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소년기(21) - #장터도 식후경!
그 몸집이 얼마나 컸는지, 내가 고개를 최대한으로 들어야 뒤통수가 보일락 말락 했다.
아무리 못 잡아도 7미터는 넘어 보이는 게 마을에서 가장 키가 큰 데커드 할아버지조차 난쟁이로 보이리라.
잠깐만.
아까 나는 장터 근처에 왔을 때 높게 솟은 기둥을 봤다. 기둥의 색깔은 벽돌색에 가까웠다. 자얀트의 피부 또한 벽돌색으로 기둥과 똑같았다.
그 말인 즉 내가 봤던 그것은 기둥이 아니라 자얀트의 뒤통수였다는 이야기였다.
이런 내 감탄 아닌 감탄과는 별개로 자얀트라 불린 종족은 방금 전 날 밟을 뻔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다시금 그 육중한 다리를 내딛었다.
그가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지상에 요동치며, 거대한 발자국이 푹푹 찍혔다.
반면에 다른 종족들은 이런 상황이 익숙했던지 슬그머니 자리를 피할 뿐, 별달리 놀라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어쩐지 시골에서 갓 상경한 촌놈이 된 기분이네.
아니지.
이 장터는 드라고스 산맥의 핫플레이스. 높은 빌딩과 도로를 빽빽하게 채운 자동차만 없다 뿐. 서울의 동대문이랑 비슷한 장소라고 보면 적절하리라.
거기다 나는 장터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 살았거니와 이곳을 안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처음으로 방문한 입장이었으니, 갓 상경한 촌놈이라 불려도 반박할 입장은 아니었다.
나름 마을에서 제일가는 유명인이었지만, 그 무대를 산맥으로 옮긴다면 이제 막 우물의 벽을 기어올라가는 개구리나 다름없었다.
아, 개구리 하니까 아까 본 프로기가 떠오르네.
으으, 그루버를 처음 먹었던 때도 며칠을 악몽에 시달렸었는데. 거기에 프로기까지 가세한다면 진짜 끔찍하겠네.
장터에서 새로운 것을 접하는 건 좋았지만, 그로 인해 내 꿈에서 대환장 파티가 열릴 걸 생각하니 등골이 서늘해졌다.
자얀트가 멀어지자 레비아 선생님이 나를 바닥에 내려줬다.
“휴우, 고맙습니다!”
“고맙긴. 오기 전에도 말했지만, 장터는 온갖 종족들이 다 모이는 장소야. 잠깐이라도 한눈이라도 팔았다가는 뒤통수 맞기 딱 좋은 곳이지.”
“넵! 명심하겠습니······.”
레비아 선생님의 조언에 힘차게 답하던 나는 다급하게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급작스러운 내 행동에 내 옆을 지나가던 사람이 흠칫 놀랐다.
“미안합니다!”
나는 서둘러 사과한 나는 다시금 뒤쪽을 주시했다.
자신이 가져온 물건을 팔기에 여념이 없는 상인들과 흥정하는 사람들과, 양손 가득 짐을 든 채 바삐 이동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왜? 무슨 일이라도 있어?”
레비아 선생님이 걱정스레 물었다.
“네? 아, 네. 그게······ 누가 저를 쳐다보는 것 같아서요.”
“음?”
내 말에 레비아 선생님이 주변을 살펴보시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이쪽을 쳐다보는 사람은 없는 것 같은데.”
그렇겠지.
시선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느낌에 지나지 않는다. 눈에서 광선이 나가는 게 아닌 이상에야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나도 이미 확인을 했지만, 수상한 낌새를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방금 전 누군가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음을 확신했다.
그도 그럴게, 나는 예전부터 감각이 예민했다.
아니, 강제로 예민해졌다고 하는 쪽이 맞으려나.
원인은 파멜라였다.
그녀는 나와 마주치는 족족 주먹을 날린다. 그럼에도 내가 전부 피해버리자, 이제는 저 멀리서부터 달려와 온몸을 날리는가 하면, 아예 숨어서 기습적으로 공격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마따나.
파멜라의 공격을 의식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 오감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다.
내가 처음으로 마나와 접촉했던 날.
레비아 선생님의 말을 빌리자면, 내 체질이 개화했던 날 이후로는 주변의 변화에 더더욱 민감해졌다.
일례로 마을에서도 누군가가 날 쳐다보는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볼라치면 실제로도 날 쳐다보고 있다.
단순히 우연으로 치부하고 넘기기에는 이상하리만치 들어맞았으며, 단순 확률로만 따져도 70%에 가까운 적중률을 보였다.
나아가 지금 내가 차고 있는 로켓 펜던트를 빼면 이 적중률은 훨씬 상승한다.
내 추축에 불과하지만, 내가 로켓 펜던트를 뺄 때마다 들이닥치는 멀미와 구토 증세는 지나치게 예민해진 감각인 것 같았다. 더불어 이게 그 말로만 듣던 육감이 아닐까, 라고 두루뭉술하게나마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다.
방금 전 내 육감은 뒤통수를 향해 쏘아진 시선을 포착했다.
“음······.”
그러나 아무리 주변을 샅샅이 둘러보아도 이쪽을 쳐다보는 이는 없었다.
에이, 모르겠다.
깊게 생각한들 당장 뚜렷한 해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거니와······ 만약 누군가가 날 지켜보고 있는 거라면 알아서 찾아오겠지.
“가요!”
“음? 그래. 그럼 어디부터 가는 게 좋으려나.”
애써 찜찜함을 치워버린 나는 레비아 선생님과 함께 본격적인 장터 구경에 열을 올렸다.
* * *
장터를 돌아다닌 지 어언 2시간이 흘렀다.
“이 근처에서 잠깐 쉴까?”
“이 근처에서요?”
“응, 저쪽으로 조금만 가면 제법 큰 냇가가 있거든. 거기서 땀 좀 씻고 가는 게 어때?”
냇가라니!
“좋아요!”
나는 앞장 서는 레비아 선생님을 따라 장터를 가로지르는 대로에서 빠져나왔다.
약 10분쯤 걸었을까. 졸졸졸,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고즈넉한 풍경의 냇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우······.”
무심코 탄성을 내지르려던 나는 냉큼 입을 다물었다.
우리 말고도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개중에는 아예 자리를 깔고 앉아서 밥을 먹는 이들도 있었다.
보아하니 장터 휴게실쯤 되는 공간인 듯했다.
적당한 그늘을 발견한 나는 짊어진 가방을 내릴 겨를도 없이 바닥에 앉았다. 그대로 몸에 힘을 빼 가방에 등을 기댔다.
“휴우.”
이제야 좀 살겠네.
“후후, 벌써 지친 거야?”
“솔직히 좀 힘들긴 하네요.”
아무리 내 체력이 좋다고 한들 쉼 없이 2시간을 돌아다니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하물며 내 등에는 커다란 짐가방까지 들려있었으니 지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벌써 지치면 곤란하지. 아직 장터의 반도 채 돌지 않았거든.”
레비아 선생님의 말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돌아다니면서도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넓다고는 생각했건만, 아직 반도 채 돌지 않았다니.
이건 좀 충격적인데.
“으아, 이렇게 쉬엄쉬엄 돌다가는 밤새겠는데요?”
“그래야 할지도 모르지.”
나는 그냥 농담 삼아 던진 말이었는데, 레비아 선생님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오늘만 날이 아니니까, 구경은 적당히 하는 게 어때? 너도 필요한 게 있다고 했잖아.”
“어, 다음에 또 와도 돼요?”
“그거야 어렵지 않지. 솔직히 데커드가 민감하게 반응해서 그렇지, 네가 주의만 한다면 혼자 와도 상관은 없어.”
혼자 와도 괜찮단 말이지.
그럼 장터 구경은 여기서 마무리 짓는 걸로 해야겠네.
“슬슬 배가 고파지네요. 선생님은요?”
“듣고 보니 배가 고프긴 하네. 그나저나, 상황이 이래서야 먹을 걸 구하기가 어렵겠는데.”
레비아 선생님이 안타까운 눈으로 장터를 쳐다봤다.
“에프렐 때문인 거죠?”
“음? 아, 너도 들었구나.”
“네.”
사실 나도 장터를 구경하면서 조금 이상하다고 느낀 게 있었다.
장터는 무지막지하게 넓은데 비해 사람의 수가 이상하리만치 적다는 것이다. 그마저도 장터 깊숙이 들어갈수록 그 수는 줄었고, 본래라면 상점이 있어야 할 자리는 텅텅 비어있었다.
이런 내 의문은 대화를 나누는 상인들을 통해 해소할 수 있었다.
앞서 말했듯 원인은 에프렐이었다.
일전에 데커드 할아버지는 숲이 조금 시끄럽다고 하신 적이 있다.
그때 에프렐과 고브를 운운하셨는데, 그게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나.
게다가 두 종족 간의 다툼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고, 날이 갈수록 그 규모나 피해도 덩달아 커질 것 같다는 얘기도 함께 들렸다.
“대체 왜 싸우는 건지 선생님은 알아요?”
“글쎄. 뭐, 보나마나 고브가 에프렐의 영역을 침범했겠지.”
“고브가요? 어, 그럼 고브 쪽에서 먼저 실수를 한 거예요?”
“음, 그게 참 애매해.”
“뭐가요?”
“너도 데커드한테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에프렐은 자기들만 아는 종족이야. 거기다 다른 종족을 혐오하지.”
“네. 그건 들었어요! 산맥이 자신들의 것으로 안다고도 하셨어요.”
“맞아. 옛날부터 에프렐은 자신들의 영역에 남들이 침범하는 걸 상당히 싫어했거든. 문제는 그 영역을 구분 짓기가 애매하다는 거지.”
“아하.”
“거기다 고브는 머리가 썩 좋은 녀석들은 아니거든. 그러니, 에프렐이 영역을 알려줘도 놈들은 금세 잊어버리지. 과연 에프렐이 그걸 모를까?”
“어, 그러면······.”
“맞아. 고브는 일방적으로 괴롭힘을 당하고 있을 뿐이야. 그리고 고브만이 아니라 다른 종족들도 괴롭혔지.”
이제 보니 악동이라고 불러야 할 건 고브가 아니라 에프렐이었네.
“에프렐의 횡포를 참던 종족들이 아예 하나로 뭉쳐서 대항하는 게 지금의 다툼이야. 따지고 보면 진작부터 일어났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인 거지.”
“그렇구나.”
씁쓸하네.
자고로 평화가 제일이다.
인간, 에프렐, 데바, 고브, 레자드, 자얀트. 그 외에 아직 만나보지 못한 종족들을 비롯하여, 산맥 어딘가 터를 잡고 살아가는 수많은 종족들.
각 종족마다 습성, 문화는 다를지언정 모두가 드라고스 산맥에서 공존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옛말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은 속은 모른다고.
수십 년을 살아온 가족조차도 싸우는 게 당연하듯, 다툼이 일어나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라도 기왕 공존하는 거 모쪼록 완만하게 해결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나저나 이래서는 근처 숲에 가서 먹을 거라도 좀 따와야겠는데?”
“그건 걱정할 거 없어요.”
“응?”
나는 씨익 웃으며 가방을 열어 커다란 바구니를 꺼냈다.
“음? 혹시 먹을 걸 챙겨 온 거야?”
“정답!”
내가 누구인가!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둔 건 아니지만, 먹을 것 정도는 챙겨왔단 말씀.
“짜잔!”
나는 바구니에 넣어둔 식재료를 꺼내 펼쳤다.
“호오, 오늘은 고기를 준비한 거군!”
“넵!”
레비아 선생님은 모르겠지만, 이건 보통 고기가 아니다.
마수 중에서도 그 맛이 좋기로 소문난 피기 고기다.
그것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위만 골라서 챙겨왔다.
“근데, 그걸 어떻게 할 생각인데?”
“보시면 알아요.”
나는 대답 대신 가방을 열어 화로를 설치했다.
이내 활활 타오르는 화로 위에 바위를 깎아 만든 판을 얹었다.
오늘 준비한 메뉴는 5천만 국민이라면 그 누구라도 마다하지 않을, 그야말로 소울 푸드라 불려도 과언이 아닌 그 음식.
이제는 국내만이 아니라 해외까지 진출해 세계인의 입맛까지 사로잡는다는 그 음식.
이름만 들어도 침샘이 화산처럼 폭발하는 그 음식.
삼겹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