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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44화 (44/159)

44. 소년기(26) - #은혜 갚는 까치…아니, 비스테르?

식중독이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다른 건 몰라도 식중독에 걸렸을 때의 대처법 정도는 알고 있었으니까.

따지고 보면 식중독으로 인해 생겨나는 대표적인 증상은 복통과 발열, 구토, 위장장애 등등이 있다.

나도 예전에 식중독에 걸려봐서 아는데, 장이 끊어질 것 같은 통증도 통증이지만 가장 날 힘들게 했던 것은 극심한 탈력감이었다.

이렇듯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게 식중독이다. 그렇다고 또 식중독이 목숨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한 병은 아니다.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그냥 며칠 고생하면 자연스럽게 낫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요한 것은 컨디션이 정상일 경우에 한해서다.

록시의 친구는 스스로 식중독을 이겨내기는커녕 당장 몸에 생긴 상처를 수복할 수 있는 회복력조차 달렸다.

설령 식중독을 치료하더라도 장기간 방치된 상처를 통한 2차 감염이 더 우려되는 상태인 것이다.

달리 말해서 상처만 제대로 수습한다면, 식중독은 금방 치료할 수 있었다.

좋아.

어디서부터 어떻게 치료해야 할지 대략적인 계획은 세웠다.

그렇다면 이제 치료해야 할 일만 남았다.

나는 가방을 열어 챙겨온 도구를 비롯하여 늘 품에 지니고 다니는 구급키트까지 바닥에 늘어놨다.

지금 가지고 있는 거라면 어떻게든 급한 불을 끌 순 있겠어.

“말 놔도 되죠?”

“말 놓아? 응. 놓아!”

록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거 딱 봐도 내 말을 이해한 것 같진 않은데······ 상관없으려나.

“혹시 이 근처에 물 있어?”

이어진 내 질문에 록시가 당황하더니 다급하게 동굴 안쪽을 가리켰다.

“어, 어. 있다. 물 저기에.”

“그럼 여기에 물 좀 채워다 줄래? 가능한 빨리.”

“알았다. 록시. 갔다 온다.”

록시가 바가지를 든 채 동굴 안쪽으로 달렸다.

나는 빠르게 사라지는 록시를 뒤로하고 재빨리 소독약을 집어 들었다.

“선생님, 이쪽에 빛을 좀 비춰주실 수 있어요?”

“알았다.”

내 부탁에 레비아 선생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조명 역할을 했다. 나는 조명에 비친 친구의 몸에 소독약을 뿌렸다.

“니야아아아······.”

소독약이 닿자 록시 친구가 고통을 호소하며 발작적으로 몸을 떨었다.

“아프겠지만, 조금만 참아요.”

적어도 통증이 있다는 건 나쁘지 않았다.

당사자의 입장에서야 힘들겠지만, 그 고통이야말로 살아있다는 증거이자 육체가 제대로 기능을 하고 있음을 방증했으니까.

나는 소독약을 거의 뿌리다시피 하며 모든 상처를 닦았다. 마음 같아서는 물로 싹 씻기고 싶었지만, 상처에 물이 들어가면 덧날 수도 있었다.

이윽고 피부를 덮고 있던 이물질이 제거되자, 크고 작은 상처들이 드러났다.

빠르게 상처를 훑어보며 각 상처의 심각도를 나눈 나는 곧바로 치료를 시작했다.

일단 비교적 가벼운 상처에는 연고를 바르는 것으로 처치를 끝냈다.

이제 남은 건 곪은 상처였다. 상태를 봐서는 단순히 약을 발라서 끝낼 게 아니라 아예 상처를 안에 가득 찬 고름을 빼내는 게 우선이었다.

“후우······.”

나는 심호흡을 하며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나는 가죽 케이스에서 나이프 한 자루를 꺼냈다. 내가 만든 나이프 중 가장 작고 예리해서 메스 대용으로 쓰기에 적절했다.

나는 남은 소독약을 부어 꼼꼼하게 나이프를 소독한 뒤 곪은 부위에 상처를 냈다.

베인 상처를 통해 끈적한 고름이 흘러나왔다.

꾹꾹.

상처 주변을 누르며 남은 고름들도 싹 빼냈다.

“니야아아아······.”

이번에도 친구가 고통스럽게 울었다.

그 애절한 울음에 가슴이 뜨끔거렸지만, 치료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애써 못 들은 척 무시하며 치료에 박차를 가했다.

됐다.

마침내 염증의 근원을 모조리 제거했다.

나는 그 위에 연고를 바른 뒤 곧바로 가방을 뒤져 얇게 편 가죽을 꺼냈다. 일반적인 가죽과는 다르게 작은 구멍이 뽕뽕 뚫려 있었다. 나는 가죽의 양 사이드에 로툰드의 점액을 희석시켜 만든 접착제를 발랐다.

완성이다.

이는 지구에서 사용하는 반창고에 착안해서 만든 접착 붕대였다.

아빠가 사용하는 가죽 붕대는 두께가 있어서 통기성이 나쁘거니와 물에 젖으면 쉽게 마르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게 상처를 악화시키는 주범이라는 걸 깨달은 나는 의료용 붕대를 만들었다. 따지고 보면 처음으로 개발한 첫 번째 의료도구인 셈이다.

각 상처에 맞게끔 잘라낸 가죽으로 반창고를 만들어 상처를 덮었다.

이것으로 응급처치는 끝났다.

긴장이 풀린 나는 그대로 주저앉아 땀을 훔쳤다.

“보면 볼수록 신기하네. 대체 너는 그런 걸 어디서 배워 오는 거야?”

내가 한숨 돌리고 있자 묵묵히 날 보조하던 레비아 선생님이 물었다.

그런 걸 어디서 배우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생활에서요!”

“생활?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인간은 편리함을 추구하는 종족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달리 말해서 불편함을 싫어하는 종족이라고 하면 적절하려나.

당장 나만 하더라도 그렇다.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게 나란 사람이었다.

근데, 또 내가 보고 만났던 사람들의 대다수가 비슷했다.

즉 인간은 태생적으로 불편함을 참지 못하는 기질이 있는 것 같단 말이지.

매일 걷는 게 힘들고 번거로우니까 다리를 대신할 수 있는 자동차가 생겨나고, 먼 거리를 이동하는 게 불편하니까 비행기가 생겨났다.

매번 바깥으로 나가서 일을 보는 게 번거로우니 집에서 일을 볼 수 있게끔 인터넷이 생겨나고, 손으로 편지를 쓰는 게 번거로워서 전자메일을 쓴다.

손으로 조작하는 게 번거로워서 음성으로 명령을 내리고, 그마저도 번거로워서 뇌파까지 이용하는 시대다.

이처럼 우리의 편리함을 위해서 만들어진 도구는 날이 갈수록 발전했고, 이제는 내가 굳이 뭘 하지 않더라도 알아서 착착착, 해주는 세상에서 나는 살아왔다.

결과적으로는 이처럼 번거로움을 싫어하는 성향이야말로 발전에 큰 지대한 영향을 미쳤노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DIY에 푹 빠지게 된 계기도 같은 맥락이었다.

시작점은 무언가를 만든다는 재미였지만, 가끔씩 찾아오는 사소한 불편함을 해소한 뒤에 찾아오는 짜릿한 성취감.

내가 만든 도구를 통해 엄마와 아빠 나아가 마을 사람들이 보다 편리해지고, 그 모습을 볼 때 찾아오는 뿌듯함.

이 모든 감정이 합쳐졌을 때 찾아오는 만족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을 동반했다.

잠시나마 휴식을 취한 나는 다시금 가방을 열어 조리도구 세트를 꺼냈다.

“그건 또 언제 챙겨왔대.”

내가 꺼내는 도구를 본 레비아 선생님이 픽 웃었다.

“헤헤, 왠지 없으면 아쉽잖아요!”

내가 챙겨온 건 미니 화로에 이어 개발한 아티펙트 중 하나인 핫플레이트였다.

평소에 들고 다니는 미니 화로도 충분히 편리하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었다.

따로 불을 피워야 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숲에 널린 게 나무였고, 라이터까지 구비되어 있었지만, 역시나 사용한 후에 따로 청소를 해야 했다. 거기다 직접 불이 닿는지라 미니 화로의 내구성도 짧은 편이었고.

특히 핫플레이트의 가장 장점은 불이 아닌 열을 이용하기에 언제 어디서든 버튼 하나만 눌러 물을 끓일 수 있었고, 청소도 필요 없었으며, 내구성도 훨씬 길었다.

기능의 편리함에 비해 구조는 단순했기에 금세 그럴싸한 마나 핫플레이트를 만들 수 있었다.

“어디 보자······.”

아무래도 식중독에 걸린 만큼, 속을 진정시킬 수 있는 음식이 필요했다.

“재료는 충분하겠네.”

손질한 재료를 냄비에 넣고 핫플레이트를 작동시켰다.

순식간에 후끈한 열기가 뿜어져 나오며 서늘했던 동굴에 훈훈한 공기가 퍼져나갔다.

“아까 챙겨오길 잘했네.”

뒤이어 아까 챙겨 온 코코나트를 꺼냈다.

식중독의 대표 증상이라면 역시나 탈수다.

아무래도 코코나트에는 당 성분이 들어있어서 그냥 물을 마시는 것보다 흡수도 빠를 테니, 갈증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

나는 물에 코코나트를 섞어 친구의 입에 흘려보냈다.

아니나 다를까.

꽤나 갈증에 시달렸는지 비몽사몽간에도 쉼 없이 코코나트 물을 마셨다.

투다다다다다닥!

때마침 록시가 돌아왔다.

전력으로 달렸는지 머리카락은 산발이었고, 입에서는 연신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하악, 하악, 록시 왔다. 물. 여기 있다!”

록시는 숨을 고를 시간도 아까웠는지, 내게 양동이부터 내밀었다.

꽤 무거웠을 텐데, 용케도 이걸 들고 달렸네.

“수고했어. 자, 그럼 저쪽으로 가서 좀 씻고 와.”

“씻는다? 물로? 친구는?”

내 말을 납득할 수 없었는지, 록시가 연신 고개를 갸웃했다.

사실 내가 록시에게 물을 길어오라고 부탁한 것은 진짜로 물이 필요해서가 아니었다. 애당초 이 동굴에 있는 물이 깨끗하다는 보장도 없는데, 그걸로 상처를 씻긴다는 건 여러모로 위험했다.

그럼에도 내가 굳이 록시를 보낸 이유는 치료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내 나름의 배려라고 해야 할까.

록시는 안 그래도 불안해하는 상태다.

비록 치료의 일환이라고는 한들 친구의 몸에 나이프를 대는 모습을 보여줬다가는 자칫 오해할 소지도 있었으니까.

당사자 입장에서는 때아닌 똥개훈련처럼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정작 록시는 멍한 얼굴로 친구와 양동이를 번갈아 쳐다봤다.

“이제 친구는 괜찮으니까, 걱정할 거 없어.”

“친구. 괜찮아?”

“응. 괜찮아.”

“이제 안 아? 낑낑 안 해?”

“어······ 하긴 할 텐데, 그건 몸이 낫는다는 거니까······.”

록시가 이해할 수 있게끔 쉽게 풀어서 설명했다. 다행스럽게도 내 말을 이해한 록시가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리고 늦게 오면 밥 없으니까, 얼른 가서 씻고 와.”

“밥?”

록시가 저 멀리 버려둔 고기를 쳐다봤다. 설마하니, 저걸 먹을 생각은 아니겠지.

“저거 말고. 저건 못 먹는 거. 밥은 이거.”

뒤늦게나마 냄비를 발견한 록시가 눈을 크게 떴다.

“밥!”

록시의 꼬리가 엄청난 속도로 흔들렸다. 이내 록시가 양동이를 들었다.

이제 씻으러 가는가 보다, 싶었던 나는 입을 떡 벌렸다.

그도 그럴 게, 그대로 자신의 머리에 부었던 것이다.

미처 말릴 겨를도 없이 벌어진 사태에 당황하기도 잠시였다. 록시가 물에 젖은 몸을 흔들며 물기를 털어내더니 당당하게 외쳤다.

“록시. 씻었다!”

“······.”

내 살다 살다 1초 만에 씻는 사람은 또 처음 보네.

* * *

“푸하!”

록시가 잔뜩 부푼 배를 두드리며 기분 좋게 웃었다.

대관절.

배 속에 푸드파이터라도 키우는지, 록시는 끝도 없이 먹고 또 먹었다.

그 양으로만 쳐도 족히 6인분은 되리라.

나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바닥을 뒹구는 록시를 뒤로하고 옆을 쳐다봤다.

그곳에는 록시의 친구가 불안한 눈으로 나와 레비아 선생님을 훔쳐보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도 스튜가 들려있었으나, 록시와는 다르게 깨작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하기야.

눈을 떠보니 처음 보는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으니 오죽 황당할까.

실제로도 처음 눈을 떴을 때 나와 레비아 선생님을 발견한 친구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도망치려고 했다.

그래봐야 상처 때문에 금방 쓰러졌지만 말이야.

“그럼 우리는 이제 슬슬 가봐야겠네요.”

내가 몸을 일으키자, 록시가 벌떡 일어났다.

“간다? 어디를?”

“집으로 가야지.”

환자에게 필요한 건 안정이다. 슬슬 빠져주는 게 도리겠지.

“가요, 선생님. 아, 그리고 앞으로는 아무거나 주워 먹지 말고!”

말을 마친 뒤 몸을 돌리자 록시가 허둥지둥 우리를 따라 나왔다. 나는 못내 아쉬워하는 록시에게 손을 흔들었다.

“자, 그럼······.”

마지막 인사를 건네려던 찰나였다.

록시가 빠르게 달려오더니 내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안 가면 안 돼?”

처로운 눈빛에 마음이 흔들렸다.

“장터가 열리는 날이면 또 올 테니까, 그때 보면 되지!”

“또 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록시가 뭔가를 고민하더니, 내게 손짓했다. 어쩐지 자세를 낮춰달라는 것 같아서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때였다.

록시가 재빨리 내 품으로 파고들더니, 냅다 내 목에 얼굴을 묻었다.

그와 동시에 내 목에 따끔한 통증이 일었다.

방금 뭐지?

이런 내 의문과는 별개로 록시는 해맑게 웃으며, 내게 살짝 떨어졌다.

“됐다. 기억했다!”

“기억?”

“응. 록시, 기억했다. 이제 찾을 수 있다!”

아!

비스테르는 짐승족이었으니, 그 나름 냄새를 기억하는 방법이 있는 모양이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긴 했지만, 나를 기억해준다니 기분은 좋았다.

뭐, 언젠가는 또 만날 수 있겠지.

* * *

장터를 다녀온 뒤 며칠이 흐른 어느 날이었다.

“어머, 이게 뭐람?”

“왜요? 어?”

현관 앞이었다.

그곳에 다 큰 치키 한 마리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이거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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