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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47화 (47/159)

47. 소년기(29) - #낚시를 합시다!

록시의 호기심 어린 질문에 나는 흐뭇하게 웃었다.

“이건 빗이라는 거야.”

나는 완성된 빗을 이리저리 살펴봤다.

빗의 생김새는 반려동물이 쓰는 것과 비슷했다.

재질은 나무고, 그 위에 끝을 뭉툭하게 만든 헤챠드의 가시가 촘촘하게 박혀있었다.

본래 나는 록시의 머리카락을 잘라주려고 했다.

그도 그럴 게, 머리카락은 상당히 긴 편이라서 살짝 고개를 숙이면 땅에 닿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나도 머리카락이 꽤 긴 편이라서 아는데, 이게 은근히 신경 쓰인다.

지금이야 정리를 해서 괜찮지, 가위를 만들기 전에는 식사 때마다 곧잘 머리카락을 질겅질겅 씹고 했다.

록시도 불편해하는 것 같아서 정리해주고자 가위로 그 끝을 살짝 잘라봤는데, 놀랍게도 머리카락은 멀쩡했다.

정정한다.

머리카락이 잘라긴커녕 도리어 가위의 이가 나갔다.

재질이 나무였더라면야 머리가 질기거니, 하고 어물쩍 넘기겠으나 가위는 마수의 뼈로 만들었다.

심지어 두꺼운 가죽조차 서겅서겅 잘라버리는 가위였음에도 머리카락의 강도를 이기지 못한 것이다.

자르고 싶어도 자르질 못하니 일단 묶어서 다니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 정리를 할 겸 빗을 만들었다.

그마저도 나무가 아닌 못 대용으로나 쓰이던 헤챠드의 가시를 촘촘하게 박아 비스테르 전용 빗을 만들었다.

“빗? 빗이 뭐야?”

이럴 땐 말보다 직접 시연하는 게 빠르겠지.

“자, 여기에 앉아봐.”

나는 내 앞을 탁탁, 두드렸다.

록시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내 앞에 털썩, 주저앉더니 고개를 돌리며 날 쳐다봤다.

“이렇게?”

“응. 그렇게 가만히 있어.”

“알았다!”

나는 조심스레 손을 뻗어 록시의 머리카락의 일부분을 살포시 쥐고 빗질을 시작했다.

관리는 고사하고 아무렇게나 방치한 탓에 마구잡이로 엉켜있는 탓에 빗질이 쉽지 않았다.

행여나 아플까, 조심스럽게 머리를 빗었다. 이런 내 손길이 간지러웠던 건지, 빗이 닿을 때면 록시의 귀가 쫑긋거렸다.

괜스레 장난기가 돌아 귀를 톡, 건드리자 마치 자라가 목을 움츠리듯 귀가 반으로 접혔다.

귀여워라.

“아프진 않고?”

자동차 대쉬보드에 달린 흔들인형처럼 연신 고개를 까딱이던, 록시가 맥없이 중얼거렸다.

“우웅······. 안 아프다. 근데. 록시 졸리다.”

“졸리면 자도 돼.”

“대장은?”

“나는 괜찮으니까, 편하게 누워.”

“으응.”

록시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대로 풀숲에 털썩, 눕더니 몸을 웅크렸다.

그 모습이 아기 여우 같았다.

자세가 편해졌기 때문일까.

“후아아암!”

록시가 크게 하품하더니 그대로 눈을 감더니 쌔근, 쌔근,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우리를 지켜보는 두 쌍의 눈동자가 있었다.

“허참······.”

“보기 좋네.”

데커드 할아버지와 레비아 선생님이었다. 당연하게도 어린 캣시와 약속을 했던 그날.

그러니까, 헌트렛트의 달이 불량품이라는 걸 알게 된 그 이후로 나는 두 비스테르를 돌보기로 결심했다.

내가 돌봐도 괜찮을지 걱정이 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두 비스테르를 내치는 건 싫더라.

그럼 별수 있나.

나는 머리보다는 가슴에 더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마따나. 두 비스테르를 돌보기로 결심한 나는 그 즉시 데커드 할아버지의 오두막을 찾아갔다.

당연하게도 두 분은 날 따라온 비스테르를 보자마자 기겁을 하셨다.

이에 나는 그동안 있었던 일을 설명했고, 당분간은 이곳에서 지낼 수 있게끔 허락을 받아낼 수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임시거처일 뿐, 두 비스테르가 지낼 장소를 물색하는 중이었다.

“큐우라는 녀석도 그렇고. 비스테르도 그렇고. 너는 나갔다 하면 뭘 하나씩 주워오는구나.”

데커드 할아버지가 황당하다는 듯 말하셨다.

주워왔다라.

록시나 어린 캣시나 비스테르는 집도 절도 없이 떠돌던 짐승족이니까 들짐승이라고 표현해도 틀린 건 아니겠네.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이봐 데커드, 비스테르가 원래 저렇게 얌전한 종족이었나? 너는 비스테르를 본 적이 있다며?”

그러고 보니 데커드 할아버지는 예전에 비스테르를 만난 적이 있다고 하셨었지.

나는 록시의 털을 빗으면서 두 분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레비아 선생님의 말에 데커드 할아버지가 수염을 쓸었다.

“흥,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 말인가? 무식하게 덩치만 큰 녀석이었지. 보자마자 날 죽이려고 달려들더군. 내 아주 혼쭐을 내줬지.”

“혼쭐을 난 쪽은 데커드, 너겠지.”

“뭐, 뭣이? 이놈이 지금 내게 시비를 거는 게냐?”

“호오, 시비라니. 그래서 한판 붙어 볼 테야?”

레비아 선생님이 내가 준 놀이도구를 흔들었다. 기다란 손잡이 위에는 둥근 형태의 망이 달려있었다.

다름 아닌 배드민턴 채였다.

안 그래도 데커드 할아버지나 레비아 선생님은 운동량이 별로 많지 않았다.

그마저도 매일 오목이나 알까기에 여념이 없어서 집에 오두막에 틀어박혀 밤새 내기 시합에 몰두하기 일쑤였다.

즐기라고 만든 놀이였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오목만 두고 있으니 그걸 가만히 보고 있기가 뭣해서 이번에는 활동적인 놀이도구를 생각했다.

뭐, 따지고 보면 놀이보다는 스포츠였지만 말이야.

그중에서도 넓은 공간이 필요치 않되 운동량도 좋은 종목이라면 단연 배드민턴이다.

내가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면 늘 거치는 공원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가족끼리 삼삼오오 모여 배드민턴을 치는 장면을 볼 때면 늘 부러웠었지. 나도 가끔씩 두 분과 배드민턴을 치며 친목을 다지곤 했다.

“네 상태를 감안해서 5점을 먼저 주지. 어때?”

5점이라니, 꽤 후하네.

“이익······.”

“싫으면 말고. 아, 그러고 보니 이번에 또 좋은 물건을 하나 구했거든. 그 고집 센 듀로프도 환장해서 달려드는 녀석으로 말이야.”

듀로프.

사실 내가 장터에 갔을 때 가장 만나보고 싶었던 종족이 바로 듀로프였다.

이유는 단순했다.

레비아 선생님이 내게 줬던 로켓 펜던트를 만든 인물이 바로 듀로프였기 때문이다. 더불어 드라고스 산맥에서 가장 손재주가 좋기로 유명한 종족이라지.

지구의 개념으로 보자면 장인이라고 볼 수 있었으며, 그들은 일평생 제작에 힘을 쏟는다고 한다.

듀로프는 자신들이 만드는 물건에 큰 자부심이 있기에 어지간한 물건이 아니라면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고도 했다.

이전에 장터를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듀로프를 찾았지만, 아쉽게도 만날 수 없었다.

앞으로도 꾸준하게 장터를 방문할 예정이니 조만간 만날 수 있겠지.

“그래서 할 거야 말 거야?”

이어지는 레비아 선생님의 도발에 할아버지의 눈썹이 역팔자로 휘었다.

그것도 잠시였다.

이내 데커드 할아버지가 몸을 팩, 돌리더니 주섬주섬 네트를 설치하셨다.

자존심에 난 스크래치를 떠나서 거절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점수긴 했으니까.

이내 네트를 기점으로 선 두 선수가 서로를 쳐다봤다.

아니, 가족끼리 하하호호 즐기자고 준 배드민턴 채였는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원수에게 겨눈 검처럼 보였다.

데커드 할아버지가 셔틀콕을 쥐었다.

“시작하지.”

비장감마저 감도는 말투로 중얼거린 데커드 할아버지가, 휙 셔틀콕을 던졌다. 팔랑팔랑, 치키의 털이 팔랑팔랑 흔들린다.

공중으로 높게 치솟았던 셔틀콕이 반대로 뒤집히며 지상으로 추락했다.

데커드 할아버지가 배드민턴 채를 들어 자세를 잡았다.

마침내 셔틀콕이 사정권에 들어왔고, 배드민턴 채가 후우웅, 바람소리를 내며 휘둘러졌다.

그때였다.

“캬오옹!”

날카로운 괴성과 함께 무언가가 공중을 향해 날아들더니 그대로 셔틀콕을 덮쳤다.

“헛!”

당황한 데커드 할아버지가 헛숨을 들이켰다. 아울러 셔틀콕을 노리고 날아들던 배드민턴 채는 애먼 바람만 갈랐다.

“······.”

“······.”

나는 물론, 두 선수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했다.

녀석은 어디서 나타났는지 전광석화와도 같은 몸놀림으로 셔틀콕을 낚아채더니, 유려하게 공중을 돌며 착지했다.

어린 캣시의 입에는 셔틀콕이 물려었있다.

닭 쫓던 개의 심정이 저러할까.

데커드 할아버지와 레비아 선생님은 셔틀콕을 입에 문 채 화려하게 착지하는 어린 캣시를 멍하니 쳐다봤다.

“푸훗.”

그 모습이 너무 웃겨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비단 당황한 것은 두 분만이 아니었다. 어린 캣시 또한 자신의 행동에 당혹스러워하고 있었다.

나무나 오두막 지붕처럼 높은 곳을 좋아하는 것도 그렇고, 무언가가 움직일 때면 몸부터 반응하는 것도 그렇고.

그 생김새만이 아니라 평소 보여주는 행동도 고양이와 똑 닮아있었다.

이내 어린 캣시가 입에 물고 있던 셔틀콕을 내려놓더니 그대로 숲을 향해 줄행랑을 쳤다.

고양이가 좋아하는 장난감이라도 하나 만들어줘야겠네.

아, 그러고 보니 이름도 지어줘야 되는구나.

이름이라······.

나는 어린 캣시의 특징을 떠올렸다.

검은 머리카락과 꼬리, 이에 대조되는 호박색 눈동자가 밤하늘에 뜬 보름달을 연상케 했다.

음, 달이라······. 그럼 루나라고 지어도 괜찮을 것 같단 말이지.

그래봐야 아직 어린 캣시는 날 어려워하는 것 같아서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게 먼저겠지만 말이야.

나는 다시금 꿈나라를 여행하는 록시의 머리를 부지런히 빗었다.

이리저리 얽히고설킨 머리카락이 차분하게 정리되자, 어마어마한 양의 머리카락들이 빗에 걸려 나왔다. 진작에 빠져서 떨어져 나갔어야 할 머리카락이었다.

“그나저나 엄청 많이도 나오네.”

하기야, 인간도 털갈이를 한다.

록시의 경우는 짐승족이었거니와 평생 빗질 한 번 하지 않았을 테니 그동안 죽은 머리카락을 달고 다녔으리라.

나는 빗에 걸린 머리카락들을 조심스레 빼 나무에 돌돌돌 감았다. 금세 총 5개의 실뭉치를 만들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네.”

한결 가벼워진 록시의 머리카락을 묶어서 끈으로 고정시켰다.

잠든 록시의 몸에 가죽 담요를 덮어준 나는 조심스레 자리를 옮겼다.

* * *

데커드 할아버지의 오두막을 나와 향한 곳은 밤산책 코스이자 지금은 내 아지트가 된 호수였다.

늘 산책을 다닐 만큼 이 장소가 마음에 들었던지라, 아예 작업대까지 만들었다.

아직 계획에 불과했지만, 아지트라는 이름에 걸맞게 별장을 하나 지을 예정이었다. 이를 위해서라도 꼭 만들어야 할 도구들이 있었고, 빠르면 한 달 안에 별장공사에 돌입할 수 있으리라.

수목으로 가득 찬 아늑한 숲 속에 펼쳐진 호수와 그 앞에 지어진 아늑한 별장.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아직 별장은 고사하고 땅을 다지기도 전이지만.

잡념은 여기까지.

적당한 위치에 지게를 내려놓은 나는 작업대로 향해 미리 준비해놨던 도구와 연장을 챙겼다.

“어디 보자······.”

뒤이어 얼마 전 페드릭 아저씨네 집에서 얻어온 나무를 손질했다.

나무의 이름은 뱀푸였다.

이 나무를 구하기 위해서 페드릭 아저씨가 고생을 좀 하셨는데, 나중에 삼겹살이라도 대접해야겠어.

뱀푸는 언뜻 대나무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두께가 훨씬 더 얇았고 탄력이 좋았다.

“낚싯대로 삼기에 아주 적절한 나무라, 이거지.”

그렇다.

예전부터 나는 이 호수에서 낚시를 하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낚싯대야 뱀푸가 있으니까 됐고, 찌나 바늘도 금방 만들 수 있었다.

딱 하나, 부족한 게 있었다.

낚싯줄이었다.

나는 낚싯줄 대용이랍시고 가죽을 얇게 잘라서 써봤다.

가죽의 특성상 탄성이 부족하고, 물에 젖으면 흐물흐물해져 축 늘어지니 물고기가 입질을 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도 모르겠더라.

이래서는 제대로 된 낚시를 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이런 내 아쉬움을 단박에 날려버린 것이 있었으니, 바로 록시의 머리카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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