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46화 (46/159)

46. 소년기(28) - #그래서 변신은 언제 하는데?

느닷없는 치키의 조공이 있은 후로 며칠이 흘렀다.

“범인은 반드시 현장으로 돌아오는 법이지.”

이른 새벽이었다. 평소보다 조금 더 이른 시간에 기상한 나는 집 뒤쪽에 숨어있었다.

정확하게는 잠복이라고 하는 게 적절하겠지.

이른 새벽에 잠복하고 있자니 어딘가 범죄의 냄새가 물씬 풍겼지만, 사실 그런 건 아니었다.

매일 우리 집 앞에 마수를 놓고 가는 인물과 만나기 위해서였다. 처음 치키를 발견했을 때만 하더라도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내 착각이라는 걸 깨닫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다음날에도 마수가 놓여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치키가 아닌 피기로 한층 업그레이드가 되어 있었다.

치키야 단순히 우연으로 치부할 수 있거니와, 실제로도 엄마는 깊게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피기라면 또 이야기가 다르다.

혹시나 싶어 바깥을 살펴봤기에 망정이지, 만약 이걸 엄마나 아빠가 먼저 발견했더라면 단박에 수상한 낌새를 눈치챘을 터.

문제는 이러한 보은인지 조공인지 모를 사건은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이어졌다. 따라서 나는 매일 새벽에 배달되는 식재료들을 따로 모아 데커드 할아버지의 오두막으로 옮기곤 했다.

아니, 무슨 로켓 프레시 정기배송도 아니고 말이야.

갓 잡아 싱싱한 식재료를 공짜로 얻어먹으니 고마운 건 맞다.

심지어 다른 집은 매일 풀만 먹는데, 우리는 삼시 세끼 고기반찬이 나온다. 덩달아 내 요리연습에도 도움이 되니 좋지 않으려야 않을 순 없었다.

다만 내가 주문하지도 않은 것들이 계속해서 도착하니 도리어 걱정이 된다고 해야 할까.

저번에 두 비스테르를 봤을 때 영양상태가 꽤 심각했으니, 나한테 줄 게 아니라 본인들이 먹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더불어 나한테 이렇게까지 하는 의도가 궁금해졌다고 해야 할까.

친구의 목숨을 살려줬으니 고마워하는 건 알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야.

그래서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방문하는 쿠팡맨과 만나기 위해서 이렇듯 잠복을 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새벽 3시쯤에 배달하는 것 같으니 슬슬 나타날 때가 됐는데.

그나저나 잠복이라는 말 때문인지 뜨끈뜨끈한 국밥이 땡기네.

피기가 돼지랑 비슷했으니 그 뼈로 육수를 우리면 꽤 비슷한 맛이 날 것 같긴 한데.

거기에 두툼하게 썬 살코기와 내장들을 넣고 바글바글 끓이면 앉은 자리에서 밥 세 공기는 뚝딱할 자신이 있었다.

엄마표 스튜도 맛있긴 하지만 국물하면 국밥을 이길 수 없다니까.

아, 상상하니까 침 넘어가네. 이럴 줄 알았으면 피기 고기를 좀 남겨둘 걸 그랬나.

나도 나지만 엄마나 아빠는 물론, 데커드 할아버지와 레비아 선생님도 삼겹살에 푹 빠진지라 피기가 남아나질 않았다. 심지어 이틀 전에 배송된 피기도 뼈만 남은 상태였다.

때 아닌 국밥에 군침을 삼키고 있는 중이었다.

호롱!

공중으로 정찰을 떠났던 바이오 드론 겸 반디경사가 내게 신호를 보냈다.

“왔구나.”

나는 숨을 죽이고 자세를 낮췄다. 잠시 후 자그마한 인영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마치 모래사장 위를 덮는 썰물처럼 스으윽, 밀려드는 그림자를 보던 나는 픽 웃었다.

록시 맞네.

그림자만 보고 록시임을 확신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그림자의 가장 위였다.

그곳에 뾰족하게 튀어나온 삼각형 돌기, 다시 말해 록시의 귀가 쫑긋쫑긋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그나저나 저건 또 뭐야?

록시는 이번에도 무언가를 질질 끌고 오고 있었다.

내가 모르는 마수인 것 같았는데, 그 크기가 몹시도 컸다. 저 작은 몸으로 용케도 저런 커다란 마수를 잡는구나. 역시 어려도 비스테르라는 건가.

슬슬 나가볼까.

몰래 온 손님인 만큼 한 번쯤 놀려주고 싶었으나, 지금은 참는 게 낫겠지.

나는 웅크렸던 자세를 바로하며 곧장 인사를 건넸다.

“안녕?”

“꺄응!”

난데없는 인사에 록시가 화들짝 놀라더니 허둥지둥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여기야 여기.”

나는 숨어있던 곳에서 나와 모습을 드러냈다. 이내 날 발견한 록시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록시 맞지?”

이미 알고 있지만, 확인 차 물었다.

그러자 록시가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로, 록시 아니다! 록시는 록시 아니다!”

어째서일까.

강하게 부인하는 것과는 달리 록시의 꼬리가 바쁘게 움직였다.

누가 보더라도 주인을 만났을 때 강아지들이 기뻐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건 그렇고. 록시는 록시 아니다는 또 무슨 말이래?

설마하니 나한테 정체를 숨기려고 했던 건가.

“응?”

그러거나 말거나 록시가 벌떡 일어나더니 그대로 몸을 돌려 달음박질쳤다.

근데, 쟤는 왜 갑자기 도망을 친대.

나는 강하게 땅을 박찼다. 삽시간에 주변 풍경이 바뀌며 록시와의 거리가 줄어들더니 금세 옆으로 따라붙었다.

“대, 대장! 빠르, 우갸악!”

한창 달리면서 날 쳐다보던 록시가 그대로 중심을 잃더니 데굴데굴 바닥을 굴렀다.

“괜찮아?”

나는 서둘러 록시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다행히 우거진 풀이라서 상처는 나지 않은 듯했으나, 어째선지 록시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크, 큰일이다. 큰일이다.”

록시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큰일?”

내 질문에 끝끝내 록시의 눈에 맺힌 물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저기, 그······. 혹시 나하고 만나면 안 되는 거야?”

난데없는 눈물에 당황한 내가 묻자 록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런 건지 알려줄 수 있어?”

“어, 어린 캣시가 대장이랑 만나면 안 된다고 했다.”

“응? 어린 캣시라면······ 아, 그때 그 친구 말하는 거구나.”

록시가 고개를 푹 숙였다.

“맞다. 만나면, 대장. 록시 싫어한다. 어린 캣시가 그랬다.”

“그건 그렇고. 그 대장이라는 건 또 뭐야?”

“대장은 대장이다.”

나를 왜 대장이라고 부르는지 알 순 없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그러니까, 나를 만나면 안 된다고 친구가 말했다는 거지?”

“말했다. 계속 말했다. 만나면 안 된다. 계속 그랬다.”

“왜?”

“싫어한다고 했다. 갑자기 보이면 록시 싫어한다고.”

록시는 적잖이 당황한 듯 쉼 없이 말을 쏟아냈다.

“그러니까, 내가 록시를 보면. 아니, 만나면 싫어할 거라고 친구가 말했다는 거지?”

“맞다!”

록시가 긍정했지만, 정작 나는 그 말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아니, 내가 록시를 싫어할 이유가 있나?

이런 내 의문에 대한 답이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우리는 비스테르니까.”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나무에서 작은 인영이 뛰어내렸다. 내가 치료했던 록시의 친구였다.

“비스테르니까라.”

“모두가 싫어하는 종족이니까.”

레비아 선생님도 비슷한 말을 했었지. 보아하니 비스테르도 다른 종족들이 자신들을 꺼려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나는 어두운 밤하늘에 유난히도 빛나는 노란색 눈동자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모두가 비스테르를 싫어하는 건 아니야.”

“거짓말이다. 늙은 캣시가 말했어. 우리를 싫어하지 않는다고 말했던 종족들은 다 우리를 이용하기 위해서라고.”

“다른 종족이 비스테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잘 모르고, 별로 알고 싶은 마음도 없어. 적어도 나는 비스테르를 싫어하지 않아.”

아무렴.

록시는 내게 은혜를 갚기 위해서 그 먼 거리를 달려온 것도 모자라, 매일 마수를 사냥해서 내게 갖다줬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몇 번이고 그랬다.

이토록 착하고 귀여운 종족을 싫어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내 확신 어린 대답에 침묵을 유지하던 어린 캣시가 하늘을 가리켰다.

“일주일 뒤. 헌트렛트의 달이 뜬다.”

“헌트렛트의 달?”

“안 된다! 안 된다!”

헌트렛트의 달이라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록시가 발작적으로 외쳤다. 하지만 이런 록시의 외침에도 어린 캣시는 묵묵하게 말을 이어갔다.

“정말로 우리를 싫어하지 않는다면, 헌트렛트의 달이 뜨는 날에 이곳으로 와라.”

잠시 말을 멈춘 어린 캣시가 허리를 숙이더니, 그대로 록시를 데리고 숲으로 들어갔다.

“헌트렛트의 달이라······.”

그러고 보니 레비아 선생님은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비스테르가 흉폭해진다고 했었지. 그때 뜨는 달을 헌트렛트의 달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일주일 뒤란 말이지.”

좋아, 까짓거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내 눈으로 똑똑히 봐야겠다.

* * *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약속의 날이 찾아왔다. 만반의 준비를 갖춘 나는 집을 나섰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휘영청 떠오른 달이 보였다. 오늘따라 유난히도 달이 둥글고 고왔다.

저게 그 헌트렛트의 달이라는 걸까.

글쎄올시다. 나한테는 그냥 예쁜 보름달인데 말이야.

하늘을 구경하며 부지런히 걸어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저 멀리 두 인영이 앉아있었다.

“나 왔······엉?”

두 사람을 본 나는 눈을 꿈뻑였다.

어째선지 두 사람이 가죽으로 눈을 가리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둘 모두 양손과 양다리가 결박되어 있는데, 정작 날 놀라게 한 것은 따로 있었다.

두 사람을 묶고 있는 건 넝쿨이었는데, 마치 뱀처럼 움직이며 점점 더 강하게 옥죄고 있었다.

“대장! 대장이다!”

이런 내 놀람과는 별개로 록시가 꼬리를 흔들며 반갑게 인사했다.

“대체 이게 뭐야?”

“즈넬바인.”

“즈넬바인······.”

풀이하자면 올가미 넝쿨이라는 의미였다.

“헌트렛트의 달 때문이야?”

어린 캣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헌트렛트의 달을 보면 변한다.”

내가 이곳으로 오기 전에 데커드 할아버지아 레비아 선생님께 헌트렛트의 달에 대해서 물어본 적이 있다.

아쉽게도 두 분 모두 헌트렛트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다만 데커드 할아버지는 이런 말을 하셨다.

“각 종족마다 숭상하는 존재가 있다. 에프렐의 경우는 정령의 왕이라 일컫는 테라노아를 숭상하지. 어쩌면 그 헌트렛트라는 건 비스테르가 믿고 따르는 존재일지도 모르겠구나.”

어디까지나 데커드 할아버지의 추측에 불과했지만, 나는 꽤나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 그럼 달을 보지 않으면 변하지 않는다는 건가.”

“변하지는 않아. 그래도 위험한 건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비스테르는 함께 지내지 않는다.”

어?

“그럼······.”

“헌트렛트의 달이 뜨면 친구조차 알아보지 못한다.”

“그럼, 헌트렛트의 달이 뜰 땐······.”

“맞다. 우리는 즈넬바인에 묶인 채 달이 저물기를 기다린다. 이것도 안전한 건 아니다.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돌아가는 게 좋을 거야.”

어린 캣시의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담겨있었다.

그랬구나.

지금 어린 캣시는 나한테 겁을 주려고 저런 말을 한 게 아니다.

그저 내가 걱정되기에,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겁을 주고자 저런 말을 하는 것이다. 지금 저렇게 즈넬바인에 스스로의 몸을 맡긴 것 또한 나한테 해를 입히고 싶지 않아서겠지.

“자, 그럼 이제부터 뭘 하면 되는 거······아! 안대를 벗기면 변한다고 했지. 그럼 안대 벗긴다?”

“잠······.”

어린 캣시가 무어라 말하려고 했으나, 내 행동이 더 빨랐다.

스륵.

어린 캣시의 눈을 가리고 있던 안대가 풀리자, 그 안에 숨겨져 있던 눈동자가 드러났다.

몹시도 당황한 눈동자에 내 모습이 비쳤다. 이어서 나는 록시의 안대까지 확, 벗겼다. 록시는 내가 왔다는 게 걱정스러웠는지 또 다시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괜찮아.”

내가 걱정 말라는 듯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자, 록시가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었다.

자, 이제부터 변신을 한다는 거겠지.

나는 긴장하며 두 사람을 쳐다봤다.

별안간 정적이 흘렀다.

꿈뻑, 꿈뻑.

“······.”

힐끗, 힐끗.

“······.”

갸웃, 갸웃.

“······.”

분명히 안대를 벗겼는데, 왜 둘 다 반응이 없지?

혹시 변신하는데도 시간이 필요한가 싶었는데, 막상 어린 캣시의 당혹스러운 얼굴을 봐서는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정적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시간 또한 흐르고 흘렀다.

얼추 10분쯤 기다렸을까.

참다 못한 내가 물었다.

“그래서 변신은 언제 하는데?”

“······.”

“······.”

* * *

결과적으로 두 사람은 변신은커녕 털끝 하나 변하지 않았다.

헌트렛트의 달이 불량이었던 건지, 아니면 뭔가가 작용을 한 건지는 모르겠다.

뭐,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으니 기뻐해야 할 일이겠지.

“대장!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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