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소년기(11) - #마법을 배우자!
마나에 극도로 민감한 체질이라는 걸 알게 된 지 어언 일주일이 흘렀다.
일주일이라는, 짧다면 짧은 기간. 정확하게는 내가 마나를 접했던 아주 찰나간의 순간 이후로 커다란 변화들이 생겼다.
하나는 바로 나를 아우르는 환경이었다.
평생을 우물 안에 있던 개구리가 바깥세상을 접한 듯한 감각이라고 해야 할까.
따지고 보면 개구리가 우물 안에 있든, 우물 바깥에 있든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여기서 달라진 것은 세계가 아닌 개구리의 인식이다. 쉽게 말해 자신을 감싸고 있던 세상이 확장되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지금의 내가 딱 그런 상황이다.
숲에서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도, 파란 하늘에 올라 지상을 데우는 태양도, 모두가 잠든 시간에 홀로 밤을 밝히는 달도.
모든 것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나에게는 모든 것이 새롭고 또 다르게 보인다.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날 감싸고 있던 세계가 한 차례 무너졌다가 새로이 만들어진 감각이다.
“휴우.”
문제는 이러한 급격한 변화는 내 육체에 많은 부담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특히 앞서 말했던 것처럼 나는 마나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체질이다.
“데커드 할아버지를 따라간 게 신의 한 수였지.”
나아가 그곳에서 레비아 씨를 만나 마나를 접하지 않았더라면?
훗날 나 혼자 있을 때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더라면 그때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사태까지 치달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비록 본의는 아니었지만 더 늦기 전에 알아차릴 수 있었으니······ 결과적으로는 천만다행이었던 셈이다.
어디까지나 알아차렸을 뿐이지, 만사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으으, 토할 것 같네.”
늦지 않게 체질을 알아서 천운이었다고는 한들, 지금 내게 들이닥친 변화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더불어 잠정적 시한폭탄이라는 사실 또한 변하지 않는다.
하물며 마나라는 게 원래 이렇게 생겨먹은 건지, 조금만 닿을라치면 속이 울렁거리고 눈앞이 빙글빙글 돈다. 거짓말이 아니라 바람만 불어도 크게 요동치는 통통배에 올라탄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그것도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 위를 24시간 내내 항해하는 것만 같았다.
덕분에 나는 집으로 돌아온 뒤로 줄곧 데커드 할아버지의 오두막에 누워 요양 아닌 요양을 해야만 했다.
그마저도 레비아 씨가 지정해준 구역을 넘어가서는 안 된다. 자세한 건 나도 잘 모르겠지만, 듣기로는 오두막 주변의 마나를 우회시키는 마법을 걸었다나.
그 증거로 오두막 바닥에는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흐음······.”
나는 울렁거리는 속을 애써 무시하며, 마법진을 살펴봤다. 동그란 원에 처음 보는 문자들이 빽빽하게 적혀있었다.
아니, 애당초 저걸 문자라고 할 수 있을까.
고대적에나 쓸 법한 상형문자와 비슷한 생김새였다. 일정한 간격과 규칙을 두고 써나간 것처럼 보이는데, 또 어떻게 보면 그냥 아기가 낙서를 한 것처럼 제멋대로 쓰여진 것 같기도 했다.
“확실한 건 저 문자가 마법에 쓰이는 언어라는 거지.”
그 말인즉 저 문자를 익힌다면 나도 마법을 쓸 수 있다는 말이 아닐까?
“······욱.”
다시금 치미는 울렁증에 머리를 부여잡았다.
“으으으.”
레비아 씨가 이르길, 내 체질이 워낙 강력해서 자신이 설치한 마법진조차 완벽하게 마나를 우회시킬 순 없단다. 심지어 마법진에서도 소량이나마 마나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마법진이 없는 것보다야 수천, 수백 배 나은 상황이지만 그 조금의 마나만으로도 날 넉아웃 시키기에는 충분했다.
“끄응······. 얼른 적응을 해야 하는데······.”
말은 쉬웠으나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런 사실을 부모님이 알았다가는 대번에 집이 뒤집힐 게 뻔할 터.
내 연기가 먹혀들어서 아직 눈치채진 못했는데, 언제까지 숨길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뒤늦게서야 알게 된 사실이 하나 더 있다.
듣자 하니 인간은 다른 종족들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데커드 할아버지가 말했다.
엄마는 아직 데커드 할아버지가 에프렐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나 하플링이라는 것도 모르는 상태였다. 뭐, 데커드 할아버지야 귀를 보이지 않으면 인간이랑 별로 다를 게 없었으니 모를 만도 하지.
나만 하더라도 머리카락을 잘라주겠다고 나서지 않았더라면 평생 모르고 지냈을지도 모를 일이지. 이렇듯 특정한 계기가 있거나 직접 물어보지 않는 이상에야 나서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낼 사람도 아니었고.
반면에 레비아 씨는 순수한 데바였다. 데바임을 증명하는 뿔이 떡 하니 달려있으니 대번에 인간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멀쩡하게 달린 뿔을 뽑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 정체를 숨길 방법도 요원했다.
“레비아 씨는 무서운 사람이 아닌데 말이야.”
개인적으로는 다른 종족이 무섭긴커녕 어떤 사람들일지 궁금했다. 할 수만 있다면 지금까지 들었던 모든 종족을 만나보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기도 했고.
근데, 전생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나니까 이런 생각을 하는 거지.
엄마나 아빠에게 레비아 씨에 대해 얘기하기엔 아직 시기상조라서 비밀에 부쳤다.
큐우우우우!
귀를 파고드는 애절한 포효에 슬쩍 창문을 쳐다봤다.
오두막 밖이었다. 정확히는 창문에 자그마한 그림자가 알짱거리고 있었다.
큐우였다.
녀석은 거꾸로 매달린 것도 모자라 창문 대용으로 쓰이는 구멍에 얼굴을 들이밀며 연신 울고 있었다.
녀석은 레비아 씨에게 마나를 주입받은 뒤로 기운을 되찾았다.
뿐만 아니었다.
마나가 회복되기가 무섭게 큐우의 전신에 났던 상처들이 빠르게 아물었다. 지금은 상처는커녕 빠졌던 비늘도 새로 돋아나 말끔했다.
큐우우우웃!
쿵쿵쿵!
큐우우웃!
나와 시선이 마주친 큐우가 보다 격렬하게 포효하며, 연신 창문을 두들겼다.
“푸훗.”
아, 웃으면 안 되는데 어떻게든 내게 오려는 큐우의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너무 귀여웠다.
“야야, 그러다가 집 무너지겠다.”
큐우!
“미안, 미안. 나도 너하고 놀아주고 싶은데, 지금은 가까이 오면 안 돼.”
큐우는 레비아 씨에게 소위 마나 테라피를 받은 상태다. 따라서 녀석의 몸에는 마나가 그득했고, 그 마나는 주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중이다. 거기다 나는 알게 모르게 마나를 끌어당기니 지금의 나와 접촉을 했다가는 서로가 위험해질 우려가 높았다.
이럴 땐 모르는 척을 해야겠지.
나는 큐우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나저나, 슬슬 오실 때가 됐는데.”
내가 데커드 할아버지의 오두막에 전세를 낸 지도 일주일 차다.
고맙게도 레비아 씨는 나와 함께 이곳까지 와줬다. 게다가 내 체질을 개화시킨 게 본인이라면서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말을 남긴 채 본인의 거처로 돌아갔다. 급하게 챙겨올 게 있다면서 늦어도 일주일 안에 온다고 했으니, 슬슬 돌아올 때가 됐는데.
데커드 할아버지 또한 레비아 씨의 부탁을 받은 뒤로는 두문불출하셨다.
“끄응······.”
안 되겠다. 마음 같아서는 두 사람을 기다리고 싶었지만, 도저히 이 멀미는 극복이 안 된다.
나는 연신 꿀렁거리는 속을 어르고 달래며, 눈을 감았다.
* * *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눈을 떴다.
“어, 음······.”
비몽사몽간에 창문을 쳐다봤다. 아침 일찍 왔었는데, 벌써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잠깐 잔다는 게 반나절을 꼬박 자버린 모양이다. 그래도 푹 자서 그런지 컨디션은 제법 괜찮았다.
똑똑!
“일어났느냐?”
내가 깼다는 걸 알아차리셨는지 데커드 할아버지가 문을 두드렸다.
“네!”
내 대답에 문이 열리고, 데커드 할아버지가 들어왔다. 그 뒤로는 레비아 씨도 함께 들어왔다. 대관절, 어디서 뭘 하다가 왔는지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었다.
“몸은 좀 어때?”
“지금은 괜찮아요!”
“다행이군. 아, 이럴 게 아니라 바로 시험해보는 게 좋겠지.”
레비아 씨가 내게 반짝이는 보석을 하나 내밀었다.
“이거 받아라. 아, 혹시 이걸 만졌을 때 조금 어지러울 수도 있어. 정상이니까 놀라지 말고.”
“네? 아, 네!”
나는 얼떨결에 보석을 받았다.
“윽!”
갑자기 머리가 핑, 돌았다. 빈혈이 왔을 때나 느껴봤음 직한 감각이었다.
그것도 아주 잠깐이었다. 시시각각 내 쪽으로 다가오던 마나가 주춤했다. 게다가 내 피부에 달라붙어 흡수되던 마나가 일시에 빠져나갔다.
“후아!”
본능적으로 숨을 들이마셨다.
“어때?”
레비아 씨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숨 쉬는 게 되게 편해졌어요.”
빈말이 아니었다.
진짜로 하루 종일 쓰고 있던 방독면을 벗어 던진 기분이었다.
레비아 씨는 내 확답에도 안심할 순 없었는지, 내 상태를 지켜보며 혹시 불편한 점은 없는지, 또 어딘가 아픈 곳은 없는지 꼼꼼하게 물어봤다.
“제대로 작동하는 거 같아서 다행이다. 앞으로도 그걸 지니고 있으면 괜찮을 거다.”
보아하니 일종의 안전장치인 모양이다.
“그럼 이거 계속 차고 있어야 돼요?”
내가 묻자 레비아 씨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걱정할 거 없다. 네가 마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맞지만, 지금 네 상태는 단순히 체질 때문만은 아니다. 처음으로 마나를 접했기에 몸이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거지.”
“아하! 그럼 제가 마나에 적응할 때까지만 차면 되는 거예요?”
“똑똑한 녀석이군. 그래, 네 말대로다. 아, 그냥 들고 다니면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여기에 넣고 다니면 될 거야.”
어?
레비아 씨가 건넨 것을 본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딱 봐도 이 보석을 넣어서 다니게끔 제작된 케이스인 듯했다. 게다가 케이스의 위에는 가죽으로 된 끈이 달려있었다.
저런 걸 흔히 로켓 펜던트라고 하던가. 본래는 사진이나 그림을 지니고 다니는 용도로 알고 있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말도 있으니 보석을 넣어 다녀도 이상할 건 없었다.
아니, 문제는 그게 아니다.
정작 내가 놀란 건 다른 데 있었다.
이거······ 아무리 봐도 금속인데?
확실하다.
겉면에 매끄러운 광택이 도는 것도 그렇고, 만졌을 때의 그 차가우면서도 반질반질한 감촉도 그렇고.
이건 틀림없는 금속이다.
내가 8년을 살면서 아쉬웠던 게 몇 가지 있었다.
그중에서도 금속의 부재가 단연 아쉬웠다.
물론 이곳에서 자라는 나무는 지구의 것보다 훨씬 단단하고 월등한 내구력을 지녔다.
내가 가장 자주 쓰는 재료인 마수의 뼈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제아무리 튼튼한 뼈라도 사용하다 보면 금방 닳고 깨지는 게 당연했으니까. 물론 토트리라 불리는 마수의 등껍질처럼 바위보다 더 단단한 것들도 존재한다. 그래봐야 지나치게 단단해서 가공은 고사하고 잘라낼 방법조차 없었으니 그림의 떡이었다.
이야······.
설마하니 여기서 금속을 볼 줄이야. 그것도 단순한 광석이 아니라 이렇듯 펜던트로 가공을 한 상태였으니, 그 의미가 더 크게 다가왔다.
금속 그리고 마법.
만약 이 두 개가 합쳐진다면 어떨까?
어쩌면 내가 만들고 싶은 건 뭐든지 다 만들 수 있는 게 아닐까?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며 금속의 질감을 만끽하던 나는 고개를 들었다.
“저, 마법 배우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