 없었다.

이를 모르는 도리아 아주머니는 혹여 내게 짐이 될까, 비밀로 하셨던 모양이다.

“도리아 아주머니는 언제쯤 오셔?”

“우웅……. 잘 모른다.”

“잘 모른다니?”

“록시가 가면 도리아 아주머니가 있다.”

“뭐?”

잠깐만.

록시는 아무리 늦어도 아침 7시 전에는 밭으로 향한다.

도리아 아주머니의 이동속도를 고려했을 때 적어도 새벽 5시쯤 마을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건데.

“매일 오시는 거야?”

“응. 매일 온다!”

“으음, 마수가 문제가 아니겠는데.”

마을과 밭을 오고 다니다가 쓰러지진 않을지 더 걱정이었다.

“역시, 한번 갔다 오는 게 낫겠네.”

안 그래도 작물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게 있었다.

생각을 정리한 나는 곧장 작업대로 향해 냉장고에 장착할 마나 배터리 제작에 돌입했다.

* * *

한 시간에 걸쳐 총 3개의 마나 배터리를 제작했다.

나는 스테인 씨의 공방으로 갈 준비까지 마친 뒤 곧바로 밭으로 향했다.

“계시는구나.”

록시의 말대로였다.

밭에는 도리아 아주머니가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작물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계셨다.

“안녕하세요!”

“아! 아이넬 왔구나.”

“네!”

“혹시 록시한테 들은 거니?”

“헤헤, 록시가 거짓말을 못 해서요.”

“그렇구나.”

“촌장님은요?”

내 질문에 도리아 아주머니가 웃었다.

“매일 따라오겠다고는 하는데, 촌장님한테는 마을관리에 힘을 써달라고 부탁했어.”

아하.

록시의 말을 들어보면 최소 반나절씩 밭을 돌보시는 것 같았다.

잠깐이라면 모를까. 마을의 대소사를 담당하는 촌장님까지 반나절 이상씩 자리를 비울 순 없는 노릇이겠지.

“혹시 내가 방해한 거니?”

도리아 아주머니가 걱정스레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방해라니요! 오히려 도리아 아주머니가 계셔서 더 안심이 돼요! 진짜로요!”

안 그래도 이것저것 해야 할 게 있어서 밭에 신경을 많이 쓰진 못한다.

나 대신 록시가 나서서 밭을 관리해줬지만, 그녀도 아직은 이것저것 배우고 익혀가는 단계다.

즉 밭의 상태가 좋은지 나쁜지, 어딘가가 잘못된 건 아닌지부터 시작해 작물의 컨디션은 괜찮은지, 주변에 잡초가 자라지는 않는지 등등.

전문 농사꾼처럼 꼼꼼하게 살펴보는 것까지는 어려웠다.

반면에 도리아 아주머니는 나보다 훨씬 오랫동안 채집을 해왔거니와 작물을 다루는 방법도 익숙한 것 같았다.

그 증거로 그녀의 손에는 아이넬표 농기구 세트가 들려있었다. 이렇듯 작물 전문가가 열과 성을 다해서 돌보시니 든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그럼 다행이구나.”

“근데, 저건 뭐예요?”

나는 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놓인 물건을 가리켰다. 나무 밑동을 잘라서 만든 테이블이었는데, 그 위에는 몇 가지 열매가 올려져 있었다.

“파메르 님께 올리는 공물이란다.”

“파메르 님께요?”

나는 애써 침착하게 물었다.

“응. 아이넬의 꿈속에 나오셨다니 감사의 인사는 드려야 하지 않겠니?”

“그, 그렇죠!”

나는 퍼뜩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면 마을 사람들은 늘 기도를 올리지만, 정작 그 대상이 모호했다. 이렇다 할 이름도 없고, 뚜렷한 상징도 없었던 것이다.

도리아 아주머니가 내게 노인의 이름을 물어본 것 또한 이와 같은 맥락이겠지.

그래도 이렇게 정성스레 공물까지 올릴 줄이야.

그 누구보다 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 도리아 아주머니라는 걸 잠시 간과하고 있었다.

지금 와서 파메르는 내가 지은 이름이라고 말할 순 없겠지.

뭐, 괜찮으려나.

지구에서도 흔히 피그말리온 효과에 대해서 말하듯, 무언가를 믿고 의지함으로써 도리아 아주머니의 마음이 편안해진다면 그건 그거대로 좋은 일이니까.

나는 공물 앞으로 가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문득 느껴지는 인기척에 슬쩍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도리아 아주머니가 내 옆에서 나와 같이 묵념하고 있었다.

“모쪼록 농사가 잘되기를.”

작은 목소리로 기도를 읊었다.

이런 내 모습을 보면 도리아 아주머니가 부드럽게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이넬, 나는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단다. 네게 이곳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하루하루가 힘들고 고됐는데, 지금은 그냥 날아갈 것처럼 몸이 가볍단다. 정말로, 고맙구나.”

도리아 아주머니의 말에 가슴 한구석이 간지러웠다.

괜스레 부끄러워진 나는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아, 이거 작물이요! 조금 있으면 수확해도 될 것 같지 않아요?”

“아, 듣고 보니 그렇구나. 응, 이 상태라면 늦어도 20일 후에는 수확할 수 있을 것 같구나.”

슬슬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될 타이밍인 것 같은데.

“전에요, 도리아 아주머니가 이걸 혼자 심었느냐고 물어보셨잖아요.”

“응. 그랬지.”

당시 이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크게 당황했다. 그도 그럴 게, 이 작물들을 심은 건 나와 록시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맹점이 있었다.

그것은 작물의 성장 속도다.

나와 록시가 씨앗을 심은 건 길어봐야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지만, 벌써 수확을 논할 정도니 지나치게 빠른 것이다.

내가 이것들을 혼자 심었다고 말하게 되면 자연히 반디에 대한 이야기까지 이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솔직히 반디에 대해서 밝히는 건 어렵지 않지만, 정작 내 눈에만 보인다는 점 때문에 선뜻 말하기가 꺼려졌다.

자고로 위기는 기회와 함께 온다고 했던가.

안 그래도 나는 레비아 선생님과 데커드 할아버지를 염두에 두고 있던 차였다.

파메르.

본의 아니게 생겨난 가상의 신이야말로 그 고민을 단박에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 즉시 레비아 선생님과 데커드 할아버지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마침내 시나리오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때 파메르 님이 꿈에서 말씀하셨던 장소로 가서 만난 사람이 있다고 했었지? 록시랑 루나도 그때 만난 거고.”

그 첫 번째가 바로 이거였다.

내가 농사를 짓는 건 물론, 록시와 루나를 만나게 된 계기에도 파메르의 이름을 끼워 넣었다.

이미 내가 보여준 것들이 있는지라 도리아 아주머니는 그 어떤 의구심도 없이 믿으셨다.

신이라는 단어가 이토록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옛말에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처럼, 둘러대는 이야기의 스케일이 점점 커지는 것 같았지만, 아무렴 어떠랴.

이런 상황이면 늘 말하지만 좋은 게 좋은 거다.

“네! 그분이 제 선생님이시거든요. 선생님은 파메르……님의 신도라고 하셨어요.”

“어머! 그랬구나!”

도리아 아주머니는 마치 이산가족의 소식을 들은 사람처럼 기뻐하셨다.

“네! 근데, 선생님이 다른 종족이라서 소개해 드려도 될지…….”

“마을로 모시고 와도 괜찮단다.”

“정말로 괜찮아요?”

“그럼! 괜찮고말고! 오히려 이쪽에서 부탁하고 싶구나.”

“어, 그럼요! 그 수확하는 시기에 맞춰서 모시고 오는 건 어떨까요?”

“응?”

“우리가 지은 첫 농작물이잖아요. 모두가 함께 모여서 먹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

내 말에 도리아 아주머니의 얼굴이 환해졌다.

“축제를 열자는 말이니?”

이거다.

나는 도리아 아주머니의 말을 냉큼 받았다.

“네! 축제요! 첫 수확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축제를 여는 거예요!”

“어머, 그거 참 좋은 생각이구나! 어쩜, 이렇게 똑똑할까! 그래, 요즘 마을의 분위기도 안 좋았는데, 축제를 열면 참 좋을 것 같네.”

“그럼 축제 때 선생님을 모시고 올게요! 아,근데……. 촌장님께서 허락하실지 모르겠네요.”

제아무리 도리아 아주머니가 마을의 대소사에 관여한다고 한들 어디까지나 대리였지, 실제로 모든 걸 결정 짓는 건 촌장님의 허락이 필요했다.

“그건 신경 쓸 것 없단다. 아마도 촌장님이라면 축제라는 말에 기뻐하실 거야.”

“네!”

그 후로도 나는 도리아 아주머니와 축제 이야기를 하며 뜻깊은 오전을 보냈다.

* * *

정오 무렵이었다.

도리아 아주머니와 헤어진 나는 곧장 로토를 타고 스테인 씨의 공방으로 향했다.

“저 왔어요!”

“아, 아이넬 왔는가!”

스테인 씨가 버선발로 뛰어나와 날 맞이했다.

“부품은 다 만들었어요?”

“물론이지! 자네가 말했던 부품은 빠짐없이 만들었네!”

“그래요? 어디 좀 볼까요.”

나는 스테인 씨의 주변에 널린 부품들을 살펴봤다.

“이건 냉장고의 문이고……. 경첩도 있고…….”

스테인 씨의 말대로 내가 주문한 부품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제 이 부품들만 조립하면 고대하던 냉장고가 완성되는 것이다.

“좋네요! 그럼 바로 조립 시작하죠!”

“알겠네! 뭐부터 하면 되는가?”

스테인 씨는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팔을 걷어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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