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52화 (52/159)

52. 소년기(34) - #협업하죠!

하기야, 나도 꽤 오랜 기간 동안 직장생활을 해봐서 알지.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할 땐 나도 의욕이 하늘을 뚫었다.

굳이 시키지 않아도 일을 찾아서 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뛰어다니며 일에 매진했다.

근데, 그러한 열정도 하루 이틀이지.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면 자연스레 노하우가 쌓이게 되고, 노하우는 곧 요령이 되는 법이다.

그렇게 경력이 늘어나면 뜨거웠던 열정과 패기 또한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권태감이라는 감정이 자리를 잡는다.

출근과 동시에 퇴근을 애타게 부르짖게 되는, 속된 말로 현자타임이라는 현상이 찾아오는 것이다.

그걸 잘 견뎌내면 근속기간이 늘어나겠지만, 대신 내 속은 썩어간다는 게 함정이라면 함정이었지.

아마도 지금 스테인 씨에게 찾아온 게 바로 이 권태감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부탁이라는 건 뭔가요?”

“그게······. 미안하네, 도대체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군.”

사실 스테인 씨의 이야기를 들어봤을 때 어떤 부탁인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쉽게 말해서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는 거 아니에요?”

“맞네! 그거야! 나는 늘 광산에 박혀 무구를 만든다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만든 무구들이 마음에 들지 않더군. 가끔씩은······. 아주 가끔씩은 망치를 들고 싶지 않을 때도 있어.”

듀로프가 망치를 들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니. 이거 가만히 놔뒀다가는 아예 제작에서 손을 뗄 지도 모르겠네.

“음······.”

어디 보자······.

일단 매너리즘을 타파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 몇 가지 떠오르는 게 있었다.

하나는 아예 본인이 하는 일을 떠나서 다른 일을 하는 거다.

다만 여기에는 한 가지 전제조건이 붙는다.

“스테인 씨는 제작을 계속 할 생각인 거죠?”

“물론이네!”

스테인 씨가 즉답했다.

“듀로프에게 있어서 제작은 곧 숙명일세! 나에게 망치를 버리라는 것은 곧 죽으라는 말이야.”

아무렴.

아예 제작에 대한 미련을 접었더라면 이렇게 날 찾아오지도 않았겠지.

그렇다면 첫 번째 방법은 패스다.

두 번째 방법으로는 기분 전환이다.

“잠깐 일을 쉬면서 생각을 정리하거나, 아니면 아예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건 어때요?”

첫 번째 방법처럼 극단적이진 않으면서도 의욕을 불러일으키기에는 꽤 괜찮은 방법이었다. 나아가 맛있는 음식도 먹고, 평소와는 다른 환경에 내던져지면 갑갑했던 속도 풀리곤 했다.

내가 가장 자주 썼던 방법이기도 했고.

“으음······. 그것도 조금은 어려울 것 같네.”

“제작은 계속 하고 싶고, 기분전환을 하는 것도 끌리지 않는다. 그럼 방법은 하나밖에 없네요.”

나는 짐짓 목소리를 깔며 말했다.

그래봐야 아직 변성기도 채 지나지 않아 앳되기 그지없었지만 말이야.

“하나라면?”

“지금까지 없었던, 아예 새로운 도구에 도전하는 거죠.”

“새로운 도구에 도전을 한다라······. 말은 쉽네만, 그게 뜻처럼 되는 게 아니라는 건 자네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네.”

알다마다.

하지만 스테인 씨가 간과하고 있는 게 있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내가 만든 도구들은 하나같이 지구에서 흔히 사용하던 것들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건 어렵지만, 이미 존재하는 걸 그대로 본떠서 만드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 전에, 궁금한 게 있는데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물어봐도 돼요?”

“물론이네.”

“스테인 씨는 가위를 보고 저를 찾아왔다고 했잖아요? 저를 찾아온 이유를 말씀해주실 수 있어요?”

“그거야······.”

스테인 씨가 우물쭈물했다.

“솔직히 말씀하셔도 돼요.”

내가 부드러운 어조로 말하자 스테인 씨가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말해서 가위를 처음 본 순간, 나도 이런 도구를 나도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네.”

역시나 내 예상대로였다.

애당초 스테인 씨가 날 찾아올 이유라고는 그것밖에 없기도 했고. 그렇다면 해결 방법은 간단했다.

“그럼 만들면 되잖아요.”

제작이라면 나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이 스테인 씨다. 이렇듯 완성품까지 손에 넣은 판국이니, 그대로 본떠 만드는 건 일도 아닐 테니까.

하지만 이런 내 생각과는 달리 스테인 씨는 기겁했다.

“어,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네?”

“이 가위라는 건 아이넬, 자네가 만든 도구일세! 그것을 똑같이 따라서 만든다는 건 자네에 대한 모욕이 아닌가!”

“아하.”

그런 거였나.

확실히 이곳에서 처음으로 가위를 만든 사람은 나다.

물론 진짜 원작자는 따로 있었지만, 스테인 씨의 입장에서는 내가 곧 원작자인 셈이다. 즉 내 허락도 없이 그대로 따라서 만든다는 건 불법복제라고도 볼 수 있겠지.

역시 태생부터 장인이라서 그런지 카피에 대해 민감한 것 같았다.

“음······.”

솔직히 내 입장에서야 똑같이 따라 만들어도 별로 상관은 없는데 말이야.

그래,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고 했다.

내가 DIY를 시작한 건 길어봐야 3년도 채 되지 않는다.

아직은 누구한테 떳떳하게 밝힐 만큼 숙련자도 아니거니와 제아무리 꼼꼼하게 제작한다고 한들 허점은 생기기 마련이다.

반면에 스테인 씨는 태생부터 제작을 해온 사람이다.

만류귀종.

모든 흐름은 하나로 흐른다는 말처럼 나와 스테인 씨가 제작하는 도구가 생겨난 목적도 쓰임새도 다를지언정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귀결된다.

즉 내 입장에서는 스테인 씨가 만드는 방식을 통해서 한층 더 발전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그럼 이건 어떨까요?”

“음?”

“스테인 씨의 말을 빌리자면, 지금까지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쓰레기를 만들었다. 그러니, 앞으로는 새롭고 실용적인 도구를 만들고 싶다. 맞죠?”

직설적인 질문에 스테인 씨가 씁쓸하게 웃었다.

“맞네.”

“저한테는 앞으로 만들고 싶은 도구가 엄청나게 많거든요. 근데, 딱 하나 문제가 있어요.”

“문제가 있다라. 그게 뭔가?”

“재료에요.”

“흠! 재료라······. 그러고 보니 자네가 만든 이 가위는 마수의 뼈로 만들었더군. 만듦새도 정교하고, 마감도 훌륭하네. 다만 마수의 뼈는 철에 비해서 쉽게 변형이 되고 내구성도 약하지.”

역시는 역시다.

누가 듀로프 아니랄까봐 스테인 씨는 가위에 대한 리뷰를 읊었다.

“바로 그거죠!”

“음?”

내가 원했던 게 바로 이거다.

나는 아까 모쿠 씨랑 만났을 때 직접 사용해보고 느낀 점을 물어봤다.

이에 모쿠 씨의 대답은 이러했다.

편하다.

맛있다.

뜨겁다.

솔직히 리뷰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반면에 스테인 씨는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을 정확하게 캐치한 걸 넘어, 그에 대한 해결책까지 제시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스테인 씨는 내가 가장 필요로 하는 재료인 철을 언급했다.

전문가임을 증명하는 안목에 필요한 재료의 수급.

이 두 가지는 내가 원하는 도구를 만들 때 아주 큰 도움이 된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아예 같이 작업을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단 말이지.

“스테인 씨는 새로운 도구를 만들고 싶은 거잖아요? 그건 저도 마찬가지에요. 문제는 스테인 씨는 어떤 도구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고, 저는 어디서 어떻게 필요한 재료를 구해야 할지 조금은 난감하던 차였거든요.”

“음.”

“그러니까······ 저하고 협력을 하는 거예요. 쉽게 말해서 그냥 같이 도구를 만들자는 거죠! 어떻게 생각하세요?”

“도구를 같이 만든다고?”

내 제안에 스테인 씨가 흠칫했다.

“네. 아, 스테인 씨가 싫다면야 억지로······.”

“그 무슨 말인가! 그건 오히려 내가 부탁하고 싶은 일일세! 그래, 자네한테 필요한 재료가 뭔가? 말만 하게! 내 드라고스 산맥 전체를 뒤져서라도 찾아오겠네!”

스테인 씨는 언제 매너리즘에 빠졌냐는 듯, 침까지 튀겨가며 창작 의욕을 불태웠다.

보아하니 지금 당장이라도 도구를 만들고 싶어 하는 눈치인 게 약빨이 꽤나 강했나 보네.

그래도 아까 그 풀죽었던 모습보다는 훨씬 나으니까.

“그나저나, 스테인 씨는 하티르라는 곳에서 오셨다고 했죠?”

“맞네. 여기서 4시간쯤 걸으면 도착하는 거리야.”

걸어서 4시간쯤 걸린단 말이지.

로토의 속도를 감안하자면 얼추 20분 정도면 도착할 것 같은데.

마음 같아서야 지금 당장이라도 협업을 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아직 정해야 할 것도 있었고, 챙겨야 할 도구도 많았다.

“그럼 스테인 씨가 작업하는 곳에 가 봐도 괜찮을까요?”

“나야 괜찮네만······. 사실 걱정이 좀 되는군.”

“걱정이요?”

“자네가 어떤 종족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지내는 곳은 꽤나 덥거든. 저번에 구경한답시고 젠트리가 들어왔네만, 얼마 가지 않아 기절했어.”

“그런 거라면 걱정할 거 없어요.”

다음 장터가 열리는 날까지의 시간이라면 충분히 대비하고도 남았다.

“그럼 저도 이것저것 챙겨올 게 있으니까, 다음 장터가 열리는 날 이곳에서 다시 만나는 걸로 할까요?”

“알겠네! 다음 장터가 열리는 날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겠네!”

“네! 그럼 그때 봬요!”

나는 늘 그렇듯 손을 내밀었다.

“이게 악수라는 거군!”

“어? 아시네요?”

“이곳으로 오는 길에 다들 손을 맞잡더군. 뭔가 싶어 물어보니 악수라고 하더군.”

어쩐지 마을에 유행어가 퍼져나갈 때랑 비슷한 느낌이네.

“그럼 잘 부탁합니다!”

“나야 말로 잘 부탁하네!”

그렇게 다음 약속을 잡은 뒤 스테인 씨가 한결 가벼워진 얼굴로 자리를 떴다.

* * *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한가롭고도 따스한 오후였다.

데커드의 오두막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록시가 앉아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흐리멍덩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지금 이 시간이면 한창 대장의 옆에 붙어있어야 할 록시가 이렇듯 홀로 앉아있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며칠 전이었다.

록시는 대장을 따라 장터에 방문했다.

평생을 살면서 보지 못했던 것들이 잔뜩 있었고, 다양한 종족들이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일정한 구역을 넘어본 적이 없는 록시에게 있어서 장터는 그야말로 새로운 세상이었으며, 이제껏 겪어보지 못했던 감정인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 록시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게 있었다.

“다들 대장을 좋아한다.”

장터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대장에게 인사를 했고, 대장 또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물론 대장에게만 친절한 게 아니었다.

록시 본인과 친구인 루나에게도 반갑게 인사를 했으며, 만나는 사람마다 맛있는 음식까지 쥐여 줬다.

대장과 만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잦은 굶주림에 시달렸던 록시에게는 참으로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록시의 마음 한구석에서는 불안감이 싹텄다.

“대장. 기뻐 보였다.”

대장에게 기쁜 일이라면 록시에게도 좋은 일이다.

록시 또한 대장이 기뻐하는 게 좋았고, 대장이 웃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그러나 순수하게 기뻐할 순 없는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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