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소년기(31) - #또 다시 장터로!
깔끔하게 내장을 손질한 생선을 나무 꼬치에 끼워 화로 위에 고정시켰다.
은근한 열기가 올라오자 칼집을 낸 생선 껍질이 말려올라가며, 녹진한 기름이 화로로 떨어진다.
기름이 닿자 불길이 한층 거세진다. 뭉게뭉게 피어오른 연기가 생선을 뒤덮었다.
생선은 기름에 튀기는 것도 맛있지만 이렇게 은근한 불에 훈연하면 풍미가 한층 살아난단 말이지.
기왕 먹는 꼬치구이다.
생선만 구워서는 어딘가 아쉬웠던 나는 한 입 크기로 치키의 살코기와 채소들을 꼬치에 꽂아 함께 구웠다.
길거리 음식하면 빠지지 않는 대표주자이며, 설령 배가 불러도 하나씩은 먹게 되는 닭꼬치였다.
여기서는 치키꼬치라고 해야 되나.
하나는 시즈닝을 뿌려 매콤함을 살렸고 다른 하나는 소금만 뿌려 담백함을 강조했다.
다음으로 냄비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각종 채소와 고기로 맛을 낸 육수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본래는 흔히 먹던 얼큰한 매운탕을 끓일 예정이었으나 록시나 루나도 먹을 예정이라서 맑은 탕으로 끓였다.
나는 마찬가지로 적당한 크기로 자른 생선을 넣고는 냅다 뚜껑을 닫았다. 보글보글, 거품이 끓어오르며 냄비 뚜껑이 들썩거렸다.
이것으로 오늘 점심 준비는 끝이 났다.
“우와아!”
저 멀리서 환호성이 들려온다.
범인은 록시였다. 그녀는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 옆에는 큐우도 함께였다. 정확히는 록시가 일방적으로 큐우의 손을 꼬옥 잡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풋.”
뭐라고 해야 할까.
동물을 본 따 만든 잠옷을 걸친 꼬마아이가 자기가 가장 아끼는 인형을 질질 끌고 다니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진짜 카메라만 있었더라면 액자에 걸어두고 싶을 만큼 깜찍하단 말이지.
그나저나 잘 지내는 거 같아서 다행이네.
솔직히 나는 두 비스테르와 큐우가 만나도 괜찮을지 조금은 걱정스러웠다. 아무래도 셋 다 본능에 충실한 종족인지라 혹여 다투지 않을까 염려됐던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피하거나 서로를 싫어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물론 처음부터 저렇게 친근했던 건 아니다. 루나는 큐우를 보자마자 멀찍이 떨어졌고, 큐우 또한 커다란 눈을 꿈뻑이며 둘을 주시했다.
그리고 이러한 어색함을 깬 이가 록시였다.
록시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큐우에게 다가가더니
경계를 푼 록시는 큐우더러 부대장이라고 부르며 졸졸졸 쫓아다니며 장난을 걸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큐우는 이런 록시가 조금은 귀찮은 듯 했다.
그도 그럴게 지금 이맘때라면 따땃한 햇살을 받으며 낮잠을 자고 있어야 할 시간이건만 이렇듯 록시에게 질질질 끌려다니고 있었으니······얼마나 귀찮을까.
하지만 록시가 누군가.
칠전팔기이자 활력이 넘치는 비스테르다. 큐우 또한 록시를 떨쳐낼 수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자포자기했다. 나아가 아예 끌려다니면서 낮잠을 자는 스킬까지 익혔다.
그렇다.
지금 큐우는 똑바로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록시에게 몸을 맡긴 채 낮잠을 자는 중이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록시가 두다다다, 달려왔다.
“대장, 대장!”
덕분에 큐우의 몸이 풍선처럼 펄럭였지만, 녀석은 몹시도 태연하게 잠을 잘 뿐, 그 어떠한 동요조차 하지 않았다.
진짜 진기명기가 따로 없었다. 가만 보면 큐우도 보통내기가 아니라니까.
하지만 이런 큐우조차 생선 굽는 냄새를 참을 수 없었는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눈을 떴다.
이내 록시가 내 옆에 바짝 붙었다. 살랑살랑 흔들리며 내 뺨을 간지럽혔다.
저번에 동굴에서 물 한 바가지를 붓는 걸로 씻었다고 말하는 록시를 보며 충격을 받았었지.
씻는 걸 좋아하는 루나에게 부탁한 덕분에 털에서는 은은한 허브향이 맴돌았다.
“맛있는 냄새 난다! 록시 배고프다!”
큐우우우!
록시의 외침에 큐우도 덩달아 배고프다며 칭얼댔다.
맛있게 익어가는 꼬치구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게 마치 방과 후 피카츄 돈까스가 익기를 기다리는 초등학생 꼬마아이들 같았다.
“아직 안 익었는데? 조금 더 기다려야 돼.”
“응! 그럼 기다린다! 록시 대장 말 잘 듣는다!”
“착해, 착해.”
나는 웃으며 록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헤헤! 아, 대장! 이거!”
록시가 내게 둥글게 생긴 나무 판을 건넸다. 낚시를 하면서 틈틈이 만든 놀이용 원반이었다.
록시는 평소 언행에서도 알 수 있듯 굉장히 활동적이다.
강아지 중에서도 악마견으로 소문난 비글과 비슷한 감각이었다.
물론 비글처럼 막 무언가를 물어뜯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활동량이 어마어마했다.
아마 록시가 지치려면 하루를 꼬박 놀아줘야 하리라. 그래서 비교적 체력소모가 큰 놀이를 찾다가 떠올린 게 원반 던지기였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내가 원반을 받아들자 록시의 꼬리가 보다 빠른 속도로 흔들렸다. 마치 헬리콥터의 날개같은 게 저러다 날아가겠네.
아직 익기까지는 시간이 남았으니 잠깐 놀아주는 것도 괜찮겠지.
“자, 간다?”
“간다! 간다!”
내 말에 록시가 자세를 낮춰 달려나갈 준비를 했다.
“하나, 둘······ 셋!”
힘껏 원반을 던졌다.
그와 동시에 록시가 쏜살같이 튀어나갔다.
바람을 가르며 날아가던 원반이 그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점차 지상으로 떨어졌다.
록시가 높게 점프해 손을 뻗었다. 록시의 손이 원반에 닿으려던 찰나였다.
샥!
그보다 먼저 원반을 낚아챈 이가 있었다.
루나였다.
“앗! 루나다!”
아쉽게 원반을 놓친 록시가 볼을 부풀렸다.
“록시도 잡고 싶다!”
“그럼 더 빨리 뛰어야지.”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한 루나가 유유자적 몸을 돌리더니 내게 원반을 건넸다.
“대장! 다시, 다시! 이번에는 록시가 잡는다! 잡는다!”
록시가 기필코 루나를 이기겠다며 호언장담했다.
글쎄올시다.
록시한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루나의 속도는 엄청나게 빠르다.
하물며 평지가 아니라 나무로 우거진 숲이라면 평생을 노력해도 루나를 따라잡을 순 없으리라.
“자, 그럼 다시 간다!”
그 후로도 나는 두 비스테르와 함께 놀아주며 여유로운 한때를 보냈다.
* * *
“진짜로 괜찮겠어?”
레비아 선생님의 말에 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뭐, 아이넬 너야 알아서 잘할 거라고 믿으니까 걱정은 안 하는데······.”
레비아 선생님이 내 뒤쪽을 힐끔거렸다. 그곳에는 로토에게 큰 흥미를 보이는 록시가 있었다.
루나 또한 안 그런 척하지만, 연신 로토를 힐끗거리는 게 꽤나 신기한 모양이다.
그렇다.
로토를 보면 알 수 있듯 오늘은 장터가 열리는 날이었다.
그리고 레비아 선생님이 이토록 걱정하는 까닭은 다름이 아니었다.
레비아 선생님이 개인적으로 다녀올 곳이 있기 때문이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꽤 중요한 일인 듯 데커드 할아버지도 함께 가기로 하셨다.
따라서 오늘은 나와 록시, 루나 세 사람만 장터에 가기로 결정됐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나도 레비아 선생님의 부재가 걱정스러운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고 레비아 선생님과 동행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언제가 되었든 나 혼자 장터를 오고 다니게 되리라는 건 지극히 당연했고, 시기가 조금 앞당겨졌을 뿐이다.
게다가 내게는 록시와 루나가 있다.
나 혼자 가는 거라면 모를까, 두 사람이 함께라면 몸도 마음도 든든했다. 물론 이런 든든함의 뒤로는 불안도 뒤따랐지만, 그거야 내가 잘 케어하면 되는 부분이니까.
“알았다. 그럼 조심히 다녀와라.”
“넵! 그럼 바로 출발할게요!”
나는 곧바로 로토의 등에 올라탔다. 푹신한 깃털이 내 다리와 허벅지를 감쌌다.
내 몸에 딱 맞춘 듯 편안함은 값비싼 세단 부럽지 않은 승차감이었다.
진짜 이 푹신함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니까. 뒤이어 록시와 루나 또한 껑충 뛰어 로토의 등에 안착했다.
“자, 안전벨트부터 합시다.”
나는 두 비스테르의 허리에 가죽끈을 묶어 단단하게 고정시켰다. 이것으로 출발 준비는 끝났다.
나는 심호흡을 했다.
이미 혼자 장터에 가기로 결정된 후로 나는 수시로 로토와 호흡을 맞추며 비행연습을 한 덕분에 그럭저럭 익숙해졌다.
그래봐야 이제 막 면허를 딴 초보운전자다.
아직 초보운전 딱지조차 떼지 못한 상태로 장거리를 비행하니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로토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쓸었다.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로토의 온기에 긴장이 가셨다.
“로토야, 오늘도 잘 부탁해.”
꾸룩!
로토가 기다란 목을 돌려 내 어깨에 뺨을 부볐다. 마치 내게 긴장하지 말라고 말하는 듯했다.
커다란 체구에 비해서 상당한 애교쟁이였다.
“하핫. 고마워. 자, 그럼 슬슬 출발해볼까? 록시랑 루나도 준비 됐지?”
“록시 준비 됐다!”
“응. 준비했어.”
“자, 가자!”
두 사람의 사인에 나는 로토의 고삐를 잡아 당겼다.
꾸룩!
내 신호가 떨어지자 로토가 날개를 펼쳐 홰쳤다.
후웅, 후웅.
거센 바람이 불며 로토의 몸이 서서히 떠오른다.
“대장! 뜬다! 난다!”
하늘을 나는 게 신기했는지, 록시가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내가 처음 로토를 탔을 때 딱 저런 반응이었지.
“떨어지면 답도 없으니까, 꽉 잡아.”
“알았다!”
“로토야, 가자!”
내 지시에 따라 로토가 날개를 홰치며 비행을 시작했다.
“우아아!”
“윽!”
“워워!”
나는 꽉 잡고 있던 고삐를 살살 당겼다. 로토가 서서히 고도를 낮추며 사뿐, 지상에 안착했다.
안전하게 지상에 착지한 나는 고개를 돌렸다.
“괜찮아?”
“우우우······ 록시 어지럽다. 눈이 막 돈다!”
록시가 어지럼증을 호소했다.
“웃차! 자, 내려서 잠깐 쉬자.”
“으응!”
이내 지상에 발을 디딘 록시가 술 취한 사람처럼 흔들거리더니 그대로 드러누웠다.
반면에 루나는 높은 곳이 익숙했던지 비교적 멀쩡했다.
“그럼 잠깐 쉬고 있어.”
나는 풀 위에 누워 밍기적거리는 록시를 두고 로토의 몸에 묶여 있던 짐을 풀었다.
“많이 무거웠지?”
꾸룩!
로토가 괜찮다는 듯 내 어깨에 뺨을 부볐다. 나는 미리 준비해온 간식을 내밀었다.
로토가 기다란 주둥이를 벌려 냉큼 간식을 먹었다.
“고마워! 그럼 오늘도 갔다 올게!”
꾸룩!
힘차게 답한 로토가 뒤뚱뒤뚱 걸어 숲 안으로 들어갔다.
어디 보자······.
오늘은 저번보다 일찍 출발한 탓에 시간에 여유가 많았다. 안 그래도 코코나트가 필요했는데, 잘됐다.
“나는 잠깐 이 주변을 둘러보고 올 테니까 둘은 잠깐 여기서 쉬고 있어. 알았지?”
“으응!”
“알았어.”
나는 두 비스테르의 대답을 뒤로하고 주변에 떨어진 코코나트를 비롯하여 각종 작물들을 모았다. 하나, 둘 필요한 것들을 챙기고 있자니, 록시와 루나가 내게 다가왔다.
공터에서 제법 떨어졌음에도 곧바로 찾아오는 걸 보면 역시 비스테르는 비스테르다.
적어도 날 잃어버리거나 미아가 될 일은 없겠네.
“대장! 록시 괜찮다! 이제 눈 안 돈다!”
“그래? 그럼 우리도 슬슬 갈까? 그전에, 이것부터 입자.”
공터로 돌아온 나는 레비아 선생님이 그랬던 것처럼, 두 비스테르에게 후드가 달린 로브를 입혔다.
“이 정도면 됐네. 자, 가자!”
“응!”
“응.”
나는 두 비스테르를 대동한 채 장터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