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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42화 (42/159)

42. 소년기(24) - #비스테르

그나저나 몰골이 엉망진창이네.

반면에 날 찾아온 사람이 걸친 로브는 헤지고 찢어져 있었다. 그마저도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있어 거의 넝마나 다름없었다.

로브를 걸치는 목적 중 하나는 방한이다.

다만 저래서는 바람이 숭숭 들어올 테니 방한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듯했다. 더욱이 오늘의 날씨가 그다지 춥지 않았으니, 우리와 마찬가지로 정체를 숨길 요량이 아닐까 싶었다.

뭐, 옅은 오렌지빛이 도는 꼬리를 드러낸 것만으로도 이미 반쯤······ 아니, 종족에 따라서는 명백한 실패였지만 말이야.

윽!

정리하던 짐을 내려놓고 새로 온 고객을 향해 다가가던 중이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호흡을 멈췄다.

이유는 냄새 때문이었다.

농담이 아니라 한여름 장마철에 흠뻑 젖어 구석에 처박아뒀던 양말에서나 날 법한 악취였다. 거리가 떨어져 있음에도 마치 고추냉이를 먹은 것처럼 코가 매울 정도로 강렬할 냄새였다.

“안녕하세요!”

내가 밝게 인사하자 고객이 흠칫 몸을 떨었다.

고작 인사에 저렇게 놀라는 걸 보니 꽤나 겁이 많은 종족인 것 같았다. 뭐, 겁이 많든 적든 내 도구를 원하는 고객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었다.

“물물교환하러 오신 거죠? 혹시 필요한 게 있으세요?”

고객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근데······.”

나는 힐끗 가방을 쳐다봤다. 방금 전 대란으로 인해 당장 물물교환할 수 있는 도구는 한정적이었다.

“없는 게 많아서요! 필요한 게 어떤 거예요?”

내가 묻자 고객이 손을 들더니 한 지점을 가리켰다. 소매 바깥으로 튀어나온 작고 얇은 손가락을 따라갔다.

“엉?”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그도 그럴 게, 손님이 가리킨 건 다름 아닌 나였기 때문이다.

아, 혹시 이걸 원하는 건가?

나는 내 허리춤에 걸린 도구들을 내보였다.

“이게 필요하신 거예요?”

재차 묻자 고객이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그럼······ 이거?”

도리도리.

이번에도 부정이었다. 그 후로도 내가 갖고 있는 도구들을 말했으나 하나같이 고개를 저었다.

느닷없는 스무고개를 이어가던 중이었다. 돌연 손님이 내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이에 옆에서 정리하던 레비아 선생님이 재빨리 내 앞을 가로막았다. 느닷없는 전개에 당황한 나는 레비아 선생님을 올려다봤다. 후드 밑으로 드러난 눈동자가 손님을 직시하고 있었다. 느닷없는 전개에 당황스러웠지만, 적어도 레비아 선생님이 나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것 하나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이곳에 비스테르인 네가 왜 온 거지?”

비스테르······?

야성에 잠식된 자라는 의미였다.

만약 이 의미를 지구의 언어로 변환한다면 짐승족이었다.

“네 녀석이 이곳에 있든 말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그러니 순순히 물러선다면 모르는 척해주마.”

레비아 선생님은 평소의 부드러운 말투가 아닌 강하고도 강압적인 말투로 말했다. 하지만 정작 비스테르는 물러날 생각이 없는 듯했다. 도리어 이에 비스테르라 불린 인물이 슬그머니 자세를 낮췄다.

흡사 먹이를 향해 달려들기 직전의 살쾡이를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다.

“마지막 경고다. 이대로 물러서지 않는다면, 나도 더 이상 봐줄 생각은 없다.”

말을 마친 레비아 선생님은 자신이 진심이라는 걸 알리려는 듯 마나를 끌어올리며 전투태세를 갖췄다.

일촉즉발의 상황에 나는 냉큼 레비아 선생님의 팔을 붙잡았다.

“잠깐만요!”

“아이넬, 저 녀석은 비스테르······.”

“잠깐이면 돼요.”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다만, 아이넬. 비스테르는 얘기가 통할 만한 상대가 아니다.”

“네. 선생님이 걱정하시는 건 알아요. 그러니까, 그냥 잠깐 대화만 나눠볼게요. 네?”

내 간곡한 부탁에 레비아 선생님이 멈칫하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다. 대신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보인다면, 그 즉시 저 녀석을 처리할 테니 그리 알아.”

“넵! 고맙습니다!”

나는 레비아 선생님께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비스테르를 쳐다봤다.

어, 막상 대화를 하려니 어떤 말부터 해야 할지 고민되네.

더군다나 방금 레비아 선생님은 비스테르이 이르길, 비스테르는 이야기가 통할 만한 상대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럼 아예 말을 못 한다는 뜻일까?

“······안녕하세요, 저는 아이넬이라고 합니다. 그쪽은 이름이 뭐예요?”

일단 통성명을 위해 간단한 소개와 함께 이름을 물었다. 그러나 비스테르는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한 자세를 유지한 채 묵묵히 날 응시할 뿐,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정정한다.

딱 하나 있었다.

눈빛이었다. 은은한 오렌지빛을 띠는 눈동자가 아주 미세하게나마 흔들리는 게 내 눈에 보였다.

어째서일까.

그 시선에서 사무치는 절박함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한편으로는 불안함도 동반하고 있었다.

그래.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고 개통령은 말했다.

나는 그 말을 이렇게 바꾸고 싶다.

세상에 나쁜 종족은 없다고.

그 증거가 오늘의 물물교환이었다. 날 찾아온 종족들은 생김새와 표현방식이 다를 뿐, 다들 순수했으며 또한 친절했다.

물론 서로 다투고 사이가 나쁜 종족들이 있다는 건 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영역다툼에 지나지 않는다.

더군다나 나는 분단국가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군대도 갔다 왔고, 영토분쟁이 얼마나 흔하고 또 치열한지 배웠다.

게다가 소위 국제법이라는, 질서를 위한 규칙이 정해져 있음에도 허구한 날 터지는 게 싸움이요, 전쟁이다.

하물며 국제법은 고사하고 이렇다 할 규칙조차 없는 드라고스 산맥이라면 오죽할까.

서로 싸우는 건 그 종족들이 악독해서라기보다는 당연하게 벌어지는, 일종의 섭리일 뿐이었다.

물론 내가 환생자이며, 그 어떠한 색안경도 끼지 않았기에 할 법한 생각이겠지만, 아무렴 어떨까.

그게 나란 사람이고, 적어도 나는 이런 생각을 가진 스스로가 싫지 않았다.

무엇보다.

평화와 안녕이야말로 최고의 가치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비스테르는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그들은 짐승족이다. 이성보다는 본능에 충실한 종족이다.

그래.

내가 누구냐.

시골 중에서도 단연 낙후된 지역. 이른바 깡촌 오브 더 깡촌 출신이며, 개, 닭, 토끼, 소, 돼지 등등. 온갖 가축을 직접 보고 관리까지 해본 경험이 있다.

비스테르는 그냥 내가 흔히 봤던 가축이랑 동일선상에 놓고 본다면 충분히 그 행동을 읽어낼 자신이 있었다.

전혀 긴장할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었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그대로 비스테르를 향해 걸었다.

“아이넬!”

“괜찮아요. 비스테르는 절 해치지 않아요.”

“뭐? 그걸 어떻게 알······!”

레비아 선생님의 말이 채 끝맺기도 전이었다.

비스테르가 굽혔던 무릎을 펴며 내게 달려들었다.

눈 깜짝할 새에 내 지척까지 당도한 비스테르가 그대로 팔을 뻗었다.

펄럭이는 로브를 헤치며 앙상하게 마른 팔이 드러났다. 그와 더불어 그 끝이 예리한 손톱이 내 목줄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시시각각 내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손톱을 뒤로한 나는 비스테르의 눈동자를 쳐다봤다.

더불어 나는 너를 해칠 생각이 없으며, 설령 네가 내게 해를 입히더라도 나는 반격을 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는 진심을 담아 꿋꿋하게 시선을 맞췄다.

이런 내 진심이 전해졌음일까.

금방이라도 내 목을 꿰뚫을 것처럼 쇄도하던 손톱이 뚝, 멈췄다.

도리어 당황한 쪽은 비스테르였다.

“왜, 왜 안 피해?”

비스테르는 내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는지, 말까지 더듬으며 물었다.

뭐야, 말을 할 줄 알았잖아?

발음이 다소 어눌했지만, 이해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다.

“안 찌를 걸 알았거든요.”

“어떻게?”

솔직히 말해서 100% 확신한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내가 아슬아슬할 때까지 가만히 있었던 이유는 단순했다.

비스테르의 공격이 전광석화와 같다고 한들 피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비스테르는 모르겠지만, 지척까지 다가오는 순간 이미 내 오른주먹은 비스테르의 비어있는 복부를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만약 그대로 날 공격했다면 당한 쪽은 내가 아니라 비스테르였으리라. 물론 비스테르의 공격이 멈춤과 동시에 거둔 상태였으니 나 말고는 아무도 모르리라.

아무렴. 내게 여분의 목숨이 주어진 게 아닌 이상에야, 단순한 직감만을 믿고 모험을 할 순 없는 노릇이니까.

다행스럽게도 내가 피하기 전에 비스테르의 공격이 먼저 멈췄으니, 결과적으로는 내 직감이 들어맞은 셈이다. 더불어 이런 내 행동으로 말미암아 대화의 물꼬까지 트였으니 성공적이었다.

“그냥 느낌이 그랬거든요.”

“······.”

내 말을 납득할 수 없었는지, 비스테르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그나저나, 나를 찾아온 이유가 뭔지 알려줄래요? 아, 그전에 손톱부터 좀 치워주시면 좋겠네요.”

“아!”

비스테르가 허둥지둥 손을 거뒀다.

내가 능청스레 목을 만지고 있자 비스테르가 말문을 열었다.

“너한테 냄새 난다.”

“냄새?”

당최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나한테 아무 냄새도······ 아니, 방금 전 구워먹은 삼겹살 냄새밖에 나질 않는다.

옛말에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고. 냄새로 지적당해야 할 쪽은 내가 아니라 비스테르였다.

“상냥한 냄새. 난다.”

“상냥한 냄새?”

대관절.

상냥한 냄새라는 건 또 처음 들어보네. 혹시 비스테르가 짐승족이라서 그런 냄새까지 맡을 수 있는 건가?

이런 내 시답잖은 생각도 잠시였다.

“아프다.”

“응?”

“친구 아프다. 도와주는 사람. 없다. 죽는 거 싫다.”

“친구가 아프다고요?”

“아프다. 계속 잠만 잔다. 눈 뜨면 끼잉, 끼잉, 한다.”

비스테르가 몸짓에 발짓까지 섞어가며 친구의 상태를 설명했다. 상황과는 별개로 어딘가 귀엽다는 생각이 든 것도 잠시였다.

친구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걸 인지한 나는 곧장 레비아 선생님을 쳐다봤다.

“선생님.”

살짝 드러난 레비아 선생님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여간. 내가 가지 말란다고 안 갈 것도 아니잖아?”

“헤헤.”

정답이었다.

멋쩍은 웃음으로 무마한 나는 서둘러 짐을 챙겼다.

“가죠.”

설마하니 내가 선뜻 응할 줄 몰랐는지, 비스테르가 흠칫했으나 이윽고 몸을 돌려 안내를 시작했다.

금세 장터를 빠져 나와 숲속으로 진입하자, 돌연 비스테르가 입고 있던 로브를 벗었다.

그와 동시에 비스테르의 숨겨져 있던 외모가 드러났다.

“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역시나 꼬리였다.

아까 삐죽 튀어나왔을 때부터 알았지만, 오렌지빛을 띠는 꼬리의 털은 몹시도 풍성했으며 군데군데 하얀색 무늬가 인상적이었다.

그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와 머리 위에 돋아난 귀였다.

그렇다.

짐승족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정말로 짐승과 똑 닮은 귀가 달려있었다.

복슬복슬한 꼬리하며, 뾰족한 귀 하며, 어쩐지 붉은 여우를 연상케 했다. 몇몇 특징을 제외하면 평범한 인간과 무척이나 흡사했다. 신장은 나와 비슷했다. 워낙 꼬질꼬질해서 정확한 건 모르겠지만, 나이 또한 나와 비슷해 보였다.

“후아아!”

벗은 로브를 근처에 던진 비스테르가 깊은 숨을 들이마시더니, 전신을 파르르 떨었다.

보아하니 로브가 꽤나 답답했던 모양이다.

안 그래도 풍성했던 털이 더더욱 풍성해진 비스테르가 우리에게 손짓했다.

“이쪽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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