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50화 (50/159)

50. 소년기(32) - #듀로프!

“우아아.”

장터에 도착하자 록시가 감탄사를 터뜨렸다.

레비아 선생님의 주의를 들은 뒤라서 애써 소리를 억누르고 있었지만, 묘한 흥분감과 즐거움마저 감출 순 없었다.

이해한다.

나만 하더라도 처음 장터에 왔을 때도 록시랑 비슷한 반응이었으니까.

“근데, 록시는 장터에 와 본적이 있잖아.”

나와 록시가 만난 곳이 바로 장터였으니, 따지고 보면 록시는 두 번째였다.

“응! 록시는 왔었다! 그때, 대장 만났다!”

“아, 맞다.”

록시와 만났을 때를 생각하니까 생각나는 게 있었다.

시선이었다.

그때 내가 장터에 도착했을 때 어딘가 끈적한 시선을 감각했다.

정작 시선의 주인을 찾지 못해서 그냥 기분 탓이려니, 하고 어물쩍 넘어갔었지.

“그때 말이야. 날 쳐다보고 있었던 사람은 록시였던 거지?”

“웅? 록시가 쳐다봤다? 대장을?”

내 말이 조금 어려웠나.

“음. 그러니까, 록시나 날 처음 봤던 곳 말이야. 저 앞이었지?”

당시 내가 시선을 느꼈던 지점을 가리키자 록시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이내 도리도리 흔들었다.

“록시는 여기 안 왔다! 대장 만난 건 저기였다!”

록시가 다른 곳을 가리켰다.

나와 레비아 선생님이 휴식을 취할 겸 삼겹살을 구워먹었던 냇가가 있는 방향이었다.

“엉? 냇가에서 날 처음으로 봤다고?”

이번에는 내가 고개를 갸웃했다.

“맞다! 여기 사람 많다! 그래서 저기에 숨어 있었다! 거기서 대장 찾았다!”

잠깐만.

그럼 그때 날 쳐다보고 있던 사람은 록시가 아니었다는 거야?

이상하네.

록시는 나한테 거짓말을 할 아이가 아니다. 그럼 날 쳐다봤던 그건 진짜로 그냥 기분 탓이었던 건가.

“대장?”

“아, 응! 아무것도 아니야. 루나는 어때? 루나는 장터에 온 게 처음이지?”

내 질문에 루나가 움찔하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는 매일 동굴 근처에 있었어.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은 처음이야.”

로브를 뒤집어써서 얼굴이 보이진 않았지만, 적잖이 긴장했음을 알 수 있었다.

루나는 평소 높은 장소를 잘 올라가는 건 물론, 아예 나뭇가지에 아슬아슬하게 걸친 채 잠을 잔다.

오죽했으면 보는 내가 심장이 떨릴 정도였으니 말 다 했지.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는 말마따나.

혹시 잠결에 추락하는 건 않을까, 나무 밑에 추락방지용 그물이라도 설치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렇듯 겁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는 루나지만,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180도 달라진다.

나를 상대할 땐 크게 어려워하지 않고, 대답도 잘 하지만 다른 사람들······그러니까, 그나마 안면을 튼 레비아 선생님이나 데커드 할아버지와도 서먹서먹하다.

어디 첫술에 배부르랴.

지금이야 다른 종족들을 불편해하지만, 언젠가는 루나도 편안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할 수 있는 날이 오리라.

그러니까, 너무 급할 것 없이 시간은 많으니 차근차근 적응해나가면 되는 거다.

나는 루나의 어깨를 가볍게 톡톡 두드렸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이곳에는 루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루나를 무서워하는 사람도 없으니까.”

“응. 알았어.”

내 격려가 통했음일까, 루나의 목소리가 한결 편안해졌다. 더불어 로브 자락이 들썩이는 게 기분도 괜찮아진 모양이다.

이내 두 비스테르와 함께 장터를 구경하던 중이었다.

“케륵, 아이넬이다!”

낯익은 추임새와 함께 내 이름을 호명하는 사람이 있었다.

레자드인 모쿠 씨였다.

그는 용케도 날 알아봤는지, 모쿠 씨가 아예 버선발로 뛰어나왔다.

저번에 내 손님으로 왔었지. 나한테 싱싱한 프로기 두 마리를 쥐여 주려던 걸 간신히 말렸었지.

그나저나 먼저 알은체를 해주는 것도 모자라 내 이름까지 기억해주니, 감동이네.

“안녕하세요! 오? 이건 뭐예요?”

모쿠 씨 앞에는 나한테 구매한 화로와 불판이 놓여있었다.

그 위에는 처음 보는 고기가 자글자글 익어가고 있었다. 고소한 냄새가 내 침샘을 자극했다.

“케륵, 싱싱한 프로기다! 저번에 아이넬이 하는 걸 보고 똑같이 했다! 인기만점이었다!”

모쿠 씨가 가슴을 당당하게 펴며 말했다.

“다행이다! 그럼 모쿠 씨는 계속 장터에 계시는 거죠?”

“케륵, 당연하다!”

사실 당시 모쿠 씨는 더 이상 장터에 오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유를 묻자, 프로기와 물물교환하는 사람이 없어서라나.

하기야, 모쿠 씨에게 있어서 프로기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늘 먹는 식재료가 맞다.

인간으로 치면 카무챠쯤 되겠지.

단, 모쿠 씨가 레자드라서 그렇지, 다른 종족들은 프로기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하물며 조리가 된 상태라면 모를까, 살아서 팔딱이는 프로기와 선뜻 물물교환을 하려는 사람은 없으리라.

모쿠 씨도 프로기로는 아무것도 못 한다는 걸 깨달았는지 이참에 장사를 접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단다.

그때 냇가에서 날 발견했고, 정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내게 물물교환을 요청한 것이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모쿠 씨가 기운을 차리고, 또 앞으로도 쭉 장사를 하겠다고 하니 참으로 다행이었다.

“케륵, 다 아이넬 덕분이다!”

모쿠 씨가 내게 감사를 표하는 모습에 내 가슴이 뭉클해졌다.

내가 만든 도구를 이렇게 활용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는데, 이렇게 내 덕분이라며 추켜세워주니 어깨가 들썩이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돌연 모쿠 씨가 빠르게 상점으로 가더니, 이내 접시 대용으로 쓰는 나뭇잎을 들고 왔다.

그 위에는 잘 익은 잘 익은 프로기 구이가 쌓여있었다.

“케륵, 맛있다! 먹어 봐라!”

모쿠 씨가 내게 접시를 건넸다.

“어, 물물교환이면······.”

내가 주섬주섬 가방을 내리려고 하자 모쿠 씨가 말렸다.

“물물교환 아니다. 아이넬이라면 이거 다 가져가도 된다. 아이넬 친구도 먹어라. 프로기, 맛있다.”

모쿠 씨는 아예 불판 위에 있던 프로기 고기를 싹 다 담더니 록시와 루나에게도 건넸다. 엉겁결에 접시를 받아 루나는 당황했고, 록시는 날 올려다봤다.

눈빛이 초롱초롱한 게 먹어도 되냐고 묻는 듯했다.

그래, 이렇게까지 권하는데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지.

“그럼 감사히 먹겠습니다! 록시랑 루나도 먹자! 아, 그 전에 모쿠 씨한테 감사하다고 인사하는 거 잊지 말구.”

“응! 먹는다! 모쿠 씨 고맙다!”

“······고맙습니다.”

두 비스테르가 모쿠 씨께 인사를 건넸다.

“고맙습니다, 잘 먹을게요!”

나는 프로기 고기 한 점을 입에 넣고 씹었다. 부드러운 고깃결이 풀리며 고소한 기름이 혀를 적셨다.

“오!”

맛있다.

이미 살아있는 프로기를 본지라 내심 거부감이 들긴 했었는데, 막상 먹어보니 맛 자체는 치키랑 흡사했다.

식감도 보들보들한 게 진짜 잇몸으로도 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진짜 맛있네요!”

내가 엄지를 들자, 모쿠 씨가 혀를 낼름거리며 기뻐했다.

“잘 먹었습니다. 고마워요!”

“케륵, 고마운 건 나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모쿠 씨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모쿠 씨의 손을 맞잡았다.

무척이나 차갑고 매끄러운 손이었지만, 그 안에는 따뜻한 정과 신뢰가 담겨있었다.

* * *

오늘은 뭐가 나왔나, 하고 장터를 구경하던 나와 두 비스테르는 잠시 외곽으로 향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후아, 록시 배 빵빵하다! 터진다!”

“으······. 나도 배불러.”

“그러게 말이야. 어우······. 나도 배불러서 못 움직이겠다.”

그렇다.

걷다가 지쳐서가 아니라 배가 너무 불러서였다. 나는 대충 풀어놓은 짐에 등을 기대고 누웠다.

“어우, 예전에 왔을 때랑은 완전히 달라졌네.”

처음 장터를 방문했을 때만 하더라도 먹을 걸 파는 상인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나마 내가 삼겹살과 각종 조리도구를 챙겨왔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더라면 열매 몇 알 주워먹고 말았으리라.

반면에 오늘은 달랐다.

이전에 비해 장터가 활발해진 건 물론, 온 거리에 음식 냄새가 진동을 했다.

신기한 건 하나같이 내 도구를 사용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다른 건 몰라도 내 도구를 이용해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늘었으니 제작자 입장에서는 참으로 보람찬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 또한 차오르는 뿌듯함에 괜스레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근데, 딱 하나 내가 예상하지 못한 게 있었다.

“설마하니, 다들 나를 기억하고 있을 줄이야.”

신기하게도 꽤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고 찾아왔다.

하물며 나는 후드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금세 알아보고는 인사를 건네왔다.

뭐, 몸에 비해서 유난히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있었으니 모를 수가 없었겠지.

내가 만든 도구를 직접 사용해본 사람들이 대다수였고, 이따금씩은 소문으로 접했다며 즉석 물물교환을 신청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거기다 무수한 악수의 요청은 덤이었다. 전생의 나도 악수가 일상이었는데, 이처럼 짧은 시간에 수십 번의 악수를 나눈 적은 또 처음이었다.

게다가 나를 찾아온 사람들은 저마다 먹을 걸 쥐여 줬다. 우리 셋은 건네주는 족족 받아먹었고, 그것이 결국 과식으로 이어졌다.

“덕분에 맛있는 걸 많이 먹었으니까.”

이태원에 온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정말 많은 음식들을 먹었지만, 어느 하나 겹치는 게 없었다.

아무래도 종족이 다양한 만큼 그 재료도 조리의 방식도 제각각이라서 그렇겠지.

물론 내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꽤나 맛있었다.

먹는 재미와 보는 재미에 이어 식견도 한층 넓어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저번보다 훨씬 더 활기가 넘쳐 진짜 시골 장터에 온 기분이었다.

“응응! 맛있었다! 록시 장터 좋다! 아니다! 대장이 더 좋다! 장터는 그다음이다!”

내가 장터에 질투라도 할까 싶었는지, 굳이 대장이 더 좋다는 말을 끼워넣는 록시였다.

내가 픽 웃자 록시가 냉큼 내게 머리를 내밀었다. 빨리 쓰다듬어달라는 록시 나름의 표현이었다.

하여간, 미워할 수가 없다니까.

나는 록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그래. 나도 장터보다 록시가 더 좋아.”

아직 우리가 미처 먹지 못한 음식들이 가방에 한가득이었는데, 이건 나중에 집으로 돌아가서 먹어야겠지.

소화를 시킬 겸 두런두런 잡담을 나누며, 저 멀리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하던 중이었다.

“거기!”

내 뒤쪽에서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렸다. 뭔가 싶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작은 키에 비해서 다부진 체격의 남자가 서 있었다.

남자는 잿더미 위에서 구르기라도 했는지, 길게 기른 수염은 물론 전신에 숯검정이 묻어있었다.

그에 대조적으로 코가 빨갛고, 내딛는 걸음이 영 불안한 게 대낮부터 한잔 걸친 것 같았다.

딱 여기까지만 보면 야심한 시각, 골목길에서 곧잘 볼 수 있는 취객 A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종족이 있었기 때문이다.

“듀로프?”

내 혼잣말에 남자의 미간이 좁아졌다.

“흠? 너, 우리를 아는 거냐?”

맞네!

저 사람이야말로 내가 만나고 싶어 했던 종족.

듀로프였다.

“아니,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너, 이걸 만든 게 너냐?”

듀로프가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내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가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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