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34화 (34/159)

34. 소년기(16) - #아티펙트!

나는 작업에 앞서 손에 쥔 물건을 확인했다.

재질은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돌이었다. 크기는 내 손바닥의 반도 채 안 됐으며, 연마 작업을 통해 직사각형으로 깎았다.

두께는 내 손가락보다 얇았고, 그 안쪽에는 빈 공간이 있었다. 가운데에는 손가락으로 돌릴 수 있는 다이얼 형태의 버튼까지 달려있었다.

이 물건의 정체로 말씀드리자면, 누구나 한 번쯤은 써봤으며 왠지 없으면 허전함을 느끼게 되는. 툭 하면 잃어버리는 탓에 하나, 둘 사다보면 어느새 집구석에서 발견되어 나도 모르게 5개씩은 구비하고 있는 도구.

바로 라이터였다.

내가 라이터를 선택하게 된 까닭은 비교적 난이도가 낮은 것이 첫 번째요.

휴대의 편리함과 실용성을 동시에 갖춘 물건이라는 게 두 번째다.

나만 하더라도 매일 부싯돌을 사용한다. 뭐, 사용법이야 간단해서 이제는 눈을 감고도 불을 붙일 수 있지만, 그래도 늘 마음 한구석에는 라이터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다.

물론 라이터는 시작일 뿐이지만 말이야.

“음음.”

이미 몇 번이고 검수를 마쳤지만, 혹시나 모를 일인지라 재차 확인에 확인을 거친 뒤에서야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나는 머릿속으로 도안을 떠올리며 마수의 뼈로 만든 조각칼로 돌의 표면을 긁었다.

사각사각.

뼈와 돌이 마찰하자 홈이 파였다.

일종의 가이드라인이었다.

아무래도 새겨야 할 룬어의 양에 비해 면적이 좁은지라, 가이드라인을 따두는 편이 여러모로 편했다.

나는 처음에 판 홈을 기준으로 삼아 몇 개의 홈을 더 팠다.

마침내 1차 작업이 끝났다.

이제는 진을 그릴 차례였다.

나는 가이드라인을 따라 동그란 원을 그렸다. 뒤이어 원 안에 수식을 그렸다.

내가 지구 태생이라서 그런지는 마법진을 볼 때면 연상되는 게 있었다.

기판이었다.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마법진은 전자기기에 들어가는 회로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형태만이 아니라 원리도 마찬가지였다.

마법진이 기판이라면 마나는 전력을 대신한다. 더불어 마법진이 응집시킨 마나를 룬어로 보내어 마법을 발현시킨다. 마법진의 역할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마나 과부화가 발생하지 않게끔 제동을 걸 수 있는 역할도 한다나.

더욱 놀라운 건 제동이라는 기능은 원래 없었으며, 이는 레비아 선생님이 따로 개량해서 추가한 기능이었다.

즉 나도 충분한 숙련도가 되면 스스로 마법진을 개량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무엇보다.

내가 진을 활용한 마법을 배우면서 느낀 점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마법진이야말로 내 목적에 부합하는 형식의 마법이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게, 내가 마법을 배우고 싶은 이유는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만들기 위함이다.

주문 즉, 영창이나 수인 마법은 단발성이 강하다. 달리 말해서 일회용 마법이다. 이 두 마법은 발현 속도가 빠르며 즉석에서 펼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반면에 진을 이용한 마법은 다르다.

일단 마법을 발현시키기 위해서는 마법진과 룬어를 직접 그려야 하니 그에 따른 시간과 수고를 감수해야 하며, 자연히 마법의 발현 속도 또한 느리다. 더불어 마법진은 고정된 상태이기에 마법을 파훼하기도 쉬웠다.

이 두 가지 이유가 진을 이용한 마법을 기피하게 된 결정적 원인이었다.

대신 앞선 두 마법과는 달리 마법의 유지 기간이 압도적으로 길다는 장점이 있었다.

마법진을 새기는 재료에 따라서 짧으면 몇 시간, 길면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즉 마법진이야말로 DIY에 최적화 된 마법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며 마법진을 새기길 어언 20분.

마침내 마법진을 완성했다.

“푸후우우!”

손등과 돌에 쌓인 가루를 날려보내자 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깊기가 얕은데다가 선의 굵기도 얇아서 자세히 봐야지만 알 수 있을 정도로 미세했다.

언제였던가. 세공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쌀알에도 글자를 새길 수 있다고 들었다. 실제로도 한때 유명했던 TV프로그램에서 기인으로 출연해 장안의 화제가 된 적도 있었고. 텔레비전으로 볼 때만 해도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긴 줄 알았는데, 지금 내가 하는 게 그것과 비슷하니······. 명백한 오산이었다.

더불어 쌀알에 글씨를 새기는 게 얼마나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작업인지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봐야 이제부터가 진짜다.

이제 막 마법진을 새겼을 뿐, 마법을 발현시키기 위한 핵심 작업은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긴장하지 말자.

평소 연습했던 대로만 하면 된다.

스스로에게 세뇌를 걸으며 조각칼을 쥐었지만, 선뜻 움직일 수 없었다.

아무렴.

그동안 내가 룬어를 연습할 땐 흙바닥이나 양피지를 이용했다. 그 외에도 눈에 보이는 모든 장소가 연습장이자 낙서장이었으니 큼직하게 그리면서 연습을 해왔다. 게다가 틀리게 적으면 대충 발바닥으로 문질러서 지울 수 있었으니 이렇다 할 부담도 없었고.

반면에 지금은 단순한 연습이 아니거니와 마법진과 룬어를 새겨 넣어야 할 면적도 무척이나 좁다.

특히 앞서 말했던 것처럼 룬어에는 힘이 담겨있다.

그냥 새기는 거라면야 그 영향력이 미비했으나 지금은 마법을 발현시키기 위한 진까지 그렸다.

잘못 새길 경우 내가 의도치 않았던 엉뚱한 현상을 일으킬 수도 있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공들여서 깎은 걸 버리는 걸 넘어 큰 사건으로 번질 수도 있었으니, 아주 미세한 실수조차도 용납되지 않는다.

“땀이라도 좀 닦으면서 하는 게 어때?”

내 긴장감이 전해졌던 걸까. 레비아 선생님이 내 어깨를 토닥이며 응원의 말을 건넸다.

“아.”

그제야 나는 내 전신이 땀에 젖어있음을 깨달았다. 더불어 집중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린 탓에 손아귀와 어깨도 욱신거렸다.

“후후, 그렇게 긴장할 건 없다. 내가 이곳에 있는 이상 안전하니까.”

레비아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다.

한편으로는 대체 내가 뭘 하는 것인지 궁금하다는 분위기도 풍기고 있었다.

레비아 선생님의 응원 덕분인지,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팽팽했던 긴장의 끈이 조금은 느슨해졌다.

잠시 숨을 돌릴 겸 눈가를 간지럽히는 땀을 훔치고는 다시금 조각칼을 쥐었다.

가자.

나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룬을 새기기 시작했다.

첫 번째 룬은 불이었다.

단, 내가 원하는 불은 크기가 작되 지속력이 높아야 했다.

따라서 불의 힘을 지닌 룬어와 이를 보조할 수 있는 룬어를 연결시켰다.

내가 조각칼을 내려놓은 얼추 1시간이 지난 뒤였다.

좋아, 이 정도면 됐어.

기대 이상의 결과물에 만족스럽게 웃은 나는 레비아 선생님께 라이터를 내밀었다.

“여기, 확인해주세요!”

“수고했다. 음······ 화염의 룬을 새겼구나. 크기를 작게 만든 건 휴대를 위해서인 것 같고······. 이거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는군. 용케도 마법진을 새겼구나.”

레비아 선생님은 라이터가 신기했는지, 이리저리 살펴보는데 여념이 없었다.

하기야. 비록 마법을 이용해 만들었지만, 라이터는 지구에서나 쓰이던 물건이다. 마을 사람들은 물론, 레비아 선생님도 부싯돌을 쓰니 생소할 만도 하겠지.

한편으로는 이상했다.

그도 그럴게, 레비아 선생님은 마법사다.

불이든 물이든 마음대로 만들 수 있는, 말 그대로 만능에 가까운 능력을 지녔다.

그럼에도 왜 아직까지 평범한 부싯돌을 쓰는 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단 말이지.

“그나저나, 이 가운데에 있는 동그란 건 뭐야? 그리고 왜 속은 비어있는 거지?”

“그건 조금 있다가 알려드릴게요. 그보다, 마법진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해주세요!”

“알았다.”

내 부탁에 레비아 선생님이 라이터를 잡았다. 뒤이어 레비아 선생님의 손에서 마나가 방출되더니, 그대로 라이터에 흡수되었다. 그와 동시에 내가 새긴 마법진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왔다.

그와 동시에 라이터에서 화르륵, 불꽃이 피어올랐다.

라이터에서 생성된 불꽃의 크기는 적당했다.

게다가 은근한 열기를 내뿜으며 공중을 향해 치솟는 게 어지간한 바람이 아닌 이상에야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건······. 꽤나 아니, 엄청나게 편리해 보이는군. 축하한다. 아이넬, 네 마법진의 수준은 높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말을 멈춘 레비아 선생님이 라이터에 새겨진 마법진을 가리켰다.

“불필요한 수식이 들어가 있어. 이 도구······.”

“휴대용 부싯돌이요!”

“그래, 휴대용 부싯돌을 만든 건 불을 피우기 위함이다. 그렇지?”

“네!”

“그럼 여기에 적힌 흡수와 방출의 마법진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 군더더기라는 의미야.”

혹여나 내가 풀이 죽으리라 생각했는지, 레비아 선생님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역시 상냥하다니까.

“그래도 이 정도면 네 수준은 높은 편이다. 고작 열흘을 배웠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완벽하다. 농담이 아니라, 당장 데바 중에서도 이 정도로 완벽하게 마법진을 새길 수 있는 자는 몇 없어.”

레비아 선생님이 진심을 담아 칭찬했다.

“헤헤. 고맙습니다!”

내가 밝게 웃자 레비아 선생님이 흐뭇하게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건 그렇고 아쉽게 됐구나. 기껏 만들었는데, 사용할 수가 없잖아.”

레비어 선생님의 말대로다. 라이터를 만드는데 성공했지만, 나는 당장 마나를 다룰 수가 없다.

즉 힘들게 만들었지만 정작 내 몸으로는 사용할 수 없는 상태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이미 라이터를 설계할 당시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고, 이를 해결한 방안 또한 준비해뒀다.

“아, 그거 말인데요! 사실, 그것 때문에 생각해둔 게 하나 있거든요?”

“음? 생각해둔 거라고?"

“네! 그래서 말인데요······. 그 저번에 큐우한테 먹였던 마나환 있잖아요. 혹시 그거 남는 거 있어요?”

“음? 남는 거야 있지. 근데 그건 왜?”

“괜찮으면 그거 하나만 주시면 안 될까요?”

“그거야 뭐 어렵지 않지.”

내가 간절함을 담아 부탁하자, 레비아 선생님이 흔쾌히 마나환을 건넸다.

“고맙습니다!”

“그래서, 그걸로 뭘 하려는 거야?”

“이걸요······.”

나는 라이터를 뒤집어 미리 만들어 놓은 구멍에 마나환을 넣었다.

“흠? 설마하니 그 구멍은 마나환을 넣으려고 판 거야?”

“네!”

레비아 선생님의 의문에 답한 나는 구멍을 막고 다시금 라이터를 뒤집었다.

“그리고 여기 이 동그란 부분을 돌리면요.”

나는 다이얼 형태의 버튼을 살짝 돌렸다.

그러자 아까 레비아 선생님이 마나를 주입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마법진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오더니, 시원스레 불꽃을 피워올렸다.

“어때요?”

내가 라이터를 흔들며 묻자, 레비아 선생님이 경악스러운 얼굴로 외쳤다.

“이건······ 아티펙트잖아!”

“아티펙트요?”

생소한 단어였다.

“아티펙트라는 건 마법을 이용해서 만든 도구. 즉 마도구 중 하나다.”

아하!

확실히 이 라이터는 마법으로 작동하니까, 아티펙트라는 말이 틀린 건 아니었네.

“그리고 아티펙트는······. 평범한 마도구가 아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