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소년기(17) - #마법사로 인정받다.
“네? 일반적인 마도구가 아니에요?”
마도구면 마도구지, 평범한 마도구가 아니라는 건 또 무슨 이야기지?
“아티펙트가 되기 위한 조건은 몇 가지가 있다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게 하나 있다.”
레비아 선생님이 라이터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마법사가 아닌 사람도 마법을 발현시킬 수 있는 마도구. 그것이 아티펙트다.”
그렇구나.
근데, 평범한 마도구든 아티펙트든 마법사라면 누구나 다 만들 수 있는 거 아닌가?
이런 내 궁금증을 알아차리기도 한 듯 레비아 선생님의 설명이 이어졌다.
“마법사는 어디까지나 마법을 다룰 줄 아는 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마법이 몇 년을 배워서 습득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어?”
“아! 그럼······ 마법이 아닌 다른 분야에 서툴다는 거죠?”
“똑똑하구나. 그래, 네 말이 맞다. 당장 나만 하더라도 마법과 관련된 것 외에는 딱히 할 줄 아는 게 없거든.”
레비아 선생님은 마치 자신을 나무라듯 말하며 자조 섞인 미소를 지었다.
하기야.
나도 마법을 배우는 입장이라서 알겠지만, 이게 보통 복잡한 게 아니다.
그중에서도 룬어는 진짜 한문을 수십 개는 겹쳐 놓은 모양새다.
내심 궁금해서 획을 세어보니 무려 1,442개의 직선과 233개의 곡선, 712개의 점으로 이루어져 있더라. 그마저도 가장 간단한 룬어가 이랬으니 말 다했지.
내가 하이엔드급 암기력을 타고났기에 망정이지······. 만약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더라면 룬어 하나를 외우는데 족히 일주일 아니, 한 달은 걸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듯 마법은 단기간에 배우긴커녕 평생을 바쳐야 할 학문이었으니, 다른 걸 배우고 익힐 겨를이나 있을까.
나도 마법을 배우는 입장인지라 레비아 선생님의 이야기에 쉽게 공감할 수 있었다.
“이렇게 간단하게 아티펙트를 만들다니······. 그럼 내가 지적했던 룬어는 실수가 아니라······.”
“넵!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아서 새겼어요.”
나에게는 남들이 모르는 습관이 하나 있었다.
뭐든 지구의 물건을 대입하여 외운다는 것이다.
굳이 의식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지구의 물건과 비교하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고, 마법을 공부하면서도 같은 방법을 썼다.
마법진을 기판과 회로로 연결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기판 그리고 회로.
유레카를 외치며 알몸으로 거리를 내달리던 아르키데메스의 심정이 그러했을까.
평범한 마법사와는 다른 시각과 접근방식으로 공부를 하다 보니 이를 DIY에 접목시킬 방법까지 이어졌다.
나아가 레비아 선생님이 개량한 버전이라는 걸 상기한 나는 한 발짝 더 나아가 마법진 개조에 도전하기로 했다.
만사불여튼튼이라는 말마따나, 안전을 최우선으로 두되 나 홀로 개조에 몰두했다.
역시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지부터가 난감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저번에 나한테 물었었지? 마법진이 훼손되면 어떻게 되느냐고.”
레비아 선생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레비아 선생님의 말대로였다.
마법진을 개조하는 건 좋다. 근데, 이 마법진이 손상되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몹시도 궁금해졌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던가.
궁금증이 생긴 즉시 레비아 선생님을 찾아가 물었다.
“네! 그때, 선생님은 마법진을 완벽하게 복구할 수 있다면 재활용이 가능하다고 하셨잖아요.”
“그랬지.”
그렇다.
마법진의 형태가 무너진다고 아예 못 쓰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손상이 간 부분만 제대로 보수한다면, 마법을 발동시킬 수 있노라고 레비아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대신, 이미 손상된 마법진을 복구시키는 게 엄청 까다로운 작업이라서, 차라리 처음부터 다시 그리는 편이 훨씬 편하다고 말했었지.”
아무렴.
마법진에 새긴 룬어 중 잘못된 부분을 찾는다는 건 말 그대로 사막에서 바늘 찾기요,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다.
즉 마법진이 제대로 발동하지 않는다면 그 문제점을 찾아 수정하기보다는 아예 새롭게 그리는 게 훨씬 낫다는 의미였다.
“네! 근데, 그 말은 복구만 시킬 수 있다면 다시 사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잖아요.”
“네 말이 맞다.”
아무리 내 기억력이 좋다고 한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손상이 된 마법진을 복구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애당초 내 손으로 훼손한 부분이라면 얼마든지 복구가 가능하다.
레비아 선생님이 준 대답은 확신으로 이어졌고, 이제까지 내가 외운 룬어라면 라이터를 만들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렇게 나는 이 라이터에 달린 다이얼을 돌리게 될 경우 생기는 오차까지 염두에 둔 채로 마법진 개조에 들어갔다.
나아가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는 말마따나.
레비아 선생님이 사용하던 마나환을 건전지를 이용해 마나를 다룰 수 없는 나라도 라이터를 사용할 수 있게끔 룬어를 배치했고, 마지막으로 다이얼 형태의 On/Off 스위치까지 장착했다.
이 다이얼의 역할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이 다이얼 왼쪽으로 돌릴 경우에는 마법진이 제대로 발동하지만, 다시 반대로 돌릴 경우에는 제아무리 다량의 마나를 쏟아부어도 마법이 발동되지 않는다. 달리 말해서 다이얼이 안전장치도 겸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 밤잠을 설쳐가면서까지 고민해야 했지만, 이렇듯 완성하고 나니 그동안 쌓인 피로가 싹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그럼 그 질문을 할 때부터 아니, 그 전부터 마법진을 개량할 작정이었다는 거군. 하핫. 그동안 나는 뭘 했는지. 이거 내 마법 인생을 통째로 부정당하는 기분이야. 근데,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아. 그래서 대체······ 너는 뭐야?”
레비아 선생님이 내 눈을 직시했다.
어쩐지 내 속을 꿰뚫어보려는 듯한 눈동자였다.
갑작스럽게 변한 분위기에 심장이 뜨끔거렸다.
설마하니, 내가 환생했다는 사실을 눈치 챈 걸까?
아니, 그럴 리가 없······진 않구나.
그도 그럴게, 마법이라는 걸 알게 됐고, 직접 배운다는 사실에 너무 들뜨긴 했지.
하루라도 빨리 마법의 숙련도를 올리고 싶다는 내 개인적인 욕심으로 말미암아 평범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보인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나는 애써 술렁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활짝 웃었다.
“저요? 아이넬인데요!”
내가 장난스레 대꾸하자 레비아 선생님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래. 너는 아이넬이지. 나는 레비아고. 후후후, 맞아. 이건 아이넬 너이기에 가능한 일인 거지. 천재와 범인. 그래, 내가 너무 복잡하게 생각했어.”
레비아 선생님은 내 정체를 알아차린 게 아니었다. 그저 라이터라는 신문물에 충격을 받아 던진 혼잣말이었던 모양이다.
그나저나 레비아 선생님의 표정이 안 좋은데.
“아이넬.”
레비아 선생님이 자못 진지한 얼굴로 날 불렀다.
“네?”
“이런 말 하긴 미안하다만, 나는 더 이상 널 가르칠 자신이 없다.”
어····· ·잠깐만.
“그게 무슨 말이에요?”
“무슨 말이긴. 이미 너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어. 그러니, 이제부터는······.”
잠시 말을 멈춘 레비아 선생님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너와 나는 동등한 입장이다.”
“동등한······ 입장?”
"지금까지 보여준 것만으로도 너는 마법사라 불릴 자격이 있다는 뜻이다.”
“아!”
마법사로 불릴 자격이 있다. 이것은 레비아 선생님이 나를 인정해줬다는 의미였다.
솔직히 말해서······ 엄청 기뻤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전생에 열심히 살았다.
남들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고. 남들이 쉬는 주말에도 늘 밀린 업무를 처리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게다가 사회생활이라는 게 으레 그렇듯 일만 잘해서는 되는 게 아니다.
화가 나도 참아야 하고, 억울해도 웃어넘기는 게 당연한 곳이 바로 사회였다.
갑갑하고 짜증도 나지만 별 수 있나.
더군다나 기왕 다니는 회사다.
되도록이면 모두 함께 잘 지내고 싶었기에 없는 시간마저 쪼개고 또 쪼개며 관계를 이어갔다.
그러나 다들 필요할 때만 나를 찾았을 뿐, 선뜻 나를 인정해주는 이 하나 없었다.
그래서일까.
레비아 선생님이 날 인정한다는 말에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네게 선생님이라 불리는 게 기분이 좋긴 했다만, 이제는 동등한 입장이니 선생이라는 호칭은 쓰지 않아도 돼.”
나는 레비아 선생님을 올려다봤다.
어째서일까. 여기서 그냥 넘어간다면 이대로 훌쩍 떠나버릴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막 알게 되었지만, 나는 레비아 선생님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잘 안다.
비록 종족이 다르고 나이 차이도 엄청나지만, 앞으로도 친하게 지내고 싶은 사람이었다.
“싫은데요?”
“뭐?”
내가 단칼에 거절하자 레비아 선생님이 황당하다는 듯 날 쳐다봤다.
“한 번 선생님은 영원한 선생님이에요. 그리고 저는 아직 배워야 할 게 많으니까, 레비아 선생님은 계속 선생님이에요.”
“그러니까 나는 더 이상 가르칠 게······.”
“마나환은요?”
“응?”
“마나환을 만드는 방법요. 그건 가르쳐주지 않는 거예요?”
“아니, 그거야 데바라면 누구나 다 아는 거니, 알려달라면 얼마든지 알려줄 수 있지. 방법이야 까다롭지만, 너라면 별로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을 거야.”
“저는 주문 마법이랑 수인 마법도 배우고 싶은데요?”
“······.”
“그거 말고도 제가 알고 싶은 게 이만큼 쌓여있어요.”
“욕심도 많은 녀석이네.”
“엄마가 그랬거든요.”
“음?”
“참는 것보다는 하고 싶은 걸 떳떳하게 말하는 게 착한 아이라고요.”
“······그렇구나.”
레비아 선생님이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한결 가뿐해진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알았다, 알았어. 너를 가르칠 수 없다는 말은 취소하지.”
진작 그렇게 나오셨어야지.
“아, 그리고 잠깐만요!”
“응?”
나는 레비아 선생님을 두고 작업대에 있던 나무 조각을 들었다.
제아무리 돌을 깎아서 만들었다고 한들, 손으로 만지다 보면 자연히 깎여나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만든 게 바로 이 라이터 전용 케이스였다.
재질이 나무라서 내구도가 약하긴 했지만 없는 것보다 나았을 뿐더러, 문양을 새겨놔서 그 나름의 멋이 있었다.
딸깍, 소리가 나며 라이터와 나무 케이스가 결합했다.
“아, 맞다!”
나는 조각칼을 들어 나무 케이스에 내 이름을 새겼다.
“이건 선생님 선물로 드릴게요.”
나는 레비아 선생님께 라이터를 내밀었다.
“이걸 내게 준다고?”
“네. 레비아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만들 수 없었잖아요. 그러니까, 제일 처음으로 만든 걸 드리고 싶었어요.”
“녀석, 고맙다. 내 평생의 보물로 간직하지.”
“에이, 보물이라뇨! 아끼지 말고 팍팍 쓰다가, 고장 나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후후, 그래. 아, 그리고.”
“네?”
“네가 차고 다니는 목걸이를 말이야. 어디서 구했느냐고 물었었지?”
“아, 네! 그때 장터에서 구했다고 말했잖아요.”
장터.
이름만 들어봐도 지구의 시장으로 추정되는 장소였다.
당연히 내 호기심 센서가 불을 켰지만, 레비아 선생님은 장터에서 구했다는 말만 할 뿐 자세한 설명은 생략했다.
“그래. 뭐, 간단하게 말해서 여러 종족들이 모여서 이것저것 교환하는 장소다.”
“오오오!”
역시 내 생각이 추측대로였다.
여러 종족들이 모여서 이것저것 교환을 하는 장소라니!
과연 어떤 곳일지 상상조차 가질 않는단 말이지.
“때마침 내일이 장터가 열리는 날이다. 어때, 생각 있어?”
지금 나한테 같이 가겠느냐고 물어보신 겁니까?
“당연히 가야죠!”
이건 못 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