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소년기(19) - #난다!
내가 힘차게 인사하자 먼 산을 응시하던 데커드 할아버지가 혀를 찼다.
“흥, 그리도 좋으냐?”
“헤헤.”
사실 데커드 할아버지는 내가 장터에 가는 걸 달갑지 않게 생각하셨다.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일전에도 데커드 할아버지가 말했다시피 인간은 드라고스 산맥에서 가장 약한 종족이다.
자연으로 치자면 생태계의 가장 밑바닥에 위치한 셈이다.
하물며 마을에서 떠도는 소문이란 소문은 다 접하고 있는 나다. 지금까지 장터는커녕 그와 비슷한 이야기도 들어본 적이 없다.
레비아 선생님의 말을 들어보면 장터는 꽤 예전부터 존재했는데 말이야.
그 말은 마을 사람만이 아니라 전 인간을 통틀어 장터에 방문한 적이 없다는 이야기리라.
나아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산맥의 어딘가에 장터라는 곳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모를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 말인 즉 나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라고 볼 수 있었고, 어쩌면 그곳에서 주목을 받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내심 데커드 할아버지의 주장은 충분히 공감하고 납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장터를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드넓은 바다에 던져진 콜럼버스는 과연 자신이 신대륙을 발견하리라 예상했을까.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정복했다는 힐러리는 자신이 살아돌아오리라는 걸 장담했을까.
원하는 걸 손에 넣기 위해서라면야 어느 정도의 모험은 감수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물론 위험하다는 건 데커드 할아버지의 노파심에서 나온 말이었지, 정작 레비아 선생님은 그다지 걱정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뭐, 애당초 나한테 위험한 장소였더라면 함께 가자고 할 분도 아니었고.
그건 그렇고.
“레비아 선생님은요?”
분명히 해가 중천에 뜨기 전에 오라고 하셨는데, 정작 레비아 선생님은 코빼기도 보이질 않는다.
“여기다!”
아, 오셨구나!
레비아 선생님의 목소리에 주변을 둘러봤다.
“엉?”
어째서인지 레비아 선생님은 보이지 않았다. 어딘가 목소리가 조금 멀리서 들리는 것 같았는데, 혹시 아직 숲에 계신 건가?
“여기!”
재차 레비아 선생님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파고들었다. 더불어 어째선지 내 위로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아!”
하늘이었다.
거대한 무언가가 태양을 가리고 있었다.
새······라고 해야 되나?
평범한 새라고 하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거대했다. 저 정도라면 백악기 때 실존했다는 익룡이 살아돌아왔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저 새 아니, 괴조도 마수라는 걸 감안하자면 하등 이상할 게 없긴 했지만, 이렇게 눈앞에서 보고 있노라니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유유자적. 허공을 선회하던 괴조가 방향을 틀더니 그대로 지상을 향해 빠르게 하강을 시작했다.
후우웅!
그 속도가 어찌나 빨랐는지, 눈 깜짝할 새에 내 지척까지 다가왔다.
마치 먹이를 낚아채는 송골매를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다.
그 송골매가 노리는 먹이가 다름 아닌 나라는 게 함정이라면 함정이었다.
날 노리고 날아들던 거대새는 다시금 방향을 틀더니 공중에서 유려한 턴을 선보인 뒤, 사뿐하게 지상에 착지했다.
후우웅!
말이 사뿐이지.
거대한 몸집과 날개는 살짝만 움직여도 거센 돌풍을 일으켰다. 발목까지 자란 풀들이 바람에 밀려 납작하게 엎드리고 단정하게 빗었던 내 머리카락도 제멋대로 휘날렸다.
느닷없는 괴조의 등장에 당황하기도 잠시였다.
“워워!”
“어! 선생님!”
레비아 선생님이 새 위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어휴, 오랜만에 탔더니 속이 뒤집힐 것 같구나. 많이 놀랐지?”
레비아 선생님이 내 헝클어진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엄청요! 대체 저 새는 뭐예요?”
“로토르아라는 마수야. 뭐, 어쩌다 보니 내가 키우게 된 녀석이지. 이름은 로토다. 후후후, 생긴 건 저래도 순한 녀석이니까 무서워 할 건 없어.”
“어, 그럼 만져봐도 돼요?”
“물론이지. 아, 대신 겁도 많으니까 막 달려들면 도망칠 수도 있으니까 조심하고.”
“네!”
나는 조심스레 로토에게 다가갔다. 녀석은 꽤 깔끔한 성격이었는지 기다란 목을 돌려 깃털을 정리하고 있었다.
“안녕?”
내가 인사를 건네자 로토가 힐끗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는 그 기다란 목을 쭈욱 늘리더니 내 바로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었다.
나는 조심스레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로토가 살짝 고개를 숙이더니, 내 손바닥에 이마를 부볐다.
문제는 머리 하나가 내 몸집과 비슷한지라 자연스레 내 몸이 밀려났다.
“호오? 녀석도 네가 마음에 든 모양이네.”
“어 진짜요?”
“아마 데커드였으면 근처에 가자마자 날개로 후려쳤을 걸?”
“놈! 나도 저렇게 무식한 놈은 질색이다!”
난데없는 디스에 데커드 할아버지가 발끈하셨다.
“후후후. 그래서, 준비는 다 했어?”
“네! 미안, 이따가 또 놀아줄게.”
나는 아쉬워하는 로토의 이마를 가볍게 두드려주곤, 며칠 전부터 싸뒀던 짐을 가져왔다.
“······너 뭐 어디 피난이라도 갈 생각이야?”
예전에 레비아 선생님의 집을 찾아갈 적에 데커드 할아버지도 저런 뉘앙스의 말씀을 하셨었지.
“헤헤, 혹시 모르니까요! 없어서 아쉬운 것보다는 그냥 짐이 많은 게 낫잖아요!”
“뭐, 그것도 그렇지. 그럼 그 짐은 로토한테 싣자고.”
“어······ 설마. 로토를 타고 가는 거예요?”
나는 레비아 선생님의 말에 깜짝 놀라 로토를 쳐다봤다.
“녀석도. 설마 거기까지 걸어갈 생각이었어?”
“어, 아무 말도 안 하셔서 걸어가는 줄 알았어요.”
“아, 그랬나? 미안미안. 아마 거기까지 걸어가면 족히 일주일은 고생해야 될 거야. 아무런 일이 없다는 가정하에 일주일이니, 여차하면 영영 도착할 수 없을 지도 모르지.”
일주일이라니. 레비아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을 땐 길어봐야 반나절 안에 도착할 줄 알았는데······.
걸어서가 아니라 로토를 타고 갈 경우의 이야기였구나.
“아, 잠깐만요!”
나는 레비아 선생님을 뒤로하고 재빨리 간이 창고로 달려갔다.
“이거랑 이거. 아, 혹시 모르니까 이것도 가져가고······.”
제아무리 내 체력이 상식을 아득히도 벗어났다고는 한들, 짊어질 수 있는 짐에는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거친 정글을 헤쳐나가야 하는 만큼 가능한 짐을 최소한으로 준비했다.
근데, 로토를 타고 가는 거라면야 얘기가 달라지지.
나는 피눈물을 삼키는 심정으로 빼야만 했던 각종 도구와 짐을 꾸렸다.
“끙차!”
금세 가죽 가방 2개 분량을 챙겨 로토 옆으로 옮겼다.
“그, 그게 다 뭐야?”
“필요 없는 도구들이요!”
안 그래도 그동안 내가 만든 도구들의 숫자가 지나치게 많았다.
근데, 또 멀쩡한 걸 버리자니 아깝고. 그렇다고 창고에 쌓아두자니 점점 그 부피가 늘어나더라.
계륵이라는 말처럼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던 차였다. 어차피 쓰임새가 없는 것들을 방치하기도 뭣했으니, 장터에서 물물교환을 하는데 쓰면 좋을 것 같았다.
“뭐, 네 생각이 그렇다면야 말리지는 않겠다만. 아, 참고로 그 휴대용 부싯돌 말이다.”
“네. 그게 왜요?”
“음······. 그건 가능하면 다른 이들한테 보여주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네?”
“아티펙트라는 건 말이야, 그렇게 쉽게 만들어지는 마도구가 아니야. 그건 너도 들어서 알고 있지?”
“네. 알고 있어요.”
“드라고스 산맥에 살아가는 종족들 중 대다수는 마법을 익히지 못한다. 그런 그들이 아티펙트를 제작할 수 있는 인간이 존재한다는 걸 알아채면 어떻게 될까?”
“아아.”
그러니까, 레비아 선생님은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않는 쪽이 좋다는 말인 듯했다.
“너야 똑똑하니까 어련히 알아서 하겠냐만은, 혹시 모르니 주의하는 편이 좋을 거야.”
“네!”
그 후로도 레비아 선생님은 몇 가지 주의사항을 알려줬다.
“자, 이제 슬슬 가볼까?”
레비아 선생님이 로토로 향했다.
“할아버지는 진짜 안 가시는 거예요? 같이 가면 좋을 텐데.”
내가 아쉬움을 담아 말하자 데커드 할아버지가 팩 고개를 돌렸다.
“흥, 복잡한 곳은 딱 질색이다.”
아쉽지만 데커드 할아버지가 저리도 완강하게 거절하니, 같이 가자고 하는 건 예의가 아니겠지.
“알았어요!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할아버지 선물도 사올게요!”
“흥, 마음대로 하거라.”
나는 데커드 할아버지께 꾸벅 인사하고 부랴부랴 로토로 향했다.
레비아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로토에 탑승했다. 깃털이 푹신푹신한 게 고급 세단 부럽지 않았다.
“그럼 다녀오지. 아, 오는 김에 쓸만한 걸 구해 올 테니, 저녁에 줄잇기나 두자고. 이랴!”
레비아 선생님은 질리지도 않는지, 넌지시 내기를 언급하고는 로토의 옆구리를 때렸다. 그러자 로토가 제 몸집보다 거대한 날개를 펄럭였다.
강한 바람이 휘몰아치며 내 몸이 들썩거렸다. 커다란 발톱으로 짊을 움켜 쥔 로토의 몸이 서서히 지상에서 떠올랐다.
“우와아!”
진짜로 난다!
어떻게 보면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태어나서 비행기를 타본 경험이 없었다. 언젠가는 해외여행을 가보고 싶어서 큰맘 먹고 여권까지 만들었건만, 서랍장에 처박혀 먼지만 쌓이는 신세였지.
그래서인지,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도 짜릿했다.
“녀석. 신나는 건 알겠다만, 떨어지면 답도 없으니까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넵!”
힘차게 답한 나는 빼꼼 고개를 내밀어 지상을 내려다봤다.
“으으으.”
태어나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비행이라서 그런지, 지상과의 거리감에 오금이 저려온다.
하지만 지금 아니면 또 언제 보겠냐고!
나는 치미는 두려움을 지르밟으며, 고개를 들었다.
“와······. 마을이 이렇게 생겼구나.”
평소에도 우리 마을은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또 느낌이 다르다.
어딘가 앙증맞으면서도 아기자기한 것이 동화책에 그려진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더불어 내 오금을 저리게 만든 두려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벅차오르는 감동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어디 보자.
나는 한결 가뿐한 마음으로 마을을 살펴봤다.
저기 있다!
마을의 중앙에서 살짝 벗어난 장소에 정겨운 우리 집이 있었다.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는 걸로 봐선 주방에 계신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앗! 엄마다.”
엄마는 내가 위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도 모른 채 주방에서 작물을 손질하고 계셨다. 더불어 그 옆에는 큐우도 함께였는데, 보아하니 엄마가 챙겨 준 간식을 먹고 있는 듯했다.
이런 내 감상도 잠시였다.
“이제부터 속도를 낼 거니까, 꽉 잡아.”
“넵!”
엄마와 큐우를 향해 손을 흔들어준 나는 허리를 묶은 끈을 단단하게 쥐었다.
* * *
우리가 목적지에 도착한 것은 약 1시간이 지난 후였다.
아무도 없는 장소에 착륙한 로토에서 내린 나는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웠다.
“어우······.”
죽겠다.
눈앞이 빙글빙글 도는 게 아침에 먹었던 스튜가 올라올 것 같았다.
이런 내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레비아 선생님이 픽 웃었다.
“재미있다며?”
“네······. 재미는 있었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