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40화 (40/159)

40. 소년기(22) - #오늘은 내가 쇼호스트!

적당하게 열이 오른 불판 위에 라드를 얹었다.

치이이이익!

뜨거운 열에 닿은 라드가 맛깔스러운 소리를 내며 녹아내렸다. 나는 피기의 지방을 하나 집어 불판을 문질렀다. 라드와 함께 녹아내린 지방이 불판을 코팅시켰다.

지금이다.

나는 적당한 두께로 자른 삼겹살을 불판에 척, 얹었다. 라드에 코팅이 된 삼겹살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더불어 기름이 탈 때 나는 특유의 고소한 냄새에 자꾸만 침이 넘어갔다.

“흠흠.”

이를 유심히 보던 레비아 선생님 또한 입맛을 다셨다.

아직 맛을 보기도 전이건만, 이미 표정만으로도 홀랑 넘어간 듯했다.

나는 군침을 삼키는 레비아 선생님을 뒤로하고 삼겹살을 뒤집었다.

캬아!

분홍색 빛을 띠던 삼겹살은 노릇노릇하게 익어 갈색빛이 돌았다.

이거지!

“오, 다 익은 거야?”

언제 챙겼는지, 레비아 선생님이 포크를 든 채 물었다.

아니, 이제 막 뒤집은 걸 봤으면서 익었냐고 물으시네.

언제였던가. 돼지고기는 핏기만 가시면 먹는 거라고 하시던 동네 할아버지가 떠오른다.

툭 하면 덜 익은 고기를 드시다가 크게 배탈이 나셨고, 그 후로는 바짝 익힌 고기가 아니면 손도 안대셨지만 말이야.

“아직 덜 익었으니까, 조금만 더 참으세요.”

“으음.”

내가 단호하게 말하자 선생님이 아쉽다는 듯 침음을 흘렸다.

내심 나도 같은 마음이긴 했다.

자고로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 했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집중력을 끌어올려 고기를 구웠다.

마침내 적당하게 익은 것을 확인한 나는 집게와 가위를 이용해 먹기 좋은 크기로 잘랐다.

“호오, 그걸 그런 식으로도 쓸 수 있구나.”

레비아 선생님이 내 현란한 가위질을 보며 감탄했다.

“네! 칼로 자르는 것도 좋은데, 이렇게 구우면서 자르는 게 훨씬 편하거든요. 아, 이제 다 익었으니까 드셔도 돼요!!”

“오, 이제 먹어도 되는 거야?”

“네! 여기 소금 있으니까, 여기에 찍어 드세요.”

나는 미슐레 아주머니께 얻어온 암염에 후츠와 허브를 배합해서 만든, 이른바 허브솔트를 내밀었다.

레비아 선생님이 큼지막한 삼겹살에 허브솔트를 찍어 입으로 가져갔다.

“······.”

레비아 선생님이 눈을 감은 채 삼겹살을 씹었다. 그 표정이 어찌나 진지했는지, 누가 보면 무슨 심사라도 하는 줄 알겠다.

이내 생에 첫 삼겹살을 씹어 삼킨 레비아 선생님이 눈을 떴다.

“어때요?”

“고기는 더 있어?”

“더 있는데, 왜요?”

“다 굽자. 이야, 이거 진짜 맛있네.”

그 말 한마디를 던진 레비아 선생님이 재차 포크를 움직여 고기를 찍었다.

이럴 게 아니지!

나도 냉큼 삼겹살 하나를 집어 먹었다.

“후하!”

뜨거운 삽겸살을 입에 넣기가 무섭게 뿌연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입과 혀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살짝 식힌 삼겹살을 씹었다.

그와 동시에 고기가 가득 품고 있던 육즙이 팍, 터져 나오며 입안 가득 퍼져나간다.

“아, 맛있다!”

내가 늘 그리워했던 그 맛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더불어 내가 지금까지 먹어봤던 삼겹살 중에서도 단연 베스트였다.

레비아 선생님의 포크가 쉼 없이 움직였고, 삼겹살은 게 눈 감추듯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에 질세라 나 또한 미친 듯 흡입했다.

맛도 맛이지만 오랜만에 먹는 진짜 삼겹살이라서 그런지 도저히 포크를 멈출 수가 없었다.

이 정도 기세면 진짜 정말 끝도 없이 들어가겠네.

“음?”

무심코 고개를 든 나는 포크를 든 자세 그대로 멈췄다.

이제 보니 냇가에 있던 모든 종족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려있었기 때문이다. 개중에는 코를 킁킁거리며 한창 맛있게 먹던 음식을 내려놓는 이들도 있는가 하면, 엉덩이를 들썩이다 못해 슬금슬금 다가오는 이들도 있었다.

하기야.

삽겹살이라는 음식은 오감을 자극하는 음식이다.

퇴근을 하고 난 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갈 무렵.

코끝을 스치는 삽겸살 냄새는 사람을 미치게 만든단 말이지. 내가 자주 가는 단골집 사장님도 삼겹살의 냄새야말로 가장 큰 마케팅이라는 걸 알기에 추운 겨울에도 창문을 열어놓곤 했다.

그걸 어떻게 참겠냐고.

진짜 피곤하고, 당장이라도 씻고 드러누워 자고 싶은데 정신을 차려 보면 어느새 나는 식당 안이고, 둥그런 테이블 위에는 맛깔스러운 반찬과 함께 두툼한 삼겹살이 올라가 있더랬지.

이렇듯 노릇노릇하게 익어가는 고기는 눈으로 즐기고, 자글자글 익어가는 소리는 귀로 즐기고, 기름이 타면서 나는 고소한 향은 코로 즐긴다.

지금이야 날씨가 따뜻하지만, 몹시도 추운 날에는 화로에서 뿜어내는 열기 또한 삼겹살의 풍미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아마 지금 이쪽을 쳐다보는 사람들의 심정이 그때의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때아닌 관심에 머쓱했지만, 별수 있나. 삼겹살이 원래 이런 음식이었거니와 취사가 가능한 곳이었으니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이 말이지.

아니지.

생각해 보니 지금 이 순간이 타이밍이 아닐까?

그도 그럴게, 오늘 내가 장터에 온 이유는 어디까지나 물물교환을 하기 위해서다. 그랬기에 저 무거운 짐들을 짊어진 채 장터를 돌아다녔다.

다만 아쉬운 점은 그거다.

드문드문 들려오는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듯 최근 장터에 찾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줄었다.

즉 당초의 목적이었던 물물교환에 큰 차질이 생긴 셈이다.

그나마 내가 원했던 물건을 구하는 건 가능한 것 같았지만, 당장 저 많은 짐들을 다시 짊어지고 돌아가야만 했으니 적잖이 아쉬운 게 사실이었다.

설령 물건을 팔겠다고 한들 장터는 넓고 사람은 적으며, 시간도 한정적이다.

그렇다면 굳이 장터를 돌아다닐 게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 즉석 물물교환을 해도 괜찮지 않을까?

그래, 본디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했다.

하늘이 보우하사 멍석까지 깔렸는데, 호응하지 않으면 도리가 아니지!

“선생님.”

나는 조금 큰 목소리로 레비아 선생님을 불렀다.

“응?”

추가 삼겹살이 익기만을 기다리며 군침만 삼키던 레비아 선생님이 고개를 들었다.

“더 드실래요?”

내 말에 레비아 선생님이 픽 웃었다.

“말해서 뭐 하겠어. 내가 살면서 먹어본 것 중에서도 제일 맛있다.”

“진짜요?”

“그럼. 진짜지.”

“다행이다. 근데요, 선생님은 이게 왜 맛있는지 아세요?”

내 질문에 레비아 선생님이 고개를 갸웃했다. 보아하니 내 질문의 저의를 아직 모르는 것 같았다.

이는 레비아 선생님만이 아니었다. 내 주변에서 이쪽을 지켜보던 종족들도 레비아 선생님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슬슬 밑밥을 깔아볼까.

목청을 가다듬은 나는 모두에게 들릴 수 있게끔 큰 목소리로 말했다.

“불판이요! 이거 하나만 있으면요, 뭐든 다 맛있어져요. 거기다 다른 것도 다 같이 구울 수 있거든요!”

이어서 홈쇼핑의 쇼호스트처럼 불판에 대한 설명을 줄줄이 읊었다. 내가 생각해도 적잖이 작위적인 말투였으나,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내 말 한마디에 주변에 있는 종족들은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으니까!

좋아, 슬슬 다음 단계로 넘어가볼까.

말을 마친 나는 다시금 바구니를 뒤졌다.

자고로 삼겹살에 빠질 수 없는 게 몇 가지 있다. 대표적으로는 김치와 된장찌개, 냉면이다.

아쉽게도 당장 이 세 가지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라, 차선책으로나마 준비한 게 있다.

칼릭과 야파, 마쉬롬이었다.

“음!”

레이바 선생님이 슬쩍 고개를 뒤로 뺐다.

최근에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데바라는 종족은 공통적으로 입맛이 까다로운 편에 속한다고 들었다.

애당초 음식 자체를 잘 먹지 않는 종족이었으니 기왕 먹는 거 먹더라도 맛있는 것만 골라서 먹는다나. 그중에서도 야파나 칼릭처럼 향이 강하거나 자극이 센 재료는 질색을 한다고 들었다.

뭐, 마늘처럼 향이 오래가는 식재료를 꺼려하는 사람이야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으니 딱히 이상한 건 아니지.

반면에 나는 아니다.

환생을 했을지언정 토종 한국인의 입맛을 그대로 갖고 있는 내게 있어서 칼릭이나 야파는 그야말로 축복과도 같았으며, 매일 식탁에 빠져서는 안 될 식재료였다.

나는 여보란 듯 도마와 식칼을 꺼냈다. 능숙하게 채소들의 껍질을 벗긴 뒤 도마에 올렸다.

탁탁탁탁!

식칼이 리드미컬하게 도마를 두드린다. 금세 깔끔하게 잘린 채소들을 그대로 들어 불판에 올렸다.

채소들이 삼겹살이 익으며 흘러나온 기름과 육즙을 흡수하며, 반짝반짝 윤기가 돌았다. 이윽고 삼겹살의 기름을 잔뜩 머금은 채소들이 카라멜처럼 갈색 빛을 띠었다.

“자요! 드셔보세요!”

“호? 뭐야, 이거. 내가 알던 칼릭이 아닌데?”

“그쵸? 기름에 구우면 매운 맛이나 향이 날아가거든요.”

“흐음, 확실히 야파를 구우니까 달아지네. 거기다 보들보들해.”

“그쵸? 이것들만 있으면 요리가 되게 쉬워지거든요! 오늘 물물교환하려고 챙겨왔는데,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좋겠네요!”

이 말이 결정타였다.

“췩, 이보시게.”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온몸이 털로 뒤덮인 사람이 서 있었다. 특징이라면 하관이 유난히 발달했고, 위아래로 송곳니기 튀어나와 있었다. 거기다 전형적인 들창코였다. 관상학적으로 보자면 전형적인 돼지상이었다. 아니, 털이 갈색이니까 멧돼지상이라고 해야 하나.

더불어 데커드 할아버지는 내게 오르크나 할 법한 말이라고 하신 적이 있다. 내게 말을 건 사람이 그때 말씀하셨던 종족인 오르크였다.

“무슨 일이세요?”

내가 용무를 묻자 오르크가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췩, 실례했군. 내 이름은 젠트리라고 하네. 췩, 본의 아니게 이야기를 엿들은 것 같아서 미안하네만 혹시······.”

자신의 이름을 젠트리라고 밝힌 오르크가 내 앞에 놓인 도마와 식칼을 쳐다봤다.

“지금 자네가 사용하는 췩, 그 도구들 말이야. 남는 게 있다면 내 것과 교환하지 않겠는가?”

그나저나 데커드 할아버지한테 들었을 때만 하더라도 어딘가 욕심쟁이의 이미지였는데. 막상 말투나 행동거지를 보니 꽤나 신사적인 종족인 것 같았다.

아, 이럴 때가 아니지!

“아, 마침 저도 물물교환을 하려고 생각 중이었는데! 마침 잘됐네요!”

“췩, 오! 그렇다면 다행이로군!”

젠트리 씨의 입가가 씰룩였다.

느낌상 미소를 지으려는 것 같은데, 입술을 비집고 튀어 나온 송곳니 때문인지 언뜻 화가 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췩, 내가 가지고 온 건 이거라네.”

젠트리 씨가 품을 뒤지더니 작은 가죽 주머니를 꺼내 건넸다.

“나는 숲을 돌아다니며 모은 거라네. 혹시 이거라도 괜찮다면 췩, 교환하지 않겠는가? 아, 물론 싫다면 거절해도 된다네.”

듣자 하니 젠트리 씨는 자신의 물건에 큰 자신감이 없는 듯했다.

대체 뭐기에 저러는 거지?

“봐도 괜찮을까요?”

“췩, 얼마든지 확인하게!”

젠트리 씨가 건넨 주머니를 열어본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어,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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