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소년기(25) - #네 이름은 록시!
숲을 가로지르던 중이었다.
무성한 길목을 지나던 나는 힐끗 레비아 선생님을 쳐다봤다.
무엇이 그리 걱정인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비스테르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다.
“저기, 선생님은요. 비스테르를 싫어해요?”
내가 조심스레 묻자 레비아 선생님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싫어하는 건 아니다.”
싫은 것도 그렇다고 좋은 것도 아니다. 그 말은 중립이라는 건데······.
글쎄올시다. 아무리 봐도 레비아 선생님은 비스테르를 싫어하는 것처럼 보인단 말이지.
“단지, 위험할 뿐이지.”
“위험하다고요?”
나는 부지런히 안내하는 비스테르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아까 나에게 달려들 때처럼 위협적인 모습은커녕 머리 위에 돋아난 귀를 쫑긋쫑긋거리는 게 꽤나 귀여웠다.
물론 겉모습만으로 그 위험성을 판단하는 건 정말 바보 같은 행동이며 나 또한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겉에서 보이는 이미지를 아예 무시할 순 없는 게 또한 사실이었다.
일례로 아까 내가 봤던 종족만 보더라도 그렇다. 젠트리 씨는 몹시도 정중했지만, 체구가 꽤 다부지다. 지구에서 우스갯소리로나마 근육돼지라 부르는, 그런 몸이었다.
장담하는데, 그대로 씨름판에 뛰어든다면 천하장사는 따놓은 당상이리라.
게다가 자얀트는 또 어떤가.
나야 적응을 했기에 망정이지 평범한 인간이라면 보자마자 고개부터 내려갈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반면에 비스테르는······.
빈말로도 위협적이라고는 말하기 어렵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손톱만 제외한다면 그냥 여우를 본따 만든 인형 옷을 입은 꼬마아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겉보기에야 별로 위협적이지 않지. 하지만,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그런 소리가 쏙 들어갈걸?”
“보름달이요?”
“그래. 비스테르는 본래 밤에 활동해. 그중에서도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그 자존심 강하다는 에프렐조차 섣불리 건드리지 못할 정도로 흉포해지지.”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강해지는 종족이라니. 신기한 걸 떠나서 왠지 옛날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떠오른다.
그건 그렇고.
에프렐이 한 수 접어둘 정도란 말이지.
일단 레비아 선생님의 말만 들어봤을 땐 상당히 강한 종족이라는 건 확실했다.
“이상하네요. 에프렐조차 한 수 접어둘 정도로 강한데 왜 숨어 다니는 거예요?”
데커드 할아버지께 들었듯.
에프렐은 강한 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고, 약한 자는 도태되는 게 당연한 장소가 바로 드라고스 산맥이라고 말했다.
나 또한 일정 부분은 동의하는 바이다.
자연이라는 게 으레 그렇듯 약육강식의 논리를 철저하게 따르며, 무력이야말로 그 종족의 영향력과 소위 권력을 나타내는 척도인 셈이다.
즉 비스테르가 그토록이나 강대한 종족이었다면 이렇게 숨어서 다닐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
“네가 궁금해하는 것처럼 비스테르는 다른 종족을 피해 다닐 만한 종족은 아니다. 오히려 과거에는 비스테르야말로 이 드라고스 산맥을 주름잡던 종족이지.”
“그래요?”
“응. 다만 비스테르는 싸움을 좋아하는 종족은 아니었어. 실제로도 그들은 보름달이 뜨는 날엔 자신들의 거처에서 나가지 않는다는 규칙까지 세웠을 정도야.”
보름달이 뜨는 날엔 나가지 않는다. 자신들로 말미암아 다른 종족이 피해를 입지 않게끔 본능을 억눌렀다는 말이렷다.
강함에도 약자를 위해 규칙까지 세울 정도라면 굉장히 착한 종족이잖아?
그럼 이렇게 홀대할 게 아니라 더더욱 잘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물론, 그런 규칙조차도 비스테르의 본능을 억제할 순 없었어.”
잠시 말을 멈춘 레비아 선생님이 씁쓸하게 웃었다.
“거기서 비스테르의 우두머리였던 자가······결단을 내렸다.”
“결단이요?”
“자신들에게 속박을 걸기로 결심한 거다.”
“속박······?”
“그래, 다른 말로는 저주라고도 하지. 그들은 자신들이 흉포해지는 걸 막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저주를 걸었다.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저주를.”
“어, 그럼······.”
“워낙 옛날 일이라서 나도 자세한 건 모른다만, 그 일이 있은 후로 그 많던 비스테르는 돌연 자취를 감췄다고 들었어. 나만 해도 2년에 한 명 볼까, 말까 할 정도니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과거와는 다르게 꽤나 공격적으로 변했다고 하더군.”
“그랬구나······.”
그러고 보면 레비아 선생님은 정색한 것도 모자라 무력까지 행사하려고 했다.
이제껏 화 한번 내지 않았던 레비아 선생님마저 그런 강압적인 태도를 취할 정도였으니, 다른 사람들은 오죽할까.
물론 어디까지나 소문에 불과하며, 정말로 비스테르가 다른 종족에게 피해를 입혔는지 아닌지는 단정 지을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소문을 들은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두려워할 게 뻔했고, 자연히 비스테르의 이미지 또한 부정적이라는 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나아가 과거에 그렇게나 강력했던 종족들이 자취를 감출 정도라니.
대체 그 저주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무시무시한 저주라는 건 쉬이 추측할 수 있었다.
“······.”
나는 실제로 비스테르를 본 게 이번이 처음이고, 그들이 어떤 종족인지 자세히 알진 못한다.
그러나 눈앞의 자그마한 왜 비스테르가 로브를 뒤집어써야만 했고, 어째서 내게 도움을 요청했으며, 왜 절박함과 불안이 섞인 눈으로 날 봤는지······ 이제는 깨달을 수 있었다.
“······안타깝네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부지런히 이동하기를 10여 분.
마침내 우리 앞에는 높은 절벽 앞에 도착했다.
앞서 걷던 비스테르가 걸음을 멈추더니 자세를 낮췄다.
덩달아 걸음을 나와 레비아 선생님은 그런 비스테르를 주시했다.
쫑긋쫑긋.
머리에 돋아난 귀가 요란하게 움직이며 주변의 소리에 집중했다. 보아하니 이 근처 어딘가에 친구가 있는 것 같은데.
이내 비스테르가 귀를 반으로 접더니 절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나뭇가지와 나뭇잎이 아무렇게나 쌓여있었고, 그것들을 치우자 사람 한 명이 간신히 들어갈 정도로 작은 구멍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다.”
어쩐지 친구가 안 보이더라니, 저 안에 숨겨둔 거구나.
아니나 다를까. 비스테르가 납작 엎드리더니 엉금엉금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뒤이어 비스테르가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친구 여기 있다. 들어와.”
“잠깐만요!”
저 정도 넓이면 가방을 짊어지고 들어가는 건 어렵겠는데.
나는 파닥파닥 손짓하는 비스테르를 뒤로하고 가방을 내려놨다.
보나마나 저 동굴은 어두울 테니까, 이걸 챙기고······. 혹시 모르니까, 이것도 좀 챙겨가면 되겠지.
나는 휴대용 가죽케이스에 필요한 것들을 담아 어깨에 둘러멨다.
“됐다. 선생님도 들어가실 거예요?”
레비아 선생님이 짊어졌던 가방을 내려놓은 뒤 입구로 향하며 말씀하셨다.
“당연한 걸 묻는구나. 내가 먼저 들어갈 테니까, 너는 내가 신호를 보내면 그때 들어와.”
“넵! 조심하세요!”
레비아 선생님이 동굴에 몸을 욱여넣었다.
구멍이 워낙 좁아서 한참을 끙끙거린 뒤에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들어와라! 대신, 어두우니까 조심하고!”
뒤이어 레비아 선생님의 신호가 떨어졌다.
조심조심 구멍으로 들어가자 동굴 특유의 쿰쿰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토옥, 토옥, 물방울이 지면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와, 진짜 아무것도 안 보이네.
내 예상대로 동굴에는 빛 한점 없었고, 보이는 거라고는 비스테르의 오렌지빛 눈동자가 전부였다.
비스테르의 눈동자가 정확하게 내 쪽으로 향하고 있는 걸로 봐선 어둠에서도 잘 보이는 것 같았다.
반면에 나와 레비아 선생님은 아니었다.
“이래선 들어가기가 어렵겠구나. 잠깐, 기다려 봐라 마법을······.”
레비아 선생님이 마나를 끌어올리려는 찰나였다.
나는 허리춤에 메어 놓은 도구를 쥐고는 스위치를 돌렸다.
그와 동시에 파앗, 하고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며 칠흑처럼 어두웠던 동굴이 대낮처럼 밝아졌다.
“캬흥!”
갑작스러운 빛에 비스테르가 풀쩍 뛰었다. 레비아 선생님 또한 황당한 얼굴로 날 쳐다봤다.
“그것도 아티펙트야?”
“네! 휴대용 마등이에요.”
본래 이름은 손전등이었으나, 이건 마나로 작동하는지라 대충 마등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휴대용 마등이라니······. 너는 내가 생각지도 못한 아티펙트를 끝도 없이 만드는구나.”
“헤헤. 여기, 선생님 것도 준비했어요!”
나는 여분으로 가져온 휴대용 마등을 내밀었다.
이미 라이터를 사용해본 덕분인지 레비아 선생님은 손쉽게 스위치를 돌려 휴대용 마등을 작동시켰다.
훨씬 낫네.
나는 휴대용 마등을 이리저리 돌리며 동굴을 살펴봤다.
들어올 땐 몰랐는데, 은근히 크네.
천장에 삐죽삐죽 튀어나온 종유석에 맺힌 물방울이 불어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떨어져 내린다. 동굴의 바닥 곳곳에는 크고 작은 웅덩이가 있었고, 벽에는 기묘하게 생긴 이끼들이 가득했다.
아, 이럴 때가 아니지.
“얼른 가요!”
* * *
“음······.”
나는 바닥에 누워있는 사람을 살펴봤다. 친구 또한 비스테르였다.
머리카락은 검은색을 띠고 있었으며, 뒤에 돋아난 귀는 삼각형이었다. 꼬리 또한 머리카락과 비슷한 색깔이었고, 얇고 길었다.
날 이곳으로 안내했던 비스테르가 붉은 여우를 닮았다면, 친구는 고양잇과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흐음, 상태가 꽤나 심각한 것 같은데.”
옆에서 함께 지켜보던 레비아 선생님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확실히 친구의 상태는 엉망진창이었다.
오래 굶은 걸 떠나서 겉으로 드러난 피부에는 상처들로 가득했다. 그마저도 제대로 된 치료를 하지 않았는지, 군데군데 곪은 곳도 있었다.
나는 옆에 서서 안절부절못하는 비스테르를 쳐다봤다.
아, 그러고 보니 아직 이름도 못 들었구나.
“이름이 뭐예요?”
“이름. 그런 거 없다.”
“응? 이름이 없다고요?”
“없다.”
대답하는 걸 보면 이름이 뭔지는 아는 것 같은데, 정작 이름이 없다니. 그럼 친구랑 대화할 땐 뭐라고 부르는 거지?
아니, 그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그럼 일단 록시라고 부를게요.”
내 말에 비스테르가 고개를 갸웃했다.
“록시. 나?”
“네. 혹시 친구가 이렇게 된 게 언젠지 기억해요?”
록시가 손가락을 꼬물거리더니, 손가락 네 개를 폈다.
“4일?”
“4일. 맞다.”
“그럼 왜 이렇게 됐는지는 알아요?”
“밥 먹었다. 그리고 저렇게 됐다.”
“밥이라면 어떤 거?”
록시는 대답 대신 내게 큼지막한 덩어리를 내밀었다.
“이거. 먹었다.”
“윽.”
고약한 냄새에 나도 모르게 코를 부여잡았다.
록시가 내민 것은 고기였는데, 이미 부패가 진행되다 못해 썩어문드러져 있었다.
어쩐지 아까부터 이상한 냄새가 나더라니, 여기서 나는 냄새였구나.
“혹시 이거······. 먹을 때부터 이랬어요?”
록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증상도 그렇고, 원인도 그렇고.
두말할 것도 없는 식중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