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소년기(10) - #알고 보니 마법천재?
응? 장터는 또 뭘까. 아니, 그건 나중에 알아보기로 하고.
나도 마법에 대해 생각하느라고 정작 물어봐야 할 걸 잊고 있었다.
“다른 게 아니라, 큐우의 상태가 조금 이상한 것 같아서요.”
“이상하다? 어떤 점에서?”
“어······ 평소에 잘 먹고 잘 자거든요? 근데, 기운이 없어 보인다고 해야 할까요?”
“기운이 없어 보인다고?”
“네. 그······ 우, 설명하기가 조금 어렵네요.”
“기운이 없어 보인다라.”
레비아 씨가 중얼거리더니 큐우를 응시했다. 뒤이어 살짝 손을 뻗더니 큐우의 등을 가볍게 쓸었다.
어라?
방금 레비아 씨의 손에서 무언가가 빠져나오는 것 같았는데?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무언가가 레비아 씨의 손에서 빠져나오는 게 보였다.
정정한다.
보였다기보다는 느껴졌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분명히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눈으로 본다기보다는 그냥 느껴진다고 하면 적절하려나.
색깔도 향기도 없는데, 그 형태나 흘러가는 모양새를 나는 알 수 있었다.
내가 신기하게 쳐다보는 와중에도 무형의 기운은 계속해서 레비아 씨의 손을 타고 흘러나왔다. 시작점을 거슬러 올라간 곳은 다름 아닌 가슴이었다.
혹시 저게 레비아 씨가 말했던 마나라는 걸까?
이상하네.
레비아 씨는 평범한 인간은 마나를 느낄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두 가지 가능성이 생긴다.
레비아 씨의 손에서 나와 큐우의 등을 감싼 저 무형의 기운이 마나가 아니라는 것.
다른 하나는 내가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
음······.
내 입으로 말하긴 뭣하지만, 확실히 나는 평범한 인간은 아니다.
환생은 차치하고라도 이상하리만치 머리가 비상해졌고, 스스로도 놀랄 만큼 발달한 육체를 타고 났다. 거기다 오롯이 나만 보고 만질 수 있는 반디는 덤이었다.
이렇듯 이미 나에게는 남들과 다른 점이 명백하게 존재했으니 평범함을 자처할 입장은 아닌 것이다.
따라서 내가 두 개의 가능성 중, 후자에 더 큰 무게가 실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상황이 이러했으니 내가 마나를 보고, 느낄 수 있다고 한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셈이다.
그래봐야 아직 결론을 내리기에는 이르다. 지금 내가 느끼는 저 무형의 기운이 마나가 아닐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큐우의 상태를 살피던 레비아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
“큐우한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예요?”
“아까 데바에게 마나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했었지?”
“네.”
“데미르 드라고스도 마찬가지다.”
“아! 그럼 큐우가 기운이 없었던 건······.”
“그래. 마나를 흡수하지 못했기 때문이야. 다만 데바는 마나가 없다고 죽진 않아. 반면에 데미르 드라고스에게는 치명적이야.”
“어, 그럼 마나만 흡수하면 괜찮아지는 거예요?”
“뭐, 그런 셈이지. 근데, 문제가 있어.”
“문제요?”
“데미르 드라고스는 심장에 마나를 저장하거든.”
“아!”
그랬구나.
전에 데미르 드라고스의 심장이 귀중한 재료로 쓰인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모양이다.
“다르게 말해서 마나가 없는 심장은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거지. 특히 어린 데미르 드라고스는 스스로 마나를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 본래라면 제 부모가 돌보며 마나를 나눠주거나 마나가 담긴 먹이를 주니 별로 상관은 없지. 하지만, 지금은 부모도 먹이도 없지.”
“그럼······.”
“그래, 방금 전에 심장을 확인해보니 한 줌의 마나도 없어. 그 말은 이대로 두면 얼마 못 가서 죽었을 거야.”
죽음이라는 단어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럼······. 그 먹이만 구하면 되는 거죠?”
까짓 먹이가 필요하다면 구하면 그만이었다.
내가 당장이라도 숲으로 향할 태세를 취하자, 레비아 씨가 픽 웃었다.
“너무 걱정할 건 없다.”
레비아 씨가 품에서 작은 목갑을 꺼냈다.
안에는 내 손가락 한 마디쯤 되는 크기의 구슬들이 들어있었다.
“마나를 응축시킨 거다. 데바라면 항상 지니고 다니는 약이지.”
“그럼 귀한 거 아니에요?”
“솔직히 만드는 방법이 복잡하고 까다롭긴 하지. 후후, 미안해할 거 없다. 나한테 맛있는 식사를 대접했으니,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나저나, 마나가 없다는 걸 용케도 알아차렸네.”
레비아 씨가 내 어깨를 두드리고는 큐우의 입에 구슬을 밀어넣었다.
그리고는 손을 들어 큐우의 등을 어루만지며 재차 무형의 기운을 뿜어냈다.
아까와 다른 점이라면 레비아 씨의 손에서 나온 무형의 기운이 큐우의 몸속으로 흡수되고 있었다.
신기하네.
당최 영문을 알 수 없는 전개에 호기심을 느끼기도 잠시였다.
레비아 씨의 손에서 빠져나온 무형의 기운 중 일부가 바람에 일렁거리더니, 슬그머니 내가 있는 방향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바람을 타고 흘러가는 모양새가 물살을 따라 이동하는 부표를 연상케 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내 손가락이 무형의 기운과 닿았다.
“윽······?”
돌연 눈앞이 빙글 돌더니 숨이 턱, 막혔다. 초유의 사태에 억지로 입을 벌려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우욱!”
정작 내 입으로 들어오는 건 늘 마시던 상쾌한 바람이 아니었다.
아니, 애당초 이걸 바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끈적하면서 밀도가 높은 것이, 아무런 맛도 없는 꿀을 억지로 목구멍에 들이붓는 감각이었다.
나는 다급하게 입과 코를 막았다.
그럼에도 끈적한 바람은 계속해서 내 입과 콧구멍을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호흡이 가빠지고, 심장이 거세게 두방망이질 친다.
마치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은 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단순한 기분 탓은 아니었다. 실제로도 온몸의 신경이 단절되어버린 것처럼 손가락 하나 꿈쩍할 수 없었다.
위험하다.
본능은 외쳤고 이성은 납득했다.
침착하자.
이럴 때일수록 당황하면 안 된다.
애써 술렁이는 가슴을 가라앉혔다. 수도꼭지를 잠근 듯 꽉 틀어막은 숨통을 살짝 열었다. 한 모금, 한 모금, 퍽퍽한 고구마를 억지로 넘기듯 바람을 삼켜냈다.
한계까지 오그라들었던 폐에 한 줌의 공기가 돈다. 그제야 몽롱함과 함께 가슴을 압박하던 뻐근함이 조금은 가셨다.
“······게냐?”
데커드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거라!”
계속해서 데커드 할아버지가 무어라 외쳤으나 물에 잠긴 것처럼 소리가 뭉개져 정확한 뜻을 이해할 순 없었다.
뒤이어 레비아 씨의 외침이 들렸지만 이 또한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순간 내 등에 묵직한 충격이 들이닥쳤다.
“케헥!”
그와 동시에 막혔던 숨이 확, 트였다.
“숨을 쉬거라!”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숨을 쉬어.”
방금 전 충격 덕분이었을까. 두 사람의 목소리가 보다 또렷하게 들렸다. 더불어 마비되었던 오감도 제 기능을 찾아갔다.
뿐만 아니었다.
방금 전까지 날 괴롭게 했던 현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평소의 향긋한 바람이 내 몸을 가득 채웠다.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이 들자 온몸의 맥이 탁 풀린다.
전신을 덮쳐 오는 탈력감에 저항하기보다는 휩쓸리듯 바닥에 드러누웠다.
으아, 죽는 줄 알았네.
찰나의 순간 동안 천국과 지옥을 오고 간 기분이었다.
접시 물에 코 박고 죽는 것도 아니고, 마나에 코 박고 질식사라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 하리라.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게냐!”
내가 숨을 고르고 있자 데커드 할아버지가 불같이 화를 냈다. 당연하게도 분노의 방향은 내가 아닌 레비아 씨였다.
“그건 내가 묻고 싶은 이야기야.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보아하니 레비아 씨도 이 상황을 납득할 수 없는 것 같았다.
데커드 할아버지는 분을 참을 수 없었는지, 험악한 얼굴로 레비아 씨를 노려봤다. 몇 달을 함께 지냈지만, 저렇게까지 화를 내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래서일까.
데커드 할아버지가 나를 진심으로 걱정한다는 게 느껴져 무심코 웃어버렸다.
“놈! 지금 웃음이 나느냐!”
뜬금없이 내가 웃자, 데커드 할아버지가 호통을 치셨다.
“죄송해요. 그리고 저는 괜찮으니까 너무 열 내지 마세요.”
나는 데커드 할아버지를 진정시키고자 과장스럽게 팔을 흔들었다.
“끄응······.”
이런 내 행동에 데커드 할아버지가 입을 꾹 닫으셨다. 한 마디 던지시려다가 참으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내 마음을 가라앉히신 데커드 할아버지가 레비아 씨를 쳐다봤다.
“그래서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게지? 똑바로 설명하지 않으면 네놈을 가만두지 않을 게야.”
데커드 할아버지의 엄포에 레비아 씨가 침음을 흘렸다.
“내 생각에는······.”
“생각에는?”
“아이넬은 마나에 극도로 민감한 체질인 것 같다.”
마나에 극도로 민감하다라. 그럼 내가 느끼고 만졌던 무형의 기운이 마나가 맞다는 이야기구나.
거 참.
전생의 나는 지극히 평범한 소시민 A, 딱 그 정도였다.
외모면 외모, 능력이면 능력. 뭐 하나 특별난 것 없는 사람이었다.
솔직히 나도 사람인지라 남들보다 얼굴도 잘생기고, 키도 크고, 머리도 좋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늘 했다. 나아가 만인에게 사랑받는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갈망 또한 있었다.
환생한 뒤로 그 갈망이 이뤄지는 것 같아서 속으로나마 좋아하곤 했다.
근데, 어째 그 정도가 조금 심한 것 같은 게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네.
뭐,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마나를 느낄 수 있다는 건 나도 마법을 쓸 수 있다는 이야기였으니, 오히려 바라마지않을 체질이라고 봐야겠지.
이런 긍정적인 결론과는 별개로 두 사람의 분위기는 몹시도 심각했다.
“허? 그게 무슨 소리냐? 아이넬은 인간이다. 내 비록 마법에 빠삭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인간이 마나를 느낄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레비아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이 마나를 느낄 수 없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알고 있어. 그럼 방금 전 그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어?”
“······.”
“데커드, 자네한테도 에프렐의 피가 섞여 있으니까 알 텐데? 방금 전 아이넬······ 내 동생이 봉인당하기 전에 보여준 모습과 똑같았다.”
“동생이라면······ 레스티아를 말하는 게냐?”
“그래. 녀석은 데바들 사이에서 마법의 천재라 불리는 녀석이었지. 그게 왜인지 아나?”
잠시 말을 멈춘 레비아 씨가 고개를 들었다.
“마나에 극도로 민감한 체질을 타고났거든. 마법을 사용하는 자에게 있어서는 축복과도 같은 체질이었지. 뭐, 결과적으로는 스스로 제어하지 못해서 폭주했지만 말이야.”
“······.”
레비아 씨의 이야기에 데커드 할아버지가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네. 자네의 아픈 기억을 꺼내고 싶었던 건 아니야.”
“아니, 그게 뭐 자네 탓인가? 나한테 사과할 필요는 없어.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만약 아이넬이 내 동생과 비슷한 체질이라면······.”
“엄청난 마법사가 되거나, 자네의 동생과 같은 일을 당하거나. 둘 중 하나라는 이야기로군.”
짜기라도 한 듯 두 사람의 시선이 내게로 꽂혔다.