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소년기(27) - #대장!
이전에 내가 아기였을 때 먹었던 이유식에 들어갔던 재료 중 하나가 이 치키의 알이었지.
“어머, 이게 왜 여기 있지?”
엄마가 이상하다는 듯 치키를 살펴봤다.
내 말이 그거다.
치키는 새의 한 종류였으며, 날지 못하는 대신 튼튼한 다리로 점프하는 게 특징이라고 알고 있다.
그 속도도 빨라서 잡기가 쉽지 않은 마수이며, 원체 겁이 많아서 마을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지.
“뭘 잘못 먹고 여기서 죽은 건가?”
엄마는 명탐정처럼 진지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보아하니 엄마는 치키가 독을 품은 열매를 먹고 쓰러진 게 아닐까, 라는 의심을 가장 먼저 떠올렸지만 나는 달랐다.
그도 그럴 게, 설령 독 때문에 죽었다고 한들 그 사체가 숲에 있어야지 마을에 그것도, 가장 잘 보이는 위치인 현관 앞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일까.
내 머릿속에서는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얼마 전 만났던 록시였다.
내가 록시와 헤어지기 전에, 분명히 록시는 나더러 기억했다고 말했단 말이지. 그리고 비스테르가 짐승족인 만큼 추적능력이 뛰어나리라는 것 정도는 쉬이 예상할 수 있었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어디까지나 용의자일 뿐이지, 록시가 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게다가 장터와 이곳의 거리가 얼마냐고.
제아무리 코가 좋다고 한들 그 거리를 쫓아온다는 게 가당키나 한 얘긴가.
근데, 무작정 부정하기도 애매한 게······ 생각해보면 나는 비스테르에 대해서 잘 모른다. 더불어 이전에 레비아 선생님께 한때는 드라고스 산맥을 쥐락펴락했던 종족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즉 비스테르는 그 먼 거리조차 추적할 수 있을 정도로 후각이 발달했거나, 그 외에 초능력 같은 게 있는 거라면야 어떻게든 납득할 수는 있겠지만, 이 또한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모르겠다.
내 의심이 진짜인지, 아니면 그냥 과민하게 생각하는 건지는 아직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더욱이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그 보기 어렵다는 치키가 내 앞에 있다. 딱 봐도 독의 흔적이 없는 데다가 갓 잡은 것처럼 싱싱한 것 같았으니 먹어도 아무런 지장은 없을 터.
“엄마, 엄마.”
“응?”
“치키로 요리해드릴게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당에 앉아있던 아빠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삼겹살!?”
아빠였다.
요 근래에 아빠는 집에서 쉬고 있었다.
이유라면 요즘 들어 사냥감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최근에 피기를 잡아온 걸 제외하면 이렇다 할 소득도 없었다. 비단 아빠만이 아니었다. 마을에 있는 사냥꾼의 대다수가 집에서 쉬고 있었다.
이에 엄마는 기왕 이렇게 된 거 며칠 푹 쉬라고 권유했고, 아빠도 애써 좋게 생각하며 때 아닌 휴가를 즐겼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늘 숲을 제집처럼 돌아다니던 아빠가 집에만 박혀있으니 손이 근질근질거리는 게 당연했다. 그것도 자기가 쉬고 싶어서 쉬는 거라면 모를까. 이틀 정도 지나자 아빠는 우울증에 걸린 사람처럼 마당에 앉아 멀거니 숲을 쳐다보고 했다.
마치 아무런 예고도 없이 정리해고를 당한 채, 동네 놀이터를 전전하며 깡소주로 나발을 불던 김씨 아저씨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다.
“후후후, 그래. 사냥꾼이 사냥을 못 한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
큐우?
“그래, 네 말이 맞다. 나는 평생을 숲에서 살아온 놈이야. 근데, 갑자기 숲을 가지 말라니······.”
큐우?
특히 아빠는 마당에 앉아있을 때면 늘 옆에 큐우를 앉혀 말을 걸었다. 당연하게도 큐우의 입장에서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저렇게 옆에 딱 붙어있는 이유가 있었다.
와작와작!
아빠가 챙긴 간식 때문이었다. 아빠도 저 간식이 없으면 큐우가 흥미를 잃는다는 걸 알고 계시는지, 아예 간식통을 품에 안고 있었다.
뭔가, 마음이 애잔해지는 장면이었다.
이유야 가부간 실직자가 된 아빠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안 좋더라. 엄마도 그런 아빠가 걱정스러웠는지 음주에 가무까지 허락하셨다.
그래봐야 아빠를 뒤덮은 우울은 쉽사리 걷히지 않았다.
그걸 보다 못한 나는 기운을 차렸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조촐한 파티를 계획했다.
아니나 다를까.
레비아 선생님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삼겹살을 흡입하시더니, 금세 기운을 차렸다. 삼겹살이 무슨 만병통치약도 아니고 말이야.
하물며 툭 하면 삼겹살, 삼겹살 노래를 부르시는 게 진짜로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뭐, 삼겹살이야 잘라서 구우면 되는 요리라서 어렵진 않은데, 정작 삼겹살이 없었으니 별수 있나.
안 그래도 요리 연습을 하려던 차라서 아예 엄마를 대신해서 식사를 준비했는데, 아빠는 엄마가 만드는 것보다 맛있다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곧잘 식사를 준비하곤 했다.
“삼겹살은 없는데요?”
“윽!”
내가 딱 잘라 말하자 아빠가 고개를 떨궜다.
방금 전 기뻐하던 아빠가 재차 우울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뭐, 일단 오늘 만든 요리를 먹어보면 금방 풀리겠지.
나는 통통하게 살이 오른 치키를 흔들었다.
오늘 저녁은 통닭이닭!
* * *
깊은 숲속이었다. 비스테르가 멍한 얼굴로 하늘을 쳐다봤다.
검은 머리와 삼각형 귀, 길고 얇은 꼬리는 과거 드라고스 산맥을 지배하던 비스테르 중에서도 가장 총명하고 지혜로운 부족인 캣시임을 나타내고 있었다.
이름은 없었다.
그저 어린 캣시라고 불렸다.
하늘을 바라보던 어린 캣시가 한숨을 내쉬었다.
‘왜 이렇게 된 거야?’
어린 캣시는 도저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살았다. 정확히는 동굴에 숨어서 지냈다. 절대로 남의 눈에 띠어서는 안 된다는 늙은 캣시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러한 약속은 깨졌다.
그것은 얼마 전 먹은 고기가 원인이었다.
어린 캣시는 엄연한 비스테르다.
다른 부족들 사이에서는 곧잘 캣시의 후각과 미각은 있으나 마나 하다며 놀리긴 했지만, 그건 비스테르 사이에서나 통용되는 농담일 뿐. 다른 종족과 비교했을 땐 나름 뛰어난 편에 속했다.
따라서 어린 캣시는 그 고기가 상했다는 것도, 먹으면 탈이 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런 걸 따질 겨를이 없었다.
‘굶어 죽으나, 탈 나서 죽으나 똑같다.’
적어도 어린 캣시는 굶어 죽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썩은 고기를 먹었고, 걱정했던 대로 탈이 났다.
장기는 끊어질 것처럼 아프고, 피부는 녹아내릴 것처럼 뜨거웠다. 게다가 이미 허약해진 상태에서 만난 마수와의 전투로 인해 상처도 많은 상태였다.
‘바보 같은 짓이었어.’
어린 캣시는 자신이 꼼짝없이 죽으리라 생각했다.
아니, 확신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어린 캣시는 죽지 않았다.
“캬앙!”
갑작스럽게 들려온 괴성에 어린 캣시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살짝 떨어진 곳에 또 다른 비스테르가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도망! 안 된다! 가지 마!”
비스테르는 당장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연신 나뭇가지를 쳐다봤다.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통통하게 살이 오른 치키가 버티고 서 있었다.
꾸왁! 꾸왁!
치키가 괴성을 지르며 몸을 흔들었다. 그러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베스티르의 몸도 덩달아 흔들렸다.
“흔들지 마! 록시 떨어진다! 떨어지면 아프다!”
자신을 록시라 부르는 인물 또한 비스테르였다.
폭시라고 불리는 부족 출신이었다.
폭시는 여타 부족과는 다르다.
티가르 부족처럼 전투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베아드 부족처럼 힘이 센 것도 아니다. 캣시처럼 재빠른 것도 아니다.
당장 나무 하나 제대로 못 오르는 것만 보더라도 폭시의 운동신경이 얼마나 볼품없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폭시에게도 딱 하나 특이한 게 있었다.
감이었다.
폭시는 이상하리만치 감이 좋은 부족이었다. 과거 비스테르 사이에서는 폭시를 통해 점을 치곤 했으며, 그로 인해 비스테르는 오랜 시간을 번영할 수 있었다. 이러한 특이성 덕분에 비스테르 사이에서는 폭시가 신과 소통하는 창구의 역할, 소위 무녀라고 믿었다.
그랬기에 폭시는 전투력의 고하와는 상관없이 늘 존경받는 부족이었다.
그래서다.
따지고 보면 어린 캣시의 능력은 어린 폭시를 압도적으로 상회하는 건 맞다. 하지만 정작 어린 캣시가 살아있을 수 있던 이유.
나아가 배탈이 나서 죽을 뻔한 위기에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린 폭시의 역할이 크다고 어린 캣시는 믿었다.
“우아아! 떠, 떨어진다! 록시 떨어진다!’
‘······록시.’
어린 캣시가 록시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부터 록시라는 이름이 자꾸만 신경을 건드렸던 것이다.
본래 비스테르에게는 이름이 없다. 어린 캣시는 그저 어린 캣시고, 스스로를 록시라 부르는 친구는 어린 폭시라고 불렀다.
‘그 사람은 뭐였을까.’
어린 캣시는 얼마 전 보았던 두 사람을 떠올렸다.
두 사람 모두 후드를 걸치고 있어서 자세한 건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느낌상 키가 큰 사람에게서는 무언가 어딘가 위험한 냄새가 풍겼다. 반면에 옆에 있던 자그마한 사람은 아니었다.
어린 캣시는 자신을 치료해준 사람이 작은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비몽사몽이었지만, 자신의 몸에 이상한 액체를 바르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어린 캣시는 비스테르다. 이성보다는 본능이 더 짙은 종족이다.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자신에게 무언가가 다가오는 즉시 숨겨둔 발톱부터 튀어나오는 게 당연했다.
하물며 작은 사람으로 인해 너무 아프고 고통스러웠음에도······방어기제는 반응하지 않았다. 달리 말해서 그 작은 사람에게서는 그 어떠한 위험도 감지되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어린 캣시가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몸 곳곳에는 가죽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신기한 건 평소대로 움직여도, 물이 묻어도 떨어지지 않았다. 혹시 아예 떨어지지 않는 건 아닐까 싶었는데, 힘을 주면 잘 떨어졌다.
더불어 가죽을 뗀 부분에 난 상처는 감쪽같이 아물어있었다.
‘이상한 사람.’
이것 말고는 도저히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사람이 아니었더라면 자신은 죽었다는 것이다.
그래서다.
캣시는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록시의 주장을 결코 거절할 수 없었다.
그랬기에 늙은 캣시와의 약속을 깨고, 그 먼 거리를 횡단하는 길에 올랐고 어제 오후가 되어서야 이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곳으로 오는 동안 몇 번이고 위험한 상황을 겪었고, 수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러나 록시의 예민한 감으로 말미암아 무사히 이곳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잘된 거겠지?’
거기다 자신이 늘 숨어있던 지역과는 다르게 먹을 것도 있었다.
이내 잡념을 털어낸 어린 캣시가 몸을 일으켰다.
툭, 가볍게 땅을 박차 지상에서 뛰어오른 어린 캣시가 재차 나무를 밟고 뛰어올랐다.
꾸왁?
갑작스럽게 자신을 향해 덮쳐오는 그림자에 치키가 반응하기도 전이었다.
샥!
순식간에 치키를 낚아챈 어린 캣시가 지상에 착지했다.
“우아아! 앗!”
어린 캣시의 도움에 기뻐하던 록시가 그만 나뭇가지를 놓쳐 지상으로 곤두박질쳤다.
“괜찮아?”
어린 캣시가 재빨리 록시에게 달려갔다.
엉덩이만 쭉 내민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풀에 엎어져 있던 록시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푸하! 록시 괜찮다! 치키! 치키! 대장 주고 온다!”
이내 록시가 치키를 든 채 두두두두두, 달려갔다.
“······.”
그 모습을 멍하니 보던 어린 캣시가 한숨을 내쉬었다.
“대장이라니······.”
비스테르에게 있어 대장이란 곧 자신이 평생 믿고 따를 우두머리에게나 쓰는 호칭이었으니까.
이에 어린 캣시가 재빨리 록시의 뒤를 따랐다. 당장은 들키지 않는 게 좋다며 몇 번이고 주의를 줬지만, 걱정스러운 건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