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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33화 (33/159)

33. 소년기(15) - #첫 마법

“자, 여기요!”

레비아는 양피지를 확인했다. 그곳에는 작은 글씨가 빽빽하게 적혀있었다. 그것은 아이넬을 위해 공용어로 번역한 룬어였다.

‘이걸 진짜로 다 외웠다고?

차근차근 양피지를 살펴보던 레비아가 침음을 흘렸다.

아이넬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는 채 1시간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무려 20자나 되는 룬어를 외웠다. 그것도 어느 한 곳 흠잡을 수 없을 만치 완벽했다.

‘봐도 봐도 믿기지가 않는구나.’

방금 전 아이넬이 선보인 역전승만 하더라도 레비아에게 큰 충격을 줬다.

근데, 지금 아이넬이 건네준 양피지에 비하자면 새 발의 피였다.

과장 좀 보태자면 마법사 인생을 통틀어 가장 충격적인 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게, 룬어는 일반적인 언어와 그 궤가 다르다.

일례로 화염이라는 단어가 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단어 하나에 불과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화염이 화염으로 불리기 위한 조건들.

이를 테면 화염하면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뜨거움이다. 나아가 다른 물체에 옮겨 붙으며, 온도에 따라 그 색과 형태가 시시각각 변화한다.

이렇듯 화염이라는 아주 짤막한 단어에는 무수히도 많은 의미와 특성을 포함하고 있다.

그것을 우리는 대충 화염이라는 단어 하나로 표현하곤 한다.

반면에 룬어는 다르다.

특정한 현상이 지닌 모든 의미와 특성들이 명확하게 규정되어있다.

따라서 룬어의 형태는 몹시도 복잡해질 수밖에 없으며, 아무나 쉽게 외울 수 있는 종류의 언어는 아니었다.

레비아가 슬쩍 하늘을 쳐다봤다. 해의 기울기를 미루어 짐작했을 때 차 두 잔 마실 정도의 시간이 흐른 듯싶었다.

‘그 짧은 시간에 룬어 20자를 외웠다라······. 족장이 보면 놀라 자빠지겠군.’

양피지에서 눈을 뗀 레비아가 아이넬을 눈에 담았다.

‘데커드의 말이 맞았군. 나는 저 꼬맹이를 너무 쉽게 생각했어.’

솔직히 말해서 레비아는 아이넬에게 마법을 가르치고 싶지 않았다.

이유는 하나였다.

동생인 레스티아 때문이었다.

일전에도 말했듯, 레스티아는 아이넬과 비슷한 체질을 타고났다.

이를 알게 된 것은 그녀의 나이 4살 때였다.

데바는 어릴 적부터 마법에 대한 교육을 받기에, 그 개화의 시기가 훨씬 빨랐던 것이다.

레스티아의 체질이 알려지자 데바들 사이에서는 난리가 났다. 수백 년, 어쩌면 수천 년 만에 나타난 천재였으니 주목을 받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레스티아는 그런 걸 원하지 않는 아이였지.’

수백 년을 살아가는 데바건만, 그녀의 나이 고작 4살이었다.

한창 좋은 것만 보고, 좋은 이야기만 듣고 자랄 시기에 모진 압박과 기대감은 그녀의 어깨를 짓눌렀다.

하물며 레스티아는 담대한 성격이 아니었으며, 그 심성도 무척이나 고왔다.

혹여 맛있는 걸 받으면 가장 먼저 오빠인 레비아부터 챙겼고, 늘 마을에 큰 도움을 주고 싶어 했다. 근데, 자신에게 재능이 있다며 모두가 기대하고 있으니, 차마 이를 저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성격으로 인해 그녀는 강요 아닌 강요를 거절하지 못했고, 다른 아이들이 뛰어 놀 시간에 늘 마법에 대한 공부를 했다.

레비아는 이런 동생이 안타까워 하지 않아도 된다고 얘기했지만 레스티아는 꿋꿋하게 마법을 익혔다.

하지만 이런 레스티아의 노력에도 좀처럼 실력이 늘지 않았다.

‘레스티아는 천재가 아니었지.’

데바들 사이에서 축복받은 체질이라고 한들, 어디까지나 체질을 타고났을 뿐이다.

한순간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나아가 자신의 목숨마저 걸어야만 익힐 수 있는 것이 바로 마법이다. 이렇듯 고도의 학문을 익히기 위해서는 그만큼 부지런하고 똑똑함이 바탕에 깔려있어야만 했다.

레스티아는 축복받은 체질과 부지런함을 타고났을지언정······ 머리는 평범한 수준이었다.

더불어 본인의 의지보다는 떠밀리듯 익혔기에 늘 압박감을 짊어지고 있었다.

그 결과 초조함을 견디기 못한 채 무리하게 마나를 운용했던 레스티아는 폭주했고, 그로 인해 마을은 대혼란에 빠졌다.

불행 중 다행으로 다친 자는 없었지만 레스티아는 큰 내상을 입었다.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본래 레비아는 차기 족장 후보였으며, 그중에서도 단연 지지자가 많았다.

즉 레스티아의 사고는 다른 후보자를 지지하던 자들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던 셈이다. 그들은 잘잘못을 따지는 걸 넘어 레비아에게 모든 죄를 돌렸으며,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족장을 비롯하여 대다수의 데바가 그들을 저지했지만, 이미 레비아에게 그들의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결국 레비아는 동생을 데리고 마을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 후로 아무도 없는 곳에서 레스티아를 치료하려 했다. 그러나 레비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레스티아의 상태는 갈수록 악화되었고, 현재는 레비아의 마법에 봉인된 채 잠들어있다.

그 장소는 레비아만이 알고 있었다.

이유야 가부간 그 일이 있은 후로 레비아는 자신의 동생을 치료하기 위해 노력에 노력을 거듭했고, 그게 벌써 40년이나 이어졌다.

애당초 그가 마법진을 다루고, 또 마법사의 절망이라 일컫는 마나스냇치의 열매를 갖고 있었던 이유. 나아가 아이넬의 상태를 단박에 파악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아이넬, 이 녀석은······ 진짜 천재다. 단순히 체질만 타고난 게 아닌 진짜 천재.’

단순히 떠밀리듯 천재의 칭호를 받은, 말 그대로 반쪽짜리 천재인 동생과는 달리 진짜배기였다.

거기다 마법에 대한 열정과 부지런함까지 갖추었으니, 그야말로 마법을 위해 태어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후우, 어쩔 수 없는 건가.’

내심 레비아는 금방 아이넬이 흥미를 잃으리라고 생각했다.

정정한다.

오히려 흥미를 잃어버렸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다소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은 과제를 내줬다.

이런 레비아의 바람은 무참하고도 완벽하게 깨졌다.

아이넬은 그 과제를 모두 완수한 걸 넘어 어떻게든 더 많이 배우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으니까.

돌연 레비아가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

“네? 가, 갑자기 왜 그러세요?”

난데없는 사과에 아이넬이 당황했다. 평소에는 애늙은이처럼 점잖은 녀석이 이럴 땐 정말로 어린아이 같았다.

“데바가 아닌 한 명의 마법사로서, 네게 진심으로 미안하구나.”

“······.”

아이넬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표정을 가다듬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는데요. 레비아 선생님이 잘못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그 이유를 알기 전에는 사과 안 받을래요.”

논리정연한 아이넬의 설명에 레비아가 크게 허리를 젖혔다.

“푸하핫! 이유를 알기 전에는 사과를 받지 않는다라······. 그럼 알려주마. 나는 네게 마법을 가르치겠다고 했지만, 그건 거짓말이었다.”

“어, 진짜요?”

“그래. 거기다 너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한 주제에 마법을 익히지 못할 거라고 속단했다. 이게 내가 사과하는 이유다.”

“음음.”

아이넬이 고개를 주억였다.

“이유를 들었는데도 별로 기분이 나쁘진 않은데요? 뭐, 그래도 이유를 알려주셨으니까 사과를 받을게요.”

“고맙구나. 그래, 말로만 하는 사과는 사과가 아니지. 이제부터는 진짜 마법을. 내가 아는 모든 것을 알려주마. 이건 진심이니 믿어도 좋다.”

“오오오!”

큐웃!

아이넬은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는지 어깨를 들썩이며 기뻐하자, 등에 딱 달라붙어 있던 큐우가 비명을 질렀다.

‘그래, 이것이 운명이라면 따르는 게 맞겠지.’

* * *

레비아 선생님한테 마법을 배운지 어언 열흘 차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나는 마나에 적응하는 훈련을 비롯하여, 진을 이용한 마법의 이론 및 룬어를 중점적으로 배웠다.

그중에서도 가장 신기했던 건 룬어였다.

듣자하니 이 룬어에는 힘이 담겨져 있다고 한다.

달리 말해서 룬어를 적는 것만으로도 마나에 영향을 끼친다나.

실제로도 룬어의 의미는 완벽한 언어였으며, 레비아 선생님은 이를 신의 언어라고 불렀다.

즉 아무데나 룬어를 새겼다가는 본의 아니게 큰 화를 입을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하더라.

이를 증명하듯 레비아 선생님이 적어준 룬어에는 동일한 모양새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나는 모든 룬어에 들어가 있기에 원래부터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 문양은 스테그망이라고 일컬었다.

처음에는 룬어가 주변에 영향을 끼치지 않게끔 일부러 틀리게 적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마법사들 사이에 통용되는 고유의 표식이 되었다지.

쉽게 말해서 안전장치 겸 인감도장인 셈이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레비아 선생님의 스테그망까지 싹 외워버렸지만 말이야.

아울러 모든 마법사는 자신만의 스테그망을 지니고 있고, 데바들 사이에서는 누구의 스테그망이 더 멋있는지 겨루는 경우도 있단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참 간사한 게······.

나는 스테그망을 만들라기에 대충 이니셜만 따서 지으려고 했다. 어차피 안전장치의 역할만 하면 되는 거니까, 작대기 하나만 그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근데, 스테그망이야말로 그 마법사를 나타내는 증표라고 하니 또 욕심이 생겨서 아직 스테그망을 만들지 못했다.

“뭐,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으니까.”

고작 열흘이라고는 한들 내 나름 최선을 다해서 마법을 공부했다.

근데, 예습과 복습도 하루 이틀이지.

처음에야 룬어를 잘못 적으면 큰일난다기에 심혈을 기울였고, 지금도 같은 마음이지만 매일 똑같은 걸 외우고 또 적는 걸 반복하다 보니 심심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더불어 지금까지 들은 수업만으로도 충분히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그렇다고 독단적으로 마법을 쓰기에는 위험부담이 큰지라, 나는 어제 레비아 선생님을 찾아가 직접 마법을 써보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그 결과 마침내 나는 레비아 선생님이 지켜보겠다는 조건 하에 승낙을 받아낼 수 있었다.

오히려 레비아 선생님 앞에서 하는 게 안전했으니, 나야 대환영이었지.

여차저차 허락을 받은 나는 즉시 마법을 부여할 물건을 만드는데 착수했고, 오늘 아침에서야 완성할 수 있었다.

“저 왔어요!”

“음?”

“오늘 마법 부여하기로 했잖아요!”

“아아. 그랬지. 내참, 그렇게 마법을 써보고 싶은 거야?”

“당연하죠!”

“좋다. 어디 한번 보자.”

나는 레비아 선생님과 함께 작업대로 향했다.

작업대에는 며칠 전부터 만들어 둔 물건이 놓여있었다.

“흐음? 그걸로 뭘 하려는 거냐?”

레비아 선생님이 내 손에 들린 물건을 보며 물었다. 아마 레비아 선생님은 그저 마법진을 그리는 줄 알겠지만, 천만의 말씀이었다.

“헤헤, 보시면 알아요! 저, 그럼 바로 시작할게요!”

“그래.”

나는 레비아 선생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룬어를 새기는 작업에 몰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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